좀 길지만 스타크래프트 소설입니다. 재미있어요^^

[소설/스타] 어느 테란 병사의 삶 (1)

 

어느덧 내일이면 월요일이다. 또다시 지겹고 따분한 일과가 시작되는군... 나

의 유일한 낙은 주중에는 14시간의 중노동이 끝나면 0.2 리터의 알콜 섭취고

주말에는 호버 크래프트로 인공 수목림 사이를 드라이브 하는 것이다. 주위

에서는 내가 그나마 복에 겨워 산다고 한다. 알콜 섭취와 인공 수목림 이용권

은 1종 기사 공인 자격증을 지닌 이들만 허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1종

기사 공인 자격증을 딴 것은 바로 2년 전이다. 우리 아버지는 공부가 적성이

아닌지 시험에는 번번이 미역국만 드셨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2종 기사 자

격증만 가지고 계시다. 울 아버지와 나는 그래봤자 SCV이다. 단지 발톱의 때

꼽만큼의 차이라면 울 아버지는 미네랄만 X빠지게 캐야하고 난 가스만 X빠

지게 캐야한다는 거....

내가 1종 시험에 붙었을 때 울 엄마는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리셨다. 나도

그때는 정말 내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나를 측은하게 바라만

보셨다. 난 울 아버지의 괜한 자격지심이라고 속으로 비웃었으나 지금와서 생

각해보면 아버지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삐익~하는 알람 소리에 잠을 깼다. 음 벌써 아침 6:00군... 일어 나자 마자

뉴스를 보기 위해 컴퓨터 모니터를 켰다. 오늘도 쇼킹한 사건은 없군.... 다음

주면 Tarsonic 지구 위원장 선거가 있고, 우리의 용맹한 방위군은 악질적인

반동 분자인 Son of Kohral의 중요 거점 지대를 공격중이란다. 출출하다. 배

급판을 열어 보니 알약 9알이 있군... 항상 9알... 이 알약 하나에는 각종 비타

민과 필수 영양소/무기질이 골고루 들어 있다고 했지... 한 끼마다 3알씩 복용

하면 아주 좋은 식사지?? 음... 알약... 차라리 알약이 나은 지도 모르겠다. 소

화 기관의 퇴화를 막기 위해서 우물 우물 거리는 아무 맛도 없는 합성 섬유

질에 비하면 이건 먹기도 간편하고 꿀꺽 삼키면 되기 때문에 맛이 중요한 것

도 아니다. 음... 그래도 왠지 모잘라 냉장고를 열어 보니 엄마가 사다 놓은

마른 오징어가 있군. 인간은 알약이라는 멋진(?) 식량을 개발했지만 아직도

구시대의 습관을 버리지는 못했다. 냄새도 이상하고 위장에 엄청난 부담을 주

는 마른 오징어 따위를 아직도 질겅 질겅 씹어야 포만감을 느끼니... 쓰벌...

에어 샤워를 하고 작업복을 갈아 입고 집 현관 앞에 나서면 어김없이 셔틀

버스가 대기 중이다. 드디어 작업장에 도착, Tarsonic - 102 지역 민간 가스

채취장이 내가 일하는 작업장이다. 가스와 미네랄은 Terran 사회에서는 없어

서는 안될 중요한 자원이다. 식량/옷을 비롯해서 모든 기기는 가스와 미네랄

로 만든다. 가스는 수십세기 전에 인간이 사용했던 화석연료에 비하면 100배

나 효율이 좋은 고급 연료이기도 하다. 가스/미네랄 작업장은 용도에 따라 민

간용과 전시용으로 분류된다. 이중 전장터 근처의 가스/미네랄 채취장이 전시

용으로 이용된다.우리 아버지는 전시용 채취장에서 일하신 경력도 가지고 계

시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끔 입버릇 처럼 말씀하시곤 한다. "전장터는 말이

야... 군인이 뛰어 노는 거지, 우리같은 SCV가 주제넘게 그런데서 놀다가는

골로 가기 십상이다. 따분해도 SCV는 후방에서 놀아야돼...." 음 갑자기 서글

퍼지는군.... 그렇다 Terran 사회는 군바리가 장땡이지 우리같은 SCV는 후방

의 천덕꾸러기, 전방의 총알 받이일 따름이다....

 

우리 아버지는 공부와는 담을 쌓은 분이시다. 게다가 고등기술학교를 다닐

당시 대단한 문제아셨다.하구헌날 쌈질에 술만 자셨다. 정신 정화 캡슐에 열

흘 동안 냉동 인간으로 지냈던 적도 있다고 한다. 정신 정화 캡슐은 인체의

신진 대사 기능을 0로 만들고 끊임없이 중추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여기에 끊임없이 '청소년으로서의 사회적 도리'에 대한 설교 내용

을 10일 동안 들으셨던 것이다. 음... 정신 정화 캡슐 덕분에 울 아버지는 범

죄자로 타락하시지는 않았다.

울 아버지의 꿈은 직업 군인으로 출세하는 것이었다. Terran 사회에서 남자

가 할 수 있는 일은 군인, 기술자, SCV, 마지막으로범죄자이다. 이중 끝발

좋고 꿀리지 않는 직업이 바로 군인이다. 군인의 매력은 아주 다양하다. 아무

리 머리가 나쁘고 출신 성분이 미천해도 범죄자만 아니면 군대는 순수한 실

력의 장이다. 혁혁한 전공을 세우면 그건 곧바로 승진을 의미한다. 전쟁은 쏠

쏠하게 많다. 또한 적당히 치열하다. 따라서 죽어라 10년 일해도 반장 승진도

어려운 SCV에 비해 전사자가 많은 전쟁터는 그만큼 쉽게 쉽게 승진되고 보

수도 좋다.

전쟁의 이기고 짐은 상관없다. 그저 무훈만 많이 세우면 장땡이다. 그래야

이기면 우리편 장군에게 인정받고 져도 적장에게 인정받는다. Terran 사회에

서 전쟁은 곧 스포츠이다. 어쨌거나 잘하면 연봉은 쑥쑥 올라가기 마련이고

여기 저기서 스카우트의 손길이 뻗어 온다.

 

 

우리 아버지는 마린에 자원 입대 신청을 하셨다. 가난한 집 아들이 군대에

갈 수 있는 방법은 마린밖에 없다. 탱크 병이나 공군은 뼈대 굵직한 엘리트

군인 집안에서나 입대 가능하고 그외 방법은 땅개로 어느정도 실력을 인정받

아야만 하는 것이다.

마린은 울 아버지의 적성에도 딱 어울렸다. 단순 무식 지랄 이것이 마린의

미덕이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시곤 했다. 그저 개떼 같이 우루루 몰려서 목숨이

3-4개는 되는 것처럼 돌격하는 맛이 바로 전쟁터라고, 무대뽀 마린, 울 아버

지의 우상... 그러나 아버지의 꿈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마린은 하루에도

30-40킬로를 걸어서 행군해야하는 튼튼한 두 다리가 필수 조건인데... 불행히

도 아버지는 신검에서 불가 판정을 받으셨다. 불가 사유는 단 하나였다. 울

아버지는 평발이셨다. 막막해지신 울 아버지는 울며 불며 자살 소동을 벌리

기도 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삐뚤어지시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정화 캡슐의

위력은 대단한 가 부다. 결국 울 아버지는 미네랄 채취 SCV가 되셨다.

 

군인에 대한 미련이 많았던 울 아버지는 전시용 SCV에 지원하셨다고 한다.

Mar Sara 섹터와 Tarsonic 섹터 사이에 벌어졌던 3년 시민 전쟁에 지원하셨

다.

전쟁터에서 우대받는 SCV는 수리용 SCV라고 한다. 그외의 SCV는 자원이

남아 돌 때는 노예이고 자원이 없을 경우에는 총알 받이일 뿐이라고 지금도

울 아버지는 말씀하신다.

전쟁터에서 SCV는 적의 제 1 목표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SCV에는 호신용

무기가 지급되지 않는다. 그저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건 자원채취할 때 사

용하는 드릴이 전부이다. 진지 구축 시에는 SCV는 아군의 철저한 보호를 받

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울 아버지도 SCV에 일종의 자긍심을 지녔다고 하셨

다. 그러나 그 뿐이다. 일단 진지가 구축되고 전투가 본격화되면

SCV는 그냥 총알 받이일 뿐이다. 벌이는 좋을지 몰라도 노동 환경은 지옥

그 자체였다고 말씀하신다. 6시간의 수면 그 외에는 휴식도 여가도 없다. 그

저 죽어라 미네랄만 캐야한다.

간혹 SCV로 급파된 게릴라 부대가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고 대서특필 될 때

도 있다. 그러나 그건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잡는 것과 똑같은 형국일 뿐이다.

아마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몇마리의 SCV가 죽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3년 전쟁이 끝난후 울 아버지는 전쟁터를 미련없이 박차고 나오셨다. 이후 1

종 기술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조금 했다고 말씀하시는데 하여간 울 아

버지는 공부와는 담을 쌓은 분이셨다.

 

결국 미네랄만 죽어라 캐야 했다.

 

울 아버지가 울 엄마를 처음 만난 건 Tarsonic 국영 주점인 TS-107이었다.

이 술집은 울 아버지처럼 직업이 미네랄 채취 SCV인 보잘 것 없는 이덜은

한달에 한 번 정도밖에 이용할 수 없었다. 울 아버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주일에 한 번은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것 같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었기에

저축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봉급으로 모조리 암표를 구매했기 때문에 이게

가능했다. 울 아버지는 여기서 죽어라 소주만 드셨다. 겉멋에 남덜은 잘만

마시는 알콜도수 3도의 군용 캔맥주를 울 아버지는 집요하리만큼 증오하셨다.

그저 지금도 울 아버지는 알콜 도수 25도의 텁텁 씁슬한 소주만이 최고의 술

이라고 주장하신다.

울 엄마는 이래봐도 빵빵한 엘리트 장성 집안 출신의 맏딸이었다. 외할아버

지는 오메가 부대 사단장이셨고 외삼촌 중 한 분은 12대의 베틀 크루저 편대

로 행성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든 혁혁한 전과를 올린 분이라고 한다.

울 엄마의 꿈은 생물학도가 되시는 것이었다. 유난히 다정 다감한 성품 때문

인지 어려서부터 꽃과 동물을 무지무지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집안 분위

기는 울 엄마의 바램을 밀어줄 분위기가 아니었다. 용가리 똥뼈 군바리 집안

인지라 무조건 남자건 여자건 군입대가 필수였다. 결국 자의반 타의반 드롭쉽

조종사로 입대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꽤 유능한 드롭쉽 조종사였었다고 지금

도 말씀하신다. 레이쓰가 전부 추락한 악조건 속에서도 시야 확보를 하며 아

군의 시지 탱크가 적의 주력 부대를 무력화시키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하셨다고 지금도 술 한잔만 드시면 목소리를 높이신다. 그때마다 울 아버지는

비참하게 한쪽 구석에서 쪼그라져 그 소리를 잠자코 듣고 계신다. 그러나 전

쟁터는 울 엄마의 체질이 아니었다. 수십 명의 마린이 개죽음 당하는 일을 당

하고 보니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전쟁 도발에 학을 떼셨다고 한다. 게다가 터무

니없는 군바리들의 공명심과 자기 뻐김이 늘 역겨웠다고 한다.

결국 3년만에 제대를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심히 못마땅해 했으나 울 엄마는

이제 시집가고 싶다고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 놨다고 한다. 제대 후 울 엄마는

죽어라 선만 봐야 했다. 그래도 차라리 사람 죽어 나자빠지는 꼴 보다는 선

보는게 더 낫다고 말씀하신다.

울 엄마가 울 아버지를 처음 봤을 때 울 아버지는 탁자 한 구석에 쭈그려

앉아 죽어라 알콜 도수 25짜리 깡소주를 병나발 불고 계셨다. 희망을 잃은 우

수에 찬 눈빛을 보고 순간 울 엄마는 연민의 정을 느꼈다고 말씀하시더라. 울

아버지는 문뜩 그윽한 시선을 느끼고 순간 당황했다고 한다. 울 엄마는 지금

도 그렇지만 젊어서도 한 인물 했다고 한다.

알콜 도수 3도의 노란 캔맥주를 술인양 뻐기며 마시는 군바리만 봐온 울 엄

마로서는 우울한 표정으로 깡소주를 병나발 부는 울 아버지의 모습은 신선한

문화 충격이었다. 울 엄마는 호기심 반 연민 반 울 아버지에게 말을 거셨다.

쌈질은 잘해도 연예는 서툴었던 울 아버지는 그때 엄청 버벅댔나 보다. 그런

데 될려면 별게 다 꼬여서 인연이 된다고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더 매력적이

었나 보다. 군바리를 경멸하는 울 엄마와 군바리가 꿈이었던 울 아버지는 이

렇듯 묘한 대조를 이루었고 서로에게 위안 거리를 찾았다.

어느날 울 엄마는 울 아버지에게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울 아버지는 순간

당황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당신같이 빵빵한 집안에 유능하고 아름다운 여성이 나같이 SCV가 직업인

보잘 것 없는 남자한테 청혼을 하다니, 당신 미쳤어?? 난 자신없어 당신처럼

괜챦은 여자 인생 망치고 싶지 않단 말야...."

"당신이 돈도 빽도 없는 건 나도 잘 알아요... 하지만 적어도 당신은 내게 위

안을 줘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언제 죽어 자빠질 줄 모르는 남자를

남편감으로 삼는다는 건 끔찍해요.... 그리고 당신은 울 아빠가 물어오는 선

본 남자들보다 유머도 있고 다정다감하고... 무엇보다 그것(?)도 잘하쟎아요."

외가에선 당쓰 엄청 반대하고 난리나셨다. 그래도 울 엄마는 지금까지도 황

소 고집으로 유명하다. 싫은 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한다. 그래서 지금도

부부쌈만 났다 하면 꼭 울 아버지의 마지막 말로 끝이난다. "이씨~~ 독한년."

음... 외가에서는 만일 그러면 널 호적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그러셨다. 결국

울 엄마는 호적에서 지워지고 지금까지도 화해가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난

울 외할아버지를 TV를 통해 잘 알지만 외할아버지는 아마 날 모르실 거다.

그후 결혼 5개월 만에 내가 태어났다. 아버지의 과속 주행 탓이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고 했나?? 나는 울 아버지와 울 어머니의

유전적 요인을 고스란히 물려 받았다. 인물은 엄마 닮아서 자신 있다. 쌈질도

술질도 울 아버지 닮아 엄청 났고. 요건 울 부모님이 인정하는 좋은 부분이

다. 울 엄마는 날 보면 젊은시절의 아버지를 보는 것 같다고 자고로 남자는

잘 생기고 솔직하면서도 터프해야 한다고 그러신다. 그러나 몇가지 부분에서

는 두 분 사이에 약간의 이견이 계신다. 나의 머리는 영민하신 울 엄마와 공

부와는 담 싼 울 아버지의 딱 중간인 것 같다... 그래서 울 아버지는 밭이 좋

아서 내 아들이 똑똑하다고 기뻐하시고 울 엄마는 씨가 비리비리해서 애가

띨빵하다고 울상이시다. 울 엄마는 날 기술자로 키우고 싶었으나 나도 공부는

왠지 적개감을 느끼는지라 과학고등학교 대신 기술고등학교를 죽자살자 고집

하였다. 그래도 울 엄마 머리의 반은 닮아 미네랄 캐는 울 아버지에 비해 난

가스 캐는 SCV이다. 아 슬프게도 아버지의 평평한 발을 나 또한 되물림 받

았다. 울 아버지는 자식한테 못할 짓 시켰다고 그것 땜시 엄청나게 자학하셨

다. 지금도 미안 반 측은 반하는 심정으로 날 쳐다보기 일쑤시다.... 반면에 울

엄마는 피냄새 나는 전쟁터에 널 뺏길 염려가 없어서 너무 좋다고 말씀하신다.

"애야, 넌 제발 니 아버지 처럼 겉멋에 빠져 살지 말아라 알겠니?? 니 아버지

는 군대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지만 니 엄마는 짠밥 그릇 수만 수백그릇이

다.... 내가 경험자로서 말하는데

 

... 군대는 니가 밖에서 보듯 그렇게 삐까 뻔쩍

한데가 아니란다. 가본 사람만 알 수 있지... 난 내 자식 그런 구렁텅이로 내

몰기 싫다."

아 그러나 불행히도 내 몸에 흐르는 피 중 절반은 아버지의 것이었다. 엄마는

애써서 군대가 별볼일 없는 곳이라고 강변하셨지만 갈 수 있는데 안 가는 것

과 아예 못가는 것은 천양지차였다. 울 엄마가 군대를 씹는 모습은 마치 포

도가 높아서 못 따먹는게 아니라 시어빠져서 안 따먹는 거라는 먼먼 수천년

전의 어느 기록 속에서의 여우를 보는 느낌이었다. 멋모르고 SCV가 되었지

만 그 따분함에 질려 어느덧 난 짧고 굵은 삶을 모닥불 속에 뛰어드는 부나

방처럼 갈구하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지금에서야 아버지의 심정이 어떤 건지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 측은한 눈길이 뭘 의미하는지도 알 수 있다. 난 인생

의 패배자일지도 모른다는 강박 관념이 날 무겁게 짓누른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14시간의 노동 후 허무감에 잠겨서 울 아버지처럼 병나발

을 부는 것이었다.

 

 

 

[소설] 어느 테란 병사의 삶 (2)

 

"큰일이야, 큰일."

"이봐 김형 왜 그래?? 뭔 일이라도 났어??"

"정말 큰일이야"

"뭔데 그래? 카드 경고라도 먹었어??"

"맨날 우리끼리 쌈박질만 해대니까 하늘이 노하신거야... 이를 어째, 이를 어 째"

"현재 Mar-sara 지구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진행 중입니다. 지역 분규가 심했

던 12개 지구 연맹들이 이번에 닥친 대재앙에 맞서서 공동 투쟁을 벌리고 있

습니다. 적은 아직 미확인 상태이며 일종의 외계 생명체로 추정되고 있습니

다.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적 전투유닛에 사실상 Mar-sara 수비대는 궤멸 상

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현재 군벌들은 작전상 철수를 신중히 고려 중에 있

으나 민간인 대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밝혀진 바 없습니다. Terran 연맹

은 이 미확인 외계 생명체를 Zerg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외부로부터의 막강한 적! Zerg라고?? 뉴스를 보는 주위 사

람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나보다... 고과 점

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모두다 넋이 나가 Zerg, Zerg만 연발한

다.... Zerg?? 음.. 귀여운 이름이군... Terran 연맹 윗대가리들이 그런 이름 짓

는 재주가 있는건 몰랐는걸?

피~~ 난 동료들의 호들갑이 이내 위선이라는 걸 감지했다. 그들은 말로는 대

재앙이 벌어졌다고 연신 떠들지만 그건 3류 공포 홀로그래피를 보면서 즐기

는 서스펜스 비스무리한 것이었다.

 

이 얼마나 지겨운 나날이었나. 변화없는

삶의 쳇바퀴 속에서 그들은 짜릿한 유희 거리를 발견한 것이다. Tarsonic과

Mar-sara는 불과 얼마전에도 국지전을 벌인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군바리

간의 스포츠일 따름이었다. 우리 같은 SCV는 상관도 없는 먼나라 별들의 전

쟁이 었던 것이다. 인제 타이틀 매치는 강력한 외계 생명체와 Terran 연합으

로 바뀌었다. 이건 big match이다. 그들은 겁에 질려서 세기의 타이틀전을 즐

기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욕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나 또한 이 big

game에 몰입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으니까...

 

상황은 의외로 악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오늘 사이렌이 울리고 뉴스 속보가

방영되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경악 그 자체였다.

"오늘 Terran 연맹은 진돗개를 발령하였습니다. Mar-sara 전선은 현재 정확

히 알려진 건 없으나 거의 궤멸 상태이며일부 지구 연맹은 탈출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Zerg의 정확한 공격 목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 없으나 이 외계 생

명체가 행성간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추측이 대세를 차지한 관계로 이곳

Tarsonic도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결론에서 이와 같은 긴급 조치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Edmond Duke 장군의 성명이 있겠습니다."

"여러분 Edmond Duke입니다. 현재 우리는 Terran 역사상 2번째 위기를 맞

이하고 있습니다. 적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우리의 결론은

Terran 연맹은 그동안의 분규를 멈추고 서로 힘을 합하여 이 세기의 적과 맞

서 싸워야 한다는 겁니다. 이건 Terran의 존폐가 달린 심각한 문제입니다. 따

라서 우리 Tarsonic 지구도 Zerg를 맞이하여 함께 싸울 준비를 차려야 합니

다. 따라서 현재 시점으로 Tarsonic 지구에는 계엄령을 선포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에 진돗개 발령을 데프콘으로 전환할 것을 신중하게 고려 중에 있습니다.

데프콘?? 설마.... 군바리 하는 짓이야 나로서는 문외한이지만 데프콘이라면

조금은 안다. 그렇게 심각한가??

데프콘이 발령되면 중앙 컴퓨터 시스템인 PTE가 가동된다. 이러면 Terran

시민 몸 속에 이식된 주민 인식 카드가 X모드로 전환되며 Tarsonic 지구의

모든 시민들에 대한 모니터링이 가능해진다. 데프콘은 사실 상 전쟁에는 아무

런 소용도 없다는 반론이 심심챦게 대두되었다. 그러나 전쟁 중에는 체제 정

비가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힘겹게 싸우고 이겼는데 갑자기 자기 뒤통수를

때리는 적이 아군에서 생긴다면 그건 물거품이다. 따라서 내부 결속이라는 미

명하에 일종의 보험을 들어 두는 게 데프콘이라고 들었다.

중요한 건 PTE 시스템이 아니라 아군이 총력을 가해도 이길까 말까한 장난

이아닌 사태가 발생했다는 거다.

결국 Mar-sara는 초토화되었다. 초토화 정도가 아니라 행성 자체가 숫덩어

리가 되어 버렸다. Zerg가 고성능 광자포로 아작을 냈다고 보도 되었으나 일

개 생물체가 고성능 광자포를 사용했다는게 조금은 믿기지가 않았다. 대략 5

개의 행성이 Mar-sara처럼 숫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Mar-sara가 숫덩어리가

된날 결국 데프콘이 발령되었고 초 전시 체제로 돌아서 버리고 말았다.

 

일터에서 돌아 오다가 우연히 거리의 전자 게시판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Tarsonic 지구 Terran 연맹은 Tarsonic 방위를 위하여 추가 병력을 소집한다.

나이 18세 이상 신체 건장하고 용모 단정한 남성은 간단한 신검을 통해서 곧

바로 전선에 투입 가능하다. 이번 특수 전시 상황에서 신검의 조건이 대폭 완

화되었으므로 누구든 지원 입대를 환영하는 바이다."

아! 나같은 소외받는 하층민류에게 대재앙은 기회를 약속하는 축복인가?? 난

믿기지가 않아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봤다. 그래 내게도 군입대의 길이 열릴

수 있겠구나.... 갑자기 Zerg가 무한정 귀엽게 느껴졌다. 그 자식들은 한 놈 한

놈이 노다지이다. 고넘들 몇마리만 잡으면... 으아!! 엄마, 기뻐하세요.

엄마는 날 심히 안타깝다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말씀하셨다.

"얘야, 난 니가 허영심에 들떠서 일을 그르칠까 걱정되는구나.. 군대는 니가

생각하는 그런 약속의 땅이 아니야. 게다가 이번 사태는 이전 사태와는 완전

히 틀린 거다. 난 우리 가족이 끝까지 흩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구나. 난 널

절대로 보낼 수 없어."

"니미 그래 넌 나보다 운빨이 땡기는 놈이다. 나가서 멋지게 갈기고 와라. 니

가 이 애비의 묵은 한을 다 풀어 주는 구나"

"여보, 지금 자식새끼를 사지로 내몰면서그딴 소리가 나와요?"

"닝기미. 당신은 뭘 몰라. 평생 가스만 파느니 나같으면 당장 낼모레 돼지더

라도 갈기고 오겠어."

 

 

"에구 내 팔자야. 이런 철딱서니 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남정네를 내 남편이라

고 믿고 살아왔으니. 안돼 절대 안돼. 너 미쳤어? 게다가 넌 외아들이야."

"원 별, 김칫국은.... 자격 요건이 완화되었다지만 확실하지도 않은 거 괜히 방

정떨어서 부정타게 하지 말고... 게다가 얘가 평발이라고 기못피고 살아온 건

정말 나도 속상하다 이거야. 니 애미는 남자의 고민이란 걸 도통 이해못하는

여자다. 넌 제발 이런 여자 마누라 삼지 마라."

"흥 내가 그딴 소리 들을려고 당신같은 남자랑 한 평생 산줄 알아?? 당신같

은 미네랄 두더지가 군대가 어떤덴지 뭘 알아?? 뭘 아냐구? 원 가소로와서.

하여간 난 못 보내."

"치사하게, 또 그말이야?? 이씨~ 독한년"

"뭐야!!"

"깨개엥"

 

한가지 다행인 것은 내 인생은 나의 것이었으며 울 엄마가 울 아버지한테는

무지무지 강해도 나한테는 무지무지 약하다는 거다. 게다가 속으로 울엄마는

젊은 시절 울 아버지 한테 품었던 연민의 정 비스무리한 걸, 자식인 나한테도

품었다는 것이었다. 당신이 그다지도 경멸해 마지 않던 군대에 날 보내는 것

도 참을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매맞은 개 모냥 맨날 깨갱 기도 못피고 사는

내 모습도 참기 어려우셨다. 난 집요하게 엄마를 설득하였다.

"엄마, 엄마가 군대를 싫어하는 건 엄마의 인생이예요. 하지만 전 군대를 가

고 싶어요. 제발, 이런 기회는 이제 내게 2번 다시 오지 않을거예요. 제발....

내가 바라는 것도 못하는 삶보다는 낼 당장 죽어도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

는 삶을 원해요."

"이그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 꼭 찍어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니.. 이

애미 말만 따르면 자다가도 떡이 나오는데 누구 닮아 그렇게 황소 고집이니."

"엄마, 제발, 저좀 살려주세요. 전 정말 숨이 막혀서 죽는 것 같아요. 엄마 죄

송해요. 하지만 군바리로 성공하면 그땐 지금보다 천만배 더 잘 모실께요. 전

부모님을 제 목숨만큼 사랑해요. 하지만 이건 아니예요. 제발 부탁드려요."

"으이그... 낭군이 들떨어지니까 자식 새끼도 이 모냥 이 꼬라지네... 하긴 니

애비는 밤일 빼고는 모조리 다 칠칠이 사춘이었다. 애고 애라이 나도 모르겠다."

"허락하시는 거죠??"

"안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돼"

"애이~~ 칙칙"

"앗 따가~~ 이노무 아가 애미를 죽인다 죽여. 누구 닮아 애가 말귀가 어둡냐?

그렇다고 진짜 눈에다 모래를 뿌리면 어쩌"

"이제 눈에 흙이 들어갔으니 제발"

나의 집요한 설득 공세는 멈출 줄을 몰랐다.

하루는 비장하게 "어머님 제발"

또 하루는 애교있게 "엄마잉~~ 이잉~~ 아이~~ 제바알~~ 잉?? 아잉"

또 하루는 야하게 "아아~~ 엄마아~~ 제바르르르 아~ 아~ 웁스 아~ 웁스 아~"

결국에 엄마는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난 체중이 5킬로가 빠졌다.

 

 

 

[소설] 어느 테란 병사의 삶 (3)

 

큰 맘먹고 월차내고 신검소에 도착한 건 오전 9:00. 아침인데도 신검소는 무

챠게 붐볐다. 내 신청 등록 번호는 3010번. 대기소에 앉아 담배 한 대 꺼내니

까 저 쪽에서 웬 남자가 걸어 온다.

"저기 불 좀 빌립시다."

"그러죠 뭐"

"전 Tarsonic-203 지역에 사는데, 형씨는 어디서 오셨죠?"

"아 전 Tarsonic-102 지역 가스 채취 담당 SCV입니다만."

"아~ 그러세요. 대단하시군요. 민간인은 지금 다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는데,

형씨는 자원 입대를 하시다뇨."

"뭘요, 전 군인이 꿈이었습니다. 이번에 자격 요건이 대폭 완화되었다고 들었기에"

"음... 저랑 처지가 같군요. 이런 말 드리기 실례되지만 형씨는 결격 사유가

뭐였습니까?"

"음... 평발이었는데... 쩌비"

"그래도 형씨는 저보다 좀 낫군요. 제가 듣기로 신체적 결격 사유는 이번에

파격적으로 완화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오히려 제가 더 걱정이네요."

"아니 형씨는 뭐였기에 그러시죠?"

"저희 아버님이 특수 범죄 2종 전과범이셨거든요. 덕분에 저의 출신 평점이

지극히 불량해서리..."

"설마 평발도 뽑는다면 형씨 같은 이도 별 문제 되겠습니까만"

"저도 혹시나 해서 왔습니다. 저 역시 군인이 꿈이라서."

"원 별 세상 좋아졌구만... 저런 쓰레기들과 같이 신검을 받아야 되니."

선글라스에 노란 재킷, 최신형 호버 크래프트,

 

건방진 말투, 저런 인간은 대략

보기만 해도 안다. 아마도 용가리 통뼈 엘리트 군바리 집안의 고귀하신 자제

분이실 것이다.

"어이 형씨, 말이 좀 지나치십니다."

"씨벌, 지나치긴 뭘 지나쳐?? 니네가 나랑 같다고 생각되냐?? 제발 꿈깨라.

인생이 불쌍하다. 난 너희같은 총알받이랑은 격이 틀려 짜식들아"

"저 색히가"

"참으세요. 원 별, 지나가던 개가 짓는 걸로 알면 되지 뭘"

난 애써서 말렸다. 출신 평점이 나쁜 사람이 고귀한 용가리 통뼈를 건드리면

어떻게 된다는 건 Terran 사회에서는 지나가는 개도 안다.

"야 전쟁이 무슨 병정 놀이인줄 알아?? 너넨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총알 받

이야. 전쟁은 선택받은 인간들만 치루는 고급 스포츠라구. 지금은 상황이 좀

안좋아서 너희들같은 총알 받이가 필요하지만 말야. 짜식들. 너희덜의 명복을 빈다."

"형씨, 고만 하시죠. 어차피 입대하면 서로 볼 일도 없을 텐데."

"짜식덜, 난 말야 군대가 무슨 지지리도 못사는 인간덜의 기회의 땅이라도 여

기는 풍조가 지극히 못마땅해. 니네덜은 그저 미네랄이나 가스나 파는 두더지

가 젤 어울려 알아 짜식덜아.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아?? 총알 받이가 없어서

복제 인간 양산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란 말야. 말인즉 너희들 같이 간뎅이가

부은 놈덜은 낼 모레면 골로 가는 거지."

복제 인간 양산?? 그런 말은 이 자한테서 처음 들은 말이다. 확실히 상황은

극도로 안 좋은가 보다. 섬찟했다. 나도 결국 붕어빵 복제 인간처럼 소모품으

로 전장터에서 사라지는 건 아닌지.... 괜시리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짜식, 내 말이 뻥으로 들리냐?? 임마 울 아빠 군빽이 보통 군빽에 보통 정보

통인줄 알아?? 꿈깨 이 짜식들아."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그건 죽음과 다를바 없다. 새삼 비장한 각

오가 솟아 오른다.

"대기번호 3010-3020번은 들어오세요."

음... 드디어 본격적인 신검이 시작된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군들, 긴장을 풀어라. 될 놈은 무슨 수를 써도 되고 안 될 놈은 죽어도 안

되는 것이 이곳의 생리이다. 따라서 나의 명령에 최대한 복종하는 것이 너희

들이 최선을 다하는 길이다."

"일렬 횡대!! 동작 봐라, 동작 봐라"

"하의를 벗는다."

윽... 장난이 아니다. 전원은 일사불란하게 하의를 벗었다.

"이봐 제군들, 군인은 결코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끄러움을 느껴서는 안된다.

Terran의 군인 정신은 무대뽀 단순 무식 지랄이다. 명령에 복종하도록...

빤쓰도 벗는다."

아니... 빤쓰까지.... 빤쓰 벗기를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난 주저없이 벗

었다. 이 순간 처음으로 울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적어도 그거는 난

자신있기 때문이다.

"너 붕대도 풀어!!"

"교관님, 포경 수술한지 이틀밖에 안되서"

"잔말말고 풀어, 안 풀면 불합격이다."

 

 

자랑스런 울 아버지, 아버지의 세심한 배려에 난 문득 감격되었다. 울 아버지

는 내가 태어나자 마자, 포경 수술을 해 주셨기 때문이다. 흑흑흑

붕대를 풀면서 얼굴에는 고통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는 비장하게 붕대를 풀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뒤로 돌아"

뒤로 돌아선 후 잠시 적막감이 흐른다. 이윽고 교관은 재차 명령을 내린다.

"엉덩이 벌려"

순간 방안에는 향기롭지 못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또다시 적막감이 흐른다.

일초 이초...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3014, 3018번 불합격, 나머지는 다 합격이다. 입영 통지서가 날아 올 때까지

집에서 기다릴 것"

 

잉??

 

"교관님 질문있습니다. 신검은 인제 끝난 것 입니까??"

"이번 신검이 완화되어서 자격 요건은 치질만 없으면 된다. 내 제군들을 위해

특별히 노파심에서 간단히 설명한다.

정신적 결격 사유는 이번에 Terran의 우수한 과학 기술이 개발한 이동형 정

신 개조 캡슐에 힘입어서 폐지되었다.

치질이 있는 자덜은 이번에 개발한 특수용 전투복 착용에 부적합하기 때문에

불합격이고 기타 신체적 부적합 사유는 과감히 폐지했다. 이상"

 

아 나도 이제 군인이 된 것이다. 이 얼마나 기쁜가.

"엄마, 아빠, 나 먹었어"

"아이구 내 새끼, 니가 나의 한을 풀어줬어 풀어줬어, 장하다. 내새끼."

엄마는 신검 절차를 물어 보시더니 사뭇 걱정스러운 표정이셨다. 그래도 엄마

는 다정하게 나를 격려하면서 말씀하셨다.

"그래 이제 너의 꿈을 필 기회가 왔으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절대로 아무리

힘들어도 후회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라."

"엄마, 전 꼭 군인으로 성공해서 엄마와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드리겠어요."

"후후... 얘야 군인의 최고의 목표는 뭔줄 아니??"

"네?? 음... 뭔데요??"

"그건 끝까지 살아남는 거다. 제발 살아남아야 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이 애미와 니 애비를 위해서 끝까지 살아 남아야 한다. 내가

바라는 건 오직 그거 하나다. 알겠니?? 이 애미 말 섣부루 듣지 마라. 나도

그 바닥에서 구를 만큼 굴러서 너한테 하는 얘기니까"

"원 별, 재수없게 초장부터 그 딴 얘기나 하구... 어이 그러지 말고 얘 뭐 맛

있는 것 좀 먹여..."

"애구 나도 나이먹으니까 괜한 주책을 부렸나 부다. 하여간 애미 말 명심해야

한다. 아 그리고 내 널 위해서 오늘은 꽃게탕 끓였다."

아 얼큰한 꽃게탕, 이건 내 생일 때도 못 먹는 비싼 음식이다. 오늘 엄마는

정말 큰 맘 먹었나 부다. 우리같은 SCV는 일주일을 뼈빠지게 일해야 먹을

둥 말 둥 한게 꽃게탕이니까... 쩌비 아부지는 꽃게탕을 안주로 소주 병나발

불면서 만면에 희색이 완연하다. 순간 나는 투지가 불끈 솓아오르는 걸 느꼈

다. '엄마, 아부지, 저 반드시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겠습니다. 절 믿고 기다리세요.'

 

아 저녁 때 먹은 꽃게탕이 너무 짰나부다. 목이 말라서 잠에서 깨었다.

부엌으로 향하는데 안방에서 두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이 여편네가... 나 오늘 피곤해... 하여간 기집은 나이먹으면 그것만 밝힌데두

"여보, 나 애 가질 수 있겠죠??"

"원 남사시럽게 자다가 봉창은, 할망구가 애 가져서 손자뻘 되는 아들놈 안고

다니면 참 보기 조홋겠따"

"여보 나 농담 아니예요. 전 불안해요. 하나밖에 없는 외동 아들, 전쟁터에서

잃으면 난 무슨 의욕으로 남은 삶을 살죠??"

"이 여편네가 무슨 재수없는 소리야?? 자식 죽고 허전하면 같이 따라 죽으면

되지. 원 별, 오랜만에 비싼 음식 먹고 왠 헷소리야??"

"애 깨겠어요. 여보, 우리 이제 냉정해집시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요. 여보 신검 절차가 까다로왔다는 건 당신이 누구보다 잘 알쟎아요?? 뭔가

수상해요. 왠지 Terran 연맹에서 서두른다는 느낌도 들고 상황이 급박한 것

같구. 어쩌면 우리 하나밖에 없는 아들 볼 날도 며칠 없는 건 지도 모르겠어요."

"여보, 우리 애 하나 더 가집시다. 이건 그 애한테는 무정한 건지 몰라도, 그

애는 그 애 나름대로의 인생이 있고 저와 당신에게는 우리 나름대로의 인생

이 있는 거예요. 전 그애 군대 안 보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네요.

어쩌면 이건 우리네 팔자일지도 모르고.... 여보 전 불안해요."

울 엄마같은 여장부가 저런 소리하는 건 대가리에 털나서 오늘 첨 듣는다. 왠

지 저 두 분을 볼 날이 며칠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드니 가슴 한구석이 울컥

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밤새 뒤척이다가 잠을 설쳐 버렸다.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다짐은 오직

하나였다. "어머니, 아버지, 꼭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다음날 난 SCV 퇴직서를 내고 퇴직금을 받았다. 액수는 별로 안 되었지만

그 중 70은 부모님한테 드리고 나머지 30은 내 용돈으로 쓰기로 작정했다.

입영 날짜까지 매일같이 술타령을 별였다. 내 직장 동료들은 나의 행로가 이

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아따 넌 목숨이 3-4개 여벌이냐?? 나같으면 차라리 전시용 SCV로 참전해서

수리부에 지원하것따. 와 고생을 사서 하누?"

"니가 시방 지 정신이냐?? 뭐땀시 죽으러 들어가냐??"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위기는 기회이다. 이렇게 무작정 도망가다 죽으나

맞서 싸우다 죽으나 다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울 아버지는 나의 진정한

동지이시다.

"아들아, 그저 죽어라 싸우다보면 살 길이 보이는 거다. 알겄지. 그저 죽어라

싸워야 해. 죽어라."

드디어 입영 날짜가 다가왔다. 부모님을 뒤로 하고 난 드롭쉽에 몸을 실었다.

눈물을 안 보이려고 애썼지만 가슴 한 곳이 뭉클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목소

리가 메어왔다. 그날 따라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다. 그래서 더욱 비장한 기분

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 나의 젊은 SCV 시절은 끝이 났고 파란

만장한 Terran 군생활의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소설] 어느 테란 병사의 삶 (4)

 

훈련소 생활도 어언 한 달 째가 된다. 이곳은 Tarsonic 302-Area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도 중심부에서는 3만킬로나 떨어져 있는 외진 곳이다. 이곳은 예상

외로 삭막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루 하루의 일과는 SCV 시절처럼 고되었

지만 새로운 체험이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이 곳에 와서 제일 힘들었던 건,

하루 20킬로미터의 행군이었다. 푸른 하늘에 우뚝 솓은 Ion cannon포를 보면

서 하루종일 걷는게 일이었다. Ion cannon포는 Tarsonic 행성 첨단 방위 시

스템으로서 Tarsonic대기 상의 비행체를 순식간에 1000개까지 추적 포착하

여 격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훈련병의 사기 진작을 위해 이곳

훈련소가 Ion cannon포 근처에 위치한 것이었다. 완전 무장 후 행군은 그 자

체로서는 그다지 힘든 게 아니었지만 특수한 나의 신체 구조는 나를 남모를

고민에 빠지게 했다. 여태껏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순전히 울 아버지한테 물려

받은 오기와 날 걱정하시던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이를 악물고 발이

부르터져라 걸었다. 힘들게 얻은 기회를 이딴 하챦은 이유 때문에 내팽겨칠

수는없었기에...

훈련 배치 일주일 째 되는 날, 전투복을 지급받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

또한 관례를 깬 거라고 한다. 과거에 전투복은 훈련소에서 2달간 X뺑이를 깐

연후에나 지급되었다고 한다. 하여간 난 TV에서만 봐오던 마린의 전투복을

직접 갖게 되었다.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전투복을 지급 받은 날 이후의 훈련 일정은 교관의 말을 빌리자면 '전투복 유

지 보수 및 착용 방법' 이었다.

"제군들, 이 전투복은 자랑스런 Terran의 상징이다. 교관의 허락없이 이걸 착

용하고 똥폼 잡고 다니면 이동형 정신 개조 캡슐이 여러분을 반길 것이다. 이

전투복은 Terran 연맹 시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귀중한 거다. 따라서 애인 다

루듯이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알겠나!!" "옛 서어~"

전투복은 두부와 가슴 상판에 각각 2개의 후레쉬가 달려 있고 헬멧과 상의

하의가 전부 붙어있는 일체형 원피스 구조를 이루고 있다. 처음에는 이걸 어

떻게 입나 상당히 궁금해 했으나 3일 동안의 고된 노가다 끝에 마침내 터득

하게 되었다. 상단부 단추를 누르면 가슴 상판과 허리를 잇는 보조대가 열리

게 되고 일단 팔과 다리를 전투복에 끼워 넣는다. 이후 열린 보조대에 버클을

잠그면 착용 완료가 된다. 전투복은 무식하게 커 보였으나 의외로 무게가 가

볍고 착용감이 훌륭했다. 훈련 과정 중 하나는 이 전투복을 30초 내에 착용하

는 것이었다.

"제군들, 여러분의 목숨은 30초에 달려 있다. 30초 동안에 이 전투복을 입느

냐 못입느냐에 따라 제군들의 생명이 하루 더 연장되느냐 못 연장되느냐가

결정된다."

이 전투복은 행성 대지간 전투 뿐 아니라 무중력 상태 및 감압 상태에서도

전투가 가능하도록 해준다. 말인 즉 우주복의 역할도 한다는 것이었다. 이외

에도 여러 가지 기능을 지니고 있으나 여기에 대해선 아직까지 아는 바가 없 다.

이후 오늘까지 전투복 군장 행군이 지리할 만큼 계속 되었다.

"제군들, Terran 땅개의 필수 조건은 튼튼한 두 다리이다. 여러분은 이 우주

끝까지라도 행군 완료하겠다는 투지가 필요하다. 살고 싶으면 걸어라. 우리

Terran 땅개의 전략은 개떼 전략이다. 단순 무식 지랄 무대뽀 이게 우리

Terran 땅개의 요체다. 땅개 주제에 차타고 다니길 바라면 돈없고 빽없는 제

군들 부모를 원망해라. 빽 든든한 놈덜은 다 탱크병이나 공군으로 빠져나갔

다. 너희덜은 무조건 걸어야 살아 남는 놈덜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세척제가 지급되었다. 우리는 행군이 끝나면 X빠지게 전투

복을 세척제에 문대야 했다. 그러나 X빠져도 세척제만 믿다가는 고문관 취급

받기가 일쑤였다. 그저 교관 눈에는 빤딱빤딱 하다 못해 물광이 좌르르 흘러

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세척제로 문댄 다음 관절 부분은 치약으로 졸라 딱아

야 했고 상판부는 구두약으로 떡칠을 해야 했다.

군칙 상 전투복에 구두약은 금지되어 있었다. 전투복 표면이 구두약에 부식되

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가지 맹점이 있었다. 군칙대로 했다가는 전투복이

부식되어 정신 개조 캡슐에 들어가기 전에 교관의 몽둥이 찜질에 먼저 저 세

상 갈 확률이 높다는거... 영원은 순간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갑자기 내가 철

학자가 된 듯한 기분이군...

 

며칠 전 드디어 총을 지급받았다. 왕뽀다구에 기깔나 보였다. 그동안의 고된

X뺑이가 보람있었노라고 모두가 다 희희낙락이었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도

철딱서니 없는 기쁨이었다. 이로서 완전 군장 행군 시 짊어질 무게가 3킬로가

추가 되었으며 교관의 갈굼은 거의 히스테리 수준으로 돌변하였다.

전투복 취급 소홀로 걸려 들면 고문관만 캡슐 행이었으나 총기 사고가 나면

책임 교관도 단체 책임을 물어 캡슐 행이었다.

"야이 색히들아, 똑바로 해. 니들 사고 쳐서 나 캡슐가면 니 놈 자식덜 대가

리에 총알 구멍난다!! 알것어" "예~ 써어"

"이 씨불 탱구들 목소리가 졸라 작다. 알갔나" "(졸라 쎄게)예-에~ 써어~~얼"

총의 공식 명칭은 가우스 라이플이었다. 길이는 대략 1미터 20센티 정도로 1

분에 1000발의 연사력을 자랑하는 마린의 무적의 총이란다. 총이 지급된 후

교관이 졸라 구라를 풀기 시작하였다.

"가라는 말야. 니덜 같은 미련 곰퉁이도 쏠 수 있게 개량된 Terran 과학 기술

의 결정체다. 알것냐?? 이 총은 쏠 때 반동이 없다. 게다가 총알은 자동으로

장전되기 때문에 그저 방아쇠만 누르고 있으면 열라게 나간다. 우리 마린의

무대뽀 개떼 작전은 모두 이 가라에 힘입어서 완성된 고도의 전략이다. 방아

쇠만 누른채로 돌진하면 지 아무리 적 색히들이 개겨도 케찹된다. 겨냥하고

잔대가리 구르고 피하고 이런 놈덜은 가라 앞에서 X까라 마이신이다 이말씀

이다. 알것나?? 그저 너희 색히덜은 가라만 철썩같이 믿고 무대뽀 돌격만 하면 된다. 그럼 이제부터훈련이다"

첫날 훈련은 연병장에 집합해서 받들어 총 자세로 5시간 동안 꼼짝없이 서있

는 훈련이었다. 교관과 조교들이 돌아 다니면서 졸라 조인트를 까댔다. 여기

서 한 발이라도 떼면 그 색히는 곧 죽음이었다.

"야이 색히덜아, 가라는 말야, 니 색히덜이 쥐새끼처럼 꿈지럭 꿈지럭 움직이

면 발사가 안 된다. 총의 반동을 없애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구조가 움직이는

순간에는 발사가 안되도록 글러 먹었다 이 말씀이야. 따라서 공격 시 몸 사리

거나 움찔 거리고 뒷걸음치는 비겁한 놈덜은 가라를 갖고 놀 자격이 없는 개

색히덜이다. 알것나??" "예~ 써어"

아 그날은 재수가 없는 날이 었다.

"야 오른쪽에서 두 번째 색히" "예~ 써어~얼"

"적이 니 몸에 총대를 들이밀고 쏠려는 자세를 취한다. 그때 귀관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일단 몸을 옆으로 젖혀 한바퀴 굴러 적의 과녁을 피하고 가라를 발사합니다."

"조교~" "예~ 써얼"

"저 색히~ 손 좀 봐"

툭탁 툭탁. 아 얼얼, 얼마나 맞았는지 기억도 안난다. 온 몸이 삐그덕거렸다.

"야이 색히가 내가 언제 그렇게 하라고 갈켰나?"

"이런 쓰벌 자석덜, 대가리에 똥만 찼구만... 내 특별히 니네 색히들을 불쌍히

여겨 노파심에 친절히 일러 준다. 일단 적의 사정 거리 안에 들면 너희덜은

지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를 발휘해도 적의 과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따라

서 전투 상황에서 니 색히덜이 살아 남는 유일한 방법은 적 색히덜보다 한

발이라도 더 많은 총알을 몸구석에 처박는 것이다. 적의 공격을 일정 순간은

전투복이 보호해 줄 것이다. 따라서 일대일 상황 시 전투는 10초 내에 결판난

다. 니 색히덜의 최선의 전략은 적보다 먼저, 목표물을 발견하고 개떼같이 몰

려 가서 한 방이라도 더 먹이고 오는 것이다.

땅개간의 전투는 어려운 말로 에헴~~ 제로썸 껨이다. 니덜이 살기 위해서는

적 하나가 꼬꾸라져야 한다. 알겠나??" "예~ 써얼"

"방금 이 색히 같이 어벙한 소리했다가는 너희덜이 케찹된다. 다시 훈련 실

시" "훈련 실시"

그날 난 요주의 인물로 찍혀 시범 케이스로 비오는날 먼지나듯이 얻어 터졌

다. 자면서 내내 개처럼 끙끙 대었다고 한다.

 

너무나도 힘든 나날이었다. 점점 훈련은 FM화 되가고 있었다. 술은 알콜 도

수 3도 짜리 누리끼리한 캔맥주가 다였다. 후방에 있을 때 즐기던 쐬주는 눈

을 씻고 찾아 봐도 없었다. 사식은 비교적 자유로왔지만 술반입은 엄격하게

금지였다. 덕분에 난 완전 골초가 되어갔다. 군대에서는 적어도 고급 시가를

맘놓고 필 수 있었다. 심지어 교관덜은 훈련 중에도 시가를 꼬나물고 우리를

갈궜다.

편지도 몇 통 오갔다. Tarsonic 지구 자매 여학교에서 날라오는 위문 편지도

있었고 코흘리개 꼬마덜이 휘갈긴 편지도 있었다. 가끔가다 Edmond Duke 장

군의 친서가 하루종일 스피커를 통해 낭독되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젤 기쁜 건 집에서 날라 오는 편지였다. 부모님은 건강하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기쁜 건 어머니가 내 동생을 잉태했다는 것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찡하긴 했지만 그래도 식구가 생긴 건 기쁜 일이었다.

하여간 '받들어 총' 훈련이 끝나기 무섭게 계속 골 때리는 훈련이 꼬리에 꼬

리를 물었다.

두 번째 훈련은 연병장을 군가를 부르며 뱅글 뱅글 돌다가 교관이 "그만"하

면 가운데 모아 놓은 의자에 잽싸게 앉는 훈련이었다. 의자는 항상 뱅글 뱅글

도는 훈련생보다 모자랐기 때문에 몇 명은 의자에 앉지 못해서 그냥 서있어

야 했다.그런 색히덜은 교관의 말을 빌리자면 "개색히"덜이고 그날은 "죽음"

이었다.

"제군들, 마린의 생명은 위치 선점이다. 내 니네 돌대가리에 새겨지도록 떠들

어 왔지만 가라는 움직이는 순간에는 발사 불능이기 땜시 적보다 유리한 위

치를 선점해서 졸라 쏴 갈겨야 한다. 따라서 순간 판단력과 순발력이 전투의

대세를 결정한다. 알것냐??" "예에~ 써어~얼"

"그럼 훈련 실시"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왼쪽으로 손을

잡고 빙글 돌아라. 오른쪽으로 손을 잡고 빙글 돌아라"

"그만~~"

"억 흑 윽 아으~~ 윽"

이날 2000명 중 1200명 가량이 의자에 앉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날 밤

은 이 1200명이 끙끙 앓는 소리를 해대서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첫

훈련 때 죽도록 얻어 터졌던 나는 군기가 바짝 들어서인지 아니면 운빨이 좋

아서 인지 다행히도 이 1200명 안에는 속하지 않았다.

세 번째 훈련은 사격판 바로 앞에 훈련생 여러명을 세워 놓고 다른 훈련생이

뒤에서 사격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총탄은 실탄 대신 BB탄이 지급되었으나

요것도 맞으면 장난 아니게 아펐다. 요런 식으로 조를 바꿔가며BB탄을 갈겨 댔다.

"제군들, 마린 러쉬의 핵심은 공격 밀도이다. 따라서 제군덜은 항상 깡패 색

히들 처럼 우루루 떼로 몰려 다니면서 가라질을 해대야 한다. 가라질을 해대

다가 아군을 씹는 비엉신 같은 색히덜은 마린으로서 함량 미달이다. 따라서

지금 제군덜이 받는 훈련은 그 어떤 훈련보다 정밀성을 요구하는 고난위도의

훈련이다. 제군덜의 시야를 가리는 아군을 요리조리 과녁에서 제외시키면서

바지 가랑지 사이로 쏘던 겨드랑이 사이로 쏘던 앞의 목표물을 과감히 명중

시켜야 한다. 알겄나" "예~ 써~얼"

"그럼 훈련 실시"

교관이나 조교덜의 얼차려는 없었다. 그 때문에 처음에는 얼마나 기뻣는줄 모

른다. 하지만 그건 결국 꿈깨였다. 잘못해서 앞 사람을 맞추면 곧바로 피의

복수가 날라왔다. 열받는다고 치고 받았다가 전열 이탈하면 곧바로 캡슐행이

다. 따라서 내가 10발 맞추면 그 다음 번엔 내가 친 놈에게 20발을 되돌려 받

는 혈전이 벌어졌다.

첫 이틀을 이런 식으로 훈련을 마치니 온 몸이 수두에라도 걸린 놈처럼 알알

이 피멍이 들었다.

요 훈련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앞에 있는 놈은 두 발을 떼지 않고 뒤에서

날라오는 총알도 피하고 앞에 있는 목표물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심신이 골

병이 들었다.

 

20미터 전력 질주 후 서서 쏴, 20미터 전력 후퇴 후 서서 쏴, 학익진 형태로

서서 쏴 등등, 훈련은 점점 정교해져갔다. 이로서 마린 러쉬의 요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결론은 이거였다. 적의 사정 거리 안에 포

착되면 아군도 공격 가능하기 때문에 후퇴없이 계속 쏴댄다. 이때 움직였다가

는 전투는 글러먹게 된다. 적의 사정거리가 아군의 사정거리보다 짧으면 20미

터 씩 전력 후퇴하면서 서서 쏴를 취한다. 마린 러쉬는 항상 개떼로 몰려 다

녀서 공격 밀도를 높여야 하며 학익진 형태가 가장 유리한 공격 형태이다.

때로는 설정된 목표 공격물을 공격하기 위해서 앞을 지키고 있는 적군을 돌

파해야 할 필요도 있다. 이때는 20미터 전력 질주로 돌파 후 적의 목표물을

공격한다.

X벌 어찌 보면 넘 당연한 걸, 우리는 맞으면서 배웠다. 하두 맞으니까 눈앞에

총알이 날라와도 겁도 나지 않았다.

 

전선은 점점 교착 상태가 되어 가고 있었다. Mar Sara를 중심으로 수개의 행

성을 초토화시킨 이후로 막강하기 그지 없던 Zerg는 큰 공세를 보이지 않으

나 야금야금 세력 확장을 하고 있다. Mar Sara 민간인 피난 대책 발표 및 생

존자의 증언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방송이 안 되었다. Edmond Duke

장군은 뜬 굼없는 소리로 우리 Terran 연맹은 Zerg를 섬멸시킬 복안을 가지

고 있다고 가끔가다 떠들고 아직 Tarsonic은 안전했다. 전시 중의 Terran 사

회는 정보가 매우 폐쇄적이고 일반한테 공개가 안된다. 따라서 현재 상황이

어떻게 굴러 가는지는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너무 훈련이 힘들

다 보니 그런 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말하는게 더 솔직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이제 신병 훈련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지난 4개월 동안 정말 죽도록 얼

차려를 당했다. 덕분에 는 건 깡다구와 지랄깽판치는 것이었다. 그래도 한 번

마린은 영원한 마린이라고 난 어느정도 자긍심도 갖는다.

어느덧 부대 배치를 발령 받을 것 같다. 현재 Tarsonic은 Ion cannon 시스템

및 2개 사단의 부대가 철옹성 처럼 지키고 있으며 Zerg의 도발 행위도 감지

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아마도 난 Tarsonic 관할 행성인 Blood Bath 행성이

나 Stynx 행성에 배치될 것 같다.이 두 곳은 Tarsonic 행성의 전략적인 공

격 요충지로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가스와 미네랄이 풍부

한 행성이었으며 궤도에 우주 정거장이 위치한 곳이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Zerg의 도발 행위가 공공연해지고 있다고 한다.

오늘 훈련 때 교관은 갑자기 뜬 굼없는 소리를 해쌌다.

"제군들, 제군들은 이 교관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특별히 제군들에게 악감정을 품은 건 아니다. 다 제군들을 위해서 내가 총대

를 둘러 메고 악역을 해왔다. 아니 이해는 바라지도 않겠다. 하지만 제군들이

실전에 배치되면 내가 아마 겁나게 고마울 것이다."

X랄 해쌌네.... 쓰벌... Zerg가 아무리 끔찍하다고 해도 교관보다는 선량할 것

같다. 빨리 이 훈련이 끝났으면 좋겠다. 어서...

 

드디어 훈련은 마무리되고 부대를 배치받았다. 예상대로 Stynx 행성의 320

지구에 위치한 시그마 부대에 마린 이등병으로 낙착된 것이다. 부모님은 내가

고된 훈련소 일정을 훌륭하게 소화한 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것

같다. 오늘은 울 엄마가 특별 사식으로 마른 오징어를 보내왔다. 알약과 합성

수지에 찌든 나에게 마른 오징어는 그 어떤 진수 성찬보다 고마웠다. 입에 맞

지 않는 알콜 도수 3도 짜리 군용 캔맥주도 마른 오징어를 안주 삼아 꺾으니

흥이 절로 났다. 교관한테도 마른 오징어 3마리를 갖다 바쳤다. 입으로는 졸

라 원시인 취급하고 이런 냄새 나는 소화도 안되는 걸 먹는 너는 정신 상태

가 썩어 빠져 당장 캡슐행이라고 잘도 나불대면서도 결국은 가져갔다. 오늘은

훈련 마지막 날로 특별 휴가이다. 하루 종일 전투복에 물광내고 빈둥 빈둥

PX에서 캔맥주에 오징어나 씹으면서 여유 작작 보냈다. 이제 내게도 본격적

인 군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푸른 하늘에 우뚝 솟아 있는 Ion Cannon포를

보면서 문뜩 뿌듯함을 느꼈다.

 

 

 

[소설] 어느 테란 병사의 삶(5)

 

조그만 창 밖으로는 광활한 우주가 펼쳐져 있다. 내게 우주 여행은 난생 처

음이다. 초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갑자기 아스라이 펼쳐진다.

Terran 연맹은 수세기 전 저 은하수 너머의 태양계라는 조그만 성계의 세 번

째 행성인 지구에서 왔다고 한다. 그 곳은 여기에서 아주 멀어서 지금 가장

빠른 우주선으로 횡단해도 냉동 인간 상태로 10년이 걸려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이 우주에 고등 생명체라고는 지구와 이곳 Terran 연맹에 속한 인

간들밖에 없다고 여겨왔다. 전쟁은 인간끼리만 벌려야 하는 닫힌 시스템이요

필요악이라고만 배워왔다. 그러나 상황은 인제 완전히 바뀌었다. Zerg라는 새

로운 생명체가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나타난 것이다. Zerg에 의해 초토화

된 Mar Sara의 시민들에게는 그들이 위협적인 대재앙일지 몰라도 지금 나에

겐 경외로운 생명체였고 나에게 기회를 준 구세주같은 존재이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에 소풍으로 들 뜬 어린애처럼 난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어이 형씨, 난 Coral 행성 출신인 김말동이라 하오. 형씨는 어디서 오셨수?"

"아 전 Tarsonic 행성에서 왔습니다만"

"어이구, 이거 서울분이시구만 난 깡촌에서만 살아서리... 어쨌든 만나서 반갑

수다. 담배 한 대 피실려우?"

"아 예 고맙습니다만...."

"후후후, 이제부터 만나는 사람은 다 아는척 하시우. 언제 어느 순간 전우가

될지도 모르는 거니께. Zerg지 뭔지 그 개뼉다구 땜시 이 세상이 완전 군바리

천지가 되었다우. 하긴 그 개뼉다구가 아니었다면 나 같은 거러지가 이런 호

사스런 우주 여행을 할 수 있었겠수? 근데 형씨는 뭐땀시 군에 입대하셨수?"

"전 군인이 꿈이었습니다. 결격 사유가 있어서 군인이 될 수 없었는데 이번에

특별 조치 때문에"

"푸후후... 하긴 이번 특별 조치 때문에 별별 사람덜이 다 군바리가 될 수 있었지."

은근히 비웃는 그의 말투에 비위가 거슬렸으나 그렇다고 대화를 뿌리칠 분위

기도 아니었다.

"형씨가 부럽수다. 군인이 꿈이라니... 나같은 인간은 거기에 비하면... 쩝쩝"

"난 깡촌이라도 미네랄 두더지 생활이 더없이 좋았수... 내가 군에 입대한 건

순전히 돈 때문이지... 솔직히 벌이는 군바리가 더 좋쟎수?? 난 부양 가족 땜

시 내 목숨을 담보로 이짓을하게 되었수다 그려. 젊은이 내 충고하나 하겠는

데. 인생은 가늘고 길게 사는게 장땡이여...."

"옛날 Terran 군바리는 용가리 통뼈 빽좋은 인간덜의 천국이었지... 하지만 이

젠 세상이 바뀌었어. 개나 소나 다 군바리래... 원 세상에, 형씨는 어떤 지 모

르지만 난 훈련소에서 별별 인간덜을 다 봤어? 형씨가 있던 훈련소에도 범죄

자나 정신 병자 같은 이덜 숱하게 봐왔겠지??"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궁금해진 나는 그의 훈련소 생활에 바짝 흥미가 당겼다.

"그래?? 어이구 원 별 X같아서. 별 걸 다 서울하고 깡촌 차별 하네...씨빌

내 아무리 깡촌 출신이지만 형씨보다 먹은 밥그릇이 조금 더 많아서 하는 야

근데.... 암만봐도 Terran 군바리덜이 Zerg 개뼉다귀한테 밀리는 게 확실한

겨.... 그러니까 가막소에 X뺑이 깔 놈덜이 전부다 훈련소에서 X뺑이 까고 있

지.... 아마 형량 줄여준다는 걸 미끼로 잔뜩 바람을 집어 넣은 것 같애.... 그

거 뿐이여? 암만 봐도 가막소에서 썩는 것부단 아 전쟁터에서 구르면 도망갈

기회도 더 생길 것 같구.... 불쌍한 놈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지... Terran

윗대가리가 보통 불야신줄 알어.... 형씨 캡슐에 들어 가본적 있수??"

캡슐.... 그래 항상 교관은 캡슐행이라고 말끝마다 윽박지르곤 했다. 그러나 실

제로 캡슐에 들어간 사람은 훈련 과정 중에서 보지 못했다.

"아 우리 훈련조에 어떤 색히가 교관한테 개기다가 캡슐에 한 번 갔다 왔는

데.... 도데체 뭔 고초를 겪었는지 지 이름 석자를 기억도 못 하는겨.... 어이

구... 시상에.... 원 난 그렇게 끔찍한 표정 첨 봤네... 그게 산 사람 얼굴이여...

죽은 송장이지. 하여간 가막소 있던 놈덜.... 허튼 수작 부리면 무조건 캡슐행

인데... 거기 갖다오면 총쏘는거 하구 전투복 입는 거 빼면 밥먹는 것도 제대

로 할 줄 모르는 반병신이 되더라구."

갑자기 등꼴이 오싹해졌다. 캡슐행이면 사회 고과 점수가 대폭 깎일 정도로만

예상했는데... 그는 계속 주절주절 떠들어 댔다.

"허긴 별별 짐승 같은 놈덜 많았어... 아 글쎄 어떤 놈은 허우대는 멀쩡한데

기집에 굶주려서 한밤중에 자는데 옆 놈을 덮치더라니께... 이 두 눈으로 똑똑

히 봤지... 목에 칼을 들이대고 후장을 따먹는데 아 글씨 당하는 놈도 참 재수

없게 모진 꼴 당했지.... 기가 막히니까 그냥 허허 대더라니까...

그거 뿐이여?? 담배에 항생제 섞어서 피우다가 뿅 간다고 연병장에서 가라질

을 해대지 않나.... 그 색히 때문에 꼴 보기 싫은 교관 한 놈도 캡슐가서 맛이

가구... 하긴 그 색히 때문에 훈련 말년이 편하긴 했어.... 고마운 놈이었지."

"형씨, 형씨가 여태껏 운세가 좋아서 모진 꼴 안 당했는지 몰라도 앞으로 내

가 겪은 거 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모르는겨.... 그러니 괜히 군인이 꿈

이네 뭐네 그딴 소리 떠들지 말고 그저 삭신이나 잘 보살피게나.... 내 형씨가

왠지 내 동상같아서 한마디 거드는 거니께 기분 나빠하지 말라구."

갑자기 신검에서 "너희 색히들은 총알받이야."라고 내뱉던 용가리 통뼈 엘리

트 군바리 자제분이 떠오른다. 한편으로는 옆에 앉은 수다장이가 견딜 수 없

이 증오스러웠다. 이 자식 덕분에 모처럼 좋던 내 기분은 산산 조각이 되어

버렸으니까....

아무 대꾸도 안 하는 나한테 계속 떠드는게 지루했던지 이 자식은 이내 코를

드르렁 거리며 자빠져 자고 있었다.

 

범죄자들이 군에 입대하는 건 오랜 Terran의 전통이었다. 애당초 Terran은

지구라는 먼 고향별에서 추방된 유형수들이 정착해서이룩한 연맹이었다. 초

창기 Terran 사회는 엄청 살벌했었다고 역사 시간에 배웠다. 광란의 도가니

에 빠진 유형수들과 이들을 통제하는 소수의 엘리트 군인들은 수많은 이합집

산 끝에 오늘날과 같은 세력을 갖추게 되었다. 심지어 지금은 국제 협약 상

사용 금지된 핵폭탄에 의해 3군데의 행성이 쑥대밭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러나 세력이 안정되고 지금의 형국을 이루자 상황은 바뀌었다. 재편된 군벌

세력은 모두 다 고만 고만한 세력들이었기 때문에 어느 한 강력한 세력에 의

한 Terran 사회 통일은 염원한 것이었다. 국지전과 세력 다툼은 이후에도 계

속 끊이지 않았으나 점점 분위기는 짜고 치는 고스톱 분위기가 되었다. 어떤

군벌도 통일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세력 범위 내의 체제 정비를 위

해서는 끊임없는 무력 도발을 필요로 했다. 점점 군사력의 필요성은 증대되었

으나 초기 사회 형성 시처럼 절박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전쟁이 빈번함과

는 달리 끊임없는 군축이 시도되었으며 전쟁은 일부 특권층의 병정 놀이 같

은 분위기로 흘러 버렸다.

과도했던 옛 분쟁의 원한이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남아서 아직도 지역에

따라서는 Son of Korhal 같은 극렬 분자들이 날뛰었으나 그런 세력은 아주

소수에 불구했고 대다수의 군벌에 의해 이지메 당하는 분위기였다.

근데 Zerg의 출현으로 이러한 관례가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수세기 전 광란

의 전쟁에서처럼 무분별한 군대 동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너무 섬뜩했

다. 순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난 이미 너무 먼 길

을 걸어 온 것이다. 내 자존심은 여기서 내가 발을 돌리기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아! 내 마음 깊은 곳에 잠재해 있던 고민을 한순간에 까발린 이 작자

가 정말 증오스럽다. 게다가 날 이렇게 불안에 떨게 만들고 이 작자는 태평하

게 퍼질러 자고 있다..... 한동안 침울해 하던 나는 결국 아주 속편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래 뭐 별일이야 있겠어?? 평생 SCV로 빌빌 대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번의 모험으로 그래.... 적어도 울 아버지는 날 믿으셨으니까...

갑자기 머리를 많이 굴렸더니 졸음이 온다. 쿨 쿨~~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방송에서 들리는 어여쁜 여자 목소리에 잠이 깼다.

"앞으로 30분 뒤 면 Stynx 행성에 궤도 진입을 하게 됩니다아. 궤도 진입 시

약간의 충격이 있으므로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 벨트를 꼭 착용하시기 바랍니다."

쿠광꽝하는 충격음과 함께 기체가 약간씩 요동을 쳤다. 이윽고 창밖으로는

Stynx 행성의 지표면이 보였다. 바다 대신 푸르른 녹지가 광활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행성이었다. 내 속을 긁어 놓던 그 인간도 방송에 잠이 깼나 부다.

"어이 형씨, 난 파이 부대에 배치받았수.... 음... 형씨는 시그마 부대라고?? 앞

으로 얼굴 보기는 쪼께 힘들것구먼... 하여간 내내 몸성히 잘사시유??"

X벌, 차라리 낼 모레면 Zerg한테 돼지라고 악담을 해라.

이윽고 우주선은 행성 표면에 수직 이착륙을 하였다. 우주선에 내리면서 난

나의 군번을 최후로 확인하고 대기하고 있던 짚차에 몸을 실었다.

짚차는 내내 비포장 도로를 달렸다. 이 곳 기후는 참기 어려울 정도로 후덥지

근했다. 먼지가 하도 풀풀 날려서 같이 타고 가던 이덜과 얘기도 나눌 수 없

는 지경이었다.

대략 3시간 가량 지난 후 이윽고 내가 근무할 시그마 부대의 본부에 도착하

였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거대한 둥근 돔 모양의 건물이었다. 건물 뒤

쪽으로는 광활한 미네랄 광산과 가스 채취소가 있었고 미네랄 광산과 커다란

돔 모양의 건물 사이에는 초소와 비슷한 약간 작은 돔 모양의 건물이 있었다.

 

 

미네랄 광산 한 쪽 끝을 시작으로 성냥갑에 다리 4개 달린 것 같은 건물이

대략 4개 정도 일렬로 서있었고 다른 한 귀퉁이에는 조그마한 부속 건물 여

러채가 벽처럼 일렬로 중앙의 큰 돔 모양의 건물을 둘러 쌓고 있었다. 가스

채취소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처음 본 건물이었다.

우스운 것은 연병장이나 활주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매우 삼엄한 경

계 태세를 취하고 있는 듯 하다.

짚차는 다리 달린 성냥갑 처럼 생긴 건물 중 하나에 정차하더니 날 내려 주

었다. 이윽고 나는 여기가 내가 생활할 막사라는 걸 깨달았다. 막사 안으로

들어가 보니 냉방 시설은 하나도 안되어 있었다. 정말 찜통 같은 더위였다.

비라도 한줄기 내렸으면 하는 바램을 안고 나는 배치받은 소대로 걸어갔다.

 

 

 

[소설] 어느 테란 병사의 삶 (6)

 

이 곳 사람덜은 막사를 '바락'이라고 불렀다. '바락'은 내 느낌에 무슨 가막소

같았다. 각 소대별로 내무반이 있고 모두 철장문으로 굳게 잠겨있었다. 내가

배치된 내무반으로 들어 서니 천장에는 선풍기가 돌고 있고 여기저기 소대원

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지독히 더운 날씨 덕분에 그들은 국방색 반팔 차림에

구리빛 근육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개중에는 팔뚝에 문신을 새긴 자들도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난 경례를 붙이고 크게 전입 신고를 하였다.

"군번 2034번 양XX, 이등병으로 입소하였음을 신고드립니다"

개중에 갗바가 장난이 아닌 자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냐... 더운날 오느라고 수고많았다. 오는데 힘들었지."

"(잉?) 아닙니다."

"짜식, 훈련소에서 군기가 바짝 들려 왔구만.... 내 이름은 이기문, 일명 꼴뚜

기 상병이라고도 한다. 편히 쉬어."

그 꼴뚜기란 고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실전 경험이 없는 비엉신 같은 색히덜이 군기 타령을 한다. 난 니 워커의 빤

딱대는 물광만 봐도 니가 훈련소에서 무슨 짓꺼리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이거

여. 알것나!! 군대는 겉멋이 아니다.니 눈에는 나자빠진 소대원 색히덜이 당

나라 군대같이 보일 지 모르지만 나를 비롯한 고참이 갈구지 않아도 이곳은

무지무지 삭막한 곳이다. 따라서 알아서 잘 하길 바란다."

"예~ 써~얼"

"야 멸치.... " "옙, 이상병님"

"예 교육 좀 잘 시켜...." "옙"

"난 김상훈 일병이다. 이제부터 모든 상담은 나를 단일 창구화 하도록"

주위를 돌아 보니 여전히 모두 더위에 지친 듯 정말 널부러져 있다. 모두 나

따위 신병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멸치라는 자도 얼굴에 별로

악의는 없어 보였다. 난 내심 속으로 우주선에서 만났던 그 재수없던 인간을

픽 비웃었다. 꼴뚜기 상병이란 자도 괜히 날 겁줄려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이곳은 사람들이 더위에 좀 지쳐있다 뿐이지 내가 보기에는 첫인상이 평화로

와 보였기 때문이다.

 

'부웅~' 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 5:00였다. 기상 점호 시간이었다. 이곳에

는 에어 샤워 시설이 없었다. 덕분에 난생 처음 비누에 물로 목욕을 하였다.

전력이 딸리기 때문에 에어 샤워 시설이 없다는 건 한참 후에나 안 일이었다.

게다가 이 행성은 지하수가 풍부했고 기후가 후덥지근 했기 때문에 그냥 찬

물로 샤워하는게 일상화 되어있었다. 한 시간 동안 자리 정돈하고 옷 갈아

입고 기타 자질구레한 일을 해야 했다. 마땅히 정해진 아침 시간은 없었다.

이것 저것 정돈하면서 알약 3알을 우물우물 씹는 것이 아침 식사였다.

6:00에는 연병장에서 아침 조회가 있었다. 중대장이 일장 훈시를 늘어 놓았다.

"제군들, 우리 Terran 연맹의 운명은 바로 제군들의 두 어깨에 달려있다. 제

군들은 바로 제군들의 부모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 이역만리 땅에서 이처

럼 피와 땀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에헤 따라서 이걸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자

랑스러운 Terran군의 위용을 보여주기 바란다. 알겠나" "예~ 써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아마 기온은 섭씨 30도가 훨 넘는 것 같았

다. 중대장의 말에 웬지 난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온 곳은

Terran 연맹을 사수하리라는 거창한 이상과는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

오로지 출세하기 위해서 군바리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부모와 가족을 위해서

라는 중대장의 말씀에는 가슴이 뭉클했다. 이유야 어떻든 난 우리 부모님에게

일말의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후 12:00부터 1:00까지는 자유 시간이었다. 이 동안에는 별 다르게 행동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덕분에 PX에 가서 담배 한 갑을 사올 수 있었다.

"야 담배 있냐?"

"엡 여깄습니다. 김일병님"

"음 살만했냐?? 니 보기에는 여기가 어수룩해 보일지 몰라도.... 너 참 조심해

야 할 거다..."

"하여간 몸조심해라.... 밖에는 Zerg지 뭔지 개뼉다구가 니 멱을 노리고 있고

요 안에도 너 목을 딸려고 벼르는 놈이 수두룩하니까. 특히 니 후장 조심혀....

노리는 놈덜이 많아서리...."

"화장실 갈 때, 샤워할 때, 특히 조심혀라.... 모진 꼴 당한다."

"김일병님, 저기요... 으... 저 실제 Zerg가 도발을 하고 있습니까?"

"애 고 모라구해야 하냐.... 참 그게 말하기 어려운기라. 있는 건 맞는데 도통

보이질 않고, 없다고 하면 웬지 찜찜하고..... 하여간 중요한 건.... 하루에도 수십명이 송장이 되어서 여길 뜬다는 거지... 저승 사자가 Zerg인지 아니면 딴

놈인지는 도통 모르겄구."

"그럼 김일병님도 Zerg를 본 적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하따 온 지 하루밖에 안 된 노무 색히가 졸라 귀챦게 하네.... 이... 뭐라고 얘

기해야 하나.... 이 내가 여기 온게 대략 3개월 되는데 Zerg를 본 적은 없어.

하지만 없다고는 말 못혀."

"난 Zerg따위보다 같은 내무반에 있는 거 인상 더러븐 색히있지... 난 고놈 인

상이 더 무섭더라구... 모진 놈이여 하 글씨 너 오기 전에 그 색히가 사고쳐서

캡슐에 한 번 갔다 왔는데도 여전히 밤만 되면 칼을 가는 거 있지...."

"하여간 몸 조심혀.... 여긴 그렇게 널럴한데가 아니니까"

 

군무는 그다지 고된게 아니었다. 기지 주변을 정찰 하거나 가끔 씩 벙커에서

보초를 서는게 다였다. 거대한 둥근 도움 모양의 건물을 이곳에서는 커맨드

센터라고 불렀다. 내가 처음와서 본 커맨드 센터와 미네랄 사이의 보다 작은

도움 모양의 건물은 벙커였다. 벙커 안에는 최대 4명이 들어 갈 수 있었고 전

후 좌우 4군데로 동시에 공격이 가능한 엄폐물이었다. 평발인 나도 벙커 보초

보다는 기지 주위 정찰이 더 편했다. 벙커는 내부에 냉방 시설도 없었고 내무

반에 달린 그 잘난 선풍기 한 대 없었다. 그 속은 그야말로 찜통이었고 그 속

에서 2-3시간 동안 있다 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규율 상 벙커 내부에서

도 반드시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실제로 벙커 속에서 전

투복 착용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너무 더워서 거의 빤쓰 차

림으로 지낼 때가 더 많다고 한다.

한가지 궁금한 사실은 고참일수록 벙커 근무를 선호하고 신참일수록 정찰 근

무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멸치 일병한테 물어봤으나 멸치 일병도

잘 모른다고 한다.

정찰은 각 정찰조마다 구역을 정해 주고 이 곳을 계속 순시하면서 이상이

발생할 때마다 본부에 연락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돌아 다녀도 보이는 건, 푸

른 수풀 뿐 Zerg는커녕 살아 움직이며 돌아 다니는 생명체도 별로 없었다.

처음 며칠은 소풍 다니는 분위기였고 그 이후로는 따분하고 무료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정찰은 시원한 나무 그늘 사이에서 잠시 쉴 수도 있었으나 벙

커 보초는 학을 뗐다. 그렇다고 벙커 보초를 많이 선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

했듯이 고마우신 고참들께서 항상 벙커 보초는 자신들이 솔선수범 맡아 주셨

기 때문이다.

 

벙커도 한 가지 좋은 점은 있다. 벙커 내부에서는 모든 행동이 병사의 자율

에 의해 맡겨진다. 반면 정찰 시에는 모든 행동 거지가 커맨드 센터에 의해

통제된다. 마린 전투복의 헬멧에는 WIBE(Wearable Infantry Battle

Equipment)라는 특수 장비가 부착되어 있다고 한다. 이로서 각각 마린의 시

야를 코맨드 센터가 수십대의 컴퓨터를 통해 공유하게 된다. 이로서 중앙 통

제 기지와 개개인의 마린 간의 무선 통신이 가능해지고 적 아군 식별 및 여

러 가지 정보를 서비스 해 준다. 우리끼리는 이 장치가 '마누라'라로 통했다.

발음이 '와이프'랑 비슷한데다가 중앙 통제 기지로부터 날라 오는 명령은 '마

누라의 바가지'와 사실 상 다를바가 없었기 때문이다.(더군다나 날라오는 오

퍼레이터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하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여자에 굶주린 우리

로서는 잔소리 심하긴 하지만 마누라랑 같이 돌아다니는게 어느정도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특별히 불편한 건 없었다. 군대가 어떤 곳인

가?? 다 요령있는 놈만 살아 남는 곳 아닌가?? 걷다 힘들면 어디 서늘한 나

무 그늘 근처에 주저 앉고 약간 개폼 잡은 다음, "본부, 10:00방향에 수상한

물체 발견, 식별 바란다." 요러구.... 담배 한 대 피고 "이상무" 그러면 또 어슬

렁 어슬렁 걷기 시작하면 그만이다. 지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로 우리를 감시

해도 수십명의 오퍼레이터로 우리를 전부 구분한다는 건 불가능이기 때문에

요 방법은 몇 번이나 써먹을 수가 있었다.

얼마 안 있어 그럴 필요도 없어 졌다. 어찌 어찌 라디오 재머(radio jammer)

를 구입하였기 때문이다. 실제 Stynx 행성은 밀림이 울창해서 통신 두절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요걸 거꾸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라디오 재머를 헬멧에

부착하고 밀림 지대에만 들어서면 요걸 켠다. 이러면 지가 알아서 통신 두절

상태를 만들어 주고 우리는 띵자 띵자 놀면 되었다. 물론 불시 검문으로 요

라디오 재머가 발각되는 날에는 그 즉시 캡슐행이었으나 그건 접시물에 코박

고 되질 확률보다 더 희박한 경우였다

 

 

 

[소설] 어느 테란 병사의 삶 (7)

 

우리 바락에는 샤워장이 4군데 있었다. 근데 샤워장에는 묘한 금기 사항이 있

었다. 밤 8:00 이후에는 샤워장에 가서 몸을 씻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루

종일 땀범벅이 되어 내무반에 들어오면 땀냄새에 발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샤

워는 반드시 다음날 아침에만 하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쉬쉬 해서 알 길

이 없었는데 내 동기 녀석 중 하나인 꼴통이 내게 일러 주었다.

"으... 글쎄말이야... 밤 8:00 이후면 샤워장에서 귀신이 나온데..."

"(잉?) 이힉, 귀신....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으흐흐... 첨엔 나도 안 믿었는데.... 내가 실제로 봤데두... 아휴... 그때 생각

하면 지금도 아찔 섬찟 으흐흐흐...."

그 녀석의 말은 이러했다. 자기가 여기 처음 와서 아무것도 몰랐을 때 너무

덥고 잠이 안 와서 밤 10:00 쯤인가 샤워장에 샤워하러 갔었덴다....

근데 뒤에서 자꾸 인기척이 느껴져서 이상하다 싶어 뒤를 돌아보니

허공에서 "으흐흐흐~~"하고 흐느끼는 요염한 목소리가 났다고 한다. 순간 너

무 놀라서 걸음아 날 살려라 내무반으로 도망왔다고 한다.

"글쎄 말이야... 그 귀신이 세상에 색귀라고 하더구만.... 죽은 총각 귀신인지

처녀 귀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글씨 사내 기집을 안 가린데...

나도 소문으로 들은 건데.... 옆 소대 어떤 자슥이 암 것도 모르고 밤에 샤워

장엘 갔는데... 아 그자식이 죽을려고 환장했지.... 샤워를 하고 있는데 이 색귀

가 뒤에서 덮쳤데쟎아. 이 자식 까무러칠 정도로 당하고 샤워장이 완전 피바

다가 되었다는구먼... 결국 이 자식 완전 정신이 돌아가지고 의가사 제대를 했

데나 뭐래나"

"아휴... 나도 첨엔 그 말 안 믿었는데... 이 두 눈으로 직접 본 다음부터는 섬

찟하더라구... 근데 웃긴 건 상부에서는 이 사실을 쉬쉬한다는 거야.... 뭐 속사

정이야 나도 알 길 없지만 아이구 정말 귀신 아니면 아니 왜 위에서 쉬쉬 하겠어?"

밖에는 Zerg, 안에는 귀신?? 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그냥 망연자실

하였다.

 

이 곳에 온지도 어언 한 달 째가 된다. 집에서 온 편지도 서너통 된다. 요즘

엄마의 입덫은 많이 없어졌고 식욕은 엄청 왕성해지셨다고 한다. 그래도 울

아버지는 나이먹어 임신인지라 걱정이 태산 같으신가부다. 엄마는 입맛 없을

때 씹으라고 마른 오징어 한두름을 부쳐 주셨다. 그날 엄마가 보내 주신 오

징어를 부여 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곳 생활은 나름대로 적응이 되

어 가고 있었다. 때로는 따분하고 지겹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Zerg는 코빼기

도 안 보이기에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인지도 모르겠고 실상 Zerg와 전투 경험

을 치룬 사람도 우리 소대에는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날 저녁에는 오랜만에 내무반 회식이 있었다. PX에서 캔맥주를 왕창 사가

지고 와서 팅자 탱자 붓고 마시고를 했다. 난 최말딴인 관계로 하늘 같은 고

참덜의 제 일 타겟이었다. 워커에 가득부은 캔맥주를 몇 번 원샷했는지도 기

억이 안났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알콜도수 25도의 깡소주를 병나발도 불었던

이력이 있던 나에게 알콜도수 3도짜리 캔맥주는 아해덜 장난이라는 사실이었

다. 그날 저녁에는 오랜만에 내무반에 돌아온 돌부처 병장도 있었다.

Draconics 행성에서 2개월 전에 이곳으로 전출 온 잔뼈 굵은 자로서 평소에

는 도무지 말이 없는 무척이나 과묵한 사람이었다. 그 날도 구석에 묵묵히 쳐

박혀서 맥주만 쪼고 있었다. 회식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난 고참덜을 위해

서 간드러진 목소리로 울 엄마 18번이었던 "제비처럼"을 불러야만 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언덕에 올라서면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 소리, 다시 피는 봄을 알리네"

한참 웃고 떠드는데 안주거리가 떨어졌다. 게다가 밤이 너무 늦어서 PX는 이

미 문닫은지 오래였다. 맥주만 마시기 밍숭 맹숭한지 모두가 다 손가락만 빠

는 분위기 였다. 난 고참덜에게 잘 보일려고 집에서 부쳐온 마른 오징어를 끄

집어내어 갖다 바쳤다.

"저 이거 집에서 부쳐 온 건데.... 맥주 안주는 그저 마른 오징어가 캡이지이

오? (최대한 귀엽게)"

순간 내무반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걸 느꼈다. 평소 미동도 않던 돌부처 병장

이 갑자기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부들부들 떠는게 아닌가. 그의 눈은 이윽고

핏발이 섯고 뭐라 알수 없는 목소리로 주절 주절 떠들어 댔다.

"으.... 저... 저건.... 퀴 퀴 퀴 퀴 ..... 으흐흐"

오징어 냄새가 퀴퀴해서 그러나?? 윽 근데 갑자기 장난이 아닌 분위기가 되었다.

"야이 색히덜아 연병장에 집합! 이 가히색히덜... 동작 봐라. 이 X색히덜아 대

가리에 가라 구녕 날래! 완전 군장하고 집합!"

정말 돌부처 병장은 가라의 안전 장치를 풀고 겨누면서 갈구었다. 우리는 보

이는 게 없었다. 후다닥 완전 군장하고 연병장으로 달렸다.

으 그날 우리 소대는 밤새도록 우로 굴러 좌로 굴러를 해야 했다. 맥주빨이

이빠이 받은 상태에서 그 짓을 몇 번하고 나니 연병장 바닥이 온통 오바이트

천지가 되었다. 동녘이 뉘엿 뉘엿 밝아 올 때야 돌부처 병장은 내무반으로 들

어 갔고 온 소대원덜이 나를 갈굼의 눈초리로 쳐다 보았다. 난 너무 어이가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다음날 아침 속이 뒤집혀서 하루 종일 띵했다. 흑흑 그러나 일은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고참덜이 돌림빵으로 하나씩 날 갈구었다.

첫타자는 꼴뚜기 상병이었다.

"야이 X색히, X만한게 돌부처를 건드려? 뭐 이런 씨불딱 고문관 시키가 다있

지. 어 똑바로 못하지. 야이 색히야 되질려면 너 혼자 돼져. 씨빌 내 팔자야

뭐 이런 X만한게 야이 색히야 돌부처 잘 못 건들면 우리 소대원은 그날 다

복상사야. 어휴.... 이 씨빌"

하여간 그날 내 조인트는 완전 걸레가 되었다. 밤에 자다가 끙끙 앓다가 얼차

려를 몇 번 더 받기도 하였다.

멸치 일병도 이런 말을 내게 했다.

"야 돌부처 성질 많이 죽었다. 너 어제 우리 운 좋은 줄 알아야 돼. 그 인간

이 홱 돌면 그 다음날 줄초상 치루게 되어 있어. 하여간 그 인간은 식성이 개

야 개. 난 저번 회식 때 번데기 갖다 바쳤다가 진짜 대가리에 가라 구멍 나는

줄 알았다. 씨빌 진짜 잘 피해서 살았지 안 그랬으면... 으이그... 씨빌 야 내

전투복에 가라 구녕이 괜히 생긴 건 줄 알아.... 그 때 내가 잽싸게 피해서 그

렇게 된거야"

아 씨빌 오징어.... 오징어 때문에 내 인생은 종 쳤다. 내가 화장실에서 오징어

를 부여 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사건 이후로 난 완전히 동네 북에

구제 불능 고문관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악몽의 일주일이 지나갔다. 그동안에 얼마나 굴렀는지 아침에 눈을 뜨

는 게 겁날 지경이었다. 정작 문제의 진원지였던 돌부처 병장은 그 사건 이후

로 꿍한채로 다녔고 하여간 중고참들한테 만만한 홍어X이 되어서 갖은 구박

을 다 받고 살아야 했다. 저녁 때면 내무반에 들어 가는게 겁시 났고 차라리

다리 아프고 힘들어도 정찰 임무 시간이 즐거울 정도였다. '마누라' 바가지 소

리가 아무리 지겨워도 맞는 것 보다는 잔소리가 더 참을만 했다. 정찰 구역은

차츰 넓어져 갔다. 처음에는 기지 근처를 정찰하는게 다였으나 요즘에는

20-30킬로미터 되는 곳 까지 정찰을 하곤 한다. 물론 가라를 들이대고 매우

삼엄한 태세를 갖추었으나 예나 지금이나 Zerg는커녕 모기 새끼 한 마리 볼

수가 없었다.

 

얼마 전부터 정찰이 끝나면 검사를 받았다. 뭘 하는 검사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무슨 이상한 캡슐에 들어가 10분정도 누워 있으면 검사 완료였다. 처

음에는 캡슐이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10분 동안 별 다른

일은 없었다. 검사 과정이 무슨 장세척과 비슷했다. 항문으로 좌약을 집어 넣

고 무슨 X-레이 비슷한 걸 찍는 것 같았다. 여기에 안구 검사도 하는 것이었

다. 검사 결과도 도통 가르쳐 주질 않는다. 하여간 이곳은 내게는 의문 투성

이인 곳이다. 더 답답한 건 그 누구도 속시원히 이유를 가르쳐 주질 않는 다

는 것이다. 하긴 내가 보기에 이유를 아는 사람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돌부처 병장이 뭔가 알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그렇게 호되

게 물먹고 그 인간한테 뭘 질문할 수 있다면 그건 정신 병자일 것이다.

 

오늘따라 개털이 안 보였다. 분명 어제도 나와 같이 오후 10킬로 정찰을 마

치고 내무반에서 취침도 같이 한 놈이 행방이 묘연하였다. 너무 이상해서 주

위 사람덜에게 물어 봤으나 아무도 개털이 어디 갔는지 말해 주는 사람이 없

다. 개털의 행방은 그날 오후 꼴통한테 들어서 알았다.

"야 개털 어디갔냐?? 암만 찾아도 오늘 하루 종일 없더라"

"으... 그게 말이야.."

"왜 뭐 들은 이야기라도 있어?"

"나도 그 자식이 없어져서 여기 저기 수소문을 해봤는데 말야."

"그런데??"

"으... 말하기 넘 황당해서리....."

"뭐 어젯밤에 샤워장에서 귀신한테 습격이라도 받았데??"

"글세 그건 잘 모르겠고...."

오늘 따라 꼴통이 우물쭈물 대는 것 같다.

"하여간 오늘 의무관한테 들은 이야긴데. 그 자식이 의가사 제대를 했데"

"잉?? 웬 자다 봉창 두들기는 소리야... 그 자식은 아픈데도 없었고 어젯까지

만 해도 나랑 멀쩡히 정찰 임무도 완수하고 돌아왔는데...."

"음... 사실 그 의무관도 내 동네 아는 형이라서 나한테만 한 얘긴데.... 자기도

자세히 아는바는 없고 비공식 서류 상 개털이 의가사 제대래.... 공식 발표로

는 다른 부대로 차출되었다고 하고..."

나는 갑자기 골이 띵했다. 멀쩡하던 놈이 하루아침에 의가사 제대라니?? 게다

가 어제는 하루를 나랑 같이 보냈던 놈이....

여기는 내가 모른 체로 벌어지는 일이 너무 많았다. 겉으로는 평화로와 보여

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문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 왔다.

 

 

 

[소설] 어느 테란 병사의 삶 (8)

 

 

자연식과 알약은 Terran 사회에서는 묘한 공존 관계를 지니고 있다. Terran

연맹 공동 협약 5조에는 'Terran 연맹의 각 정부는 Terran 시민의 의식주를

책임질 의무를 지니고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Terran 사회에서 굶

어 죽는 일은 없었다. 단 정부에서 지급하는 식량은 관례적으로 하루 일인 기

준 9정의 알약이었다. 알약은 Terran 초기 사회 성립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우리들의 먼 선조였던 유형수들에게 광합성을 통해 생산되는 자연식은 공급

량이 턱없이 모잘랐다. 따라서 이들은 우주식을 개량한 합성 알약으로 끼니를

때우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만 했다. 따라서 알약은 똑똑한 울 엄마 풍월

에 따르면 수십세기 전 고대 문서에 인용된 "엄마 어렸을 적 먹던 꽁보리밥"

과도 같은 성스러운 음식이었다.

무엇보다도 지배 계급이 알약을 선호하게 된 진짜 이유는 그들의 눈에는 구

제 불능으로 보였던 불온한 피지배 계급의 게으름 피우기 위한 2가지 핑계

거리를 없애 버렸다는 점이다. 알약의 보급으로 식탁에 앉아 자연식을 먹기

위해 시간을 낭비해야 했던 비효율이 말끔이 해소되었다. 게다가 알약만 복용

하는 경우, 인간은 화장실에서 대변을 볼 필요도 없어지게 된다. 일터에서 하

라는 일은 안 하고 점심 시간 오기만 기다리고 걸핏하면 담배 피우러, 화장

고치러 화장실 핑계만 대는 인간의 원죄와도 같은 악습은 이로서 Terran 사

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알약이 강건한 Terran 사회의 자부심이라면 식용 합성 수지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알약 복용에 의해 인간의 소화 기관 중 40%는 쓸

모가 없어졌다. 그러나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진화론에

근거하면 사용하지 않는 신체기관은 언젠가는 퇴화하게 된다고 한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 보니 자기의 항문이 없어졌다고 해 보자. 이 얼마나 당혹스러운

일인가? 따라서 우리는 쓸모가 없어진 40%의 소화 기관을 보존하기 위해 맛

도 없는 합성 수지를 수시로 복용했고 하루에 한 번씩 반드시 화장실에 가서

대변을 봐야 하는 비효율을 감수해야 했다. 따라서 합성 수지의 복용 존폐 여

부는 아직까지도 보수주의 진영과 진보주의 진영 사이에서 벌어지는 Terran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이에 비해 자연식은 매춘과도 같은 Terran 사회의 필요악으로 치부되고 있

다. 인간은 아직도 먹고 배부르고 싸야만 직성이 풀리는 야만적인 본능을 버

리지 못했기에 알약 이데올로기의 견고한 겉껍데기 속에서도 집요하게 자연

식을 갈구하였다. 한때 매파 정당에 의해 '자연식 금지법'이 통과될 뻔한 적도

있으나 이는 곧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 지 아무리 고고한 Terran 연맹의

권력자라도 먹고 싸는 삶은 피하기 어려운 유혹이었던 까닭에서 였다.

 

Terran 군대 또한 이러한 알약 이데올로기가 잘 포장된 곳이었다. 마린 전투

복은 앞쪽에 요강이 달려 있다. 이는 현재의 Terran의 유전 공학과 화학 공

학 수준으로는 소변 해결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반면 뒤쪽에는 엉덩이를 밖

으로 돌출시킬 개폐구도 대변을 임시 저장하여 처리할 정화조도 달려있지 않

다. 따라서 아무리 대변이 마려워도 전투복을 벗지 않고는 배설이 불가능하였다.

한때 현실론자 들에 의해 작전 수행 중에도 대변을 볼 수 있는 장치를 마린

전투복에 부착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평소 알약 위주의 식사에

사식을 엄격히 금지하고 작전 수행 시에는 합성 수지 복용을 제한하면 사실

마린 전투복을 입고 대변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결국 문제는 사식이라

일컬어지는 자연식이었다. Terran 당국은 사회악인 사식을 위해 그딴 조처를

취하는 건 사회 기강을 흔드는 불순한 짓이라고 엄중히 경고했고 현실론자들

의 주장은 수포로 돌아갔다. 역사는 결국 돌고 도는 것이다. 몇십세기 전 우

리의 고향별 지구에서는 늘어나는 미혼모를 막기 위해서 콘돔을 학교에서 여

학생에게 지급하자는 안건이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고 울 엄마한테 들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군대는 참으로 편리한 곳이었다.막히면 뚫고 뚫지 못하면 돌아 가면

그만이었다. 군바리 사이에서만 통하는 속칭 '사제 전파상'이란게 버젓이 서있

어서 우리의 말 못할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 봐도 그러하다. 이곳에서는 없는

게 없을 정도다. 여기서 구입한 라디오 재머는 단돈 만원이면 땡이다. 게다가

전투복 불법 개조도 이만원 정도만 주면 서슴치 않고 해 주었다. 불법 개조는

다름아니라 전투복의 엉덩이 부분에 열고 닫을 수 있는 뚜껑을 달아주는 작

업이었다. 이 뚜껑은 밀폐식이고 그냥 봐서는 표시가 나지 않는다. 고도의 숙

련된 기술이 필요할 것 같아 꽤 비쌀 것 같은데 수요가 많아서 그런지 예상

외로 개조 비용이 저렴했다. 이로서 사식을 너무 많이 섭취해서 정찰 중 대변

이 마려우면 라디오 재머를 켜고 뚜껑을 연 후 일을 보면 되었다. '사제 전파

상' 주인은 이곳 시그마 부대 사단장의 이종 사촌 뻘이라서 빽도 든든하다고

한다. 게다가 한달에 한 번 수익의 20%를 사단장을 비롯한 여러 고위 장성에

게 상납하기 때문에 만고 땡이었다. 사병은 맘껏 사식을 즐길 수 있어서 즐겁

고 고위 장성들은 늘어나는 상납금 땜시 즐겁고 '사제 전파상' 주인이야 돈버

니까 즐겁고.... 결국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최대 다수의 최다 행복을 노리는

매우 합리적인 시스템이었다.

 

아 오늘은 빌어먹을 벙커 보초 서는 날이다. 원래 걸레 길상병이 내 대신 벙

커 근무를 서 주곤 했는데 특수 동원 훈련 덕분에 오늘은 천상 내가 서야 했

다. 오늘도 날씨는 찌는 듯 더웠다. 이런 날 벙커에서 한낮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 그 자체였다.

벙커 내부는 조그마한 창이 사방으로 4개 나 있다. 요 4개의 창을 통해서 밖

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벙커는 그 구조 상 밖에서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따

라서 벙커의 최대 인원은 4명이었으나 밖에서 봐서는 그 안에 몇 명이 들어

가 있는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벙커 내부에서는

WIBE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따라서 내부에서 행동은 완전 자율적이었다. 오

늘 같이 보초를 서게될 멤버는 나와 멸치 일병, 짭새 상병과 칼치 일병이었다.

칼치 일병은 멸치 일병이 말한 밤마다 칼을 간다는 자였다. 아무도 그 근처에

는 접근을 못했고 행여 말한마디 걸면 졸라 야리한 눈으로 에리곤 했다. 팔뚝

에 문신이 새겨진 걸로 봐서는 사회에선 한 따까리 하던 성질 고약한 셰이인

것 같다. 캡슐 한 번 갔다 와선 성질 많이 죽었다곤 하나 그래도 누구도 그

앞에서는 숨죽여야지 잘못했다간 칼침 맞는다고 한다. 아 왠지 오늘은 잘못

걸렸다는 느낌이 온다.

우리는 너무 더워 모두가 홀라당 벗어 다 빤쓰 차림이었다. 모두 개처럼 늘어

졌으나 이윽고 멸치 일병이 "놀면 뭐해 돈벌어야지"하고 바람 잡더니 짤짤이

판이 벌어 졌다. Tarsonic에서는 짤짤이 하면 '어찌니쌈'이 공식 종목이었는데

이 자덜은 '홀짝'밖에 할 줄 몰랐다. 그래도 하늘 같은 고참한테 무식하단 소

리 할수는 없었다. 게다가 저번 오징어 껀도 맘에 걸렸다.

'어찌니쌈'에 비해서 '홀짝'은 껨이 안됐다.

거의 껨 판을 내가 다 휩쓸기 시작했다. 나는 돈따는 재미에 더위를 잊었고

고참덜은 돈 나가니 열뻗쳐서 더위를 잊는 듯 했다. 그러나 이렇게 판이 몇

번 돌아가니 멸치 일병과 짭새 상병은 얼굴이 차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

윽고 짭새 상병은 담배 한 대 피우기 위해 몇 판 쉬기로 했고 멸치 일병이

접을 차례가 되었다.

"홀에 오백원, 음.... 하나 둘 셋, 김일병님 제가 땄습니다."

"이노무 셰이가 이게 우찌 홀이냐?"

"(아이 씨빌) 맞쟎아요?? 하나 둘 셋"

"이 색히가 눈깔이 삐었나... 넌 하늘 같은 고참 손바닥에 동전이 몇 갠지도

못 세?? 이 색히가 차렷, 대가리 박아. 어쭈 동작 봐라. 얌마 내 내가 말이야

짝이야 하면 홀이어도 짝인거야... 잉 내 내가 말야 노 노란색하면 빨 빨간색

이라도 노 노 노 노란색인 거야."

"이 색히가 어디서 죽을려구. 오백원 내놔"

오백원을 빼앗길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다. 갑자기 벙커 한 구탱이에서 '샤아~'

하는 쉬갈기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린 순간, 갑자기 칼치 일병이 벌떡 일어났다. 손에는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들고 있었다. 칼치 일병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새파래 보였다. 입에서

는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고 눈은 핏발이 선 채 게슴츠레 풀려 있었다. 갑자

기 칼부림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를 비롯한 멸치 고참과 짭새 고참은 사색이

되었다.

"저 색히가 저 색히가 또 발작일세??"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칼이 멸치 고참의 오른쪽 팔목을 긋고 지나갔다. 멸치

고참은 비명을 지르고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해가 안 될정도로 잽싼

칼 솜씨였다. 휘두르는 속도가 보통 사람보다는 두배나빠른 듯 했다. 그렇다

고 벙커 밖으로 뛰쳐 나갈 수도 없었다. 이 일이 발각되면 우리는 연대 책임

을 물어 전부가 다 캡슐행이었기 때문이다.

좁은 벙커 속에서 우리는 칼부림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칼부림을 하던 칼치는 갑자기 칼을 내 던지고 가라를 집어 들었다. 벙커 속에

서 가라는 항상 안전 장치를 풀어 놓는게 규율이었다. 정말로 절대 절명의 순

간이었다.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우리는 우리는....

아 그러나 갑자기 칼치는 힘이 빠진 듯 그 자리에 꼬꾸라져 버렸다. 그의 얼

굴에는 왠지모를 만족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망연자실한 우리는 멀뚱 멀뚱 칼치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유난히 먹구름이 몰려있다. 아마 소나기라도 한바탕 퍼부을 듯하다.

멸치 일병의 상처는 칼이 살가죽을 5센티 정도 긋고 지가갔으나 다행히도 깊

숙히 관통한 건 아니었다. 몇 방 꼬매고 소독약 바르고 더운 날씨에 덫나지

않게 주의하면 별 문제 없을거라 한다.

피래미 일병과 꼴통은 완전 내 옆에서 몸을 배배 꼬며 완전 맛이 갔다. 나도

평소 같으면 저들처럼 뽕빨을 낼 텐데, 지금은 방송을 듣고 싶은기분이 아니

다. 그저 혼자 있고 싶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라디오 재머를 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그마 사령부는 라디오 재머 때문에 작전에 차질이 많다고 골머리를 썩혔

나 부다. 요령도 한두번이지 허구헌 날 요령이니 뭔가 대책이 필요하긴 했다.

그렇다고 병사들로부터 라디오 재머를 압수하거나 사제 전파상을 폐쇄할 수

도 없었다. '사제 전파상' 주인은 용가리 통뼈 하늘같은 사단장님을 빽인데다

가 그동안 받아 온 상납금도 있고 해서 노골적으로 '사제 전파상' 주인을 팽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는데 오퍼레이터

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매일 한 3-4번 정도, 불특정 시간에 WIBE를 통해 쌩

방송을 때리는 것이었다. 오퍼레이터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그야말로 60만

테란 장병을 질질 싸게 했다.

'아으 자기.... 자기꺼 넘 멋져... 더 깊숙히 아이... 아... 어 아으...'

'아~ 아~ 아~ 악~ 아 아퍼 아 아퍼 아 좋아 아 아 더 더 아 자기 아아아~'

 

 

정에 굶주려서 치마만 두르면 덮칠 것 같은 군바리덜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서

비스는 없었다. 게다가 요 빨강 방송이 언제 날라올지 모르기 때문에 마린군

은 라디오 재머를 예전처럼 빈번히 킬 수가 없었다. 결국 좋은게 좋은거다.

물론 이렇게 되면 '사제 전파상' 매출액이 곤두박질 치는게 아닌가 라는 의구

심도 들었지만 이 또한 쓸데 없는 노파심이었다. 현재 '사제 전파상'은 기술

혁신을 통해 '오퍼레이터의 목소리'만 필터링할 수 있는 새로운 라디오 재머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서일병님"

"어이 이 색히가 건들지 마... 그래 어 어 아... 그래 아 음... 어"

"야 꼴통"

"야 니 흥깰레... 이 색히가 꼭 중요할 때 말을 걸어... 고래 음냐...아"

"...."

견딜 수 없이 답답하다. 이런 내 기분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위는 너무나도 고

요하고 평화롭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무언가 나의 목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

러나 그 무언가가 뭔지 알 수가 없는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이 한심해 보였다.

 

"멸치 일병님, 상처는 괜챦습니까"

"아 별 일 없다. 원 재수없으려니까 미친개한테 물려 가지고"

"내가 말했지, 칼치 그 색히 조심하라구. 그 색히가 가끔씩 발작을 하면 어제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

"음... 칼치 일병이 왜 그랬을까요?? 무슨 정신병이라도?"

"내 말은 안 했지만 그 색히 무슨 약 먹는 것 같아.... 이 색히가 기분이 좀

꿀꿀하다 싶으면 어디서 얻어온 이상한 주사를 지 허벅지에 찌르는 것 같은

데.... 아이구야... 원 마약쟁이랑 같은 내무반이라니 망쪼야 망쪼"

이상한 주사..... 어쩌면 멸치 일병의 말대로 마약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내

의문점이 들었다. 어떻게 군대 안에서 마약이 통용될 수 있을까?? 그것이 사

실이라면 마약 밀매 조직과 군부대가 한 통속이라는 말인데 그건 아무리 상

납금이 많아도 여론에 공개될 경우 장성들이 전부 경질될 수도 있는 위험천

만한 일이었다.

"어떻게 그 색히가 마약을 얻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마약이 분명해...

그 색히가 '샤아~'하는 쉬하는 소리 낼때 그 색히 근처에 있으면 죽음이라니

까. 으 씨빌"

하긴 사제 마약일지도 몰랐다. 항생제나 진통제를 잘 섞으면 마약으로 쓰일

수 있다는 말도 들었으니. 밖에선 시원스럽게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Stynx

행성에서 한 줄기 소나기는 하늘이 내리는 축복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 머릿

속은 빗줄기 소리만큼이나 시끌벅적하기 그지 없었다.

 

Stynx의 밤하늘은 Tarsonic과 별다를바가 없다. 단지 Tarsonic에서는 달이

한 개인 반면 Stynx에서는 2개의 달이 떠오른다. 게다가 불빛이 없어서인지

번화가가 즐비한 Tarsonic에 비해 별도 더 많이 보였다. 후덥지근함은 밤이라

고 별다를바 없으나 직사광선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서늘했다. 이곳은 기

지로부터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된 참호로서 두 주에 한 번 정도 이곳

에서 야간 보초를 선다. 오늘 이인 일조로 같이 근무를 서게된 사람은 사람

좋은 짭새 상병이었다. 짭새 상병은 구탱이에 넉살 좋게 자빠져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었다. 뭔가깊은 생각에 잠긴 듯 한데 아마도 고향 생각을 하나 보

다. 짭새 상병의 가족은 늙으신 홀어머니와 결혼 3년 째인 야시같은 색시와,

그리고 아들 둘 딸 하나라고 한다. 내무반에 들어 서면 가족 사진을 보며 애

틋한 미소를 짓는 짭새 상병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밤에 이렇듯 외떨어져 있으니 별별 잡념이 다 떠올랐다. 얼마전까지는 집안

걱정, 부모님 걱정 그런 게 주였는데 요즘에는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생각이 주종을 이루었다.

도데체 샤워실의 귀신은 뭐지?? 왜 돌부처는 오징어 땜시난리를 쳤을까??

의가사 제대한 개털, 마약 복용자 칼치 일병, 아 무엇보다도 이상한 건 건 전

쟁터가 지나치게 평화롭고 고요하다는 것이었다. Zerg?? Zerg가 뭘까? 도데

체 있기는 한 걸까?? 도데체 어떻게 생겨 먹은 개뼉다구길래.....

 

 

앗 뭐가 껌뻑했다. 그렇다 방금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오상병님, 전방에 알수 없는 녀석이 나타났습니다."

"자슥 겁먹긴... 임마 아마도 밤중에 어슬렁대는 베갈라스(Begalaas)겠지... 그

놈덜은 야행성이거든.... 육식성이긴 하지만 사람한테는 안 덤벼... 사람 고기가

맛이 없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경이 날카로와졌나..... 물론 나도 야간 정찰 중에 베갈라스를 본 적이 있다.

요 놈덜은 겁이 많아서 좀처럼 사람 근처에는 접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뭔가가 좀 이상했다. 베갈라스는 사람을 보면 피하는데 요 놈은 우리

주위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마치 우리를 감시하는 듯한 분위기이다.

"오상병님, 일루 와보십시오. 뭐가 좀 수상합니다."

"하따 그 자석, 귀챦게 하기는.... 음...."

헬멧에 부착한 적외선 망원경을 좀더 주밍(zooming)시켰다. 생김새가 묘한 놈

이었다. 다리가 3개 달리고 기다란 꼬리를 지니고 있고, 배갈라스보다는 몸집

이 훨 작았다.

"본부, 수상한 생물 발견, 정체 확인을 바란다."

짤막한 무선을 남기고 가라로 천천히 겨누었다. 그 놈의 몸 전체는 단단한 갑

골질로 쌓여 있고 전갈과 도마뱀을 섞어 놓은 것 처럼 생겼다. 나는 그 놈의

꼬리 부근 마디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여기는 본부, 정체 확인 때까지 1분 정도 소요된다. 그 때까지 대기 상태에 있도록"

그 놈은 전방 30미터 밖에서 팔짝 팔짝 뛰다가 잠시 멈춰서 우리를 보는 듯

했다. 이동 속도는 무지 무지 잽쌌으나 정지시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여

기는 본부, 목표물은 미확인 생명체로 Stynx 행성 서식 생물이 아님이 확인

되었다. 현재 데이터 베이스 접근 중... 분석 진행 중... 분석 불능.. 분석 불능..

목표물에 대한 접근을 지시한다. 목표물의 공격 형태는 현재로서는 분석 불

능.. 가능한 생포를 명령한다. 생포를 명령한다 유사시에는 사살도 허용한다.

유사 시에는 사살도 허용한다."

저게 설마 Zerg?? 나는 순간적으로 어리둥절했다. 저런 땅꼬마가 Mar Sara를

잿더미로 만들었단 말인가??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목표물의 공격 형태를

확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대처하기에는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무슨

독을 뿜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는 조심 조심 접근을 하였다. 긴장으로

숨이 막혀 왔다. 드디어 5미터 앞까지 접근. 그 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우

리는 가라를 겨누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다가섰다. 엇 순간 갑자기 놈이 쏜

살같이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추격하자"

놈은 무지무지 빨랐다. 도저히 이런 식이면 따라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갑

자기 모퉁이를 훽 돌아선다. 우리도 그 뒤를 따라 모퉁이를 돌아섰다. 순간

우리들의 시야에서 그 놈은 사라져 버렸다. 후~ 잠시 숨을 돌리고 주위를 천

천이 살펴 보았다. 그러나 그 놈은 어디에도 없었다.

"본부, 적 생포 실패, 시야에서 사라졌다."

"수고했다. 수비 위치로 다시 귀환 할 것... 수비 위치로 다시 귀환 할 것"

 

내무반에 들어서자 그날은 어찌 된게 텅텅 비어 있고 돌부처 황병장만 구석

에 면벽 수도라도 하는 듯 앉아 있었다. 평소의 나였으면 감히 말도 못 붙이

고 자리를 피했을 텐데 그 날은 간뎅이가 부었는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

인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황병장님, 질문이 있습니다."

"황병장님은 Zerg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황병장의 얼굴이 잠시 굳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3일 전 야간 정찰 중, 이상한 생물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안 되는 건,

본부에서도 그 놈이 Zerg인지 아닌지를 분석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정말 이

행성에 Zerg가 있는 걸까요?"

한참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그의 눈에는 알 수 없는 괴로운 빛이 역력해 보

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자의 답답함에 못 이겨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난 더더욱 그 자 앞에서 대담해져 갔다.

"어제 본 그 놈은 크기는 조그만 강아지만 했고 다리가 3개 달린 놈이었습니

다. 경골이 몸을 감싸고 있고... 그런 땅꼬마한테 설마 Mar Sara가 쑥대밭이

된 건 아니겠죠?"

"후후후... 하룻 강아지가 잘도 떠드는군... 넌 어제 운수가 대통했다. 저승 사

자를 눈으로 보고도 돼지지 않고 귀환하다니... 후후후"

"내 앞에서 까부는 놈은 칼치 이후로 니가 두 번째군.... 이봐 아가야... 말을

아껴라... 그리고 항상 후장을 조심해... 그게 니 목숨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거

이자는 확실히 뭔가를 아는 것 같았다. 그의 음산한 목소리는 나의 기를 죽이

기 충분했지만 나는 뭐에 홀린 듯 감히 계속 물어 봤다.

"후후후... Zerg의 형체! 그게 뭐가 중요하지! 난 밤마다 꿈 속에서 그 놈덜을

본다. 그게 그렇게 보고 싶나... 후후후"

"Zerg의 형체!! 그건 지옥이다. 지옥이었어. Draconics 행성은 단지 Mar Sara

행성 곁에 있다는 이유로 지옥으로 변했어. Zerg... 그것은 치료할 백신이 없

는 악성 전염병 같은 거지... 생명체가 있는 행성을 숙주로 삼는 악성 바이러

스.... 지옥이었다. 지옥... 내가 의사래도 그런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라

면 태워 죽여 버리겠어. 새까맣게... 새까맣게... Draconics는 신의 저주를 받았

어.... 신은 지옥의 형상을 원하지 않았어... 그래서 신은 신은 찬란한 빛으로

Draconics를 심판했지. 아니야... 그건 차라리 구원이었어. 지옥의 질곡 속에서

처참하게 뒹구느니 차라리 찬란한 빛 속에 사라지는게 고통 받는 환자에게는

영혼의 구원이지.... 그래 그건 안락사와 같은 거였다. 안락사... 헉 안락사....

 

흑흑흑 으"

황병장은 사이비 교주 같은 넋두리를 계속 읊어 댔다. 마치 나 따위는 옆에

없는 것 처럼 혼잣말을 지껄였다. 그건 차라리 발작이었다. 그의 동공은 수축

되어 있었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한참 후 그는 자기가 너무 많은 말을 내뱉은 걸 후회하는 눈치였다. 이윽고

그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터벅 터벅 내무반 밖으로 걸어 나갔다.

지옥, 그가 Zerg에 대해 처음으로 끄집어낸 단어는 '지옥'이었다. 평화롭고

고요한 속에 암세포처럼 자라나는 지옥

 

 

 

[소설] 어느 테란 병사의 삶 (9)

 

뙤약볕 속에서 숨이 막혀 온다. 어언 기지를 떠나온지도 3일 째가 된다. 내

비상낭에 남은 알약은 이제 정확히 18알, 아직도 우리가 시원한 캔맥주로 목

을 축이기 위해서는 6일을 참아야 한다. 우리의 임무는 Stynx 450 구역 정찰.

우리 정찰조는 4명의 마린과 2명의 파뱃으로 구성되었다. 9일 동안 우리는 왕

복 80킬로의 거리를 완수해야 한다. 2명의 파뱃이 길잡이를 서고 나와 꼴통,

멸치 고참이 그 뒤를 일렬로 따라 왔다. 돌부처 병장은 우리 일행의 맨 뒤에

서 후방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정글은 찌는 듯 무더웠으나 고요하고 평온했

다. 돌부처 병장의 살모사 같이 번득이는 눈초리가 오히려 웃겨 보였다. Zerg

인지 개뼉다기인지는 돌부처 병장의 소심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코빼기도 보

이지 않았다. 지루한 여정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담배

한 대 꼬나물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너무 숨이 가빠서 아마 그런 짓을 했

다가는 내 폐가 골병이 들 것이다. 그나마 나는 불평도 할 처지가 못되나 부

다. 정말 불쌍한 건 파뱃 녀석덜이었다. 군 사기 상 앞대가리가 쳐질 수 없

는 노릇인데다가 파뱃 녀석덜이 메고 다니는 까스통은 졸라 무거워 보였다.

일명 숏팔이, 총알받이, 샌드백이라고 일컬어지는 파뱃 자석들은 그저 무대

뽀로 빡터지게 비집고 들어가 화염 방사기로 적아새끼덜을 불쏘시개로 만들

어야 했기 때문에 쌈질이 졸라 더티했다. 따라서 전투복 껍데기가 울 꺼보다

조금 두껍고 단단하다. 파뱃 자석들은 땅개 지원병 중에서 특히 머리 나쁘고

힘 좋은 놈덜을 뽑아 만든다고 한다. 게다가 성질은 마린 저리가라로 더러워

야 했다. 뭣보다도 치고 박는 쌈질은 곤조 있는 놈덜이 이기기 마련이기 때문

이다. 이 색히덜은 정말 못말리는게 가스통을 등에 지고도 태연자약 담배를

피우고 담뱃똥을 아무데나 떨궜다. 근데 열라 골때리는 건 고 놈덜 말로 그것

이야말로 파뱃의 곤조를 과시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1)

이 색히덜은 항상 후까시로 담배불을 화염 방사기로 붙히기 때문에 늘상 얼

굴이 검게 끄슬렸다. 그래도 이 색히덜과 울 마린은 늘상 사이가 좋았다. 발

바리건 삽사리건 땅개는 땅개와 통하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

리 마린은 전투 시 샌드백 역할을 해주는 이 놈덜에게 고마움도 느꼈다. 패싸

움에서 아무래도 대가리 깨지는 놈덜은 뒤보다 앞에 짱박은 놈덜이었기 때문

이다. Terran 군 당국도 이 점을 인정했는지 놈덜이 우리보다 페이가 더 ㅆ 다.

 

정찰 중, 하루 수면 시간은 5시간 정도였다. 잠이 들면 2인 1조로 구성된 불

침반이 2시간 씩 돌아 가며 당번을 섰다. 일정하게 취침 시간이 정해진 건 아

니었지만 원칙 하나는 정해져 있었다. 잠은 반드시 저녁 11:00 이후에 잔다는

것이었다. 저녁 10:30 무렵에 거의 매일 같이 정기 라이브 방송이 뜨기 때문

이었다. 오퍼레이터의 서비스가 장성들에게 인기 폭발하자 여기에 영합해서

거의 주기적으로 저녁 10:30 무렵에는 스페셜 라이브가 떴다. 훤한 대낮에 걸

어다니면서 듣는 라이브와 한 밤 중에 이불 속에서 듣는 라이브는 그 차원이

틀렸다. 이 또한 Terran군 사기 진작을 위한 군 당국의 세심한 배려라 아니

할 수 없었다. 꼴통은 집요했다. 우리는 행군이 넘 피곤해서 잘 서지도 않는

데 꼴통은 반드시 듣고 일을 치루어야 잠을 청했다.

 

우리는 행군 중 늘상 허기가 졌다. 알약만으로도 끼니를 때웠으나 배 속에서

는 연신 꼬르륵 거렸다. 그나마 기지에 있으면 사식을 챙겨 먹을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오직 알약과 맹물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 며칠 간은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합성 수지라도 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와는 달리 장기 행군을 많이 해본 고참들은 요런 점에서도 확실

히 달랐다. 고참은 군대의 필요악이다. 평소에는 극심한 갈굼으로 심신을 황

폐하게 하지만 가끔가다는 쓸모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군대라는 곳이

사실 그렇다. 이곳은 사회와는 달리 먹을 것이 지천에 깔려 있는 것이다. 중

요한 것은 결국 발상의 전환일 뿐.

우리의 유일한 낙이자 사식 공급 방법은 래그너서(Ragnosour) 사냥이었

다.(2) 이 놈덜은 생물이 사는 행성이면 어디에나 지천으로 깔려 있다. 도마뱀

의 일종으로 몸집이 꽤 컷으나 성질은 풀만 뜯어 먹고 사는 놈덜인지라 온순

했다. 고참덜은 이 놈덜만 보면 무더운 여름날 최고의 스태미너 식이라며 침

을 꿀꺽 삼켰다. 요 놈덜은 변온 동물이었기 때문에 더운 낮에는 주로 바위

돌 틈에 숨어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교적 선선한 새벽녘이 되면 풀

을 뜯어 먹을려고 어슬렁 어슬렁 수풀 사이를 지나 다녔다.고것도 요놈덜의

불쌍한 운명이었다. 낮에는 행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요 놈덜에게 눈길도 줄

틈이 없었으나 새벽녘에는 마지막 불침번 조가 팅자 탱자 한 두 시간 정도

돌아 다니면서 맘껏 헌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자유 시간과

요놈덜의 활동 시간이 기가 막히게 딱 맞아 떨어지게 된 것이다.

요 놈덜을 발견하면 일단 포위를 한다. 이 후 한 사람이 요놈의 꼬랑지를 잡

고 또 한 사람은 요놈의 대가리를 가라로 찧는다. 그리고 쫌 있어서 요놈이

구하고 죽으면 배를 가르고 내장을 딴 후 파뱃에게 가져다 주면 만고 땡이었

다. 요놈을 나무에 대롱 대롱 매달고 파뱃이 화염 방사기로 요 놈덜을 적당히

그슬린다. 요러면 솔솔 풍기는 고기 굽는 냄새가 쥑여준다. 이렇게 해서 우리

들의 영양식 래그너서 통구이가 완성되는 것이다.

육질이 졸라 연하고 고소해서 입에 넣으면 그냥 살살 녹았다. 굳이 이러고

저러고 자실 것 없이 그냥 다리 하나 쭉 찣어서 열라 뜯으면 그날 하루가 든

든했다. 처음에는 소금이 없어서 먹기가 좀 민망했으나 그것도 조금 익숙해지

니 별 상관이 없다. 그저 이럴 때는 쐬주 한 잔을 카~하고 곁들여야 하는데...

요놈덜은 우리를 매우 만족스럽게 했으나 한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요 놈덜

을 먹어 보기 전에는 늘상 비리비리 힘을 못쓰던 아랫도리가 요걸 먹고 나니

까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괴로운 건 아침이었다. 밤새 P짜 꿈만 꾸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랫도리가 늘상 축축했다. 놀라운 건 그 와중에도 독사 대가리처럼

꼿꼿이 선 모닝업이었다. 아 내 그걸 보고 얼마나 경외감에 젖었는지 모른다.

행군 중에 WIBE로 생방송이 뜨면 돌부처와 나를 제외한 우리 일행들은 몸을

비비꼬고 부르르 떨고 발광을 했다.차라리 그건 고문이었다. 그 중 제일 괴

로워하는 색히는 꼴통이었다. 이 색히는 요걸 먹기 전에도 몸을 비비꼬았는데

요걸 먹고 나서 부터는 거의 하는 행동이 짐승이었다.

"아 괴롭다..."

"얌마 아침부터 웬 궁상이야??"

"아 세상이 아름다워.... 뭐든지 사랑해주고 싶어..."

"색히 놀고 자빠졌네."

"아.... 근데 말야... 그 목소리 쥑이게 쌕씨한 오퍼레이터말야.... 고것들 좀 만

나 볼 수 없을까? 아 뭐 뾰족한 수 없나? 내 생각에 게네 근무하는 데가 커

맨드 센터인 거 같은데"

"얌마, 꿈 깨. 들리는 말에 의하면 게네들은 대머리에 머리에는 이상한 뇌파

센서를 달고 있어서 꼬라지가 영낙없는 암말기 환자라고 하더라. 자고로 하늘

은 공평한 거야 임마. 목소리 반반한 애치고 잘 빠진 기집애 봤냐??"

"이 색히가... 아침부터 기분 잡치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야 이 색히야, 넌 거

의 유일하게 널 아끼는 이 엉아의 자그마한 꿈을 그렇게 무참히 짓밟을 수

있냐? 이 싸가지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색히야... 게내들이 대머리인지 니가

봤어?? 니가 봤냐구?? 이 색히가 아침부터 재수없게"

이 색히가 내 엉아 뻘인지는 인정할 수 없으나 날 아끼는 건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꼴통한테는 안 된 야그였지만 오퍼레이터들이 대머리인 것도 맞았다.

커맨드 센터 화장실 청소하다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

여간 날 아끼는 꼴통에게 그 사실을 말하는 건 너무나도 잔인한 짓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잠자코 있는 것이었다.

 

오늘 새벽 불침번은 나와 꼴통이 당번이다. 앞으로 동녘이 틀라면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이곳 Stynx 행성은 일년 내내 열대 기후였기 때문에 늘상

후덥지근 하나 그나마 새벽에는 쪼금 시원한 기운이 있었다. 주변에는 늪지가

많아 새벽에는 자욱한 물안개가 끼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눅눅한

안개가 희뿌옇게 끼어 있다. 꼴통도 나처럼 신출내기이긴 하나 나보다 시그마

부대 입소가 일주일 정도 빨랐고 나이도 나보다 세 살이 많았다. 그러나 우린

그냥 말까고 살기로 했다. 그건 고참의 갈굼에 대한 일종의 동병상련이었다.

허벌나게 깨지고 맞는 처지에 우리끼리 나이와 짠밥 수를 따지는게 치사해서

그냥 맞먹고 살기로 합의본 것이다.

꼴통은 Tarsonic 행성 옆 동네인 Onrop 행성 출신이다. 이 자석은 나와 달

리 가방 끈이 엄청 길었다. 과학고등학교에 다녔고 집과 학교, 도서관을 와리

가리 X뺑이 까야 했던 책벌레였다. 그나마 지네 행성에서 젤 잘나가는 일류

대학에 입학했고 장학금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말에 얼마나 기

가 죽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머리는 얼마나 좋은지 몰라도 공부가 적성은 아

니었다고 한다. 그나마 대학 입시 때에는 엄마 치맛바람이 하도 무서워서 마

지못해 대학 갈려고 공부했는데 대가리가 조금 크더니 엄마 말 알기를 우습

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 색히는 일년 내내 자체 휴강에 학교 근처 PC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고 말한다. 덕분에 학사 경고를 2번 먹기도 하였단다. 참

고로 학사 경고 3번이면 재적이라고 들었다. 공부는 취미 없고 그렇다고 사회

나와서 마땅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냥 군대에 자원했다고 한다. 집에서도 처

음에는 한심하게 생각했으나 백수로 빌빌 거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군대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나 부다. 목숨이 위태 위태해서 그렇지 여전히 Terran 사회

에서는 군바리가 장땡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색히는 잔대가리 하나는 나보다 잘 돌았다. 처음 들어 왔을 때 지네 학교

근처 카페에서 써빙보던 잘 빠진 알바생 기집애 사진을 어떻게 얻어 가지고

와서는 이게 지 동생이라고 고참덜한테 뻥을 쳤다. 덕분에 꼴통은 나보다는

고참덜한테 모진 꼴을 덜 당했다. 사회 있을 때 학생이었다는 사실도 나 밖에

는 몰랐다. 자고로 군바리덜은 먹물 많이 먹은 아해덜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곱게 큰 꼴통은 고참들의 갈굼이 심히 참

기 어려웠나 보다.

"야 꼴통, 넌 정말 꼴통이다. 왜 그냥 학교 다니지 이런데서 이렇게 고생하

냐? 나야 빽도 없고 집도 가난하고 그저 믿는 건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어서

그런다 치지만 넌 뭐가 아쉬워서 다 때려치고 삽질이냐 삽질이?"

"야이 색히야, 모르면 그냥 잠자코나 있어.... 씨벌... 과학자가 SCV보다 우대

받는 것 같지만 니네 SCV나 과학자나 속사정은 똑같아 짜샤... 그저 한가지

나은 거라구는 몇몇 잘 나가는 놈덜이 기깔나게 잘 나간다는 거지 나 같은

놈덜은 사회 나가면 몸은 니네 보다 편할지 몰라도 맘 고생만 하다가 머리칼

만 허옇게 돼... 짜샤... 그게 다 임마 겉으로는 '와와' 띄워 주고 안으로는 일

시켜 먹을려고 벌리는 수작이야. 니미 뽕이다."

 

꼴통과 나는 의기투합이 되어서 래그노서를 잡기로 맘 먹었다. 우리같은 신

출내기야 고참덜이 래그노서를 잡는 것만 어깨 너머로 봤지 진짜 잡아 본 적

은 없었다. 그래도 고참덜 하는 것 보니까 졸라 쉬워 보였다. 한 마리 잡아가

면 고참덜이 제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안개가 자욱하긴 했으나 그런데로 시야 확보는 잘 되었다. 여기 저기 나무

막대기로 수풀을 뒤지면서 이 놈덜을 찾아 나섰다. 이렇게 돌아 다니기를 한

시간 정도, 래그너서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도 않았다.

"어이 쓰벌, 별 노무 색히덜이 인간 차별하네... 고참덜 다닐 때는 지천에 뒹

굴던게 요노무 색히덜인데... 왜 우리가 찾으니 한 놈도 없냐??"

"야... 날샌 거 같다. 벌써 시간 다 된거 같은데... 애이. 오늘만 날이냐... 언젠

가는 잡히는 날이 있겠지... 쓰벌"

짜증나서 크액하고 침 한번 뱉을라고 고개를 돌리니 저 쪽에서 뭐가 움씰 움직인다.

"어... 쓰벌 이 색히덜도 양반이 아니네... 손털고 일어서니까 한 마리 나오는데."

긴꼬리에 땅을 휘젓고 다니는 걸 보니 래그너서인 것 같았다. 우리는 고참하

던데로 살금 살금 다가갔다.

"야 꼴통, 근데 저 놈은 생긴게 좀 약간 이상한데... 때깔도 거무틔틔하고 저

거 래그너서 맞아?"

"야이 색히야, 래그너서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허탕치는 것 보단 낫지... 일단

잡고 아니면 버리면 되지. 짜식 걱정은. 야 내가 앞장설테니까 넌 저쪽에서 보고 있다가 내가 잡으면 너도 덤벼... 하여간 가방끈도 짧은 놈이 나보다 따 지는게 더 많다니까"

머쓱해진 나는 꼴통이 시키는대로 했다. 근데 요 색히는 생긴 건 래그너서 같

은데 뭔가 좀 이상했다. 살거죽이 졸라 딴딴해 보였고 래그너서와는달리 앞

발에 갈고리도 달려 있다. 하긴.... 래그너서 사촌 정도 되나보지...

"야 잡아"

우리는 일시에 요 놈한테 덤벼 들었다. 그러자 이 색히가 열라 도망치기 시작

했다. 어이 씨 땅바닥을 기는데 졸라 빨랐다.

"야 래그너서가 언제부터 이렇게 빨랐냐?? 이 색히 졸라 빠른데"

"야이 색히야 잡고나서나 따져... 졸라 뛰어도 잡을 뚱 말 뚱인데 너처럼 떠들

었다가는 어느 천년에 잡냐?"

어어 요 놈이 도망가다가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열라 땅을 파기 시작

한다. 그리고 땅속으로 숨을려고 했다. 우리는 이것 저것따질 겨를도 없이

요놈의 꼬랑지를 잡고 늘어졌다.

"어이 색히 졸라 기운도 좋네... 야 더 땡겨"

이마에서 비지땀이 삐질 삐질 났다. 요 색히 기운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야말로 Terran군의 자랑! 단순 무식 지랄 귀신잡는 마

린아닌가.... 요 색히가 계속 반항하더니 결국 꼬리가 잡혀 끌려 나왔다.

꼴통은 꼬랑지를 잡고 나는 요놈의 목을 움켜 잡았다. 계속 요놈이 요동을 쳤

다. 주위를 살펴 보니 큼지막한 짱돌이 하나 놓여 있었다. 나는 짱돌을 잡아들고 요놈의 대가리를 열라 때렸다. 껍질이 얼마나 단단한지 아무리 때려도 꿈쩍도 안했다.

"야 이색히 졸라 독하다. 패도 꿈적도 안하네"

"야 입다물고 뻗을 때까지 패"

꼴통은 이윽고 꼬랑지를 발로 밟고 열라 대가리를 가라로 두들겼다. 얼마나

두들겼을까? 결국 요 놈이 사지를 부르르 떨더니 철퍼덕 뻗어 버렸다. 우리는

온 몸에서 땀이 비오듯이 흘렀다. 꼴통은 수고했다며 담배를 나한테 던져 주

었다. 우리는 담배 하나 꼬나물고 자랑스럽게 폼을 잡았다.

"아 졸라 힘드네. 아 뭐 이따구 색히가 다있어?? 쓰벌, 고참이 달리 고참이

아닌가봐. 멸치 그 색히가 잡았을 땐 대가리를 가라로 딱 때리니까 그냥 뻗던

데... 이 색히덜은 대가리에 급소가 있나 부지?"

"야 근데... 이거 래그너서 맞아?? 쓰벌, 뭐 이렇게 껍데기가 딱딱하냐?? 게다

가 이렇게 삐쩍 말라가지고 뭐 먹을 거라도 있겠어??"

"야 이 색히야 어쨌건 잡았쟎아?? 그럼 잡았는데 먹을 거 없다고 버리냐??

아 시간 다 되었다. 그냥 들고 가자 이거 언제 내장 바르냐?? 뭐 고참덜이 알

아서 해 주겠지."

꼴통은 요 놈을 등에 엎고 마냥 희희낙락했다. 하긴 나도 뿌듯했다. 하도 지

랄을 해싸서 놓치는 줄 알았는데어찌 되었건 힘들게 잡은 놈이었다.

꼴통과 나는 잡은 놈을 고참덜한테 보였다. 고참덜은 그 놈을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야이 고문관 시키들아... 뭐 이딴 놈을 잡아왔어?? 이렇게 삐쩍 마르고 냄새 나는 놈을 어떻게 먹냐?"

"아이 힘들게 잡아 왔는데 너무 하십니다. 뭐 어떻게 잘 요리하면 먹을 수 있

는거지 군바리가 먹을 수 있는 건 뭐고 못먹는 건 또 뭡니까? (어쭈 꼴통 너

많이 컷다)"

이때 마침 돌부처가 우리를 봤다. 돌부처는 우리가 잡아온 놈을 물끄러미 쳐

다보았다. 앗 순간 돌부처의 얼굴이 굳어지고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난 저

표정을 옛날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망할 놈의 마른 오징어를 볼 때의

표정 바로 그때의 표정이었다. 순간 황병장은 뭐라 알 수 없는 말을 부르르

떨면서 내뱉았다.

"저... 저저것은 디... 디... 디... 디... 디..."

꼴상이 영락없는 학질 환자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해진 우리는 돌부처 눈치

보기 바빴다.

"황병장님, 왜 그러십니까?"

"으... 저저것은 디...디..디...디...디..."

갑자기 돌부처는 떨리는 소리로 가라를 집어 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화들짝

놀랬는지 모른다. 아 오징어 때문에 쌓인 나의 업보는 또다시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높이 높이 쌓일 찰라였다.

'부르르륵'

으악 우리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다행히 과녁은 우리가 아니었다. 돌부처

는 죽은 그 놈의 배에다 대고 가라질을 했던 것이다. 두껍던 껍질도 가라를

이기지는 못했다. 순간 죽은 그 놈의 배가 터지고 창자가 삐져 나왔다.

돌부처는 두꺼운 장갑 무려 4개를 겹쳐 끼고 그 놈의 터진 뱃속에 손을 집어

넣었다. 이윽고 오줌보 비슷하게 생긴 주머니를 끄집어 냈다. 요걸 조심스레

칼로 가르니 안에서 피같이 시뻘건 액체가 몇 방울 떨어졌다.

"흐흐흐.... 플레이그.... 운이 좋았군... 제군들, 비상이다. 비상 체제로 돌입한다."

"플레이그? 황병장님, 그게 뭐입니까?"

황병장은 시뻘건 액체 몇 방울을 자기 전투복에 문질렀다. 순간 놀랍게도 가

라질도 어느정도 버티어주던 전투복이 이내 바지직 타들어 갔다. 순간 온 몸

에 소름이 끼쳤다. 오줌보가 거의 텅빈 상태인 걸 봐서는 저 놈은 우리에게

저 빨간 액체를 뿌릴 수 없는 상황이었나 부다. 아 만일 저거를 우리가 뒤집

어 썼다면.... 꼴통도 기가 질렸는지 사색이 되어 부들 부들 떨고만 있었다.

 

"본부, 비상 사태 발생, 비상 사태 발생"

"여기는 본부, 상황을 보고하라."

"Zerg 전투 유닛을 사살하였음을 보고한다. 최근 5시간 동안 이 곳을 중심으

로 10킬로 반경에서 Zerg의 도발이 있었는지 확인 바란다. Zerg의 도발이 있

었는지 확인 바란다."

"해당되는 Zerg의 도발은 없었다. 해당되는 Zerg의 도발은 없었다."

"흐흐흐... 알겠다. 이곳을 중심으로 10킬로 반경의 지도를 전송해주길 바란다."

이윽고 축적 1/100의 지형도가 파일로 전송되었고 우리는 WIBE를 통해 파일

을 공유하였다.

"여기는 본부, 파일 전송 완료, 패스워드를 입력하라. 패스워드를 입력하라."

"패스워드는 Black sheep wall"

황병장이 짤막하게 패스워드를 외치자 파일 엑세스가 가능해졌다. 순간 지형

도의 3차원 홀로그램이 생성되었다.

유심히 지도를 보던 황병장은 재차 기지에 요구를 하였다.

"지형도에 표시된 A지구, B지구, C지구에 대한 스캐닝을 요청한다. 스캐닝을

요청한다"(3)

"여기는 본부, 유감스럽게도 스캐닝은 지원해 줄 수 없다. 지원해 줄 수 없다."

"훗훗훗... 비엉신 같은 자석들. 그렇다면 찍을 수밖에 없는데.... 글세...어디 볼까"

황병장이 표시한 A-C 지구는 모두가 다 미네랄과 가스 광산이 위치한 곳이

었다. 이 중 A 지구는 미네랄 광산만 있었고 B-C 지구는 미네랄과 가스 광

산이 모두 있는 곳이었다. 한참 골똘히 생각하던 황병장은 무겁게 혼잣말을

내뱉았다.

"음침한 놈덜은 음침한 곳에서 살지.... 흐흐흐 그래 B지구야... B지구"

황병장이 말한 B지구는 사방이 언덕으로 둘러쌓인 조그마한 분지였다. 이윽

고 돌부처 황병장은 살모사 같은 눈을 번득이며 우리를 쳐다봤다. 너무나도

섬찟한 눈초리였다. 뭔가 증오와 살기가 서려있는 그러면서도 잔뜩 겁먹은 상

처입은 맹수와도 같은 눈빛이었다.

"제군들, 실제 상황이 발생했다. 이제부터 모든 작전 수행은 나의 명령을 따

라야 한다. 내 명령을 어겼을 시에는 군법대로 사살한다. 대가리에 가라 구녕

보기 싫거든 내 말에 절대 복종한다. 알겠나?"

"예~ 써어얼"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Zerg라는 제군들 귀에는 무지무지 친숙한 저승 사자

덜이 제군과 나를 기다리고 있다. 모처럼 재밌는 하루를 보내기 바란다"

Zerg? 그럼 저 무시무시한 놈이 Zerg? 얼마전에 본 Zerg는 땅꼬마 쥐새끼 같

던 놈인데.... 게다가 이 근처에 Zerg가 있다구...

"흐흐흐... 제군들은 내 말을 못 믿나본데... 이 근처에 Zerg 아지트가 있는 건

확실하다. 안 믿껴도 좋다. 하여간 내 말을 허투로 아는 놈은 Zerg에게 돼지

기 전에 내 손에 돼질 것이다. 제군들 출발이다."

우리는 재빨리 자리를 정돈하고 군장을 차렸다. 드디어 돌부처가 말한 지옥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자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내 몸이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주 석----------------------------------

(1) 겜 진행 시 조그만창에 나와 있는 파이어뱃의 모습을 보면 항상 담배를

꼬나 문 걸 알 수 있다. 또한 일반 병사와는 달리 얼굴이 유난히 검게 그슬렸

음도 알 수 있다.

(2) 라그노서는 겜 진행 시, 중립 생물 유닛으로 도마뱀 같이 생겼다. 필자는

처음 게임을 했을 때 이 생물이 디파일러인지 알고 가끔씩 놀라곤 했다. 실제

생김새가 저글링이나 디파일러와 비슷하게 생겼다.

(3) 황병장은 근처에서 Zerg의 도발이 없었고 플레이그를 쓸 에너지가 없었음

을 확인함으로서 디파일러가 생성된지 얼마 안 된지를 알게 된 것이다. 따라

서 최단 거리의 광산 근처에 Zerg의 해처리가 존재함을 확신한 것이다.

A,B,C 지구 중 B 지구를 선택한 이유는 일단 가스와 미네랄이 모두 존재하

며 수비에 편한 분지 형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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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어느 테란 병사의 삶 (10)

 

군바리 담배갑 윗쪽에는 요러한 이상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나보다 먹물 좀

많이 먹은 꼴통한테 들은 말인데 우리말로 해석하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

노라'라는 뜻으로 먼 먼 수십세기 전 우리의 고향별 지구에서 살았던 군바리

원조 격 한 분께서 요러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 자석은 고 문구가 고대전

의 전술 양상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거라는 촌평을 끝에다 덧붙였다.

유식한 꼴통의 말에 의하면 이 후 인간들의 전쟁에서 하마터면 'Veni(왔노

라)'라는 말이 빠질 뻔 했다고 한다. 미네랄과 가스를 이용하여 합성하는 세

라믹과는 달리 불과 수세기 전만 해도 인간들은 전파에 노출되기 쉬운 금속

제 병기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란다. 또한 그 당시만 해도 전쟁터의 범위는 지

구라는 코딱지 만한 행성 하나에 국한되어 있었다. 서로가 상대의 땀구멍 수

가 몇 개인지 까지 속속들이 셀 수 있는 상태에서 어설프게 전쟁 벌였다가는

인류라는 존립 기반까지 위태로왔다. 핵탄두나 고성능 폭약을 단 초장거리 미

사일의 등장은 굳이 적지로 '오지 않아도' 멀리서레이더 망으로 '보고' 공격

해서 '이기면' 상황 땡이었다. 따라서 모든 전쟁은 짜잘한 더군다나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지리한 국지전에 국한되었고 화끈한 전면전은 그저 나죽고 너죽

자 식의 자해 공갈단협박 수준으로 발생 자체가 원천 불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상황은 180도 반전되어 버리고 말았다. 한때 지구에서는 미국이라는

시시껄렁한 국가가 저고도로 날아 다니는 자체 추진 미사일을 가지고 지구를

휘저으며 뻐기고 다닌 적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유도 미

사일은 이 후 개발된 전파 교란 기술에 의해 완존히 개X됐다. 심지어 나중에

는 아군이 발사한 미사일이 적의 돌격대로 돌변해 우리 편 뒤통수를 때리는

골때리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보다 고전적인 탄도 미사일은 미리 진행 궤도를 정하고 쏘기 때문에 전파

교란에 당할 염려는 없었다. 확실히 구조가 간단하면 고장이 덜 나는 법이다.

그렇다고 탄도 미사일이 천덕꾸러기를 면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이미 진행

궤도를 정하고 쏜다는 말은 적도 그 궤도를 안다는 말과 별 다를 바 없었다.

따라서 적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수 초 내에 이를 탐지하여 요격 미사일을 쏘

면 완죤 상황 끝이었다.

요렇게 되자 간악한 인간의 잔대가리는 스텔스 기술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

다. 게다가 전파에 취약한 금속제 병기 대신에 앞서 말한 미네랄과 가스로 합

성한 세라믹을 이용하게 됨에 따라 기존의 레이더망은 완죤히 고물이 되버렸

다. 따라서 전파는 통신용으로만 이용되게 되었고 전파를 이용한 탐지는 말

그대로 '날 잡아 잡수'하는 비엉신 염병으로 통하는 세상이 되버리고 만 것이다.

탐지 기능으로서의 전파를 포기하자 결국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파동은 가

시 광선과 적외선 정도밖에 남질 않았다. 이로서 광학은 무진장 발전을 보게

된다. 가시 광선은 적의 형체를 그 어떤 파동보다 정확히 포착할 수 있게 한

다. 게다가 사람은 눈으로 보이는 걸 제일 굳게 믿는 성향을 보이기 마련이었

다. 또한 적외선은 적 유닛으로부터 발생하는 열 탐지에 기가 막힌 효과를 보

여 주었다. 그러나 이 2가지는 원천적인 결함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탐지 범

위가 전파에 비해 무지무지 협소했던 것이다. 결국 인간은 시야 확보를 위해

정찰 위성으로 하늘을 도배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이로서 전술에서 '왔노라'를 빼려는 집요한 노력은 유효한 듯 보였고 제한적

으로나마 성공적으로도 보였다. 그러나 결국 그것도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

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인간의 생활 범위가 단일 행성이 아닌 우주로 확장되

어 버린 것이다. 우주에는 수억개의 행성이 존재한다. 이 중 Terran 연맹의

손길이 미치는 행성만도 100개가 넘었다. 100개의 행성에 일일이 인공 위성으

로 도배를 하고 탐지 기지를 세우고 하는 건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기 위해

모래 한 알마다 센서를 달아주는 것보다 더 심한 돈지랄에 시간 낭비였다.

 

결국 '왔노라'를 뺀 전술은 행성 수비 강화를 위한 요격 체제 설비에만 국한

되었다. 이중 제일 기깔난 것이 내가 태어난 Tarsonic 행성의 Ion cannon이

었다. 그러나 전쟁은 수비만 해서는 이길 수가 없는 법이었다. 결국 공격을

해야 하는데 요건 어쩔 도리가 없는게 적이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튀는 것

이었다. Son of Korhal이 아주 대표적인 경우인데 끊임없이 도발을 하다 수

틀린다 싶으면 Terran 연맹의 손 때가 덜 탄 행성으로 잽싸게 줄행랑을 쳤

다. 요러다 보니 괜히 행성간 탄도 미사일로 조져봐야 애매한 주민들의 원성

만 높아져 간다. Terran의 높으신 군바리님덜의 고초가 여기에 있었다. 그들

의 목적은 전쟁을 이기는 것 이상으로 아래 민초를 어르고 달래는 정치술도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요렇게 되자 울며 겨자 먹기로 '왔노라'는 살아 남았다.

튼튼한 두발로 걷든 기든 적기지를 방문해서 맞짱을 떠야 승패가 갈리는 상

황이 된 것이다. 이로서 여지껏 천대시 되어 왔던 온갖 갖은 고대전 꼼수들,

예를 들면 매복, 포위전, 시가전, 게릴라전 등이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이로

서 수세기 동안 '왔노라'를 지워 없애려는 인간의 그 수많은 노력은 하루아침

에 쓰레기통에 쳐박히고 말았고 전쟁 양상은 또다시 'Veni, Visi, Vici'를 외치

던 그 양반 시절로 회귀하고 만 것이었다.

 

'왔노라'로 대표되는 국지 근접전은 Terran 사회에서 군바리의 위상을 한층

높게 해 주었다. 더 이상 공동의 적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언제 어느 순

간 도적떼 모냥 우루루 쳐들어와 시민의 생명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요렇게 되니 유흥가 술집 주인이 실질적으로 그 바닥을 장악한 조폭 애들 틈

바구니에서 살아 남을려면 부지런히 갖다 바쳐야 하듯 맞짱 떠서 이기는 군

벌 밑에서 설설 기는 것은 Terran 사회의 필요악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Terran 군벌간의 밥그릇 쌈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인구도 많고 문명의 손때

도 상대적으로 많이 묻은 Tarsonic 같은 곳은 제법 도시 티가 났다. 이런 곳

은 서울이라 불렀다. 반면에 Stynx 행성 같이 군바리 천지에 민간인도 별로

살지 않는 곳은 기지촌이라 불렀고 아예 군바리덜은 별로 진출할 생각이 없

고 개척민만 들끓는 행성은 깡촌이라 불렀다. 대개 살기 힘든 곳은 기지촌이

아닌 깡촌이었다. 허구헌날 딴 행성에 기지 차린 군바리덜이 여기서 빡터지게

쌈질을 벌렸기 때문에 민폐가 보통이 아니라고 들었다. 웃긴 건, 이러한 깡촌

은 행정 구역상 애매 모호하여 특별히 봐주는 군바리들도 없었기 때문에 아

무리 민폐가 심해도 어디다가 호소할 데가 없다는 것이다. 대빵 군바리 놈덜

은 지들이 등쳐 먹고 사는 주민들에게 전자 주민 카드를 발급하였다. 따라서

Terran 연맹 공동 협약 제 9조에는 "전자 주민 카드로 신원이 확인된 Teran

시민은 해당 지구 연맹으로부터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라

고 명시하였다. 이 말은 전자 주민 카드가 없는 깡촌 개척민들은 맞고 살아도

할 말이 없다는 말과 다를바가 없었다. 그래서 서울 살게 된 나는 이점에 있

어서도 얼마나 부모님한테 고마워 했는지 모른다.

 

공포심을 잊기 위해서 였을까? 아니 어쩌면 굳이 걸어서 지옥을 찾아 나서

야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왜 내 처지가 이렇게 되었는지 사회학적 측

면에서 꼼꼼히 성찰한 건지도 모른다. 요런건 꼴통이 전문이었다. 이 자석은

수틀리면 항상 'Terran 사회가 그지 발싸개 같아서'라고 내뱉는다. 덕분에 나

도 그 분위기에 전염이 되었다.

목표 지점인 B지역까지는 앞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 행군 대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돌부처의 살모사 같은 눈초리는 평소보다 더욱 번득

거렸고 대원들 모두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앞서 가

는 파뱃 아해덜은 열심히 땅바닥만 보고 걸었고 뒤따르는 울 마린은 하늘 만

쳐다보고 걸었다. 왜 그렇게 하는지는 알 수 없었고 우린 그저 돌부처 하라는

대로만 행동했을 따름이다.

현재 시간 오전 10:00, 해가 중천에 뜰려면 아직 멀었으나 여전히 타는 듯이

찌들어 갔다. 우리는 아침 햇살이 너무 눈이 부셔서 한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눈을 찌푸리며 하늘을 쳐다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순간 하

늘 언저리에 무언가 한 점이 붕 떠있었다. 무슨 풍선 같기도 하고 하여간 엄

청 큰 물체였다.

"황병장님, 시야 3:00 방향에서 이상한 물체를 발견하였습니다."

돌부처는 내가 가르킨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이윽고 돌부처는 손짓으

로 우리를 가르키며 한마디 늘어 놓았다.

"전투 태세를 갖추고 3:00 방향으로 저 놈한테 잽싸게 접근한다."

우리는 돌격전 자세를 취하고 전 속력으로 그 놈에게 뛰어 갔다. 이윽고 다가

갈수록 그 놈의 형상이 점점 구체적으로 보였다. 순간 돌부처는 정지를 명령

하고 우리는 잽싸게 수풀 속에 숨었다. 기묘하게 생긴 놈이었다. 처음엔 인

공 구조물인줄 알았으나 생명체였다. 숨을 쉬고 있었으며 도마뱀과도 같은 거

무틔틔한 피부 살가죽이 보였다. 그러나 생김새가 새는 아니었다. 날개 비스

무리한 건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한가지 묘한 건, 날개도 없이 날

아다닌다는 것이었다. 그건 날아다닌다는 말보다 공기 속을 부유하고 다닌다

는 말이 더 어울렸다. 마치 물위에 떠 다니는 해파리와도 같이 공중에 유유자

적 떠다녔다. 생김새도 해파리와 비슷했다. 둥근 머리에 수많은 촉수, 순간 수

족관에 들어온 느낌이 들어 기분이 이상했다.

"야 꼴통, 어떻게 저 색히는 공중을 붕붕 떠다니지?? 신기하지 않냐??"

"몸이 공기보다 가볍거나 반중력 장치를 이용했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하지

만 나도 신기한 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구조물이면 모를까 생명체가 그런 걸

이용한다는 건 처음 듣거든"

우리는 속으로 모두 저 놈이 Zerg라는 필을 느꼈다. Zerg가 그렇게 무시무시

한 놈덜이라면 우리의 상식을 비웃는 건 아색히 팔비트는 것 보다 간단한 일

일 것이다. 돌부처를 제외하고 Zerg에 대해 아는 대원은 아무도 없다. 모르는

적과 맞서서 싸울 때의 가장 큰 적은 미지의 적이 아니라 적에 대한 공포심

이었다. 적은 굼벵이 같이 느긋하기만 하다. 순간 이 놈이 우리쪽으로 접근을

해왔다. 멸치는 본능적으로 가라를 겨누었다. 금방이라도 쏠 거 같은 자세였다.

"이봐 니 가라에 저 색히가 먼저 뻗는지 아니면 내 가라에 니가 먼저 뻗는지

해볼까?"

어느 틈에 돌부처는 멸치 고참의 관자놀이를 가라로겨누고 나지막히 속삭였

다. 멸치 고참은 순간 섬찟하여 겨누던 가라를 거두었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말고 내 명령이나 기둘려 이 겁쟁이 색히덜아!! 서두르는

색히는 돼지는 것도 서두른다. 안 된 말이지만 그런 색히덜 때문에 옆에 있던

놈들도 애매하게 길동무 된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놈은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놈

이 우리에게 접근하는 시간은 영겁이나 되는 듯이 길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때 돌부처가 갑자기 소리쳤다.

"뛰어 색히덜아!"

우리는 뛰었다. 머리 속에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놈에게

가라를 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불속에 나방 뛰어들 듯이 그 놈에게 뛰

어서 다가갔다. 이윽고 그 놈의 바로 밑에 도달했다.

"공격, 발포 개시, 쏴라 이 색히덜아, 졸나게 갈겨!!"(2)

우리는 기계적으로 가라 방아쇠를 잡아 당겼다. 순간 수백발의 가라가 그 놈

에게 날라가 박혔다. 그 놈은 끼악하는 날카로운 괴성을 질렀다. 이윽고 도망

가려고 발버둥쳤으나 우리가 쏘는 가라가 조금 더 빨랐다. 드디어 그놈은 벌집이 되고 공중에서 펑하고 터져 버렸다. 우리는 그놈의 온갖 쾌쾌한 분비물 과 시체 쪼가리를 죄다 뒤덮어 써야 했다. 고약한 비린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그러나 그 역겨운 비린내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한 놈을 통쾌하게 터뜨려 버

렸다는 짜릿한 쾌감을 오히려 배가시켰다.

"후퇴하라. 후퇴"

우리는 30미터 가량 전력 질주로 후퇴한 후, 수풀 속을 은폐물로 삼아 몸을

숨겼다. 여기서 10분 정도 숨을 돌린 후 또 다시 진격을 개시하였다.

 

B지구에 거의 다가왔다. 멀찍히 B지구의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골짜기가 보

였다. 그 해파리 같이 생긴 놈은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는 바짝 숨

을 조이며 이윽고 골마루를 향해 올라갔다.

"이봐 꼴통, 아까 그 색히, 그 색히가 Zerg가 맞겠지?"

"그 색히가 Zerg인지 아닌지는 돌부처 눈시깔만 봐도 알 수 있어. 와 아까 돌

부처 눈시깔 봤어?? 완전 핏발 선게 옛날에 깔치 색히 분위기는 저리 가라던데."

"음... 내가 저번 야간 정찰 때 본 놈은 도마뱀 같이 생긴 땅꼬마였고 너랑 멋

모르고 잡은 놈은 래그노서와 생긴게 비슷했어. 게다가 아까 그 소름끼치는

놈은 해파리 같이 생겼고.... 놈덜도 기능별로 분화가 이루어진 여러 생명체로

이루어진 군집 집단일까?? 그렇다면 아까 그 놈은 도데체 뭐하는 놈일까?"

하긴 여태껏 본 Zerg의 공통점이라곤 단 하나 기분나쁘게 생긴 거무틔틔한

살가죽 뿐이었다.

이윽고 골마루에 올라 왔다. 밑의 분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미네랄 광산이

부채꼴로 펼쳐져 있었고 그 근처에는 가스 광산 처럼 보이는 불룩한 지대도

보였다. 그러나 우리의 눈을 놀라게 한 건 그런 평범한 지형이 아니었다. 그

밑에는 이상하게 생긴 물체가 점점이 놓여 있었다. 마치 배치가 내가 처음와

서 본 시그마 기지 본부와 유사했다.

삿갓 처럼 생기고4개의 뿔이 달린 이상한 물체가 미네랄 광산 근처에 위치

하고 있었다. 놀라운 건 이 거대한 건물처럼 보이는 물체가 숨을 쉬듯이 부풀

어 올랐다 꺼졌다 하는 것이었다. 가자미 같이 생긴 묘한 놈덜이 미네랄 광산

에서 미네랄을 채취한 후 이걸 삿갓처럼 생긴 건물에 열심히 나르고 있었다.

하늘에는 아까 터뜨린 것과 같은 해파리 같은 놈덜이 떠다녔다. 더 놀라운

건, 가스 광산에 가스 채취소 대신에 놈덜이 세운 듯한 구조물이 놓여 있었고

가자미 같은 고 놈덜이 부지런히 가스를 캐서 나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생긴

것만 기묘했을 뿐 모든 것이 Terran 군의 기지 상황과 흡사했다. 살아 움직

이며 돌아 다니는 건 오로지 해파리와 가자미 같은 놈덜밖에 없었다.

분지 바닥에는 허파꽈리 처럼 생긴 이상한 물질이 뒤덮혀 있었다. 그건 보기

에도 매우 흉칙했는데 모든 Zerg의 건물(?)은 그 물질이 덮힌 장소 위에 서

있었다. 우리 일행은 순간 아연했다. 우리의 적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체계

적이면서도 매우 정교했다.

"제법인걸, 마치 꿀벌이나 개미처럼 Zerg도 기능이 분화된 군집 집단인가 본

데? 음... 저게 Zerg라는 우리의 적일까?? Terran 사회의 공동의 적"

"어이 쓰벌, 야 속이 다 미식거린다. 기능 분화 좋아하네. 저렇게 역겹게 생긴

놈덜이 우리의 적이라니?? 차라리 똥 푸며 사는게 덜 지저분하겠다."

떠 다니는 그 무시무시하게 생긴 놈을 처치하고 나서 멸치 고참은 공포심이

많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 공포심과 더불어 사람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모험심이다. 간뎅이가 알맞게 부은 멸치 고참은 의기 양양하게

돌부처에게 떠들었다.

"황병장님, 저게 Zerg라는 개뼉다구 색히덜 아지튼가 본데... 있는 놈이라곤

가자미 같이 생긴 놈덜하구 아까 쪽도 못 쓰던 해파리밖에 없습니다. 그냥 우

리끼리 쓸어 버립시다."

"이봐 멸치, 너한테 명령한다. 우리는 여기서 엄호할 테니 너 혼자 저곳을 돌

파해서 쓸어 버리고 와라."

"네에?? 아니 그런 말도 안되는...."

"적의 밥집 하나 뽀사버렸다고 까부는 색히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또한 그

러한 작전은 우리를 이롭게 한다. 너 같이 전투에 도움이 안 되는 색히는 적

의 총알 받이로 갖다 바쳐야 적의 전투력을 소진시키고 아군의 식량 낭비를

줄일 수 있다."

평소에 말수가 적던 돌부처는 오늘따라 유난히 말이 많았다. 그건 그 인간의

원래 성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모진 경험에서 생긴 공포심이 그 인간의

입을 무겁게 짓눌렀는지도 몰랐다. 적이 눈에 보이자 그러한 공포심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듯이 보였다. 평소 우리를 갈구던 멸치가 돌부처한테 박살이 나

자 나와 꼴통은 속으로 무척이나 깨소금이었다.

망원경으로 Zerg의 진지를 유심히 살피던 돌부처는 기지와 연락을 취했다.

"Zerg의 아지트를 발견, Zerg의 아지트를 발견"

"여기는 기지, 적의 동태를 정찰하고 상황을 보고하라, 적의 동태를 정찰하고

상황을 보고하라."

"목표 지점을 입력 전송한다. 추가 병력의 투입을 요청한다. 추가 병력의 투

입을 요청한다."

"현재 병력 투입은 여력이 없다."

"매우 급하다. 현재 적의 전투 여력은 별로 없어 보인다. 추가 병력의 투입이

매우 시급하다."

"여기는 기지, 재차 통보한다. 현재 병력 투입 여력이 없다. 현재 병력 투입

여력이 없다."

한참동안 돌부처와 오퍼레이터 간에 입씨름이 오고 갔다. 돌부처는 이빠이 열

받기 시작했다.

"야이 가시나야, 그럼 나보고 피래미 5명이랑 저 괴물 색히덜과 싸우란 말이

야.. 헷소리 집어 치우고 빨랑 보내 원 니미 씹헐"

"경고!! 귀관은 WIBE 규칙 제 3조 '공적인 통신 상에서는 고운 말을 사용해

야 한다'라는 규칙을 위반했다. 따라서 군인 개인 평가 고가 점수 20점이 감

점되었음을 통보한다."

"야이 X년아 니가 싸우냐? 내가 싸우지, 너 같은 문어 대가리와 말쌈할 여력

없으니 중대장 연결하고 넌 빠져! 니가 뭘 안다고 난리야 난리는. 이 대가리

에 털 한줌 없는 빽XX가"

"경고!! 귀관은 WIBE 규칙 제 7조 '어떠한 상황에서도 통신 상 인격 모독이

나 인신 공격은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규칙을 위반했다. 따라서 고가 점수 30

점이 감점되었음을 통보한다."

난 2가지 이유 때문에 속으로 불안했다. 첫째는 연속 3일 동안 고가 점수가

100점이 깎이면 당장 캡슐행이었기 때문에 저러다 돌부처 캡슐가는 거 아닌

가 였고 또 한가지는 돌부처가 추가 병력의 중요성을 계속 떠들어 댔다는 사

실이다. 돌부처 캡슐가는 것도 바라지 않았지만 이대로 저렇게 더러운 색히덜

한테 개죽음 당하는 것은 더더욱 바라지 않았다.

무려 돌부처의 고가 점수는 마이너스 90점에 육박하였다. 그러나 돌부처의

갈굼에 바짝 쫀 오퍼레이터는 후환이 두려웠던지 기어이 캡슐행의 마지노선

인 마이너스 10점을 추가하지 못하고 중대장을 연결했다.

"음... 나 중대장이다. 야 황병장. 임마 넌 성질 좀 죽여라.... 니미 오퍼레이터

가 겁먹고 화장실 가서 울쟎아 짜식 게네 달랠려면 얼마나 왕짜증인줄 알아!

하 짜슥... 뭐라고 추가 병력, 야이 색히야 내가 사단장이냐, 사정 좀 봐줘...

지금은 힘들어... 뭐라고 급해?? 임마 급하긴 이쪽도 마찬가지야. 오늘

Tarsonic에서 특수 시찰단이 떠서 추가 병력은 지금 그 쪽 사열식으로 다 빠

졌어... 야이 짜샤, 쪼맨한적기지 하나 때려 부수자고 울 기지 지키던 놈들

글루 보낼 순 없쟎아?? 그러다 빈집이라도 털리면 어쩔래. 임마 캡슐은 너희

같은 말단만 보내냐?? 그딴 짓 했다간 나도 캡슐이야 짜샤.... 그래 임마, 넌

짠밥도 쌓인 놈이 군바리 생리를 그렇게도 모르냐?? 사열식이 오늘 오후면

끝나니까 앞으로 9시간 후면 글루 추가 병력 보낼게. 그래 임마 9시간만 참

아. 적의 동태를 살피고 그때까지만 막아주면 돼.... 어디 안전한 곳에 짱박혀

있으면 되쟎아 그 사이에 설마 그 색히덜이 얼루 이사 가겠어?? 그래... 뭐라구..많이 보낼수록 좋다구? 알았어. 하여간 수고했다. 그리고 오퍼레이터 시켜서 위치 입력시킬테니까 철수 시 글루 와... 그래 임마... 드롭쉽 하나 보낼 게 하여간 9시간만 참고 기다렸다가 나중에 그 드롭쉽 타고 와... 그래... 그럼 끊는다."

9시간.... 앞으로 9시간이 중요했다. 그때까지 철수하지 않고 이곳에서 적의 동

태를 살펴야만 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주 석 ------------------------------------

(1) 줄리어스 시저가 파르나케스와의 회전에서 승리한 후, 로마에 승전보를

알렸을 때 썼던 너무나도 유명한 말이다. 실제로 말보로 담배를 사면

담배갑 앞면에 'Veni, Visi, Vici'라는 말이 써있다.

 

(2) 실제 겜 진행 시 오버로드를 마린으로 죽일 때에 먼 거리에서 공격을 하면

오버로드를 치면 놓쳐 버릴 수 있다. 이때에는 그러지 말고 재빨리 오버로드

바로 밑까지 마린을 이동시킨 다음 공격을 시작하면 오버로드를 쉽게 죽일 수 있다.

오버로드를 무심하게 놔두는 전략은 사실 백해 무익하다. 오버로드는 최대한

죽일 수 있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죽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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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어느 테란 병사의 삶 (11)

 

고갯 마루는 은폐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장소였다. 이윽고 우리 대원들은 좀

더 분지 쪽으로 내려 와서 고개 허리 근처 바위 틈에 숨었다. 우리는 Zerg의

기지(?)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한참을 보던 나는 미네랄을 캐던

그 가자미 같이 생긴 놈덜이 좀 불쌍해 보였다. 하는 꼬라지가 Terran 사회

의 SCV와 비슷해 보였다. Zerg 사회에서도 저 놈덜은 SCV와 같은 천덕꾸러

기일까??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런 감상적인 생각이 떠오르자 그런 내가 조금

은 어처구니 없게 보였다. 저 놈덜은 지들 멱을 딸려고 벼르는 적이 근처에

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미네랄을 퍼담고 있을 것이다. 순간 그 동안 기지에

서 멋모르고 행동한 내 자신이 얼마나 운빨이 좋았는지 깨달았다. 돌부처는

내가 맷돌에 갈아 죽여도 시원챦은 악연 속의 주인공이었으나 실제로 내가

믿을 만한 인간은 그 인간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괜시리 돌부처 황병장이 커

다란 존재로 보였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돈다.'라는 속언이 있다. 처음에는 조바심에

9시간아 빨리 가라 속으로 빌며 열심히 시계 바늘만 쳐다 보았으나 쫌 있쟈

아무일도 없고 Zerg 색히덜이 뛰노는 걸 무슨 동물원 사파리 온 것처럼 마냥

신기해 하며 바라보았다. 그나마 두 세 시간이 지나자 모두 무료해져 서로 아

무 말도 없이 묵묵히 앉아 있었다. 하여간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9시간 뒤인

저녁 9:00를 향해 열심히 돌아 가고 있었다.

 

돌부처가 갑자기 뚱딴지 같은 소리를 늘어 놨다.

"제군들, 적 기지 근처에 돌출한 건물이 보이나?"

"예~ 써~얼"

돌부처가 가르킨 건물은 무슨 지하 대피소 입구처럼 생긴 건물이었다. 그 입

구를 통하면 지하로 내려가는 듯 보였다.

"앞으로 보충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는 정확히 2시간이 남았다. 그동안에 우리

는 적의 기지를 침투하여 저 건물을 폭파시키고 철수한다."

순간 나와 모든 대원들은 아연실색했다. 우리가 피래미라고 보충 병력을 보내

라고 그렇게 날뛰던 인간이 갑자기 적기지를 공격하자구?? 오락가락하는 돌

부처의 말에 아까 쭈그러들었던 멸치 일병이 꽤나 열받았나 부다.

"어이 쓰벌, 누가 쳐들어가자면 달밤에 체조고 또 누가 쳐들어가자면 그건 작

전인가?? 황병장님, 전 여기서 황병장님 엄호나 해드릴테니까 황병장님이나

저거 뽀사고 오시와용"

뜻밖에 돌부처는 심각했다. 그 인간은 자신의 작전을 대원들에게 인지시키기

위해 친절하게 설명까지 하기 시작했다.

"저 곳이 적의 급소다. 만일 추가 병력이 도착하기 전에 저 곳을 부수지 못하

면 추가 병력도 몰살이다. 우리는 당연히 다시는 기지를 보지 못하고 황천에

서 해매게 된다. 제군들 작전을 하달한다. 너희 파뱃 둘은 맨 앞장을 선다. 침

투 루트는 내가 WIBE에 입력시키겠다. 절대 오버로드가 사정거리에 들어와

도 공격하지 않고 내 지시를 따르기 바란다."

"황병장님, 오버로드가 뭘 말하는 것입니까?"

 

 

"오버로드란 아까 우리가 부순 떠 다니는 밥집을 말한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건물은 니더스 커널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며 적의 침투용 땅굴이다. 저걸 부수

기 전에 적에게 발각되면 Zerg 떼거지가 그 속에서 튀어 나온다. 흐흐흐, 지

상과 지옥을 연결해 주는 악마의 터널이라고 해야 할까?? 따라서 니더스 커

널을 폭파한 후 무조건 후퇴한다. 드롭쉽과의 접선 지점은 기지로부터 전송받

아 알 줄 안다. 이상이다."

전 대원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돌았다. 사실 Zerg의 기지는 매우 평온했다.

가자미 같이 생긴 놈덜은 모두가 다 미네랄 캐느라고 정신없어 보였고 우리

가 겁먹은 건 사실 돌부처의 긴장된 표정에서 연유했을 뿐이다. 우리는 돌부

처가 입력한 경로를 따라 침투를 개시하였다. 어느덧 그 이상하게 생긴 물질

이 덮힌 곳까지 도달했다. 덜 마른 페인트처럼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배어 나

왔다. 마치 똥밟는 기분이었다. 묘한 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저번에 골로 보

낸 오버로드라는 놈에서 나던 냄새와 비슷했다. 속에서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

다. 이윽고 우리는 니더스 커널이라는 지하 대피소 같이 생긴 건물에 접근 성

공하였다.

니더스 커널이 사정 거리에 들자 돌부처는 뭔가 꽉눌린 듯한 목소리로 공격

명령을 내렸다.

'드르르륵'

가라는 자욱한 연기를 뿜으며 총알을 난사하기 시작하였다. 파뱃도 니더스 커

널에 접근하여 화염 방사기로 정신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니더스 커널은 총알과 불세례를 받자 여기 저기 찣어지며 터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니더스 커

널은 찣어진 틈으로 시뻘건 피를 분수처럼 내뿜기 시작하였다. 순간 뭔가 공

중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 Zerg의 오버로드가 공중에 떠서 마치 우리를

빤히 쳐다 보듯 미동도 안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버로드 신경 쓰지마. 커널만 공격한다."

순간 니더스 커널에서 이상한 괴성 소리가 났다. 너무 놀란 우리는 바짝 바짝

조바심이 났다. 총알이 좀더 빨리 나가지 않는게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순간

니더스 커널 입구에서 뭔가가 튀어 나왔다. 믿기지가 않았다. 신장이 대략 3

미터 정도되었고 생김새는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1) 우리는 순간 당황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황병장은 침착성을 잃지 않고 대원들에게 지시했다. "저 놈은 신경쓰지마, 빨리 커널을 부셔야해. 시간이 늦으면 저런 놈이 백마 리도 넘게 튀어 나온다."

계속 커널 안에서 이상한 괴성 소리가 났다. 상황은 급박했다. 그러나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커널 앞에 꼼짝 않고 서서 가라를 계속 쏴대는 것이

었다. 아.... 커널 안 여기저기에서 점 점 괴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가 가까이 다가 오고 있었다. 급박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마에 핏줄이

곤두선 채로 계속 가라를 갈겼다. 결국 커널이 펑하고 터져 버렸다. 우리는

커널이 터지고 파편이 튀자 반사적으로 뒹굴었다. 온 몸이 커널이 내뿜은 피

를뒤집어 써서 피투성이가 되었다.

 

운이 좋았다. 그러나 모든게 끝난 건 아니었다. 우리 앞에 그 3미터가 넘는 괴물이 돌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굴은 해골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두터운 골격뼈가 목을 두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뱀같이 생겼는데 다리는 없고 꼬리뼈로 몸을 꼿꼿히 지탱하고 서있었다. 우리

는 일제히 가라를 겨누고 사격을 개시하였다. 악마와도 같은 놈이었다. 수백

발의 총알을 맞고도 불사신처럼 돌격해 왔다. 갈고리 같은 형태의 두팔을 휘

두르며 꼬리뼈 만으로 땅을 기어서 오는데도 돌진 속도가 장난이 아니게 빨

랐다. 순간 파뱃들이 이 놈에게 돌격을 하였다. 화염방사기에서 5미터가 넘게

불꽃이 치솟았다. 이 불길을 놈에게 들이대자 이 놈은 날카로운 금속성의 비

명을 지르며 뒤로 후퇴했다.

잠시 후 놈은 갑자기 숨을 들이 마셨다. 목근처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거무틔틔한 살가죽에 핏줄이 곤두서는 게 보였다. 너무나도 징그러웠다. 순간

등쪽 갑골이 열리더니 뭔가를 내뿜었다.

"으악~"

우리는 그놈이 내뿜은 점액질을 그대로 뒤집어 썼다. 그 초록색의 가래와도

같은 점액질 속에는 뭔가 미세한돌기물이 점점히 섞여 있었다. 그걸 뒤집어

쓰자 전투복이 부식되면서 김이 나기 시작했다. 순간 전투복 아머 게이지가

갑자기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저 초록색 점액을 또 한번 뒤집어 썼다가는

모든게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놈은 우리 쪽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파

뱃은 우리를 사수하기 위해 앞을 막고 섰다. 순간 그 놈은 재차 목을 부풀렸다. 저 놈의 등판이 열리면 또 다시 초록색 독액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순간

훈련소에서 교관이 한 말이 뇌리를 스쳐지나 갔다.

"모든 건 10초 안에 승부가 난다. 결국 많이 쏜 놈은 살고 적게 쏜 놈이 죽는 다."

그 놈이 한 놈뿐이었다는 건 우리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악마와도 같이 발

광하던 그 놈은 결국 우리의 끈질긴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철퍼덕 쓰러졌다.

이 놈도 죽으면서 인간처럼 붉은 피로 사방을 적셨다.

우리는 돌부처의 지시 덕분에 살아난 것이었다. 저런 놈 수십 수백 마리가 황

병장 말대로 저 악마의 땅굴 속에서 기어 나왔으면 우리가 저 놈같이 피를

토하며 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감격한 눈빛으로 황병장을 쳐다 보았다.

쓰러진 적을 쳐다보는 돌부처 황병장의 눈길에는 말 못할 증오와 회한이 서

려있었다. 돌부처는 무표정하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제군들, 작전 성공이다. 후퇴한다."

순간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가 스멀 스멀 들렸다. 뭔가 쥐새끼들이 내는 것 같

은 소리, 땅을 헤치는 소리, 무언가를 갉는 소리, 우리는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며 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흐흐흐, 잠복 해 있던 놈덜이 요동치기 시작했군..."

주위는 이미 어두어져서 사방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뭔가가 꿈틀 꿈틀

다가오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수는 몇인지 헤아릴 수없었으나 상당히 많은

게 분명했다.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서로 등을 마주대며 보

이지 않는 적을 응시했다.

"제군들, 여기서 시간 끌다간 개피 본다. 포위망을 돌파해야 한다. 어이 너희

파뱃 둘, 10:00 방향으로 진격하고 마린은 그 뒤를 엄호하며 돌진한다."

우리는 일사분란하게 행동했다. 적의 숫자도 파악되지 않은 포위망을 뚫는다

는 건 무모한 짓이었으나 돌부처의 직감을 믿기로 한 것이었다.

우리는 '야이 개색히덜아'하고 소리치며 돌격을 감행했다. 큰 소리를 외치니

우리를 옮아맸던 공포심이 약간은 덜어지는 것 같았다.

'찌직'

기분나쁜 쥐색히 소리가 귀를 찔렀다. 순간 세 놈이 우리쪽을 덮쳤다. 파뱃

녀석들이 천지 사방으로 화염 방사기를 휘둘렀다. 이윽고 세 놈이 우리 앞에

서 뻗어 버렸다. 그 놈덜은 저번에도 본 적이 있다. 야간 정찰 시 나를 보고

줄행랑을 치던 땅꼬마였다. 개개는 전투력이 떨어지는 듯 보였으나 이 놈덜은

지네 떼를 믿는 것 같았다. 사방에서 이 색히덜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쥐떼나 굶주린 승냥이 떼 같았다. 너무 수가 많자 우리는 위축되기 시작했다.

"사정없이갈기면서 돌진해 이 자석들아! 물러서지 마. 물러서면 죽는다."

이 놈덜은 아까 그 괴물과는 달리 분비액을 뿜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발톱이

매서워 보였다. 총알과 불기둥에 무수히 쓰러지면서도 지네 시체를 딛고 끊임

없이 몰려왔다. 결국 포위망을 가까스로 뚫었다. 그러나 이 색히덜은 개떼같

이 우리에게 덤벼 왔다. 인해 전술에 학을 뗀 우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순간 황병장은 50미터 전방의 바위를 가르켰다. 우리는 앞도 뒤도 보지 않고

그 곳으로 달려 나갔다. 바위를 엄폐물로 삼고 우리는 그 틈에 바짝 숨은 채

로 한 숨 돌렸다. 한 떼의 부대가 우리쪽 엄폐물로 급습했다. 연신 가라를 갈

겼다. 놈덜이 비명을 지르며 땅에 꼬꾸라졌다. 시뻘겋게 달구어진 가라의 총

구에서는 몇 발의 총알이 쏟아져 나왔는지도 몰랐다. 주변은 어두었다. 우리

가 믿을 건 오로지 감각 뿐이었다. 한가지 다행인 건 엄폐 장소가 적보다 고

지대인데다가 쳐들어 올 수 있는 길목은 오르막 길 하나라서 시야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적은 우리의 엄폐물이 의외로 단단하다는

걸 알았는지 공격이 주춤했다. 대치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 와중에 돌부처는

시계를 쳐다 보고 있었다. 8시 40분. 앞으로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는 20분

가량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지원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이곳에서 버티기로

결정하였다. 20분이라는 시간이 십년 처럼 길게 느껴졌다.

 

"여기는 본부, 앞으로 5분 뒤면 목표 지점에 보충 병력이 도착한다. 귀 부대

원은 적이 보충 병력과 대치 중인 틈을 타서 후퇴를 감행하기 바란다. 예정대

로 접선 위치에는 드롭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드롭쉽 접선 위치까지의 거리를 계산 하였다. 대략 2킬로미

터 정도였다.

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하늘에서 쉬잉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WIBE를 통해 아군 식별 탐지기를 돌려 봤다. 아 우리는 살았구나.... 분명 아

군 공군 편대였다. 말로만 듣던 레이쓰 2대가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

이었다. 레이쓰 2대는 저공 비행을 도모하더니 적 Zerg기지에 대한 공습을 감

행했다. 이제 육군 부대가 투입되어서 적의 포위망이 약해지면 그 때 돌파하

는 건 식은 죽먹기일 것이다. 대원들 얼굴 표정이 풀리며 웃음이 감돌기 시작

했다. 그러나 돌부처는 여전히 심각했다.

"야~ 이 씨불X아, 중대장 바꿔"

"야이 색히야, 기껏 달래 놓은 애 또 삐지면 어떻할려구 그래. 야 너 정말 운

좋다. 얘가 성질이 온순해서 너 살았지 안 그랬으면 넌 임마 캡슐행이야"

"중대장님, 캡슐이고 나발이고 육군 추가 병력은 언제 투입합니까?"

"야이 색히야, 물에 빠진 놈 건져 냈더니 짐보따리 찾는다구, 레이쓰 2대 투

입했으면 됐지 뭘 더 바래?"

"레이쓰 2대로는 적 기지를 아작낼 수는 있을지 몰라도 포위망을 풀기엔 역

부족입니다."

"얌마, 그나마 게네들은 에어쇼 끝나고 곧바로 공중 급유해서 보낸 놈덜이야.

지금 딴 놈덜은 특별 시찰단 높으신 나으리께서 사기 진작을 위해 맥주 파티

를 벌리는 바람에 빼 올 수도 없고, 야이 자석아 울 사단장이 높으신 나으리

들 비위 건드리는 거 얼마나 싫어 하시는데... 기껏 벌여 놓은 맥주 파티 흥을

니네들이 작살낼 수 있어?? 알아서 잘 도망쳐 이 색히덜아, 내 너네들 위해

얼마나 힘들게 드롭쉽 한 대를 보내는데... 넌 내 사정 빤히 알면서 왜 사사건

건 시비냐?"

사태는 절망적이었다. 망연자실해진 우리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 기지, 드롭쉽 조종사 연결해. 음... 여기는 시그마 2소대 정찰조다. 현재

우리는 접선 지점까지 갈 수 없는 상황이다. 궤도 수정을 바란다. 반복한다.

궤도 수정을 바란다."

아... 돌부처는 지금 말도 안되는 요구 사항을 하고 있었다. 울 엄마가 전직

드롭쉽 조종사였기 때문에 잘 알지만 임무 수행 중 드롭쉽 궤도 수정은 명백

한 불법 행위였다. 시집갈 때 다된 어여쁜 가시네가 뭐 미쳤다구 우리같은 땅

개 땜시 캡슐행을 자원하겠는가? 가슴 한 구석이 터질 것만 같았다.

"Terran 군칙 제 5조 '사전 승인 없는 비행 궤도의 무단 이탈 및 수정은 금지

한다'라는조항에 의해 귀관의 요청은 받아들일 수 없다. 반복한다. 귀관의 요

청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귀관의 입장은 이해가 가나 지금 나를 포함한 우리 소대원 6명의 생명이 위

급하다. 상황은 매우 급박하다. 반복한다. 궤도 수정을 요구한다."

돌부처는 죽은 자식 X알 만지는 심정으로 수정된 접선 희망 위치를 드롭쉽에

전송했다. 그러나 이후 드롭쉽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이제는 끝장인

것이다. Tarsonic에서 날 기다리고 계신 부모님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순

간 이렇게 허망하게 스러져 간다고 생각하니 울음이 치솟았다. 하지만 주변

소대원한테 보이기 민망해서 계속 울음을 꿀꺽 꿀꺽 삼킬 도리 밖에 없었다.

 

Zerg 땅꼬마들은 잠잠했다. 마치 우리가 엄폐물에서 기어 나오기를 기다리는

듯한 눈치였다. 지네 기지가 뽀사지던 말던 상관도 안 하는 것 같았다. 그저

노리는 건 우리 6명의 목숨 밖에 없는 듯 했다.

잠자코 있던 돌부처는 무겁게 입을 뗐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불리하다. 아군 레이쓰 2대가 적을 공습하고 있으나

난 저 멍청이들이 Zerg의 기지를 부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제군들 우리에

게 남아 있는 방법은 이곳에서 빨리 철수하여 드롭쉽과 접선하는 길뿐이다.

각오는 되었으리라고 본다. 만일 우리 중 살아 남는 놈덜이 있으면, 그리고

혹시나 나도 살아 남는다면 제군들과 근사한 맥주 파티를 벌리고 싶다."

아 죽을 때가 다 되었나보다. 돌부처는 평소에는 상상도 못할 이상한 소리만

지껄이고 있다.

단순, 무식, 지랄, 내게 떠오르는 말은 오직 이 3단어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

른 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맘이 편해지기 까지 했

다. 멸치, 꼴통, 그리고 파뱃 2녀석도 이러한 심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모두의

눈빛이 돌부처 황병장의 눈빛처럼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파뱃 둘이 뒤에서 쫓아 오는 Zerg 개떼를 막고 나머지 마린 4은 앞장서서 후

퇴하기로 결정 내렸다. 총알 받이가 될지도 모를 파뱃 녀석들이 은근히 불쌍

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전력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파뱃도

그 사실을 알기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치열한 쫓고 쫓기는 후퇴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엄폐물에서 기어 나오자 놈덜

은 일제히 덤비기 시작하였다. 수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20미터 전력

질주 후 서서 쏴를 반복하면서 후퇴를 거듭했다. 우리는 필사적이었으나 사정

은 별로 좋지 못했다.

 

아직도 목표 지점까지는 1.5킬로 정도 남았다. 너무나도 숨이 가빠왔고 무엇

보다도 두 발바닥이 뻐근했다. 모두가 지친 표정이었다. 그러나 적은 악다구

리처럼 우리의 꽁무니를 쫓아 왔다. 우리는 뛰고 또 뛰었다. 그 와중에 파뱃

한 녀석이 발을 헛디뎌 데굴데굴 굴렀다. 우리는 엄호 사격을 하며 파뱃을 보

호했다. 아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다리 골절이 예상외로 심했다. 그렇다고 파

뱃을 버리고 갈 수도 없었다. 우리는파뱃을 둘러 엎고 100미터 가량을 전진

했다. 그러나 전진 속도는 현저하게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황병장님, 이대로는 우리 모두 죽습니다."

"저를 버리고 가십시요. 뛸 수는 없으나 서서 전투는 가능합니다. 최대한 좁

은 길목에서 놈덜을 막아서 시간적 여유를 벌 수 있습니다."

"웃기는 소리 하지마! 그 몸을 해가지고 벌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수초도 안

돼. 죽으면 다 같이 죽는다. 어차피 살아나긴 글렀어. 수틀릴 때는 정공법으로

돌파하는게 최선이다."

갑자기 나는 황병장한테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제안을 했다.

"황병장님, 어차피 목표 지점까지 가기는 애시당초 불가능이었습니다. 차라리

수정된 목표 지점으로 가면 어떨까요?"

"미친 소리, 드롭쉽 경로 이탈은 당장 캡슐행이다. 그곳으로 드롭쉽이 올리

만무해! 여기까지라도 걸어왔는데 귀관은 그걸 도로 아미타불로 만들겠다는

말인가??"

"어차피 원래 접선 위치까지 전진하는 자체가 성공 확률이 지극히 낮은 도박

이었습니다. 이젠 그나마 그 도박도 수틀린 거 아닙니까? 이럴 땐 차라리 하

늘에서 동아줄이라도 내려 오길 기다리는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멸치 일병이 다급히 말을 꺼냈다.

"황병장님, 저런 순진한 아색히 말은 들을 것 없고, 파뱃을 버리고 갑시다. 어

차피 이대로는 우리 모두 죽습니다."

"김일병님!!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김일병의 말이 맞습니다. 저를 버리고 가십시오. 최대한 시간적 여유를 벌겠

습니다."

황병장은 입을 굳게 다문 채로 장고를 두기 시작하였다. Zerg 개떼가 시야에

들어 오기 시작했다. 결정을 주저하던 돌부처는 이윽고 무겁게 말문을 열었 다.

"수정 접선 위치로 간다. 너희 둘은 부상당한 파뱃을 둘러 엎는다."

"저 돌부처 색히가 우리를 죽이려 하고 있어.... 저 색히가... 미쳤어... 싫어... 난 나 혼자라도 원래 접선 위치로 가겠어... 모두가 정신이 돌았어... 미쳤어."

"후후후 멸치, 그렇게 혼자 가길 원하면 너 혼자 가도 좋다."

나를 갈구는 멸치의 시선에 뒤통수가 따가 왔다. 무심코 던진 말에 응한 돌부

처의 처신에는 나도 조금 의아했다. 그러나 돌부처의 결정에 대한 반대는 멸

치 고참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모두가 다 언제부터인가 돌부처의 판단을 철석

같이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한 떼의 개떼가 덤벼들었다. 그 중 한 놈은 나의 전투복을 찣고 내 목을

물려고 했다. 가라로 그 놈을 밀치며 그 놈의 배에다 총알을 잔뜩 안겼다. 순

간 그 놈은 땅바닥에 고꾸라 졌다.

 

드디어 수정된 접선 위치에 도착하였다. 수풀을 엄폐물로 삼았으나 지형이 지

극히 불리했다. 사방이 뻥 뚫려서 동시 포위 공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Zerg

개떼의 무리는 조금씩 늘어 갔다. 우리는 애꿎은 하늘만 보았다. 별이 유난히

도 총총했고 달도 떠있었지만 드롭쉽은 그림자도 안 보였다. 돌부처는 드롭쉽

과 통신을 시도했으나 계속 불통이었다.

"흐흐흐, X도 모르는 하룻강아지 말에 넘어간 미친 색히 때문에 우리 6명은

개죽음을 당하게 생겼어. 이 씨벌, 내가 이럴러구 군에 입대했는 줄 알아! 돌

부처! 비엉신 같은 놈덜 옆에 있으면 길동무된다고 지껄인 색히는 바로 너야.

너... 근데 지금은 내가 그 꼬라지가 되었어. 너 같은 미친 놈 때문에"

"이봐 멸치, 말을 아껴라! 너 기지로 생환된 후에 나 만나면 어떻게 살려구

입을 함부로 놀리냐?"

"야이 색히야, 우리는 죽었어, 너 때문이야 이 씨빌 야 이 Zerg 개색히덜아

다 덤벼, 이 색히덜아"

돌부처의 얼굴에도 체념의 빛이 떠올랐다. 멸치가 무슨 악설을 퍼부어도 개의

치 않는 듯 했다. 마치 멸치의 유언이라도 듣는양 얼굴은 마냥 평온했다. 두

려웠다. Zerg 개떼들은 포위망을 좁혀 오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멸치는 실성

한 사람처럼 가라를 들고 허공에 쏴대기 시작했다. 우리는 멸치를 황급히 말

렸다. 멸치 고참은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순간 돌부처는 멸치의 목덜미를

가라로 후들겨 쳤다. 멸치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기절하고 말았다.

 

 

"우리가 인제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이 곳에서 버티며 구조가 오기를 기다

리는 거다. 훗훗훗 제군들 너희들을 사랑한다."

사랑, 그래 Tarsonic에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두 분이 날 기다리고 있

어. 포위망은 인제 거의 좁혀졌다.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개떼 일진이 돌격을 해왔다. 대략 덤벼오는 놈덜 중의 반 수는 오다가 가라에

맞고 쓰러졌다. 그래도 놈덜은 수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 진지로 뛰어든 놈덜

과의 피말리는 사투가 이어졌다. 내 전투복 아머 게이지는 이미 0에 육박하였

다. 놈덜의 발톱에 몸 여기저기가 찣기어 피가 흘렀다. 파뱃들은 우리보다 더

고통스러워했다. 온 몸이 성한데가 없고 이마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

다. 그들의 머리를 보호하던 헬맷도 놈덜의 발톱에 깨져 버린 것이다. 아! 진

지가 너무 불리했다. 적이 아까와는 달리 사방에서 밀려 왔기 때문에 이대로

는 5분도 못 버틸 것 같았다. 이대로 마지막인가.... 순간 허탈감이 감돌면서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자고 싶었다. 내 귓가에서 '우웅~'하는 소리가 들렸다.

천국에서 나를 맞이하는 천사들의 나팔 소리인가. 이때 꼴통이 비명을 질렀다.

"와~ 살았어, 살았다구. 드롭쉽이 나타났어. 드롭쉽이 우리를 위해 궤도 변경

을 했어. 어~ 이런기적이, 이런 기적이"

우리는 기뻐만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재빨리 골절상을 입은 파뱃과 기절한

멸치 일병을 업고 드롭쉽을 향해 X빠지게 달렸다. 뒤에서 개떼들이 계속 쫓

아 왔다.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으나 드롭쉽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도착한 것

이었다.

드롭쉽은 이윽고 저공 비행을 해서 공중에 정지 상태로 머물렀다. 그리고 밑

부분의 해치가 문을 열었다. 우리는 부상병을 먼저 올려보냈다. 이후 줄사다

리를 잡고 잽싸게 한 명 한 명씩 올라 탔다. 돌부처가 맨 마지막으로 승선할

찰라였다. 발밑까지 쫓아온 개떼 중 한마리가 황병장의 발목을 물고 늘어졌

다. 승선한 우리는 열라게 가라를 갈겼다. 이윽고 그놈은 꿱 소리를 내며 땅

바닥에 뻗었고 우리는 잽싸게 해치를 닫았다. 이윽고 드롭쉽은 우리를 공격해

온 개떼를 멀리 한 채 수직 상승을 하였다. 드롭쉽 창밖으로는 밤하늘이 보였

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찬란하게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었다.

 

------------------- 주 석 --------------------------------

(1) 게임 시 히드라리스크의 몸집은 마린의 2배 정도로 보인다. 또한 매뉴얼

에 따르면 7-8미터 크기의 거대 생물이라고 설정되어 있다. 필자는 히드라의

크기 설정으로 망설였으나 그냥 필자 임의로 그 중간인 3미터로 설정하였다.

7-8미터의 크기는 상대감에게 위압감을 줄 지는 모르나 현실적으로 근접전에

서는 허점을 드러내기 쉬울 거라 생각한다. 실제 주라기 공원을 보더라도 진

짜 공포감을 조성하는 놈은 몸집 큰 티라노사우르스보다는 사람보다 몸집이

조금 더 큰 벨로시랩터이다. 전투력에서 중요한 건 몸집보다 잽싼 몸놀림과

순발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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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어느 테란 병사의 삶 (12)

 

드롭쉽 엔진 소리가 귓가에 잔잔히 들려온다. 은은한 오렌지 불빛 아래 나와 대

원들은 서로 마주 보는 위치에 앉았지만 그 누구도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고

모두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하긴 좀 전의 아슬아슬했던 순간은 살아 남았다고

좋아하며 웃고 떠들기에는 너무나도 살벌했었다. 그래도 평온한 분위기였다. 골

절상을 입은 내 옆의 파뱃 녀석은 다리 아픈 것도 잊은 표정이었다. 그 녀석을

버리고 가자던 멸치 일병은 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둘 모두

정신 쌩쌩한 채로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면 분위기는 어색했을 것이다. 우리 대

원 6명이 모두 살아난 건 기적이었다. 돌부처의 실전 경험과 드롭쉽 궤도 수정

이라는 행운이 빚어낸 절묘한 작품이기도 했다. 돌부처는 구역 내 금연이라는

표지판이 빤히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담배를 꼬나 물고 있었다. 담배 연기 자욱한

사이로 가라에 가리워진 돌부처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감정

도 읽을 수 없었으나 그리 기분이 꿀꿀하지는 않나 보다.

오렌지 불빛과 긴장이 풀린 뒤에 밀려 오는 피로감, 마치 Tarsonic에서 하루 종

일 가스를 캐고 퇴근 셔틀 버스를 탔을 때의 그 기분이다. 어쩌면 아까의 그 생

지옥은 악몽이었을지도 몰랐다. 너무 피곤해서 깜박 졸다가 꾼 악몽, 난 지금

가위에 눌려 신음하다가 식은 땀에 홍건히 젖은 채 방금 눈을 뜬 건지도 모른

다. 악몽을 꾸고 잠을 설친 다음 곧바로 잠을 자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

다. 그래서 그럴까? 엄청나게 피로했으나 이상하게 눈은 더욱 말똥 말똥 해지고

머리 속은 맑아질 따름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조종석으로 통하는 문이 활짝 열리면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무거웠으나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았던 침묵이 깨지는 순간이

었다. 그 문으로 누군가가 걸어왔다. 히익~ 어머나 세상에... 여자였다. 그것도

졸라리 이쁜....

"무사히 귀환하게 된 걸 축하드려요.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이 드롭쉽 주 조종

사 이지은 중위라고 합니다."

어머나 세상에... 지 아무리 군바리 눈은 땅 밑으로 쳐졌다고 하지만 이건 암만

삐딱하게 봐도 정말 잘빠진 여성이었다. 올록볼록 엠보싱에 기차게 뻗은 다리...

 

게다가 이 여자는 남자가 뭘 좋아하는지도 꿰뚫어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허리까지 찰랑 거리는 윤기 흐르는 머리칼하며 딱 달라 붙은

미니스커트, 무릎까지 올라 오는 검정 부츠. 게다가 군대와서 '~요'라는 말을 듣

게 되다니... 그 나긋나긋한 목소리며.... 즐거운 건 눈과 귀만이 아니었다. 전

대원은 코를 벌렁거리며 이 여인네의 따스한 체온에 덮혀진 향수 냄새를 즐기느

라 정신이 없었다. 카~ 내가 이런 향수 냄새 맡아 본지가 어언 얼마 만인가? 기

껏해야 장교용 화장실 청소할 때 점쟎지 못한 냄새를 가리기 위한 싸구리 합성

향수 냄새도 감지덕지였다. 게다가 이렇게 향내 폴폴 나는 어여쁜 여신이 우리

같이 땀내나고 꼬랑내 나는 보잘것 없는 땅개들을 위하야 궤도 이탈이라는 극

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니 전대원 모두가 감격에 몸서리를 쳤다.

우리는 우리를 대표할 돌부처의 입에 모두 시선이 모아졌다. 우리가 뭔가 멋있

는 말로서 이 가련한 천사에게 감사와 위로를 드려야 할 차례였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고맙게 됐수다. 전 시그마 1중대 소속 황병장이라 합니다. 막상 궤도

수정을 하리라고는 예상도 못했는데 이렇듯 이 중위님을 만나보니까 더더욱 예

상 밖입니다그려. 이 중위님 보아하니 인물 값도 꽤 하실 것 같구 어느 집인진

몰라도 그 집 귀하신 따님이실텐데 캡슐행이라는 험한 꼴을 자청하시려고 하

다니 저로선 이해가 도통 안갑니다 그려."

으이그 달리 돌부쳐냐.... 하여간 저 인간은 지가 무슨 황진이랑 동침하는 서경

덕이라도 되는 듯 주둥이를 놀리고 있다. 저런 인간은 왕자병 중증으로 약도 없

다고 들은 바 있다. 그래 이 두꺼비 왕자야... 담배 꼬나 물고 잘하는 짓이다.

"호호호, 너무하시군요. 생명의 은인을 그렇게 대하시긴 가요? 하여간 너무 제

걱정은 말아 주세요. 저도 제 앞가림은 하는 나이니까요. 저도 빽은 꽤 쓸만하

죠. 저의 아빠가 시그마 부대 사단장이시니까요. 설마 그 정도 빽에 제가 캡슐

갈 일은 없겠죠?"

그녀는 장난꾸러기 요정과 오만한 공주, 우아한 여신을 잘 배합해 놓은 그윽한

작품이었다. 문득 멸치 고참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빡빡이 문어대가리

오퍼레이터의 목소리빨에도 질질 싸던 그 짐승이 저렇게 쌕시 발랄한 여인네를

앞에 두고도 감상은 커녕 겔겔 꿈나라를 헤매고 있다니... 쩌비

"푸후후,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에게 무슨 대접을 받겠다는 말은 절대 아니예요.

전 캐캐묵은 고위급 장성들과 함께 하는 맥주 파티는 딱 질색이거든요. 전 내내

몇 시간이고 인형같이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만 되죠. 그 작자들은 저를 오로지

며느리감이나 소실감으로만 보기 때문에 정말 고리 따분하죠. 그래서 산책도 할

겸 출동 나온 거예요. 거기에 비하면 이곳은 스릴도 있고 짜릿하쟎아요? 아 그

리고 아까 궤도 변경 요청 이후 통신이 두절된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가뜩이나 수정 비행 궤도도 WIBE 히스토리에 남는데 대화 내용까지 남겨서 아

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전 될수록이면 저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

싶지만 아빠한테 나쁜 딸로 남고 싶지는 않네요. 이해해 주세요."

"흐흐흐, 애비는 병주고 딸년은 약주고, 웃기는 집안이군...."

우리는 돌부처의 중얼거리는 말에 화들짝 놀랐으나 다행히도 우리의 여주인공

은 그 말을 듣지 못했나 부다.

"앞으로 한 시간 후면 기지에 도착합니다. 그동안 편히 쉬세요."

이윽고 그녀는 뒤돌아서 총총 조종석으로 사라졌다.

"캬~ 뒷모습도 쥐~이~긴다. 와우~ 살아남은 보람이 있네... 야 근데 니네

아버지

가 어떻게 저렇게 쌕씨발랄한 아가씨랑 장가를 갈 수 있었냐?? 정말 쌨뽁이

터졌다암마"

"니네 엄마도 젊었을 땐 한 인물 하셨다며... 어이구... 야 저런 여자라면 평생

미네랄만 파먹고 살아도 허허 웃고 살겠다. 원 니네 아버지는 정말 복에 겨워

사신 분이다."

꼴통의 호들갑이 좀 우스워 보였으나 표현만 안 했지 심정은 나도 꼴통과 마찬

가지였다. 하늘에서 홀연히 내려온 그 천사는 지옥 속에서 나의 생명을 구해 주

었으며 또 그러한 나의 생명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아스라이

저 편으로 사라졌다. 인생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두근거리는 것이다. 하다 못해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멀지 않은 곳에서 불빛이 보였다. 드디어 기지에 다다른 것이다. 잠시 후 드롭

쉽은 기지를 선회 비행하면서 안내원의 지시를 따르며 서서히 수직 착륙을 시

도하였다. 이윽고 보조원이 드롭쉽 바닥의 해치를 열고 줄사다리를 내리자 우리

는 차례 차례 드롭쉽에서 내렸다.

우리를 모두 내린 드롭쉽은 부웅 공중으로 솓구치기 시작했다. 드롭쉽의 부력은

반중력 장치에 의해 만들어 지기 때문에 항상 이착륙이 사뿐사뿐했다. 우리는

드롭쉽의 콕핏(cockpit)을 쳐다 보았다. 어스름한 불빛 속에서 그녀가 보였다.

아쉽게도 그녀의 서글 서글한 눈매는 커다란 고글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녀

는 조종간을 움켜 잡고 옴씰 옴씰 풍선껌을 씹고 있었다. 연신 풍선을 불어 대

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 없는 장난꾸러기의 모습이었다.(1) 우리는 누가 시킨 것

도 아닌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도 가볍게 손을 흔들어 우리의 환호

에 답례를 하였다. 이윽고 드롭쉽은 그녀를 볼 수 없는 높이까지 치솟았다. 4개

의 엔진이 우렁차게 불을 뿜자 곧바로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웬지 모를 아

쉬움이 밀려 왔다.

우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바락을 향해 걸어 갔다. 바락 근처에 다다르자 갑

자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갑자기 주위가 환해졌다. 너무 놀라 바라다 보

니 우리가 가는 길 옆으로 1중대 땅개들이 일렬로 서 있는게 아닌가. 난데없는

환호성에 어리 둥절하고 있는 우리에게 누군가가 뚜벅 뚜벅 걸어왔다. 그 인간

은 씹어 먹어도 시원챦을 중대장이었다.

"귀관들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하고 무사히 귀환하였음을 쌍수를 들고 열렬히

환영한다. 귀관들의 혁혁한 전과는 우리 Terran군이 전략 상 유리한 고지를 차

지하는데 크나큰 공헌을 하였으며 이로서 우리 Terran 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

르는 형국이 되었다. 귀관들은 우리 1중대, 나아가서 우리 Terran 연맹군의 귀

감이자 자랑이다. 나는 귀관들과 같은 영웅이 우리 중대의 전우라는 사실이 무

척이나 자랑스럽다."

중대장은 일장 연설을 마치자 썬글라스를 연신 손가락으로 치켜 세우며 우리 6

명을 일일히 포옹하고 돌아 다녔다.

"제군들, 제군들은 지금 용감 무쌍한 Terran군의 전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제군들도 이들처럼 더욱 분발하여 혁혁한 전과를 세우기

바란다. 이번 작전은 대성공이었으며 여기에 앞장서서 크나큰 전공을 세운 우리

영웅들에게는 상부의 지시에 의해 거기에 합당하는 포상이 내려질 계획이다. 포

상의 기회는 제군들에게도 언제나 주어진다. 우리 Terran 연맹군에게 무엇보다

도 중요한 건 Terran 연맹의 안녕을 염원하는 제군들의 애국심과 투철한 군인

정신이다. 여기 6명은 신체적 능력 상으로는 여러분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되었기에 사선을 뚫고 우리 Terran 연맹의 공동의

적 Zerg를 궤멸시키는 전과를 올리는게 가능했다. 이에 제군들도 이를 본받아

더욱 더 분발하기 바란다. 알겠나"

"예~ 써얼"

"늦은 시간 수고가 많았다. 해산"

"야 꼴통, 오늘따라 중대장 저 자식이 근사한 말만 늘어 놓는데..."

"근사하긴 한데... 우리 죽일려고 레이쓰 2대만 달랑 보낸 싸가지 없는 놈의 아

가리엔 도통 어울리지가 않는다. 저 색히, 완전 병주고 약주고네"

병주고 약준다. 아까 돌부처가 중얼거렸던 그 말. 중대장의 현란한 미사 여구가

영 켕겼다.

내무반에 들어 오자 우리 소대원 중 이번 정찰에 참가하지 않은 다른 사람덜은

모조리 땅을 치고 통곡을 하는 분위기였다. 우리가 죽다 살아온 건 생각치도 않

고 그저 무슨 주택 복권이라도 당첨된거 모냥 마냥 부러워 하기만 했다. 멸치

고참은 뻐기고 싶은 맘은 굴뚝 같아 보였으나 차마 돌부처한테 깽판 친 전과가

캥겨서인지 잠자코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왠지 머리 속이 무거워 소대원들과

별로 말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처세술이라곤 피곤하다는

핑계로 퍼질러 누워 눈감고 자는 척하는 것이었다. 혁혁한 전공, 그건 나 같이

미천한 출신 성분을 가진 군바리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상향이다. 짧고 굵은 삶

이란 결국 목숨 걸고 따낸 혁혁한 전공과 포상이리라. 하지만 웬지 불안했다.

맥주 파티와 달랑 레이쓰 2대, 귀환하자 마자 돌변한 중대장의 호들갑.... 무슨

꿍꿍이일까? 그러나 이내 생각을 접어두기로 했다. 여태까지도 군대는 내가 모

르는 일 투성이었으나 그럭저럭 버텨오지 않았던가.

 

"빰빠아빠바빰빠빠바~

이번 전투에서 6명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용감한 Terran 전사들은 Zerg의 확장

기지를 섬멸시키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빰빠아빠바빰빠빠바~"

"이들은 시그마 부대, 나아가서 우리 Terran 연맹의 자랑스러운 표상입니다.

빰빠아빠바빰빠빠바~"

"한편 행성 시찰에 여념이 없으신 에드몬드 듀크 장군은 바쁘신 와중에도 육성

전문을 노라드 II호에서 직접 발신하여 시그마 부대원의 노고를 치하하였습니다.

빰빠아빠바빰빠빠바~"

"본인은 이번 시그마 부대원들의 혁혁한 전과로 저그 1개 사단에 해당하는 부

대를 섬멸하게 된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Terran 연맹이 총화

단결하여 이번 시그마 부대원들처럼 전력으로 조국 수호 방위에 힘쓴다면 제

아무리 Zerg가 난공불락의 적이랄지라도 물리칠 수 있으며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Terran 연맹을 대표하여 귀관의 노고

를 치하 드리는 바입니다."

"빰빠아빠바빰빠빠바~"

"이번 전투의 참가 대원이었던 양XX 이병의 가족 표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아이구 장하다. 내 색히... 그려 너 밖에 없다.... 어이구 효도했다. 그려 몸성히

잘있고.. 어이구 기자 양반 아직 시간 많이 남았죠?? 음... 으흠... 그려 자랑스런

내 색히... 만세 테란 연맹 만만세다.

 

.. 흠흠... 여보 아 이렇게기쁜데 당신도 한 마디 해야지...."

"내 아들아... 나도 기쁘다... 그저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몸성히 몸성히 돌아와야 한다. 아이 왜 그래요... 왜 자꾸 마이클 뺏어 이 양반아 나도 말좀 합시다.

그래 아들아.... 우리 걱정 하지말아.... 그저 우린 니가 무사히 돌아 오기만 바라니까."

"아이 여편네야... 마이크 내놔... 원 주책은.... 흠흠 그래 장하다... 장해"

"이씨 왜 자꾸 마이크 가지고 그래... 그래 아들아..."

"이 여편네가... 저 애를 지 혼자 낳나??"

"아이 왜 이래요...."

"이번에 전투원들은 Zerg의 미확인 전투 생물체를 잡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디

파일러'로 명명되어 왔던 이 생물체는 그동안 형태만 확인되었을 뿐 구체적인

행태나 공격 방식은 미확인 상태였습니다. 현재 Terran 과학 기술진에 의해 수

행 중인 Zerg의 생체 연구에 있어서 이번에 포획한 디파일러는 귀중한 연구 자

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옙~ 김상훈 일병입니다. 불침번 임무를 수행 중 야영 진지로부터 9:00 방향으

로 500미터 떨어진 곳에서 Zerg의 디파일러를 발~겨언... 생포 하려고

해~었으나

상황이 불리~하~어여 가우스 라이플로 사살해~섰습니다아...."

"이들 영웅들에 의해 Zerg의 기지가 발각되자 신속하게 12대로 이루어진 레이

쓰 편대가 출동, 공습을 가했으며 이어서 탱크 4대와 마린 2부대를 드롭쉽으로

신속하게 투하, 적은 발견된지 1시간만에 섬멸되었습니다. 이번 Terran 군이 보

여준 기동성은 어떠한 Zerg의 도발에도 우리 Terran 연맹의 안녕을 지킬 수 있

다는 확고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 Terran 뉴스였습니다.

빰빠~빠아빠바바바빠아~"

 

나는 저 영화를 벌써 12번째 본다. 그날 이후로 아침 조회 때만 되면 죽어라

Terran 뉴스만 틀어 댔다. Terran 뉴스는 Terran 연맹군 전체에 방영되기 때문

에 여기에 뻑이간 사단장은 틈만 나면 요걸 돌리기에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저 영화를 찍다가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차라리 Zerg 개떼와 싸웠을 때

가 더 편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 인터뷰가 꾸리하다고 기자들이 하두 면박

을 주어서 나중에는 기자들이 대본을 작성하고 이걸 딸딸딸 외어야만 했다. 그

나마 암기력이 좋은 꼴통은 그럭저럭 소화를 했는데 나를 포함해 가방끈 짧은

딴 사람덜은 죽을 맛이었다. '디파일러'인지 뭔지 하는 그 래그노서 닮은 놈은

나랑 꼴통이 잡은 거였지만 그 공로는 멸치 고참이 채갔다. 밤마다 갈구는데 등

쌀이 보통시러운게 아니어서 그냥 줘버렸다. 처음에는 돌부처 눈치만 살피며 별

말 없었는데 돌부처가 별반 신경 안 쓰니까 우리로서는 별도리가 없었다. 군바

리는 고참이 똥이 된장이라고 해도 찍어 먹어 봐야 하니까... 그래도 멸치 고참

은 응분의 댓가를 치루어야 했다. 집요한 기자덜은 너덜 너덜 썩어서 살가죽이

드러난 그 놈을 기필코 빌려 와서 그 옆에 멸치 고참을 똥폼 잡고 서있게 했다.

근사하게 한 컷 찍는다나 뭐래나... 하여간 땡볕이 내리쬐는 연병장에서 그 썩은 비린내를 맡으며 3시간 가량 서있어야 하는 고역을 치루어야 했다. 그나마 죽을

맛인데도 Terran 군 위상을 위하야 표정 관리도 신경써야 했기에 고통 두 배였

다. 하긴 그런 노력도 없이 매스컴을 탈 수야 없지.

그래도 나는 그 영화를 통해서 나마 건강하신 우리 부모님의 모습을 뵐 수 있

었고 그 분들의 육성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 사단장

님에게 얼마나 감사드렸는지 모른다. 특히 반드시 살아 돌아오라는 울 엄마의

말씀은 내 뇌리 속에서두고 두고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건 나의 의

무이기도 했다. 오늘도 나는 그 영화가 끝날 무렵에 삼류 최루 영화를 본 것처

럼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

 

----------------------- 주 석----------------------------------------

(1) 실제 겜시 드롭쉽 조종사 미니창을 보면 드롭쉽 조종사가 뭔가 질겅질겅

씹는 걸 볼 수 있는데 풍선껌이다. 가끔씩 풍선을 불기도 한다.

이때 드롭쉽 조종사 모습은 영 아줌마틱하고 영 꽝이라서 독자들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여간... 그렇게 되었으니 이해해 주시길...

그래도 테란 군에서 유일한 여자인데...(물론 오퍼레이터도 있지만 목소리만

예뻣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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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테란 병사의 삶 (13)

 

Terran 사회의 군바리는 겉보기엔 다 눈 코 입 달리고 먹고 싸고 다 고놈이

고놈이지만 초기 역사부터 귀골과 천골의 차이는 확연히 구분되었다. 무려 삼백

만 부나 팔렸던 에드몬드 듀크 장군의 베스트 셀러 '우주는 넓고 전쟁터는 쎄고

ㅆ다.'라는 책의 서문을 보면 '이러한 현상은 마치 태초에 우주가 생길 때 땅과

하늘이 갈라진 것과 마찬가지 이치로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라고 씌여 있다.

(물론 나는 읽은 적이 없고 요 또한 별명과는 달리 똘똘한 꼴통이 인용한 거다.

하여간 나는 가방끈은 짧아도 귓동냥의 천잰거 같애~잉)

Terran 연맹의 먼 조상뻘 되는 인간덜은 오아시스와 넓은 풀밭을 찾아 사막

곳곳을 싸돌아 다니는 유목민과 마찬가지 신세였다. 그들은 우리의 고향별 지구

에서 퇴출당한 범죄자들과 정치범, 이들을 호송하기 위한 군인들, 그리고 새로

운 행성을 탐사하고 내친 김에 식민지로 삼아 보려는 모험적인 기업가와 과학

기술자덜이었다. 그 많은 인간덜을 일일히 먹여 살리며 1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를 우주 방랑 생활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죄수들과 불

순한 정치범들은 모조리 캡슐에 들어가 냉동 인간이 되었고 요덜이 오날날

Terran 군바리 천골의 조상격이 되었다. 물론 그러고도 먹고 싸고 숨쉬기엔 물

자가 터무니 없이 모자랐다. 따라서 잔머리를 열심히 돌려 궁여지책을 마련했는

데 내용인즉 귀골들을 대략 10개조로 나누어서 1년마다 주기로 당번을 세웠다.

따라서 1개조가 당번을 서면 그동안 나머지 9개조는 캡슐에 들어가 꽁꽁 동태

신세가 되어야 했다. 따라서 속된 말로 주기적으로 얼렸다 녹였다해야 하는 이

덜을 황태라고 불렀다.(1)

옛날 지구속담에 뭘 알아야 줄반장이라도 선다는 말이 있다. 황태덜이 생존을

위하야 신천지에 대한 정보를 부지런히 캐는 동안, 불쌍한 동태들은 내내 쿨쿨

잠만 잤으니 결국 정착 생활이 시작되고 Terran 초기 사회가 성립된 다음에도

동태덜은 황태덜 말이라면 꺼뻑 죽어지내야만 했다.

Terran 초기 사회는 말하기도 질력이 날 정도로 하여간 빡 터지는 곳이었다고

한다. 하도 하도 싸우다가 나중에는 싸울 인간이 없어서 복제 인간까지 다량으

로 찍어 내 싸웠다는 야그는 이제 별로 으시으시하지도 않다. 덕분에 지상에는

시체 썩은 내가 진동을 했고, 우주 상공에는 케찹 바른 팔다리가 둥둥 떠다녔다

고 한다. 요즘에도 납량 특집극을 보면 멀쩡이 날던 그 시대의 베틀 크루저가

둥둥 떠다니는 시체 팔다리에 엔진이 막혀 우주 미아가 되었다는 전설 아닌 전

설이 방영되곤 한다. 물론 그렇게 죽어 나간 인간덜의 90% 이상은 동태덜이였다.

요즘에는 족보 봐가며 군바리를 동태, 황태 따지는 일은 줄어 들었다. 하도 빡

터지게 싸우다 보니 그만큼 신분 이동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Terran 군의 전통은 먼 옛날 지구에서 존재했다는 시민군의 개념과는 달랐다.

요체는 위에서 지휘하는 엘리트 황태 용가리 통뼈와 밑에서 기라면 기어야하는

동태덜이 만났을 때 온건한 Terran 연맹군으로서의 양대 기둥이 성립한다였다.

 

요러한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이 바로 Terran 연맹군의 육군 아카데미이다.

이 곳은 Terran 연맹군 중 황태덜을 배출하기 위해 세운 Terran 군의 심장부였

다. 정규 코스는 4년으로 이곳을 졸업하면 직빵 장교로 승진하여 부대에 배치되

었다. 그러나 아무리 윗대가리가 똑똑해도 아래 애들이 덜 떨어지면 조직은 맛

이 가기 마련이다. 따라서 비정규 코스도 병행해서 만들었는데 요건 2개월 짜리

였다. 2개월 짜리 코스는 동태 중 비교적 가시가 연하고 살이 실한 놈덜만 엄선

해서 보냈는데 동태 출신이 군바리로 클려면 요 2개월 짜리 코스를 얼마나 빨

리 이수하느냐에 크게 좌지우지 했다.

2개월 짜리 코스에 들어 가는 관문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확률 높지만 젤 실속 없는 건 실전 경험을 쌓은 상병 이상일 경우 자격 심사를

통과하면 입학하는 케이스였다. 사실 대부분의 동태 땅개들이 밟게 되는 절차이

리라. 또 하나는 빽 써서 돈으로 입학하는 건데 요건 원칙이 그렇다는 야그였

다. 그 정도 돈 마련할 정도면 동태가 아닌 황태라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가장

단기 절차는 기깔난 무공을 세워서 특채 입학하는 것이었다. 사실 가장 매력적

인 것은 마지막 방법이지만 요건 개인의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요행도 바래야 하기 때문에 요런 방법으로 입학하면 군바리덜 사이에서는 신의

아들이라고 불리웠다.

그런데 이번에 신께서 우리 4명을 양아들로 입양시키셨다. 요것이 우리가 이번

전투로 얻어낸 맛깔난 포상 내역이었다. 더 환상적인 것은 교육 동안 아카데미

구역 내에 지은 동태용 궤짝에서 기숙하는게 아니라 도심 내부의 장교용 아파

트를 제공하고 아카데미에 출퇴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는 점이다. 요

건 동태로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극히 드문 아주 희귀한 현상이라고 울 싸가지

없으신 중대장께서 누누이 강조하셨다. 하긴 그 말 듣는 나도 좀 납득이 안 갈

정도로 희안한 현상이긴 하다.

덕분에 나와 꼴통은 잭팟이 터졌고 멸치 고참도 뭐 그런데로 짭짤했다. 제일

안 된 건 돌부처였는데 그래도 본전 치기 이상은 되리라. 황태덜이 제일 싫어하

는 동태 타입은 생선 가시가 억ㅆ서 먹다 보면 입천장이 찔리는 돌부처같은 인

간덜이였다. 고로 그 인간이 그나마 병장 달고 이 곳에 입학하게 된 것도 행운

이라면 행운이었다. 우리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파뱃 두 아해덜은 이미 2개월

코스를 끝마쳤기 때문에 대신 고과 점수를 2천 점 올려 주고 보너스 1500%를

안겨 주었다. 참고로 고과 점수 2천점은 죽어라 6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화장

실 청소와 같은 궂은 일을 무보수로 자청해야 오를까 말까한 점수였다.

 

웨버의 법칙이라는 유명한 생물학 법칙이 있단다. 웨버가 뭐 한 작자인지는 내

관심 밖이었으나 꼴통은 내 눈높이에 맞춰서 요 법칙을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멸치가 말야 널 갈굴려고 2대 때렸다 이거야... 그 다음 번에도 같은 갈굼의 효

과를 얻기 위해서는 멸치는 널 4대 패야할 거다."

결국 군바리도 먹고 싸는 생물체에 불과했다. 따라서 요 법칙에서 예외일 수가

없었다. 아카데미 군기는 훈련소 시절은 저리 가라로 졸라 ㅆ다고 들었다. 대가

리가 큰 색히덜을 고분 고분하게 만들려면 더 큰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나.

빨간 선글라스에 베레모를 깊게 눌러쓴 우리의 후까시맨 아카데미 교관은 동태

덜을 사열시켜 놓고 아주 점잖게 운을 뗐다.

"제군덜, 아카데미에 입소하게 된 걸 진심으로 환영한다. 근데 니들 말야. 니들

은 인제 훈련소 시절 하바리덜이 아니라 이거지... 따라서 내가 니덜 졸라 갈구

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리라 믿는다. 근데 행여,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그런 놈

덜이 내 눈에 혹시라도 뜨이면 그 색힌 의가사 제대다. 알겠나??"

"예 써~얼"

"좋아. 그럼 100미터 전방의 느티나무 보이나. 저기까지 왕복 전력 질주로 다녀

온다. 자 선착순이다. 먼저 다녀온 20명에게는 하늘엔 축복, 땅엔 영광이 기다리

고 있을 것이다. 일렬 종대로 헤쳐 모여"

아 이윽고 불쌍한 양떼들은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벌려야만 했다.

"제군들, 내 바빠서 전투복 및 병기 지참을 사전 통보하지 못하게된 걸 매우 유

감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니덜의 기초 자질을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 야

선착순 20명 앞으로 나온다. 뒤에 쭈그러진 아해덜은 앞에 나온 이 놈덜 중 한

놈을 잽싸게 골라 잡고 함께 원위치하여 등에 엎는다. 실시!"

지시 떨어지자 마자 나를 포함한 구원 받지 못한 종자덜은 쫌이라도 체중 덜

나가는 놈 잡을려고 난리 부르스를 췄다. 북새통에 내가 잡은 놈은 불행히도 더

럽게 무거워 보이는 돼지 같은 색히였다. 흑흑흑

"자 업은 채로 연병장을 구보한다. 업힌 놈은 구령을 붙인다. 구령은 '테란 땅

개, 다리 튼튼'."

연병장을 몇 바퀴나 돌았을까? 갈구던 교관조차 지켜 보는 게 지겨웠는지 시원

한 느티 나무 그늘에 등깔고 누워 담배만 쪼고 있었다. 나한테 업힌 색히는 지

가 생각해도 체중이 많이 나간게 어지간히 미안했나부다. 업힌 놈덜 중에는 계

속 상하좌우로 흔들리다 보니 멀미가 쏠려 오바이트를 하는 싸가지 없는 색히

덜도 있었다. 하물며 그 밑에서 뛰는 놈덜은 그 날이 의가사 제대하는 날이리

라. 하늘은 그저 노랗고 다리는 하염없이 후들거렸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한 신병 오리엔테이션은 스트레이트로 연병장 좇뺑이만 돌다

가 오후 3:00에 끝났다. 너무 힘이 들었으나 나와 돌부처, 멸치 고참과 꼴통은

순전 깡으로 버티며 시내 거리로 나섰다. 시간은 이윽고 오후 4시. 술 때리기엔

좀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서 시내를 활보하며 눈요기나 하기로 하였다. Stynx

행성의 수도인 이 곳 Hides는 행성 전체에서 거의 유일한 번화가였다. 대부분의

부대 기지가 비포장 도로에 먼지 폴폴 날리는 깡촌이었으나 그나마 이 곳은

번듯하니 도시티가 제법 흘렀다. 무엇보다도 황홀한 것은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

네들이었다. 이곳 행성이 사시사철 여름이다 보니 모조리다 홀라당에 벌러덩이

었다. 꼴통과 멸치 고참은 아스팔트 위에 코피를 줄줄 쏟고 다녔다. 여인네들

태반은 직장 여성으로 주로 사무원이거나 여군이라고 하더라. 개중에 좀 잘빠진

애덜은 그 근처 물집 애들이나 고급 장성덜현지처란 소문도 들은 바 있다.

길을 걷다 보니 갑자기 멀리서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일행은 깜

짝 놀라 반사적으로 그 쪽을 쳐다 보았다. 으~익 차도 저 쪽 구탱이로부터 뭔가

가 개떼 같이 몰려 왔다. 자세히 보니 호버 크래프트였다. 새빨간 선글라스에

베레모, 쓰벌 아까 그 후까시 교관 색히랑 행세가 비슷한 인간덜이 뒤에 하나씩

여자 걸치고 기분내는 것이었다. 나도 Tarsonic에 있을 때엔 주말마다 인공 수

목림에서 호버 크래프트를 몰곤 했지만 일반 차도에서 저 지랄을 떨었다간 즉

심이었다. 이곳은 그나마 차도가 한산해서 그런건지 도통 군경 덜이 신경 꺼

모드였다. 호버 크래프트는 내가 타던 것과는 생김새가 달랐다. 생김새가 정말

물찬 제비처럼 잘 빠진게 기생 오라비가 타고 다니는 꽃가마처럼 얍쌍했다. 저

거에 비하면 내가 몰던 건 털털거리는 경운기였으리. 본네트가 졸라 길고 앞 쪽

이 뾰족했다. 차체 뒤쪽에는 2발의 제트 엔진이 달려 있었고 아마도 원래부터 2

인용인가 부다. 아 색히덜 마후라는 엿바꿔 먹었는지 하여간 엔진에서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개 중에는 앞 헤드 라이트에 홀로그램 발생기를 달고 졸라

하이빔을 쏘며 달렸다. 하여간 열라 재수없는 양아치 색히덜이었다.

"아줌마, 여기 빙수 4 그릇 주세요. 근데 아줌마, 밖에 저 색히덜은 도데체 뭐예요??"

"에구 말말어... 부모 잘 만났다고 뻐기고 돌아다니는 철딱 서니 없는 것들이

제... 그 뭐시냐 아카시안지 뭔지 하는 데 다닌 다는 생도들 아니여"

"제네덜 훈련 안 하고 맨날 저렇게 놀아요??"

"아 글씨 나도 무얼러. 핵교에서 도데체 뭘 배우는 놈덜인지 저게 군사 훈련이

라고 허구헌날 저 지랄이라니까. 에구 저 짓도 하루이틀이지. 정말 정신 사나워

서 못 살어, 내가 정말 못산다구."

"아 제네덜, 아줌마 아들 뻘 같아 보이는데 좀 뭐라 타이르시지 그러셨어요?"

"하따 이 순진한 양반아 그래도 제네들이 날 먹여 살리는 단골인데 그 짓하다

가 손님 다 떨어지라구? 에끼 그런 소리 말고 녹기 전에 빙수나 얼렁 들게"

 

어느덧 시간은 오후 7:00, 우리는 근처 국영 주점에가서 한 잔 걸치기로 했다.

돌부처가 지가 한 약속을 지킨다며 한 잔 산댄다. 돌부처도 은근히 기분파인 것

같다. 멸치 고참과 꼴통은 하두 코피를 흘려서 인지 안색이 창백해 보였다.

"야 쓰벌, 이렇게 지천에 깔린게 삼삼하게 생긴 가스나들인데, 왜 우찌 내 껀

없다냐. 야 꼴통 하고 두더지 니네 어떻게 생각하냐?"

"야이 색히덜아, 고참이 이렇게 괴로와 하면 니네덜은 알아서 5분 대기조라도

서야할 거 아냐... 이 색히덜이 내 밑에서 한 두번 굴러 보냐? 왜 꼬와? 야이 색

히덜아 이게 나 혼자 잘살자고 떠는 지랄인 줄 알아? 아 황병장님도 객고 못

풀어 얼마나 외롭겠나 뭐 그런거 생각 안해봤냐?? 이 싸가지덜아. 긴말 하기 싫

고 4명 빨랑 엮어와."

꼴통과 나는 할수없이 5분 대기조를 서야했다. 난이런 방면에 영 소질이 없었

다. 그나마 다행인게 자칭 전문가라는 꼴통은 자기만 믿으라고 내등을 툭툭 쳤

다. 아 고마운 꼴통.

"야 제내 4명 쌈박하다. 제네 어떻겠냐?"

"야이 색히야,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먼 옛날 지구 속담도 모르

냐? 멸치가 얼마나 눈이 낮은데 저런 물건덜을 섯불리 건드려 낭패를 보냐 낭

패를... 그냥 대충 보기 싫지 않은 만만한 애덜 엮으면 된다구... 야 저기 넷 있

다. 저정도면 껨이 되겠군"

"야 넘 함량 미달이쟎아??"

"야이 색히야 술들어가면 실하게 보이는 뵙이여. 어이 아가씨덜 일행이신가

분데. 저희도 넷 이거든요. 우리 함께 이밤을 보내는 건 어떨가용"

"우린 댁에게 볼 일 없어요. 뭐 오늘은 힘들겠네요"

우아~ 생긴 건 영 꽝인게 완전 거기에 금테두른 애덜이었다. 열받은 꼴통은 계

속 칭얼대기 시작했다.

"어이 그러지 말구, 우리 놀 돈도 많고 재밌다니까. 쫌 있으면 오늘 하루도 다

가는데 너무 그러지 맙시다. 피차에 시간도 없는것 같은데..."

"됐어요. 고맙지만 사양하겠네요"

"어이 뭐 그러지 말고...."

"됐데니까요. 왜 자꾸 그러세요"

"어이 이봐 강변 드라이브 가려고 하는데 약속이 펑크가 나서 그래 니들 탈래?

우리도 네 명이야"

"끼약~ 오빠 곧 갈께용... 애들아 빨랑 가자."

어이 쓰벌, 아까 그 싹아지 없는 양아치 색히덜이었다. 이 색히덜이 헤드라이트

를 깜빡 대니까 기집애덜은 완죤히 뿅간 표정이었다.. X색히덜, 깔린 게 이쁜

애들인데 우리가 노리던 애덜을 중간에서 가로채다니 하여간 있는 놈덜이 더

무섭다.

크흐흐, 결국 우리는 기생 오라비 꽃가마가 없어서 번번히 꽝이었다. 열받은 멸

치는 아스팔트 바닥에 원산 폭격을 시켰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리다 지친 우리

는 결국 X알 2쪽만 차고 원래 행선지였던 술집으로 들어갔다.

 

"손님 주문하세요"

"어이 쓰벌 야 이 집은 웨이트리스도 없어? 너 남자하고 사니? 왜 니가 주문

받냐?"

"죄송합니다. 저희집 웨이트리스가 오늘 전부 일이 생겨서요."

"어이 쓰벌 야 노가리랑, 삐루 4캔 갖다줘"

"저.. 저.. 저..저기요... 쐬주는 없나요?"

"어이 쓰벌, 하여간 사회에서 두더지는 군대에서도 두더지라고... 야 삐루 3캔하

고 쐬주 한 병, 안주는 여전히 노가리. 빨랑 갖다줘."

멸치 일병도 속으로 우리의 패인은 기생 오라비 꽃가마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나 부다. 말은 여전히 거칠었으나 괜한 화풀이를 애매한 우리덜에

게 한 걸 속으로 미안해 하는 눈치였다.

잽싸게 웨이터가 술과 안주를 늘어 놨다. 멸치 고참은 계속 푸념만 늘어 놓으며

삐루를 빨았다.

"어이 쓰벌 드러워서. 어떤 색히덜은 부모 잘 만나 군대와서 연애질이나 하고

나같은 색히는 이런 어두 침침한 아색히덜이랑 노가리나 풀어야 하고, 아 정말

드럽다. 야 너희 두 색히, 아! 그리고 황병장님 마셔 마셔, 먹는게 남는거야. 원샷"

아 이 얼마만에 먹는 쐬주인가! 역시 비릿 느끼한 삐루보단 화끈한 쐬주가 최고

야! 게다가 히야시가 빵빵해서 목구멍을 타고 넘는 쾌감이 정말 쥑여줬다.

 

스테이지에서 개처럼 흔들다가 테이블로 들어 와서 부어라 마셔라 기집이 없어

도 시간은 잘도 흘렀다. 멸치 일병도 차츰 꾸리한 표정이 풀리는 기색이었다.

"허어 저 기집애 정말 잘 빠졌다. 와 옆에 남자를 둘 씩이나 꼈네? 하여간 뭐

저 정도 인물이면 그 정도 값어치는 해야지. 원 드러워서 야 원샷"

우리는 무심코 멸치 고참이 말한 쪽을 쳐다 보았다. 방금 들어온 일행인 듯 한

데 여자 하나에 남자 둘이었다. 순간 우리의 시선은 시간이 정지된 듯 그대로

고정되었다.

"야 왜 그래? 꿈 깨 임마. 지 아무리 먹음직스러우면 뭐 하냐? 그림 속의 떡이

지... 하긴 봐두면 이따 침대에서 손빨래 할 때 영감 떠올리기는 딱 좋을 거다."

그 여자는 바로 우리들의 여신이었다. 우리를 지옥으로부터 구원해 주었던 천

사, 궁전 파티를 빠져 나와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우리에게 다가온 동화속의 공

주님, 풍선껌을 씹던 장난꾸러기 요정.... 게다가 일행이랑 뭐라 얘기를 하더니...

놀랍게도 우리를 알아보고 우리쪽 테이블로 걸어 오는 것이었다.

"으~잉 야 저 여자가 왜 우리쪽으로 오냐? 흐흐흐... 이상하다.... 이쪽엔 우리 밖

에 없는데...."

"호호호, 이런데서 보게 되다니 뜻밖이네요. 다시 만나서 반가와요."

아 우리의 수호 여신은 일일히 우리에게 반갑다고 악수를 청했다. 으~ 너무나도

부드럽고 고운 손이었다. 멸치 고참은 어리 둥절 하면서도 악수를 청하자 전기

에 감전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이 분은 그때 기절하셨던 그 분이시죠? 음... 전 드롭쉽 조종사 이지은 중

위라고 합니다. 푸후후, 모처럼 마련한 소중한 시간일텐데, 전부 솔로네요? 고향

에 두고 온 애인 생각이라도 하시나 부죠?"

"어이 그게 아니구요... 하여간 이 곳에 사는 기집애덜은 싸가지가 없어요. 원

별 기생 오라비 꽃가마가 없다고 우리같이 멋있는 사내덜을 알아 주지도 않고...

아 물론 중위님이야 빼고하는 말이구요... 흐흐흐 어쨌건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

상훈 일병이라고 합니다. 어이구 말만 들었는데 실제 뵈니 정말 아름다우시군

요. 하아~ 하아~ 하아~ (으윽~ 닭살)"

"호호호~ 원 별 이상한 말씀을 다 하시네요. 근데 기생 오라비 꽃가마라구요?

하하하하"

아 그녀는 웃는 모습도 천사였다. 어쩌면 저렇게 고혹적일 수 있을까?

"음 김상병님은 아마 벌쳐를 보고 그러신가 본데..".

"저기 그럼 아까 거리에서 개떼로 몰려다니던 그 호버 크래프트를 벌쳐라고 하나요?"

"원래 벌쳐는 테란의 육상 전투 차량이었어요. 빠른 속도를 이용한 정찰이 주요

임무였죠. 근데 요즘엔 야전에서 벌쳐 보기가 힘들어졌죠. 품이 많이 들어도 사

실 공중 병기가 정찰엔 더 효과적인데다가 상부에서는 벌쳐가 Terran의 군인

정신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봐요. 초기 설계 목적이 정찰 차량이라 속도

를 높이기 위해 무게를 줄이다 보니 제원이 경무장인데다가 장갑도 튼튼하지

못하거든요. 게다가 벌쳐 때문에 탈영병이 늘어 났다는 통계도 있고. 그나마

근래엔 개량해서 지뢰 매설용 차량으로 쓴다고 들었는데 제가 볼 때에는 탑재

할 수 있는 지뢰가 몇 개 되지 않아서 그것도 곧 용도 폐기될 것 같아요. 뭐 그

래서 요즘엔 주로 장교덜이 자가용으로 애용하고 있죠. 유지비도 저렴하고 운

전하기도 편하고"

푸하~ 용모만 뛰어난게 아니라 아는 것도 많았다.

"아카데미 생도 애덜도 많이 타고 다닌다고 하네요. 뭐 사실 벌쳐 한 대 값이

학생 용돈으로 사기엔 부담되지만 어떻해서든 한 대 장만해야 사람 취급 받는

다고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월부금을 붓죠. 제 동생도 그거 사달라고 얼마나 우

리 아빠를 졸랐는지. 후후후"

"어휴, 중위님이라 그런지 우리보다 아는 것도 많네요? 저희가 이번에 포상으로

아카데미에 입소하게 되었는데 상부에서 저희를 배려해서...."

"후후후 그 얘긴 우리 아빠한테도 들었어요. 이 곳에서 가까운 곳에 아파트가

있다면서요?? 뭐 앞으로 자주 뵙겠네요. 이 집이 제 단골 집이거든요."

멸치 고참은 완죤히 목소리가 붕붕 떠서 다녔다. 있는 후까시 없는 후까시 다

집어 넣어서 분위기 연출에 여념없는 멸치 고참을 꼴통은 나에게 귓속말로 이

렇게 평가했다.

"야 저 인간 장가 일찍 가긴 글러 먹었다."

오늘 그녀는 군복이 아닌 사복 차림이다. 늘씬한 감청색 청바지에 딱 들러 붙는

하얀 쫄티, 움푹 패인 그녀의 앙가슴이 나를 끊임없이 유혹했다. 이 곳에 머물

러 안식을 찾으라고. 그러나 나는 선악과를 쳐먹은 아담이었고 그곳은 쳐다 봐

서도 안되는 에덴 동산이었다. 동태 출신 군바리라는 나의 원죄가 천길 만길 낭

떠러지가 되어 내가 낙원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서있었다.

"아 아쉽지만 저는 일행이 있어서 그만 가봐야 겠네요... 후후후 오늘 즐거웠어

요. 뭐 그럼 나중에 뵙죠. 그럼 안녕히"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 모냥 또다시 나의 곁을 홀연히 찾아 왔다가 훌쩍 떠나

갔다. 손님에 묻혀 사라진 그녀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꼴통과 멸치 고참도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나 보다. 하여간 젤 맘 편한 인간은 돌부처였

다. 그녀가 우리와 합석했을때 말한마디 안 꺼내고 꿍해 있더니 지금도 그냥 편

안히 담배나 빨며 삐루나 나발 불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날 곤죽이 되도록 퍼 마셨다. 멸치 고참은 이 중위 때문에 기분이 좋아져서

술빨이 땡겼나 부다. 일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밤 10시였다. 너무 이쁜 미

인을 봤더니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며 멸치가 주동을 하였다. 우리는 의기 투합

하여 돈을 모았다. 뭐 그럭 저럭 목돈이 모이자 우리는 여자를 사러 이차는 홍

등가로 향했다. 다리 건너 편에 위치한 이곳 홍등가는 관청에 등록되어 있는 국

영 업소로서 군바리는 특별히 50% DC를 해 준다고 한다. 강바람을 쐬며 걷던

멸치 고참은 갑자기 고래 고래 군가를 불러댔다.

"우리는 단순 무식 지랄 마린 개떼!

총알이 빗발쳐도 삐집고 돌진한다.

졸라리 갈겨라! 최후의 한 놈까지

후퇴는 죽음이다. 개떼처럼 뭉쳐라.

웬쑤의 가슴팍에 총알을 안겨주자.

 

 

야이 색히덜아! 이 우주의 모든 가스나들이 우리를 뿌리 쳐도

우리는 자랑스러운 Terran의 마린이다... 이 씨벌... 개 벌쳐들

백마리고 천마리고 덤벼, 니네들은 울 무적 마린의 발톱 밑의

무좀균이야! 야 돌부처 내 말이 맞지? (어쭈 취했다 이거지)

넌 임마 성격이 지랄 같아도 멋있는 놈이야! 우린 모두 멋있는 놈덜 이라구. 벌

쳐 십색히덜은 보지도 못한 Zerg를 우리는 완전 케찹 만들었＿아!

씨벌, 그래 맨주먹으로 해보자고 맨주먹.... 니네 벌쳐 십색히덜 빽 믿고 게길 동

안 우린 맨주먹으로 일어선다.... 씨벌... 두고 보자고 누가 나중에 웃는지...

야! 무기 쳐들어, 30미터 전방에 Zerg보다 사악한 우리의 적, 덜떨어진 기집덜

이 있다. 졸라 돌격해서 이것들을 처참하게 찔러 주자. 돌격 앞으로"

우리는 지퍼를 까고 무기를 치켜 들고 멸치의 뒤를 졸라 뛰어가야만 했다. 돌부

처는 아무말 없이 우리 뒤에서 터벅 터벅 걸어올 따름이다. 오늘 밤도 이곳

Hides에는 어김없이 2개의 달이 밝게 비추고 있었다.

 

 

 

어느 테란병사의 삶 (14)

 

우리는 어제 고지 점령에 실패 했다. 하도 술을 퍼먹어서 가라가 꼬부라져 도

통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다. 덕분에 멸치 고참이 외치던 가증스러운 적을 향한

가멸찬 돌격은 일장춘몽으로 마감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머리가 깨질 듯이

지끈 거렸다. 다 때려 치고 침대에 자빠져 자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침대에서 영

원히 주무실 것 같았다. 집에는 전사 통지서가 날아 갈 것 같구. 우린 순전히

깡다구로 몸을 추켜 세워 출근을 했다.

연이틀 우리는 X뺑이를 쳐야 했다. 오늘 선착순에 못 들면 난 의가사 제대다.

요 말에 정신이 퍼뜩 든 나는 눈에 보이는게 없었다. 나는 X빠지게 뛰어서 간

신히 20등 안에 들 수 있었다. 옆에 같이 뛰던 놈덜이 내 핏발 선 눈을 보고 겁

이나 주춤거린 덕분이었다. 그래서 다행히도 난 하루 종일 업힌 채로 연병장을

돌았다. 그렇다고 마냥 편한 건 아니었다. 속이 뒤집힌데다가 일루 절루 몸이

쏠리니 오바이트가 흘러 나왔다. 나중엔 토할 건덕지가 없어서 쓰디쓴 위액이

입가에 질질 흘렀다. 덕분에 날 업은 색히는 등짝에 노가리, 콩나물, 땅콩, 사리,

골뱅이,하여간 반쯤 삭힌 온갖 술안주 거리를 더덕 더덕 붙인 채로 달려야 했

다. 땀내에 퀴퀴한 음식 썩은내가 섞여서 연병장이 참으로 향기로왔다.

퇴근 후 근처 해장국집에 들려 해장을 하려고 했으나 도통 한 술도 못 뜰 지경

이었다. 그 와중에도 돌부처는 꾸역 꾸역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독한 인간. 하여

간 그날 간장약 사먹고 아파트에 들어와 모두 통나무처럼 쓰러져 겔겔 대야만 했다.

 

X뺑이는 그 후 두고 두고 계속 되었다. 하여간 발이 평평한 나는 뜀박질이 영

소질이 없어서 난 주로 업고 뛰는 선한 역만 맡아야 했다. 덕분에 맨날 발이 부

르퉁퉁했다. 술로 지새는 날도 하루 이틀이지 요게 일주일이 넘어 가자 퇴근 후

에도 술한잔 빨러 가자는 인간덜이 없었다. 그저 하고 싶은 거란 집에 빨랑 가

샤워하고 방바닥을 뒹구는 거였다. 어차피 이 근처 기집애덜은 허파에 바람만

잔뜩 들어서 울 같은 걸어 다니는 땅개는 흥~이었다. 한 때 벌쳐라는 그 기생

오라비 꽃가마를 사자고 돈도 모아 봤으나 요게 군수 밀수품이라 가격이 장난

이 아닌게라. 결국 비디오 하나 장만하는데 끄쳤다. 일과 후 일이라는게 내내

방구들에 낮은 포복을한 다음 P짜 비디오 조지는 거였다. 그러나 삼차원 폴리

곤을 합성하여 만드는 가상 여배우덜만으로 우리의 목마름을 달랠 수는 없었다.

그건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마른 소금물과 같은 거였다. 게다가 군용 비디오는 제

작비를 아낄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여배우의 입술 표정에 메쉬가 부족하여 동

영상이 넘 어색하고 징그러웠다. 그래서 우리 중 일부는 아랫 도리가 못 견

디게 허전해지면 각자 개인 플레이로 국영 홍등가에 가서 객고를 풀었다. 사실

나는 홍등가도 가기 싫었다. 일설에 의하면 요즘에 일손이 딸려 개중에는 합성

피부로 가장한 사이그보그도 있다는 풍문을 얼핏 들었기 때문이다. 군바리 50%

DC가 가능한 이유도 사실 그것 때문이라는 웃지 못할 말도 있었다. 그렇다고

여체를 더듬으며 이 여자 몸에 볼트나 너트가 숨어 있는지 일일히 확인하는 건

기분 잡치는 일이었다. 차라리 안 하고 말지.

멸치 고참은 유난히도 싹싹했던 이지은 중위를 잊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혹시나 만날까 해서 그때 그녀를 만났었던 국영 주점의 죽도리가 되

었다. 그래도 그녀는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멸치 고참은 이제나 저제나 기다

리는 망부석 타입은 못 되었다. 그래서 잔대가리 돌려서 묘책을 세웠다는게 나

와 꼴통을 거기 짱박아둔 것이었다. 하루씩 나와 꼴통은 교대로 퇴근 후 거기서

망을 봐야 했다. 그나마 멸치 고참이 양심은 있는게 퇴근 후 거기 계속 짱박아

둔 건 아니고 그녀를 만났던 시간인 대략 8:00부터 한 시간 정도만 보초를 서게

했다는 점이다. 요거 땜시 우리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하루 종일 X뺑이로 맛이

간 우리덜은 그 곳에서 달랑 노가리에 맥주 한 캔 (물론 나는 쐬주 한 병)시키

고 기도들의 따가운 눈치를 참아가며 주위를 샅샅이 정찰해야 했다.

멸치 고참의 지시는 이거였다. 한 시간 동안 짱을 본다. 그 동안 자기는 기지

에서 오퍼레이터 역할을 한다. 만일 목표물이 발견 되었을 시에 나나 꼴통은 기

지 즉시 보고할 것. 이후 우리의 지원 병력 멸치가 홀로 당당히 나타난다. 그

후 우리는 기지로 즉각 후퇴한다. 요것이 고참과 신참의 임무 역할 분담 내용이

었다. 근데 이중위와 Zerg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천사같은 그녀를 사

악무도 구역질나는 Zerg와 비교하는게 당치도 않았으나 하여간 그 공통점이란

건 암만 짱박아도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갔다.

 

어느덧 X뺑이도 익숙해 갈 무렵, 그 노가다는 마침내 끝을 보고야 말았다. 후

까시 교관은 다시는 느티나무 100미터 와리 가리 선착순을 외치지 않았다. 드디

어 그 색히는 Terran 병사로서 갖추고 있는 우리의 기본 자질을 인정하고 본격

적인 무공을 전수해주기 시작하였다. 하여간 그 과정은 옛날 지구에서 판을 쳤

다는 싸구려 삼류 무협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영화덜을 보면 훌륭한 사부

일수록 제자들이 처음 입문하면 가르쳐 달라는 무술은 안가르쳐 주고 맨날 장

작 패라, 밥 짓고 설겆이 하라, 군불 때라고 잔소리만 한다. 교관은 자신이 매우

우수한 사부라고 자부하는 것 같았다.

하여간 그 다음 과정은 사격 훈련이었다. 우리는 실습용 탄약을 새로 지급받았

는데 기존에 우리가 사용했던 것보다 귀두 부분이 약간 길쭉했다. 탄피에는

U-348이라는 번호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제군덜, 제군덜이 지급받은 탄약은 기존 전투 시 제군들이 거의 접해 본적이

없는 종류일 거라 생각한다. 이 탄약은 우리 자랑스러운 Terran 과학 기술진이

무려 10년의 연구 결과끝에 개발해낸 U-348 탄약이다. U-348은 기존의 가우

스 라이플과 호환 가능하며 재래식 가라 총알보다 사거리가 1.5배 정도 향상되

었다. 따라서 이 탄알은 여러분의 전투력을 지금보다 두 배로 향상시키는 효과

를 발휘할 것이다."

우리는 속으로 득의 양양했다. 기존 테란 마린의 전술이 오로지 단순 지랄 무식

개떼 러쉬로 일관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가라의 짧은 사거리였다. 명중률을 향상

시키고 반동을 없애기 위한 댓가라 들은 바도 있기도 하다. 그러나 기존의 가라

로는 개떼 러쉬가 목숨이 와따리 가따리 하는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다. 특히 저

번 Zerg와의 전투 시 발톱 달린 개떼랑 싸울 때도 사거리가 너무 짧아 쉽게 적

의 공격에 노출되곤 했다. 그러나 이제 사거리는 무려 1.5배나 늘어났다. 이제

Zerg의 그 땅꼬마 개 떼 색히덜은 지 아무리 발톱을 곤두세우고 악다구리 같이

뎀벼도 껨이 안될 것 같았다.

"사용법은 기존의 가우스 라이플과 동일하기 때문에 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총알은 기존 총알보다 제조 공정이 복잡하기 때문

에 아직은 충분한 물량을 공급할 수 없다. 개나 소나 이 고성능 실탄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제군들은 이 실탄의 위력에 걸맞는 능력을 배양 고취시켜

야만 한다."

첫 날 훈련은 거리감 익히기 훈련이었다. 사격 시 거리가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이동식 사격판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내 눈 앞을 지나갔다. 하나의 사격판이 시

야에 머무는 시간은 불과 2초. 이 동안에 가라를 10발 쏴서 과녁에 명중시켜야

했다. 근데 문제는 레이저를 이용하여 목표 사격판과 사격 시의 내 거리를 일일

히 측정한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사격판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앞으로 뒤로 쉼없이 움직여야 했고 이때 훈련 평가는 사격 시 명중된 목표물과

의 평균 거리가 누가 제일 최대 사정 거리값과 유사한가였다. 이 훈련은 재래식

총알과 U-348 총알을 번갈아 사용하며 이루어졌기 때문에 고도의 감각이 요구

되었다.

"제군들, 테란 마린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최대 사정 거리 범위에서 사격을

개시하여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것이다. 만일 적이 사정 거리 밖에 있는데도 가

라질을 하는 색히덜이 있으면 그 색히덜은 아군이 아니라 적군이다. 옆 색히가

그런 닥질을 하면 과감히 쏴 죽여도 좋다. 그것이 바로 U-348 실탄의 명예를

드높이는 길이다. 적이 지 코 밑에 올 때까지 가라질도 못하는 색히는 더 나뿐

개색히다. 그 색히는 U-348 총알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밤을 꼴딱

새며 노력한 위대한 Terran 과학 기술진덜을 비웃는 건방진 반동 분자다. 제군

덜은 이 점을 각별히 유념하도록"

아카데미의 얼차려는 훈련소와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훈련소는 잘 하던 못 하

던 무조건 조지고 보자였다. 따라서 처음엔 억울했으나 당하다 보면 오히려 이

게 더 편했다. 근디 아카데미는 X뺑이 선착순을 시작으로 모조리 평가제였다.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루었다. 평균 이상인 놈덜은 당나라 분위기였고 평균 미만

인 놈덜은 그날이 의가사 제댓날이었다. 요러다 보니 더 미칠 지경이었다. 인간

은 그만큼 나약한 존잰가 부다. 지옥만이 존재하면 그냥 지옥이겠거니 참고 살

지만 지옥과 천국을 오가면 지옥은 죽어도 가기 싫어지는 법이다. 그날 나는 평

균 이상이라 살아 남았는데 그렇지 못한 놈덜은 땅바닥에 주저 앉아 오줌을 질

질 싸는 험한 꼴을 봐야 했다.

갑자기 조교덜이 지지리도 불쌍한 낙제생덜한테 가라를 들이 밀었다. '부르르

르~' 섬찟한 소리가 귀를 찔렀다. 맨 앞줄에 있던 놈덜이 가라를 맞고 '으악~'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케찹을 뿌리며 우수수 쓰러졌다. 전율의 도가니였다. 당

하는 놈덜이나 당하는 거 보던 놈덜이나 이 황당한 사태에 얼굴이 완전 납빛이

되었다.

"제군들, 요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적 아색히덜과 맞서면 요런 꼬라지

가 된다. 내 성질 같아서는 이 거러지 만도 못한 색히덜에게 U-348 실탄을 안

겨 줄까도 신중히 검토하였으나 이런 거러지 같은 색히덜은 U-348과 같은 고급

실탄을 맞을 자격도 없는 색히덜이다. 따라서 V-348 공포탄을 쐈다. 참고로

V-348 공포탄은 제군들의 사기 진작을 위하야 상영되는 Terran 국방 영화 촬

영 시 사용되는 소품이다. 니 색히덜은 이와 같은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고 더욱

분발하도록. 그럼 이만 해산"

 

이 후에도 별 알 수 없는 해괴 망칙한 사격술 훈련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걸 모두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하여간 평균 미만은 지옥 불 속으로 떨어졌고

평균 이상은 휴거가 되어 천국에서 복된 영광을 누렸다. 그러다가 정확히 오후

6:00가 되면 불쌍한 울 중생덜은 윤회에 의해 부활하고안식처를 찾아 퇴근해야 했다.

오늘은 주점에서 내가 당번 서는 날이었다. 나는 오늘 뜨거운 지옥 불 속에서

온갖 모진 꼴을 당한 불쌍한 영혼이었기에 넘 가기 피곤했다. 그래도 내일 출근

때까지 남은 삶을 평온하게 살기 위해서는 멸치 고참의 말을 하느님처럼 따라

야만 했다. 나는 바에 홀로 앉은 채 깡소주 언더락스를 주문했다. 비록 기도들

눈에 나는 그동안 자리값만 축내는 얌체 손님이었으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고 무대뽀로 밀어 붙이니 요것도 관성이 붙어 그런데로 손님 대접을 해 주었다.

안주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때 제 때에 팝콘이나 새우깡이 비면 그 즉시 새

로 채워주곤 했기 때문이다.

스테이지에는 사이키가 돌고 연놈덜은 얼싸안고 흔들어 댔다. 현재 시간 8:35분

앞으로 15분만 버티면 여기서 철수다. 참고로 5분뒤면 이곳 스테이지의 하이라

이트인 3차원 홀로그램이 장관을 연출할 것이다. 아~ 난 이곳 프로그램을 여기

서 일하는 웨이터 놈덜보다 빠삭하게 더 잘아는 것 같았다.

드디어 8:55분 오늘도 우리의 목표물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5분을 더 기다릴

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일어서기로 했다. 오늘은너무 고된 하루다. 멸치도 5분

먼저 들어 왔다고 뭐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멸치는 오늘 Terran 군바리 명부

에 '전사'라는 도장이 찍힐 뻔 했으니까 피곤한 나의 사정을 이해하겠지...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켰다. 거의 쐬주 맛은 느껴지지도 않는 얼음물이었다.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 찰나였다. 누군가가 뒤에서 내 등을 툭툭 쳤다.

나는 놀라서 뒤돌아 봤다. 오~ 마이 갓. 이럴 수가 극적인 순간에 목표물 포착.

아 나의 목표물은 두꺼운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여태껏 탐지 되지 않았던 것

이다. 이 Zerg 개떼 만큼 앙큼한 것 같으니. 나는 그녀에게 무턱대고 잠시 서있

으라고 했다. 그녀는 나의 막무가내에 어리둥절했으나 카아~ 사근사근하게도 내

말을 들어 주었다. 나는 부리나케 공중 전화가 있는 곳으로 달려 갔다. 수화기

를 들고 잽싸게 중앙 기지에 연락을 취했다. '뚜~우~ 뚜~우~' 잠시 후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이런 썅 전화 받은 건 꼴통인데 우리의 오퍼레이터 멸치는 잠시

밖에 나갔다고 한다.

나는 다시 그녀가 있는 곳으로 돌아 왔다. 행여 사라지지 않았을까 조마조마 했

으나 그녀는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음 죽여주는 패션. ㅆ시한 가죽 스커트에

푹 패인 나시라니 흐흐흐...

"호호호 오늘은 왠일로 혼자세요? 뭔 약속이라도 있나요?? 근사한 데이트??"

"아..아닙니다. 이 중위님 그냥 바람이라도 좀 쐴까해서"

"헤~에 아닌 것 같은데요? 바람을 이렇게 공기 탁한데서 쐬시 나요?? 후후 은

근히 질투 나는데 도데체 누굴 기다리시는 거죠??"

"아닙니다. 이 중위님. 저 그럼 잠시 전화 한 통만..."

"푸후후 그러죠 뭐... 근데 혹시 약속 빵꾸 나면 나한테 와요. 오늘은 나 혼자니

까. 술 혼자 마시기 심심하네요. 뭐 오늘 하루 짬나시면 제 술벗이라도 해주세요."

윽~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유심히 그녀의 얼굴을 봤다. 볼이 약간 발그레 상

기된게 좀 취한 것 같았다. 게다가 오늘은 혼자?? 아~ 갑자기 전화 박스 쪽으로

발걸음을 떼기가 싫어 진다. 그래도 나는 신참. 고참이 구르라면 굴러야 한다.

가기 싫은 몸을 억지로 억지로 이끌고 전화기 앞으로 갔다. 전화를 들고 동전을

넣고 전화 번호를 눌러야 하는데... 아 마지막 한자리만 누르면 기지에 연락이

되겠지? 그러면 우리의 준비된 지원 병력 겸 해결사 멸치가 짱 나타나고 나는

기지로 후퇴해야 한다. 결국 문제는 마지막 한자리였다. 아 갈등... 저런 천사를

멸치같은 짐승한테 우~. 안돼 차라리 저지르고 죽느냐 몸사리고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그녀를 다시 한 번 유심히 봤다. 자기가 혼자라는 그녀의 말이 사실

인 것 같았다. 아~ 갈등 때렸다. 저지르고 죽느냐 몸사리고 사느냐?

"귀하가 거신 통화 번호는 국번이 없거나 잘못된 전화 번호니 다시 확인해 주

시고 거시기 바랍니다"

결국 나는 탈영병이 되고 말았다. 투철한 군인 정신으로 무장된 자랑스러운 전

사에서 하루 아침에 파렴치한 반역자로 타락한 것이었다. 그것도 모두 다 저 요

부 때문이었다. 나는 순간 나의 신세를 망친 그녀에 대한 복수심에 몸이 훨훨

타올랐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보무도 당당하게 돌격하였다.

"어휴 이 중위님, 약속이 빵꾸가 났네요. 전 참 지지리도 여자복이 없나봐요."

"푸후후, 잔챙이 놓친 대신 월척을 낚았으면서 웬 자존심에 내숭이란가암?"

그녀는 확실히 공주병 기질이 농후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보면 그녀는 진실

만을 말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가시만 억씨지 맛도 없는 멸치 대신 월척인 그녀

를 선택했기에.

우리는 부어라 마셔라 했다. 그녀는 보기와는 달리 주량이 대단했다. 마셔도 마

셔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 였다. 그러나 섭취한 알콜량이 늘어 갈 수록 그녀의

말수도 덩달아 늘어 갔다. 그녀의 재잘거리는 입술, 발그레한 볼, 그리고 그녀가

약간씩 고개를 숙일 때마다 훤히 속이 들여다 보이는 가슴. 아 이건 정말 황홀

한 반란이다.

"저 이중위님"

"후후후~ 언제까지 그렇게 계급 타령만 하실 건가요? 난 지금 군복 차림이 아

니예요. 게다가 그런 말투는 이런 곳에선 남의 눈에 띄기도 쉽죠. 혹시 제 이름

을 까먹어서 그렇게 부르신다면 제 이름을 가르쳐 드리죠. 제 이름은 이지은이예요."

아~ 아름다운 하극상이었다. 나는 주저 했으나 그녀가 하도 보채서 들릴 랑 말

랑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수줍은 목소리였다.

"그럴리가 있겠어요. 전 한번도 이중위님 아 아얏! 아 아니 지~은씨 이름을 잊

어 버린적이 없는데요. 지.은. 이름이 참 예쁘네요"

"당신은 정말 재밌네요. 제 외모가 예쁘다는 남자는 많았어도 제 이름이 예쁘다

는 남자는 없었는데... 후후후 넘 귀엽다.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그쪽에선 제

이름을 부르는데 제가 그쪽에다 대고 양이병님 그러면 넘 어색하겠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내 이름을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스스로 내 자신이 보잘 것 없다고 느끼며 살아 왔다. 그러나 나의 천사는 보잘

것 없는 나의 이름을 궁금해 하고 있다. 여기에 감격해 버린 나머지 나는 스스

럼 없이 내이름을 말해 버렸다.

"제 이름은... 양.희.근입니다."

"후후후~ 희근씨 그 쪽도 이름이 멋있네요!"

"오늘은 어쩐 일로 혼자세요? 저번엔 동행하시는 분덜이 계시던데..."

"그게 그렇게 궁금하세요? 후후후 전 가끔은 혼자인게좋아요. 혼자있으면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나 할까? 오늘도 혼자 있으니 이렇

듯 새로운 만남도 이룰 수 있었고 당신 같이 멋있는 남자의 이름 석자도 알아

낼 수 있었고... 후후후 그런 아부에 순진하게 얼굴 빨개지긴... 덕담 했으니 오

늘 술은 희근씨가 사는거예요."

"..... (그래도 내가 멋있데... 흐흐흐)"

"후후후, 전 제가 활동하는 사회 범위가 너무 좁은게 늘 불만이었어요. 그건 저

자신에게는 결코 이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전 항상 다양한 사람과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해요. 후후... 근데 아직은 젊어서 그런지 그런 다양한 사

람들 중 제일 먼저 손이 가는 건 남자네요. 어머 그렇다고 절 너무 응큼한 여자

로 여기지는 마세요

 

. 하여튼 당신 같은 하급 병사는 오늘 처음 만나 보네요. 후

후후 게다가 당신은 너무 귀엽고 순진하고."

곰씹어 보니 마치 나를 동물원에서나 구경 할 수 있는 신기한 동물 취급하는

것 같아서 쫌 서운했으나 그래도 칭찬은 칭찬이리라. 하여간 어찌 되었건 나는

오늘 그녀의 호감을 샀다. 그런 어설픈 정복욕이 충족되자 갑자기 나의 도량은

한량 없이 넓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그런 자격지심으로부터 자유로와 졌다.

벌써 두 시간 가량이 지났다. 이제는 기지로 복귀해야 한다. 나는 천인 공노할

반역자였으나 지금 몰래 기어 들어 가면 완전 범죄를 도모할 수도 있으리라.

"아~ 계속 마시니까 술기가 오르네. 희근씨, 음 우리 술도 깰 겸 바람이나 쐬러

가지 않을래요? 강변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면 야경이 끝내 주는데."

아~ 그녀의 마법은 너무나도 지독했다. 마법에 빠진 나는 기지 복귀를 재차 몇

시간 뒤로 연기해야 했다.

나는 호주머니에 있는 동전까지 털털 털어서 술값을 지불했다. 이윽고 문밖을

나서자 그녀가 멀찌감치서 나를 불렀다. 이윽고 그녀는 나에게 뭔가를 보여 주

었다. 그건 으~ 우리가 평소에 기생 오라비 꽃가마라고 경멸해 마지 않던 벌쳐였다.

"푸후후~ 벌쳐와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부죠? 아무리 그래도 제 애마를 다

른 똥차 - 어머 죄송해요. 나 취했나봐 -와 비교하지는 말아 주세요. 그건 숙녀

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요. 이건 다른 벌쳐와는 다르죠. 우리 아빠가 저 한테

생일 선물 하신건데 이거 정말 귀한 거라고 하더군요."

겉보기에는 양아치 폭주족 아색히덜이 몰던 벌쳐와 별 다를 바가 없구만. 하여

간 나는 쥐뿔도 없는 자존심에 타기가 좀 민망했다. 아 그녀를 뒤에 태우고 그

양아치 색히덜 처럼 똥폼 잡아도 모자랄 판국에. 그녀는 그런 나의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지 나를 뒷자리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나의 손을 잡더니 대뜸 자기

허리에 둘렀다. 순간 나는 가슴 한구석이 뭉클했다. 그녀의 호의는 너무나도 순

수하고 따스한 것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나의 자격지심은 너무나도 졸렬한 것이

었다. 어쨌든 나는 이 밤에 천사를 품에 안고 저 멀리 알 수 없는 곳으로 여행

을 떠난다. 중요한 건 단지 그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무런 문제 될 것

이 없는거 아닌가?

그녀는 헬멧을 쓰고 시동을 걸었다. 수류탄 터지던 소리를 내던 그 양아치 색히

덜의 싸가지 없는 벌쳐에 비하면 그녀의 애마는 주인의 성품을 닮아서인지 우

아하고 사근사근했다.

나와 그녀를 태운 꽃마차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기분

좋게 내 뺨을 흐르고 지나간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며 나의 코와 이마를 간지럽혔다. 도로에는 지나다니는 차량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는 구불 구불 몇 블럭을 돌아서 강변 도로로 진입했다. 도로

옆을 따라 죽 늘어선 가로등이 우리의 앞길을 흐드러지게 비추어 주고 있다. 이

윽고 강렬한 네온 불빛이 우리의 머리 위로 하나 둘 씩 지나가고 시선 멀찍한

곳에 보이는 강물 수면에는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잔잔히 반사되고 있었다.

나는 문득 도취되어 그녀의 허리를 더욱 힘쎄게 감아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늘씬한 목덜미에 나의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의 체취 섞인 그윽한 향수가 시원

한 맞바람과 뒤섞이여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나의 숨결이 그녀의 목

덜미를 간지럽히자 몸을 움찔했다. 순간 당황했으나 그녀는 그러면서도 나의 숨

결을 즐기는 듯 했다. 요런 장난꾸러기 같으니라구.

평온하고 그윽한 분위기였다. 시간이 이대로 정지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들었

다. 그러나 그러한 분위기는 뒤쪽에서 갑자기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나며 산산

히 부서져 버렸다. 이빠이 열이 뻗친 나는 뒤를 돌아다 봤다. 저 뒤에서 경멸스

러운 벌쳐 한 무더기가 나타난 것이었다. 저 십색히덜은 잠도 없나부다.

"어이~ 분위기 참 조오타~"

"근디 완죤히 언밸런스네... 어찌 저렇게 잘 빠진 아가씨가 저렇게 망가진 애랑

같이 다닌다냐?"

"어이 아가씨, 이상한 애랑 놀지 말고 우리와 합류하는 게 어때? 응... 우리가

잘해줄께"

"야~ 좋은 말 할 때 분위기 깨지 말고 빨랑 꺼져. 입에서 젖내 나는 것덜이 누

님의 향기로운 한 때를 개판 오분전으로 만들어 놔?"

나는 그녀의 입에서 그런 거친 소리가 튀어 나오는게 너무나도 쇼킹했다. 그러

나 내게 그런 그녀의 모습은 상쾌한 환희로 다가 왔다. 나는 평소에 볼 수 없었

던 그녀의 다른 모습을 은밀하게 엿본 거였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근데 요 양아치 색히덜이 지네 수작이 수틀렸다고 생각하니 부아가 나나 보다.

갑자기 우리를 전후 좌우로 포위하였다. 크랙션 울리고 뒤에 있는 놈덜은 하이

빔 쏘고 난리가 났다. 게다가 옆 쪽에 있는 놈덜은 동체를 부딫치며 시위를 벌

리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나는 어쩔줄 몰라 당황했다. 명색이 남

자였으나 내 힘으로 만들 수 있는 뾰족한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내가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워 그녀의 눈치만 살폈다. 아~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

는 의연하고도 당당했다.

"야~ 니네 자꾸 까불면 크게 다친다."

그녀가 악셀을 잡아 당기자 우리가 탄 벌쳐는 우~웅하는 힘찬 엔진 소리를 내

뿜었다. 그녀는 벌쳐의 앞머리를 치켜 들더니 그대로 앞을 향해 돌진하였다. 놈

덜은 갑자기 그녀가 윽박지르자 순간적으로 당황했고 포위진이 흐트러졌다. 이

때 그녀는 놈덜의 스크럼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아슬아슬하게 추월했다. 하마터

면 충돌 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으나 그녀는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았

다. 이윽고 그녀의 벌쳐가 가속을 내기 시작했다. 뒤통수 한 대 맞은 이 양아치

색히덜은 약이 올랐나 보다. 얘네들도 속력을 내면서 부지런히 쫓아 오는게 아

닌가. 한 밤에 펼쳐 지는 치열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었다. 이 것덜이 여자한

테 진다고 생각하니 오기가 솟는지 우리 뒤를 악착같이 쫓아 왔다. 그래도 나의

그녀는 침착했다. 그녀는 고가 도로가 나타나자 능숙하게 코너를 돌았다. 그러

면서 핸들에 붙은 녹색 버튼을 잽싸게 눌렀다. 털썩 하며 뭔가가 동체로부터 바

닥에 떨어 지자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헤이 즐거운 한 때였어 ... 그럼 이만 안녕"

갑자기 50미터 후방에서 쾅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렸다. 놀라서 돌아 보니 허

연 연기가 자욱했다. 갑자기 연기 속에 휩싸이자 시야 확보를 못한 녀석들이 지

네들끼리 연속 추돌을 일으킨 것 같았다. 개중에는 길 밖으로 튕겨 나간 놈덜도

있었다. 그 소동속에서도 다행스럽게 크게 다친 놈은 없는 듯 싶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 하더니 내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후후후~ 원래 벌쳐는 지뢰 매설 수행 임무에도 쓰이죠. 그렇다고 전 그렇게 잔

인한 계집애는 아니예요. 방금 사용한 지뢰는 원래의 군사용 지뢰가 아니고 사

제 전파상에 주문해서 최루 가스만 나오게 개량한 거니까요. 저런 싸가지 없는

애덜은 죽일 가치도 없어요. 그저 따끔하게 혼만 내주면 충분하죠."

갑자기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하도 요란을 떠니까 군경들이 출동한 것

같았다.

"후후후~ 귀챦게 됐네... 이럴 땐 빨리 이곳을 벗어 나는게 상책이죠... 자 제 허

리 꼭 잡으세요..."

그녀의 벌쳐는 가속을 내기 시작하였는데 아까와는 달리 스피드가 엄청났다. 이

건 완전히 땅 위를 달리는 비행기였다. 아까보다 속도가 두 배는 더 붙는 것 같

았다. 뒤따라오던 군경들은 그녀와 내가 탄 벌쳐의 속도에 질렸는지 아예 따라

올 엄두도 못내고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식이었다. 결국 우리 잡는 건 포기

하고 길바닥에 널부러진 애덜만 줄줄이 붙들어 갔다."

추격권을 벗어나자 그녀는 이윽고 시내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녀는 내내 애마에

대한 칭찬만 늘어 놨다.

"후후후~ 이런게 진정한 Terran 군의 벌쳐죠. 적을 헤집고 정찰을 하며 지뢰로

골탕도 먹이고.... 게다가 제 애마는 최신형 Ion 엔진을 장착하였기 때문에 기존

구식 기종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죠. 저는 가끔가다 내 애마가

드롭쉽보다 빠르다고 착각을 할 정도니까요."

그녀의 드롭쉽이 내게 보여주었던 느낌은 여성스러운 따스함, 부드러움, 자상함

그런 이미지였다. 반면에 그녀의 벌쳐가 내게 보여준 느낌은 이거와는 확연히

다른 말괄량이 기질과 활달함이었다. 요 두가지 이미지가 교묘히 배합되어 나에

게 그녀는 양파처럼 까도 까도 그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였다. 어쩌면 한 장 한

장 벗겨진 양파 껍질이 그녀의 모습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아 그녀의 신비감은

나에게 말할 수 없는 동경심과 왠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다는 연민을 불

러 일으켰다.

이윽고 그녀와 나는 내 아파트 근처에 도착하였다.

"오늘 하루 즐거웠어요. 그리고 지은씨는 참 재밌는 분 같네요."

"후후후... 마치 표정이 오늘이 마지막인 듯 하군요... 자 여기 제 연락처 있어요.

뭐 나중에 심심하면 전화 하세요. 오늘 제가 얻어 먹었으니 한 번은 걸찍하게

제가 대접해야 겠죠?? 저 그럼 이만 가볼께요."

그녀는 이윽고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시간은 벌써 새벽 1시. 멸치 고참이 뭐

라 꼬치 꼬치 캐물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별로 겁이 나질 않았다. 아마

도 그녀가 나에게 씌워준 사랑이라는 보호 마법 때문인 것 같다. 그나저나 그녀

가 남겨준 연락처나 잘 숨겨야 할텐데.

 

 

 

어느 테란병사의 삶 (15)

 

"얌마, 너 어제 저녁에 어디 있었어?"

"아 네~ 아니 저 그게...."

"이 색히 수상하네.... 꼴통한테 들었는데 너 어제 그 술집에서 전화 걸어 나 찾

았다며? 그래 놓고 몇 시간 동안 사라지다가 꼭두 새벽에 코빼기를 비춰?"

"김일병님, 저 그게 아니고..."

"이 색히, 너 뭐 숨기는 거 있지. 이게 암만 봐도...."

아 글렀다. 멸치는 넘 집요했다. 게다가 내 속사정을 다 아는 것 같았다. 역시

이 세상에 완전 범죄란 존재하지 않는 건가??

"너 임마, 어제 너 잘 때 니 몸수색도 해 봤어. 근데 날 속여? 이 색히가 죽을려구."

윽 몸수색. 그럼 설마 그런 지저분한 짓을.... 난 그녀가 남긴 쪽지를 내 팬티 속

에 숨기고 잤다. 윽~ 수틀렸을 땐 무조건 불고 잘못했다고 비는게 살아 남는 방법이다.

"김일병님,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어제 이중위를 봤는데요..."

"그런데 뭐 임마, 어떻게 된거야??"

"제가 고참의 연인을 가로챘습니다. 어제 그녀와 술 마시고 같이 드라이브 나갔

습니다. 절 한번만 봐주십쇼. 정말 잘못했습니다."

"뭐야, 어라 이 색히 봐라?"

아 난 이제 죽었다.

"야이 색히야, 사기를 칠려면 좀 씨알이 먹히는 사기를 쳐라. 여자 하나 꼬셔

오는 것도 제대로 못해 빌빌 싸는 색히가 상황이 급하다고 그 딴 말도 안되는

얘길 꺼네 색히야? 얌마 이 중위가 뭐 먹을게 있다고 너랑 그딴 짓을 하냐? 너

솔직히 불어. 어제 너 땡땡이 깠지? 그래 놓고 마치 그 술집에서 전화한 것처럼

사기친 거지?"

잉~ 멸치가 뭐 먹다가 체했나?

"너 임마 니 옷에서 여자 향수 냄새가 폴폴 나더라. 니 셔츠에서 여자 머리카락

도 나오고... 이 색히가 하늘 같은 고참의 말은 거지 발싸개 같이 여기고 땡땡이

를 까? 이 색히가... 너 어제 오팔팔에 객고 풀러 갔지? 아니야?"

오늘 나는 죽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완전히 죽은 게 아니고 반만 죽었다는 점

이다. 멸치는 이상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나의 완전 범죄를 도왔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어설픈 설득이었다. 나같이 미천한 종자가 그렇게 어여쁜 용가리 통뼈

아가씨랑 데이트를 즐겼다고 하면 내 자신이라도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그래서

여성의 심리란 묘한 것이고 요러한 심리도 모르는 멸치 고참은 꼴통 말마따나

장가가기 되게 힘들 것 같았다.

 

"제군들, 전술 습득의 길은 멀고도 험한 것이다. 여태까지 제군덜은 군인으로서

의 재능이 빵점이었으나 나같이 유능한 교관을 만나 이 정도라도 큰 것이다. 제

군들은 이를 가슴 깊숙한 곳에 새겨 두기 바란다.

 

오늘부터 새로운 훈련 일정이 시작된다. 물론 더욱 고되고 힘들 것이다. 그래도

옛 지구 속담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말이 있다. 제군덜은 많이 아플 수록

많이 성숙될 것이다. 즉 다 니들 잘되라고 이러는 거다. 요 점 또한 깊게 명심

하고 훈련에 충실히 임해 주길 바란다.

자! 2열 횡대로 헤치어 모으~어. 어이 앞 줄 번호 구령 실~씨이"

"하으나아" "두우울" "서이엇"..... "스으무~울 이상입니이다으아~."

새로운 훈련이란 말에 우리 모두는 군기가 잔뜩 들었다. 교관도 우리가 쪼는 모

습에 만족을 느꼈는지 별다른 얼차려 없이 곧장 본론으로 돌입했다.

"자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이겠다. 야 너희 조교 둘 나와. 앞에 있는 조교가

갑이고 뒤에 있는 조교가 을이다.

을 앉는다. 자 앉았으면 두 손 모으고 깍지를 낀다. 양 손 검지 손가락을 깍지

낀 채로 앞으로 쭈욱 편다. 자 폈으면 검지 손가락 끝이 서로 닿도록 한다. 자

구령은 갑은 찔러 을은 영차이다. 을은 '영차' 구령을 맞춰 갑의 엉덩이 속 깊숙

한 급소를 노려 찌른다. 실시"

"찔러"

"영차"

"으~ 으~ 찌찌일~르어"

"이엉차"

"으윽~ 으, 헉헉헉 찌~으~ 찌~으을~ 으윽... 찌으르... 어"

"이엉차"

"하아 하아 으윽... 찌~찌~찌~찌~찌... 하아 하아 하아 찌...."

'찔러'라는 구령을 제대로 부를 수가 없었다. 갑자기 힘이 쭉 빠지며 하반신이

마비되어 온다. 뾰족한 손가락이 날카로운 비수로 돌변하여 나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하고 있다. 내 옆에 서있던 놈은 외마디 비명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혼절했

다. 아 서있을 힘도없다. 그냥 쓰러져서 뒹굴고 싶다. 그러나 으윽~ 이를 악물

었다. 그래 덤벼봐라. 나의 시련. 의연히 맞서 싸우리라.

"임무 교대한다. 앞 줄과 뒷 줄은 잽싸게 위치를 맞바꾼다. 실시"

용솟음치는 복수심. 이 색히는 좀 전만 해도 나의 고통을 감상하는 사악한 변태

가학자였다. 나의 가멸찬 공격을 받아 봐라. 이힛

"영차"

"으~아~악 찌.. 찌"

"이엉차아~"

"왁, 아아 아악 윽 으 찌... 제발... 찌... 제~에 바~아.... 흑흑흑"

"이~어~엉~츠아"

"아~아악 아아, 하아 하아 하아 으~ 찌 ~으흐 흐흐흐 찌일... 윽"

이 훈련에서 내가 살아남는 길은 단 하나였다. 내 앞 놈이 기절할 때까지 혼신

의 힘을 다해 찌르는 것. 만일 적을 어설프게 놔주었다간 천만배나 되는 피의

복수가 나에게 닥치리라.

 

결국 X침 서바이벌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비겁한 방법을

동원해야만 했다. 규정과는 틀리게 검지 손가락 말고도 가운데 손가락도 쓴 것

이었다. 덕분에 나의 비수는 두 배로 강화되었고 강력한 나의 일침에 내 가상

적은 그대로 꼬꾸라 졌다. 나는 페어 플레이로 선전하지 못한 내 자신이 못 견

딜 정도로 밉쌀스러웠다. 그러나 사회는 내가 페어 플레이를 하도록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약자였기에 그런 치사한 방법에 물들었던 것이다.

서바이벌 게임의 패자와 약자는 그 댓가도 칼로 베듯 선명했다. 쓰러진 놈덜은

퇴근 때까지 연병장을 오리 걸음으로 X뺑이 까야 했다. 승자는 사회 봉사를 하

러 떠나야 했다. 이 또한 강자만이 베풀 수 있는 고귀한 임무라고 우리의 후까

시 교관은 내내 강조했다. 우리의 사회 봉사 임무는 Hides 거리 청소였다. 우리

는 퇴근 시간까지 사람덜 다니는 거리에 휴지를 줍고 돌아 다녀야만 했다. 그래

도 연병장 오리 걸음보단 이 일은 껌이었다.

열심히 거리를 쓸고 있는데 저 쪽에 양아치 색히덜이 기생 오라비 꽃가마를

잠시 세우고 담배를 꼬나 물고 있었다. 이 십색히덜이 도로를 전세 냈는지 담배

꽁초를 여기 저기 버리는게 아닌가. 열받았으나 개겼다간 국물도 없을 것 같아

잠자코 그 옆에서 담배 꽁초를 쓸어 담았다.

"어휴 쓰벌 완죤히 한 밤의 강간이었지. 야 기집애라고 깔보고 잘 못 건드렸다

가 줄초상 나는 줄 알았어."

"이런 비엉신 색히덜. 얌마 상대를 봐가면서 게겨야지 넌 계속 촌티만 내고 다

니냐? 이 색히덜 간덩이가 부었구만 게는 우리 벌쳐 라이더 사회에서는 홍일점

인데 별명이 '구미호'야. 이 색히야... 게 벌쳐는 우리가 암만 지랄을 떨어도 기

스 하나 못 낸데두..."

"어이 쓰벌 수리비 때문에 난 이번 학기 등록도 포기할 정도야. 와 재수도 없지."

며칠 전 우리의 데이트를 방해했던 그 색히덜인 것 같았다. 걸리면 난 그날이

제삿날이었다. 다행히도 내 얼굴을 알아 보는 색히덜은 없었다. 난 지은씨가 그

렇게 유명세를 타는 인물인줄 몰랐다.

 

아 떨리는 맘에 전화를 걸었다. '뚜~, 뚜~' 한참 후에 딸깍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이지은입니다. 실례지만 누구세요?"

이익~ 나의 천사. 난 혹시나 해서 걸었을 뿐인데...

"저... 기억하시겠죠? 양희근 이병입니다."

"어머 희근씨, 음.. 그동안 별 일 없으셨구요? 근데 왠일이세요??"

"저~ 다른 게 아니고... 뭐 오늘 별일 없으시다면 저랑 같이 ~ (으윽) 저랑 같이

술이라도 한 잔 괜챦겠습니까?"

"호호호, 마냥 샌님인 줄 알았는데 애프터도 해 오고 희근씨 보기 보단 박력있

네요?? 근데 어쩌죠. 음 호의는 감사드리지만 저도 오늘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서."

".... (이런 쓰벌) 뭐 할 수 없죠. 그럼 뭐 나중에라도 하죠."

"아 잠깐만요. 기껏 전화도 해 주셨는데 이러면 재미없쟎아요. 음 희근씨 그럼

이건 어떨까요? 제 친구들이랑 희근씨랑 같이 만나는 것도 괜챦을 성 싶은데..."

이 여자는 정말 내게 행운을 몰고 온다. 친구들이라.... 옛 지구 속담에 '유유상

종'이라는 말도 있다. 만일 내가 가서 잘만 하면 흐흐흐 늠름한 우리 쪽 넷, 잘

빠진 저 쪽 넷해서 기생 야유회라도....

"아 좋습니다. 전 무조건 OK이네요... 근데 약속이 어떻게 되는데요??"

"음 우리 만났던 그 술집인데요. 1층 말고 3층으로 오세요. 시간은 7:00이고요."

오늘은 꼴통이 당번 서는 날이라 속으로 흠찟했지만 다행히도 1층 아닌 3층이

란다. 좋아 좋아.

"네 그럼 약속 시간 늦지 않게 부리나케 갈께요."

나는 빗자루를 움켜 잡고 신바람이 나서 거리를 쓸었다. 지금 시간은 4:00. 이제

한 시간 후면 퇴근이고 나는 부리나케 집에 가서 전투복 챙겨 입고 그녀와 그

녀의 무리가 있는 그곳으로 달려 가면 된다.

 

나는 소품을 챙겨 들고 근처 공중 화장실로 달렸다. 무스 쳐 바르고 케주얼 하

게... 그러면서도 우아하게.... 이런 짓을 숙소에서 감행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드디어 술집 도착. 나는 보무도 당당히 3층을 향해 올라갔다.

"어이 이봐요. 얼굴이 낮선데? 신분증 좀 봅시다."

"예, 실례지만 무슨일로?"

"아 나 여기 웨이턴데 당신 말야. 거기가 어덴 줄 알고 겁도 없이 올라가? 거기

는 장교 전용이라구."

어이 쓰벌. 그래도 내가 누구인가? 내가 먹은 군대 짠밥이 얼마인데...

"아 이지은 중위님께 보고 좀 드릴께 있어서 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하이구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3층은 장교 전용이기 때문에 철저

한 고객 관리를 통해 최고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죠. 입장 좀 봐주세요. 아 그리

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 중위님한테 저의 가게 선전 좀 많

이 부탁드립니다. 헤헤헤"

안내를 받아 모퉁이를 돌고 돌아 룸에 도착하였다. 이제 이 문을 들고 가면 귀

여운 우리의 이지은과 그 일당들을 보게 된다. 푸하하하. 나는 박력있게 문을

확 열어 젖혔다.

"음~ 지은씨, 지은씨가 말한 색히가 저 색힌가 부지?"

"후후후 땅개 하바리가 감히 이곳 3층까지 승천하시다니... 이거 정말 놀라운걸?"

얼렐레~ 여자는 오직 지은씨 하나 뿐. 모조리 X알 달린 색히덜이다. 게다가 난

하도 당해서 나한테 대하는 태도만 봐도 저 색히덜이 뭐하는 놈덜인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 저 색히덜은 용가리 통뼈 황태 색히덜 아닌가?? 음 징그럽게

귀여운 놈덜이다. 너무 귀여워서 차라리 오버로드와 입맞추고 싶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아~ 희근씨, 인사해요. 이 쪽은 양 희근 지금은 비록 이병이지만 앞으로 장래

가 촉망되는 유능한 인재죠."

"후후후~ 이봐 나는 고문기 소위다. 너에 대한 얘기는 뭐 여기 지은씨한테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이봐, 우리는 통성명 생략할께, 언제 우리가 또 만날 일 있겠나, 하하하하"

이곳 생리는 뻔하다. 더럽든 무섭든 똥은 안 밟고 피하는게 최선책이리라.

"저 이중위님, 급한 일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가봐야 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희근씨, 오늘 제가 모처럼 초대했는데 그냥 가시긴가요? 후후후 그냥 평소대로

편하게 있으시면 되요. 자꾸 빼면 제가 섭섭하쟎아요."

"하하하 하여간 지은씨 이국 취미는 못 말린다니까. 이봐 지은씨도 저렇게 목매

다는데 좀 있다 가. 덕분에 우리도 재밌는 술자리가 되겠구만."

이 쓰벌, 천사의 부탁이 불지옥 속에 머무르는 거라니....

이윽고 술이 한 순배 돌았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눈치보며 삐루를 빨았다.

"후후후 의왼데. 지은씨 말로는 넌 쐬주만 먹는다고 들었는데. 맥주도 입에 맞

나부지."

"동태들의 낙은 맥주라쟎아. 우리따라 해야 그나마 지네들이 뻐기고 다니지. 야

문기! 거 너무 뭐라하지마라. 제 얼굴 빨개지쟎아. 하하하하"

 

 

"음... 니가 이번에 Zerg를 상대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지 아마. 지은씨가 드롭

쉽에서 촬영한 필름을 편집해서 나한테 비디오로 보여주더라구. 정말 뽀다구 나

던걸. 왠만한 삼류액션 영화는 저리 가라였어. 후후후 넌 정말 운이 없군. 그나

마 지금이 20세기 였다면 영화 배우로 앞날이 창창했을 텐데" (1)

속에서 불이 났다. 저 색히덜은 나의 죽을 뻔 했던 고생을 안주 삼아 씹고 있

다. 이지은인지 뭔지 하는 그 여우 같은 년은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싱긋 웃으며 술이나 마시고 있을 따름이었다. 몹쓸 년.

"너의 공적은 나도 개인적으로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말야. 후후후 Terran 사

회는 그렇게 만만한 데가 아니지. 지금이야 너는 이 세상 뭐든게 다 될듯해 보

여도 젊다는 혈기만으로는 크기가 어려운게 Terran 사회이기도 해. 하여간 우

리는 너희 동태덜의 공로를 십분 취하한다. 전쟁은 종합 예술이지. 결코 누구

한 두 사람의 힘으로 승리를 취할 수는 없는거야. 위에서 지휘하는 우리 같은

사람덜이 있다면 너 같이 몸으로 때우며 적의 총알을 낭비시키는 색히도 필요

한 거니까."

"고소위님, 너무 말이 심하십니다. 소위님이 보시기엔 어땠는지 몰라도 저에겐

죽을 고생이었습니다. 저로선 살아 남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습니다. 결코 총

알 받이가 되고자 뛰어든 건 아니었습니다."

"푸하하 제 좀봐. 샌님인 줄 알았는데 문기 니 말에 어지간히 화가 났나 본데?

푸하하 정말 재밌다. 하긴 옛 지구 속담에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덴덴다. 야 문

기 조심해라. 저 색히 너 치겠다."

"후후후 이봐 니가 드롭쉽에 탈려고 끙끙 댈 때 널 습격하던 놈덜이 아직도 생

생하겠지? 그 놈덜 이름은 알고 그 놈덜과 싸웠나?"

Zerg 개떼.... 그 놈에 대한 악몽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그 놈의 이름은 아

무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후후후 그 놈의 이름은 '저글링'이라고 한다. Zerg 중 가장 몸집이 작아서 그렇

게 불리우지. 내 말이 무슨 이야긴 줄 알겠어? 총알 받이는 적이 어떤 놈인지

뭔지 따위를 머릿 속에 넣어둘 필요가 없어. 그저 상부의 지시에 따라 무조건

갈기면 되는 거야. 동태덜은 두뇌없는 무뇌아들이다. 따라서 우리덜은 너네 들

을 WIBE를 통해 작전 지시하고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는거지. 푸하하~ 뇌가

없는 놈 중 넌 약간 사나운 놈이었을 따름이다. 이게 Terran 사회 유지에 큰

값어치가 될지는 몰라도 자기 주제는 알고 덤벼야지... 훗훗훗"

순간 처연함이 내 몸을 감고 돌았다. 저 색히 말은 너무나도가슴 아픈 말이었

으나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털버덕 주저 앉아 울고 싶었다. 모멸감과 좌절

감에 죄없는 맥주만 쪼면서 여기를 빨리 빠져 나가고 싶다.

"호호호, 난 말빨만 쎄고 행동은 비리비리한 남자가 젤 밥맛 없더라. 이봐 문기

씨 마치 이 세상 Zerg는 혼자 다 상대할 것 같이 지껄이는데... 문기씨는 진정한

군인은 뭘로 평가 받는지 모르는것 같아."

"이봐 이지은, 내가 뭐 그렇게 틀린 말 했나? 저 놈한테는 잔인할지 몰라도 그

게 Terran 사회의 현실이야. 저 색히가 분수 모르고 날 뛰는 것 같아서 오래

살라고 노파심에 한 말이다. 훗훗훗 난 저 녀석이 너의 이국 취미에 노리개감이

되는게 불쌍해서 한마디 던져 주었을 뿐이야."

"진정 훌륭한 군인은 제일 강한 군인이야. 힘있는 놈이 힘없는 놈을 밟고 일어

서는게 진정한 군인의 위계 질서지. 희근씨는 니가 윗사람에게 잘 보일려고 실

실 쪼개며 맥주캔이나 들고 돌아 다닐 때 직접 Zerg와 맞서 싸워 이긴 강한 군

인이지. 후후후 저글링? 명칭 따위가 그렇게 중요해? 군인에게 진정 중요한 건

적의 명칭 따위를 세는게 아니라 적의 목을 몇마리나 베었는가 그게 아닐까?"

"이봐 이지은, 나는 저런 동태덜을 위에서 지휘하는 신분이야. 그럼 저 녀석들

처럼 나도 그 지저분한 Zerg 색히덜이랑 맞서 싸우라는 말이야? 그런 노가다를

안 뛰어도 만인이 내가 강하다는 건 다 인정하는 사실 아니야?"

"후후후 그게 너의 힘이니? 니 부모님의 힘이지.... 난 니가 얼마나 강한지 눈으

로 확인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너의 능력을 인정할 수 없어. 그런 주제에 건방

지게 훈계나 하러 다니고... 후후후 고문기 난 너한테 실망이야."

아 이 얼마나 나란 존재는 우둔하단 말인가. 그녀는 나를 위해 변호를 해주고

있다. 방금 전까지 내가 그렇게 속으로 욕하던 그녀가. 나는 너무나도 감격스러

웠다. 군인은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라는 말을 꼴통한테 들은 적

이 있다. 꼴통은 그 말 한 색히는 미친 색히라고 경멸했으나 그 사람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하하 이봐 지은씨의 어린애 투정같은 말에는 나도 두손 다 들었어. 난 Zerg

따위는 수백 수천이 덤벼도 겁나지 않아. 그럼 그걸 어떻게 보여 주란 말이지?

여기에는 Zerg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데.... 후후후"

"Zerg 따위를 잡지 않아도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Zerg를 때려 잡은 사람을 니

가 이기면 결국 니가 Zerg보다 강하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오호 그래.... 좋아.. 그건 나도 바라마지 않던 일이야. 지은씨는 나랑 저 색히가

맞짱이라도 뜨길 원하는 모양인데... 그러지 뭐. 그러쟎아도 몸이 근질 거려 죽

을 지경이었지..."

잉 일개 이병이 소위랑 일대일 맞짱을?? 그건 미친 짓이었다. 지는 것은 싫지만

이기는 건 지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봐 너희들 모두,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이건 계급을 떠나 개인 간의 일

대 일 맞짱이야. 수틀렸다고 치사하게 직권을 남용하는 일은 없도록 해. 만일

그런 짓거리를 벌렸다가는 난 너희덜을 웃음 거리로 만들겠어. 좋아. 상품이 없

는 껨은 흥미가 떨어지겠지? 이기는 자에겐 오늘 남은 하루 단독 데이트를 신

청하겠어. 물론 데이트 비용은 내가 다 내고 단 지는 자는 오늘 술값을 비롯해

서 이곳이 난장판으로 되었을 때 청구되는 비용까지 모조리 문다. 좋지?"

"으~흠, 이거 쏠쏠한데. 천하의 이지은이가 단독 데이트 신청을 한다?? 우하하

정말 싸울 맛이 나는군. 야 애송아 빨리 덤벼! 빨랑 빨랑 니가 뻗어야 내 데

이트 시간이 쪼금이라도 늘지"

"후후후, 그럼 시작해 볼까?"

"이중위님, 전 저는 싫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봐요 희근씨, 제가 있쟎아요. 모든 건 저한테 맡기고 한 번 최선을 다해봐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헉"

"이 색히가 전투 중에 잡담을 해? 야 빨랑 덤벼"

비겁하게도 이 색히는 준비도 안된 상대에게 선제 공격을 해왔다. 나는 재빨리

수비 자세를 잡고 상대를 바라 보았다. 머리 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제일 상책은 이대로 몇 대 맞고 뻗는 것이리라.

"희근씨, 그 딴 군인 정신으로 뭘 어쩌겠다는 거죠?? 후후후 그렇게 살려면 오

늘 그냥 목숨을 끊어 버려요."

지은씨는 나를 응원하고 있다. 내가 이기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그녀를 위해 죽겠다고 맹세한 몸이다. 어차피 수틀린 거 최선을 다할 도리 밖에

없었다.

휙~하고 고소위의 오른쪽 스트레이트가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어서 왼쪽

훅. 으윽... 왼쪽 훅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나는 뒤로 주춤거렸다. 이어서 고소

위는 옆차기로 나의 안면을 가격했다. 아 그가 신은 묵직한 워커발은 그 자체가

흉기였다. 저거에 맞으면 나는 골로 간다. 아 워커가 나의 앞 머리카락을 스쳤다.

'맞짱 뜰 때는 말야. 절대 상대의 손발을 보면 안 돼.... 그러면 니가 당하지... 절대로

 

상대의 눈을 봐라. 그러면 상대가 너의 어딜 공격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참고로 울 아버지는 맞짱의 천재셨기에 술만 드시면 맨날 쌈질 타령이었다.)"

나는 고소위의 눈을 쳐다 보았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나의 복부를 향하고 있었

다. 갑자기 나의 안면으로 그의 왼쪽 스트레이트가 날라왔다. 그러나 나는 그의

눈동자를응시하느라 수비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안면 수비는 거의 포위한 채

배를 두 팔로 감싸 보호했다.

'욱'~ 천만다행이었다. 안면을 향한 공격은 위장 공격이었다. 안면을 왼주먹으로

때리는 척하면서 오른쪽 주먹으로 나의 복부를 강타해 온 것이었다. 덕분에 그

의 오른 주먹은 나의 가드위에 맞았다. 팔이 찡했으나 큰 타격은 없었다.

"맞짱은 말야, 결국 한 번이야 한 번. 잔 매는 아무리 맞아 봐야 별 소용이 없

어. 따라서 선제 공격이 제일 중요하지. 대개 한다는 놈덜은 첫 한 방에 승세가

결정되기 마련이다."

고소위의 선제 공격은 주효했으나 치명타는 아니었다. 그 자석이 경솔하게 말을

지껄이며 공격하는 바람에 자신의 공격에 힘을 충분히 싣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 수세에 몰려 있었다. 고소위의 빗발치는 주먹을 피하느라 정

신이 없었다. 나는 점점 코너로 몰려 갔다. 상황이 점점 불리해지고 있었다.

"선제 공격이 실패하면 지리한 눈치쌈이 벌어지지... 이 때 하수일수록 공격을

서두른다. 요럴땐 다 때려치우고 계속 웅크리고 있는게 장땡이야. 상대가 공격

이 잘 안 먹혀들면 짜증내고 당황하는 법이거든. 이러면 점점 치명타를 먹일려

고 모션이 커진다. 모션이 커진다는 말은 그 만큼 허점이 잘 드러난다는 말이

지. 따라서 요 허점을 잘 노렸다가 급소를 한 대 빵 하면 상황 끝이다."

몸을 좌우로 흔들며 가까스로 좌우 연타를 막아 냈다. 상대의 공격이 거세졌다.

나는 차츰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죽여, 죽여 버려, 고문기 잘한다. 코너로 몰아서 죽여 버려."

수많은 관중 속에서 지은씨도 나를 보고 있으리라. 지은씨의 얼굴을 보고 싶었

지만 그런 건 양잿물을 들이키는 것 보다 더 위험천만한 짓이다.

뭔가가 등에 닿았다. 드디어 뒤쪽으로는 물러 설 곳이 없는 벽이었다. 고소위는

궁지에 처한 나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봐 애송이, 오늘 정말 즐거웠다. 이제는 푹자기 바란다."

요 말과 동시에 커다란 훅이 날라왔다. 저거에 맞으면 난 끝장이다. 아하~ 그러

나 상대는 크나큰 실수를 했다. 그 색히는 입이 너무 가벼운게 탈이었다. 이 번

에도 똥폼 잡느라고 치고 들어오는 타이밍이 약간 늦었다. 아슬아슬하게 훅이

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상대의 허리가 훤히 드러났다. 이러구 저러구

도 없었다. 나는 오른 발을 치켜서 그의 허리를 후려 깠다.

'어~윽' 나의 오른발이 상대의 허리를 명중시켰다. 상대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렸다. 그의 등덜미가 보였다.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재차 발을 들어

온 몸의 힘을 모아 그의 등덜미를 나의 발뒤꿈치로 후려 찍었다. 만일 내가 오

늘 워커를 신고 나왔다면 고소위는 그날이 황천길이었으리라.

주변이 찬물을 끼얹듯 잔잔했다. 고소위는 썩은 나무모냥 꼬꾸러졌다. 눈이 풀

리고 입에서는 피섞인 침을 토하고 있었다.

"저 색히가 감히 상관을 패! 야 뭐해 저 색히 포위해. 튀지 못하게 막어"

주변에 갑자기 살기가 흘렀다. 웅성 웅성 고소위 색히 응원하던 일당들이 자리

를 뜨고 나를 포위했다. 나는 온 몸에 기가 다 소했다. 거기다가 출구를 봉쇄해

서 빠져나갈 구녕도 없었다. 이렇게 꼼짝없이 당하는구나 생각하니 너무나도 억

울했다. 아까 맞은 왼쪽 눈덩이가 시큰 거렸다.

"호호호~ 정말 웃기는 광경이네?? 한 명을 다섯 명이 떼로 상대하는게 군인 정

신인가?? 후후후 이봐 고소위는 입만 살았지 보잘 것 없는 작자였어. 그런 인간

을 위해 이런 치사한 짓거리를 벌릴 필요가 있는거야?? 후후후 지나가는 개가

보다 웃겠어... 하하하하"

"희근씨 약속대로 오늘 당신한테 데이트를 신청하겠어요. 후후후 여러분 본인은

오늘 약속이 있어서 그만 실례해야 겠네요... 하여튼 오랜만에 즐거운 술자리였

어요.. 그럼 안녕... 집에 일찍 일찍 들어가야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학생덜

이지... 하하하"

일당들은 모두 쥐죽은듯 고요했다. 그녀의 한마디에 꺼벅 죽어 눈만 꿈벅거릴

따름이었다. 이 중위는 나의 팔짱을 끼더니 유유자적 문을 열고 나갔다. 흘끔

뒤를 쳐다보니 모두들 기절한 고소위를 부축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 주 석 ----------------------------------------

(1) 20세기만 해도 잘나가던 직업이었던 연예인은 그후 모조리 퇴출

대상이 되고 그 자리에는 인건비가 싸게 먹힌 가상 배우로 대치 되었다.

따라서 Terran 사회에선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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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테란 병사의 삶 (16)

 

"희근씨, 정말 멋있었어요. 그리고 정말 고마와요. 제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더군요."

"X알 두 쪽 찼다고 여자 깔보는 애들은 그런 식으로 혼꾸멍이 나야 다시는 누

나한테 개기지 않죠... 호호호"

이 여자는 오늘따라 호들갑이 심하군. 하긴 아까 그 일로 어지간히 속이 시원했

나 보다. 울 엄마 말에 의하면 군바리덜은 여군을 무시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하

다고 한다. 여군이야 기껏 승진해봐야 드롭쉽 조종사였고 그나마 무궁화 달기는

하늘의 별따기였으니.....

나는 아무 말없이 강물 위에 점점히 뿌려진 불빛을 세면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지은씨는 젊었을 때의 우리 엄마 모습을 보는 것 같네요. 우리 엄마도 군인을

지독히 경멸하셨어요."

"어머 그게 사실인가요?"

"이런 말 하기 우습지만 울 엄마도 젊었을 땐 한따까리 하던 드롭쉽 조종사였

거든요. 비록 보잘 것 없는 SCV 출신 총각에게 맨몸으로 달랑 시집와서 저를

나셨지만...."

"어머 희근씨 어머니는 정말 로맨티스트다. 정말 멋있는 분이셨군요. 후후후 명

문 집 규수가 사랑 하나만 믿고 달랑 그런 짓을 저지르는게 쉬운일은 아니죠."

그런 짓... 하긴 울 엄마가 미친 년일지도 모른다. 지은씨는 나를 비행기에 못

태워 안달이지만 그래 봐야 나는 하극상을 저지른 것 뿐이다.

"지은씨, 군인은 정말 힘만이 모든 걸까요? 강하면 모든게 다 용서되는 걸까요?"

"하하하.

 

.. 아까 제 행동에 어지간히 삐지셨군요. 전 희근씨의 고통이 뭔지 알아

요. 게다가 희근씨가 죽다 살아난 경험을 제 친구덜이 그렇게 희화하 시킨 거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드려요. 하지만 Terran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해요. 특히 희근씨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강해야죠. 희근씨는 맨주

먹이니까."

"저희 엄마는 저에게 그저 살아 돌아오라고만 그랬어요. 다른 건 하나도 바라지

않는다고. 그저 살아 돌아오라고. 그런데 아까 지은씨 친구분덜은 제가 기껏해

야 총알 받이에 불과하다고 저를 마음껏 조롱했어요. 저의 존재는 과연 뭘까요?

총알 받이.... 총알 받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저는 생명을 구걸하는 구차한 존재

일까요?"

"희근씨, 오늘 따라 마마보이같은 말만 늘어 놓네요? 왜 희근씨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않은거죠? 희근씨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존재를 극복하기 위해 목숨

을 담보로 이 험한 전쟁터에 뛰어든 것 뿐 아닌가요?"

"전 희근씨를 어느 정도 이해해요. 왜냐하면 저는 여자니까요. Terran 사회에서

여자가 출세하기란 미천한 미네랄 두더지가 베틀 크루저 함장이 되는 것 이상

으로 어려운 일이죠. 희근씨,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해요. 그

과정이 아무리 참기 어렵더라두요."

이 여자도 남에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나처럼 자기만의 고민이 있었나 부다.

이 여자가 보여준 기묘한 이중성. 강해져야만 살아 남는다는 병적인 강박 관념.

그건 나와 이 여자가 공유할 수 있는 우리만의 감정이었다.

"오늘따라 희근씨는 근엄한 말만 늘어놓는군요. 하지만 이건 알아두세요. 저니

까 참지 대부분의 여자덜은 희근씨 같이 삶의 존재가 어쩌구 저쩌구 하면 30초

도 붙어 있질 않죠. 후후후 알겠어요. 제말을? 그런 이야긴 고만 하고 우리 어

디 딴데 가요. 젊음은 짧은 거예요. 하도 못해 놀고 지새우기에도 젊음은 너무 짧죠."

하긴 어느덧 이 밤도 다가고 있다. 게다가 지은씨는 퉁퉁 부은 눈으로 봐도 여

전히 사랑스러웠다. 우리는 자리를 툭툭 털고 그녀의 애마가 있는 곳으로 발걸

음을 향했다.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 거죠?"

"왜요? 뭐 특별히 가고 싶은데라도 있나요?"

"아니 그건 아니고... 여긴 처음 와보는 곳이라서요"

"희근씨, 아까 저의 상품은 단독 데이트 + 데이트 비용은 제가 낸 다였어요. 이

곳 행성은 어디를 가도 저와 희근씨 단 둘이 있을 만한 곳은 한군데 밖에 없죠."

이윽고 우리는 낮선 아파트 단지로 들어 섰다. 순간 그녀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가슴이 콩당 콩당 뛰기 시작하였다. 우리

끼리 만난 지는 이제 겨우 2번. 그런데 벌써?? 나는 그녀의 대담함에 혀를 내둘렀다.

"여자 혼자 사는 방이라 흠잡히고 싶지 않았는데.... 손님한테 보여 주기에는 너

무 지저분하죠? 저쪽 소파에 잠시 앉아 있어요. 방 좀 약간 치워야 겠네"

아담한 원룸이었다. 창가 쪽에는 그녀의 침대가 놓여 있었고 작은 탁자와 소파

가 놓여 있었는데 그녀 말대로 방바닥에는 온갖 종류의 잡지들이 널부러져 있

었다. 간이 옷장과 TV, 오디오 세트. 예상외로 소박한 세간 살이들이다. 그래도

소녀 취향이 남아있는지 곳곳에 아기자기한 인형들과 화초를 심은작은 화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을 대충 정돈한 그녀는 구급 상자를 가지고 왔다. 그녀는 찢어진 내 눈에 소

독약을 발라주고 붕대와 반창고를 붙여 주었다. 오디오에서는 잔잔한 세레나데

가 흐르고 활짝 열린 창문으로는 강바람이 솔솔 불어 왔다. 집에 돌아온 것 모

냥 평화롭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물론 긴장이 좀 되긴 했지만.

"어휴, 남자 냄새... 희근씨 좀 닦고 오세요. 후후후 희근씨 양말은 며칠에 한 번

씩 갈아 신으세요??"

나는 순간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뒷머리를 긁적 대며 목욕실로 기어 들

어 갔다. 캡슐은 없고 간단한 세면대와 샤워기만 달린 간소한 욕실이었다. 그녀

의 면박에 어영부영 이 곳으로 쫓겨 들어 왔지만 들어온 순간 얼굴이 후끈거리

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곳은 그녀만이 사용하는 비밀의 장소이리라.

샤워기 스위치를 누르니까 상쾌한 공기가 흘러 나왔다. 공기 속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좋은 향기가 섞여 있었다. 온 몸이 후련해 지는 느낌이었다.

 

샤워 중에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어.. 저.. 누구세요?"

"후후후, 저예요. 놀라지 마세요. 문 밖에 희근씨 입을 옷 걸어 놓았으니 샤워

끝나면 그 옷으로 갈아 입으세요."

그녀가 가져다 준 옷은 집에서 입을 수 있는 티셔츠와 반바지였다. 옷 품이 엄

청 크고 헐렁했다.

"미안해서 어쩌지. 옷이 좀 크죠? 근데 그거 밖에 없어서. 울 아빠 옷이예요. 가

끔 이곳에 오실 때 갈아 입으시곤 하죠."

하긴 시그마 부대 사단장은 엄청난 배불뚝이라서 서있으면 발이 안 보일 정도

였다. 나는 반바지가 그냥 흘러 내릴까봐 내심 걱정이 되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동안 계속 욕실에서 세찬 공기 뿜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건

못견디게 감질 맛 나는 소리였다. 내가 방금 전 샤워 했던 곳에서 그녀가 샤워

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녀는 이윽고 목이 길쭉한 녹색

술병과 잔 두개를 내게 들고 왔다. 그녀가 입은 옷은 소매 없는 헐렁한 원피스

였다. 하얀 원피스는 그녀의 구리빛 피부와 대조를 이루어 그녀의 건강미를 더

욱 돋보이게 했다.

"자 그럼 둘 만의 파티를 벌여 볼까? 잔 받으세요. 제가 한 잔 따라드릴께요."

우리는 가볍게 건배를 하고 술을 들었다. 나는 단숨에 목구멍으로 그 노란 액체

를 털어 넣었다. 흐흐흐 나 터프했어?

"아이, 정말 못 봐주겠네. 희근씨. 그건 그렇게 마시는게 아니예요. 저처럼 예쁜

여자 아이랑 분위기 있는 술을 마실 때에는 천천히 음미해야죠? 아 정말 무드없네?"

어이 쓰벌 이 여자가 왜 오늘따라 사사건건 시비지?

"이건 진짜 와인이예요. 우리 아버지가 운영하는 우주 농원에서 재배한 싱싱한

포도를 따다가 직접 옛날 방식으로 담근 귀한 거죠. 제가 마시는 법을 가르쳐

드릴께요. 자 이렇게 코로 향기를 음미하면서 한모금 입에 머금고 혀를 살살 돌

리면서 조금씩 목을 축여 보세요."

이 향기는 의심 없는 천연 알콜의 향이었다. 알싸한 알콜이 나의 목을 톡 쏘고

넘어간다. 나는 마치 나의 그녀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만큼이나 신

선하고 상큼한 맛이었다.

 

나에게 이 여자는 아직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우연히 스쳐지나 가듯 이루

어진 첫만남 조차도 이 여자는 내가 마치 무슨 오랜 친구라도 되는 듯이 대하

였다. 오늘 내가 아무리 그녀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고 하지만 그녀의 집에

오게 되다니 내겐 너무나도 과분한 처사였다. 이 여자가 정말로 나한테 푹 빠진

걸까?? 나같은 하바리 땅개에게??하긴 울 엄마도 정말 X도 없는 울 아버지에

게 시집 왔으니... 참으로 여자의 심리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아버지의 아들이다. 나라고 뭐 못할 것도 없지 않나? 하긴 지구 옛 속담에 '부

전자전'이라는 말도 있으니

"지은씨, 우리 사이가 오래 된 건 아니지만 지은씨야말로 내가 꿈꿔오던 여자네

요. (윽~ 너무 오버했나?)"

"호호호, 남자덜이란 짐승은 술 들어 가면 다 똑같아지나 봐요? 희근씨는 쑥맥

인 줄 알았는데 사탕 발림도 제법이네요?"

"..... (어이 씨 이게 머리끝에서 날 갖고 놀아?)"

"저도희근씨가 좋아요. 아직 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이른 감정이지만 처음 볼

때부터 희근씨가 끌렸어요. 순진하고 단순하고. 전 잔대가리 굴리는 타입의 남

자는 딱 질색이예요."

오호~ 내가 좋데... 순간 나의 영혼은 무거운 나의 육신을 떠나 이 방 곳곳을 뱅

뱅 날아다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자한테 이런 말 듣기는 난생 처음이었으니

까. 캬~ 게다가 이 여자는 무엇보다 시원시원해서 맘에 든다. 고럼 고럼. 자고로

먹을 것 없는 호두가 껍질 깨기는 무지 어려운 법이지...

"후후후 제 친구가 저의 이런 감정을 이국 취미라고 몰아 붙여서 좀 삐지셨죠?

애써 입으로 아니라고 말해도 희근씨는 워낙 단순해서 얼굴만 봐도 그냥 다 보

이거든요. 이런 타입의 남자는 결코 여자한테 매몰차지 못하죠."

"지은씨 말투가 마치 제가 무슨 지은씨 애완 동물이라도 되는 듯 하군요?"

"그래요. 희근씨 당신은 나의 귀여운 애완 동물이예요. 너무 귀여워서 안아 주

고 싶은... 후후후 그렇다고 절 나쁜 년 취급하진 말아요. 무엇보다도 날 이렇게

만든 건 희근씨니까요."

카~ 이 여자는 정말 절정 고수다. 하여간 남자 약을 슬슬 올리면서도 결코 포기

하지 않게 만드는 내공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살살 넘치는 그 특유의 애교 땜

시 습격을 받고도 나는 그저 허허 웃어야만 했다.

"후후후 나의 귀여운 해피~ 술 한 잔 더 해야지?"

"왈~왈~"

 

근사한 대접이었다. 그녀 말대로 쥐면 터질까 불면 날아갈까 조심 조심 와인을

빨았는데도 방에는 빈 술병이 3개씩이나 굴러 다녔다. 그나마 새로 딴 병도 반

이상이나 비운 상태였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2시를 향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

쯤 돌아 가면 나는 멸치한테 죽음이리라. 그래도 내 엉덩이는 덩치에 못이겨 느

릿느릿 날아가는 베틀 크루저만큼이나 무거웠다. 만일 그녀와 영원히 있을 수만

있다면 나는 내일 무단 결근이라도 서슴치 않고 치루리라.

그녀의 입은 쉴새 없이 조잘 거리고 있었으나 목소리는 장마철 엿가락 처럼

늘어진 카셋 테이프 모냥 조금 꼬여있었다. 그녀는 푸근한 소파에 기댄 채 눈은

천근 만근 무거워 보였으나 용케도 내가 따라 주는 술은 홀짝 홀짝 비웠다. 밑

빠진 독이었다.

"야 희근아~ 마셔 마시어.... 이 누나 끄떡 없으엉~ 헉, 음 조오타!"

아 갑자기 몸이 배배 꼬였다. 아랫 도리가 이상한게... 흠... 술은 다 좋은데 화장

실에 물 빼러가야한다는게 참으로 사람을 귀챦게 한다.

'쉬~이~야~잇'

물 빼고 다시 술자리에 돌아 오니 그녀는 술잔을 쏟은 채 자고 있었다. 나는 그

녀를 가볍게 흔들어 깨우려고 했으나 도통 인사 불성이었다. 난감해진 나는 그

냥 혼자서 10분 정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묵묵 부답이었다.

아~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인가? 그러나 불편하게 소파에 기댄 채로 꾸벅대는

그녀를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겠지.

나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침대로 향했다. 보기와는 달리 그녀는 엄청 무거웠

다. 침대에 누이고 나니 왠지 그녀의 몸으로부터 내 팔을 빼기가 싫어졌다. 얼

마나 보고 있었을까. 자면서 입을 오물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

보였다. 갑자기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가 생각났다. 작자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

만 '별'이라는 소설이었다. 그 소설의 주인공도 지금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그

주인공도 나와 같은 쑥맥이었지만 그래도 차려진 밥상도 못 먹다니 비엉신 아

니야 하고 얼마나 손가락질 했던가. 그러나 그 주인공의 심정을 지금은 이해할

만했다. 자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그만큼 천진 난만하고 순수해 보였기에.....

그러나 그 이야기속의 주인공은 자신의 순수함을 지켜줄 수 있었던 찬란한 별

이 하늘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별은 커녕 달빛도 구경할 수 없다.

하늘에는 희커머둥둥한 구름이 잔뜩 껴있었기에....

순간 그녀가 가르쳐 준 와인 마시는 법이 휙하고 머리 속에 떠올랐다.

코로 그녀의 살내음을 음미하면서 살포시 입술을 입에 머금고 혀를 살살 돌리

면서 그녀의 타액으로 목을 축인다. 아 이 향기는 의심 없는 젊은 여성의 향이

었다. 알싸한 그녀의 타액이 나의 목을 톡 쏘고 넘어간다. 나는 마치 와인을 마

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와인만큼이나 신선하고 상큼한 맛이었다. (삑~ 경고!

너무 야하다...)

갑자기 내 팔에 안긴 그 녀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순간 그녀는 나의 관자 놀이

를 두 손으로 움켜 잡고 진하게 다가 왔다(?). 촉촉하면서도 달콤한 생크림 케

익을 먹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의외로 과격했다. 이런 앙큼한 여우같으니

라구. 나는 그녀의 황포한 공격성에 순간 당황했으나 곧 평정심을 찾고 그녀를

리드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그 때 거울을 봤다면 울상을 지었으리라. 루즈가

뭉개져 입가에 군데 군데 번졌다. 마치 초코렛을 먹다 얼굴에 묻힌 어린애와도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한 쪽 손으로 그녀를 팔베게하고 한 쪽 손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어루만졌

다. 그녀는 간지러운듯 키득 키득하였다. 그녀의 입김이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순간 뭔가가 저 깊은 곳으로부터 치솟는 듯한 격정(?)이 느껴졌다. 나는 용기를

내어 한 쪽 손을 그녀의 가슴 위에 살포시 얹었다. 왠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 심정은 마치 불뿜는 적의 대공 사격을 피해 아군의

고지 위에 착륙해야만 하는 드롭쉽 조종사의 그거와 같으리라. 아 드디어 고지

착륙 성공. 익! 그런데 아 이럴수가. 그녀의 헐렁한 원피스 땜시 눈치채지 못했

는데 아무 것도 없었다. 물컹한 느낌이 내 손에 그대로 전달되어 왔다. 그녀는

순간 '히~이잉'하는 말 울음 소리를 냈다. 그건 마치 나의 혁혁한 전과를 찬양하

는 우렁찬 진군 나팔 소리와도 같았다.

안착한 내 손은 고지 위를 샅샅이 정찰하고 돌아 다녔다. 순간 땅 속에 숨은 저

글링 자석들이 날카로운 발톱을 곤두세우고 내 앞에 불쑥 튀어 나오듯이 그녀

의 꼭X가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 나타났다. 새로 나타난 적을 향해 나의 손가락

은 무참하게 돌격을 감행했다. 그건 육박전이었다. 나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진군 나팔 소리는 점점 우렁차게 퍼져 나왔다.

 

둘 다 헐렁한 옷을 입었는지라 한참을 엉겨 있으니 우리는 옷을 입고 있는건지

벗고 있는건지도 구분이 모호했다. 이미 그녀의 아버지가 입었다는 반바지는 나

의 몸에서 떠난지 오래되었고 상의 셔츠도 단추가 거의 풀어진 상태였다. 소매

없는 그녀의 원피스도 내 옷이랑 처지는 비슷했다. 소매없는 원피스라 위에서

줄줄 흘러 내리고 치마는 돌돌말려 위로 올라 가고 결국 그녀의 치렁치렁했던

흰색 원피스는 한데 뭉쳐 굵은 허리띠가 되어 그녀의 잘록한 허리에 대롱 대롱

감겨있는 상태가 되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곡선은 근사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옷이란 그녀의 참다운 아름다움을 가리는 추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이 여태껏 본 모습 중 제일 아름다왔다. 미끈한 허리는 윤기가 흘렀

으며 우아한 그녀의 목 선과 어깨는 완벽한 황금 분할로 이루어진 예술품이었

다. (아! 걱정된다.... 이 글 짤리지 않을까??)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은씨, 사랑해"

"...... 저도 사랑해요."

남녀 간의 사랑은 가녀리게 타오르는 성냥불과 같으리라. 곧 꺼질 듯 꺼질 듯

위태로와 보이나 일단 기세가 붙으면 세간 살림을 홀라당 다 태워 버릴 지도

모를 화마로 변할 수도 있으니. 욕정은 마셔도 마셔도 목마른 바닷물과 같은 존

재였다. 서로를 탐하면서도 우리는 더 큰 자극을 찾아 서로를 끊임없이 괴롭히

는 욕심장이로 돌변하기 시작하였다. (완죤히 삼류 포르노 소설이구만 쩌비)

이윽고 그녀의 딸랑 한 장도 없어지고 말았다. 아주 어렸을 적 코찔찔이 시절에

울 엄마랑 같이 목욕할 때 빼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미지의 그 곳이 드러

났다. 그건 16년 만의 재회였다.

드디어 적의 중앙 기지가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나는 이제 저 곳을 향해 용감

히 돌진해야만 한다. 진군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나의 그녀는 어서 빨

리 저 곳을 점령하라고 나를 독려한다. 나는 위대한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이번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할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아 그러나 너무 긴장

한 탓이었을까? 나의 가라는 도통 아무리 방아쇠를 잡아 당겨도 총알이 발사되

지 않았다. 순간 나의 당당함은 고개를 떨구고 나를 위축시켰다. 요건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는 일련의 악순환이었다. 위축감은 더더욱 나의 무기가 형편없이

꼬부라지게 만들었고 요게 형편없이 꼬부라질수록 나의 위축감은 더해갔다. 아!

나의 그녀는 이런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할까. 나는 혼자 용빼다가 지쳐서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그녀는 나의 이런 처절한 노력이 재밌나부다. 입가엔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녀는 나를 힘껏 포옹했다.

"후후후, 요런 쑥맥 같으니라구.... 남자가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해요? 자 맘을 편

히 먹고 일루 와요."

그녀는 나의 녹슨 가라에 기름칠(?)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너무 놀랐지만 그

녀의 자상한 배려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렇듯 나를 이해해주는 그녀의 따스한

격려에 천군만마의 힘을 얻었다. 나의 감격은 그녀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으로

바뀌었고 이윽고 사랑은 욕정으로 변신했다. 방아쇠를 당겨 보았다. 아 축처진

나의 가라가 다시금 적을 향한 가멸찬 무기로 변신했다.

이 가라는 사격 자세가 조금 까다로왔다. 나는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 위아래로

열심히 팔굽혀 펴기를 해야만 했다. 나의 가라에 적의 중앙 기지는 유린되기 시

작하였다. 여기 저기서 폭발음과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두 손으로 나의

머리칼을 움켜 쥐고 힘겨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조

금 안쓰러워 보이기 까지 했으나 그건 동시에 나의 기쁨이기도 했다. 아마도 내

잠재 의식 속에 존재하는 사악한 가학성 변태 심리가 이런 부끄러운 기쁨을 유

발하는 것이리라. 그녀에 대한 나의 표현에 극적으로 응답하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는 건 내가 느낄 수 있는 쾌락 이상으로 나에겐뿌듯한 환희였다.

'부르르르~' 이윽고 적의 섬멸을 확인하는 최후의 가라가 발사되고 전투에 지친

나의 몸은 그녀로부터 떨어져 철퍼덕 그녀 옆에 드러누었다. 누운 채로 나는 연

신 숨이 가빴고 온 몸에는 땀이 비오듯 흘러 내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누워있

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싱긋 웃더니 주섬 주섬 옷을 주워 입었다. 이윽고 그녀는 총총 걸음

으로 욕실로 향했고 혼자 남은 나는 베란다로 나와서 담배 한대를 꺼내 물었다.

희뿌연 연기가 하늘을 향해 뿜어지면서 이내 사라져 갔다. 쾌락은 담배 연기처

럼 곧 사라지는 덧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사실 울 엄마

가 울 아버지를 무지 무지 무시해도 밤에는 울 아버지가 황제였다고 들은 바도

있기에....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내가 그래도 오늘밤은 나의 천사를 기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이윽고 베란다에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의 허리를 두 손으로 감고 나를 뒤에서 포옹했다. 나는 곧 몸을 돌려

그녀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 보았다. 그녀또한 초롱초

롱한 눈망울로 나의 눈을 주시하고 있었다. 순간 새로운 의욕이 치솟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두팔로 번쩍 안아 올렸다. 그녀는 나의 목을 두팔로 감고

눈을 반쯤 내리깔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다시 침대로 발걸음을 향했다.

아까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온 몸에 충만했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 4

시를 향하고 있었다.

 

--------------------------주석---------------------------------

아 글이 넘 야해서 올릴까 말까 고민되는데... 최대한 저 나름대로는 자제해서

썼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야하네요....

단 필자의 변이지만 이 글 속에 불순한 의도는 절대로 없음을 알립니다. 두 남

녀의 사랑을 저 나름대로 솔직 담백하게 읊었다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술취한 여자 함부로 건들지 마세요... 이 글 읽

어 보면 알겠지만 우리의 쑥맥 양이병은 순전히 여자한테 넘어간 거예요.... 괜

히 이상한 충동 느끼지 말기를.... -----------------------------------------------------------------

 

 

 

어느 테란 병사의삶 (17)

 

밤새도록 한 숨도 잠을 못 자서 몸이 천근 만근 같았다. 게다가 사지가 욱씬거

려서 걷기 조차 휘청거렸다. 빈말이 사실된다고 진짜 오늘 출근 못 하는 줄 알

았다. 다행히도 우리 일행 중 누구도 나의 알리바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

다. 그저 멸치 고참만이 늦바람 났다고 예의 그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 나를 조

롱했다.

훈련생덜의 눈 가에는 살기가 돌았다. 오늘도 피의 복수전이 벌어지리라. 아 오

늘은 컨디션이 개판이라서 아마도 내가 아작날 것 같다. 사랑은 이처럼 달콤한

듯 하면서도 쓰디쓴 커피같은 것이리라. 오늘은 게다가 재수없게도 내가 맨 처

음부터 앞 줄이었다. 항상 전투는 선제 공격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유리한 거

점을 빼앗긴 것이었다. 드디어 '영차' '찔러'라는 끔찍한 절차를 겪을 것이다. 게

다가 오늘은 아랫도리에 힘이 쭉 빠져 가상 적의 일격에 내가 뻗을 것만 같았다.

"훈련 시작"

교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 뒤에 있던 놈이 막 찌를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윙~하고 울렸다.

"제군들 동작 중지"

아 살았다. 이 순간만큼 교관이 예뻐 보인적이 없었다. 우리는 잽싸게 대강당으

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도데체 무슨 일이지."

대강당에는 군바리들이 빼곡이 차 있었다. 우리는 그나마 늦게 도착해서 맨 뒤

에 서있어야 했다. 이윽고 강단 앞의 대형 스크린이 켜지면서 UNN(Universe

News Network)(1)

 

속보가 흘러 나왔다.

"긴급 속보입니다. Terran 연맹 소속인 Antiga Prime이 Terran 연맹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현재 Antiga Prime 지구장은 반란군의 테러에 의해 피살되었으

며 Terran 연합 수비대는 적의 급작스런 반격으로 궤멸 상태에 빠졌습니다. 현

재 이들 반란군은 과격 테러 단체인 Sons of Korhal의 배후 지원을 받는 걸로

공식 확인되었습니다. Sons of Korhal은 현재 Arcturus Mengks가 이끄는 과격

단체로서 지난 30년간 Terran 사회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며 저질러온 폭탄 테

러 및 요인 암살, 민중 선동 등 주요 범죄만도 수백건에 이르는 악질 반동 분자

덜의 무리입니다. 이번 반란 기도에 가담한 Sarah Kerrigan과 Jim Ranor는

Sons of Korhal의 요주의 핵심 인물로서 특히 Jim Ranor의 경우, 이번 Zerg의

침공으로 초토화된 Mar Sara의 수비대 대장으로 밝혀져 Terran 사회에 더더욱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Terran 연맹은 Antiga Prime의 행위가 반 Terran적인

작태로 규정하였으며 이에 대한 무력 행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였습니다.

Terran 연맹의 공식 입장에 대한 성명을 Edmond Duke 장군이 발표하겠습니다."(2)

"Terran 시민 여러분,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이 Terran 사회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장병 여러분. 지금 우리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였습니다. 우리

는 Terran 사회의 존폐 여부도 확신할 수 없는 Zerg라는 강력한 적과 대치 중

에 있습니다. 따라서 Terran 연맹은 구시대의 대립을 지양하고 서로 힘을 합하

여 Zerg와 맞서 싸우고 있는 국면입니다. 여기에 반하여 현재 Antiga Prime을

점령 농성을 벌리는 Sons of Korhal은 자신의 이기적인 세력 확장을 위하여 우

리들의 고귀한 신사협정을 깨버린 파렴치한 무리들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번 반란의 수괴로 지목되고 있는 Jim Ranor는 위기에 몰린 Mar

Sara 전선에서 저 혼자 살아 보겠다고 군령을 어기고 탈영한 우리 Terran 연맹

군의 수치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저러한 타락한 악의 무리들이 벌리는 작태를

묵과하고 그들과 협상을 벌린다는 것은 우리 Terran 사회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굴욕적인 행위라고 규정하는 바입니다. 이에 Terran 연맹은 무력 시위를 벌려

우리의 내부의 적, Zerg보다 더 파렴치한 적들에 의해 더럽혀진 Antiga Prime

을 수복하고 반란군들을 응징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곧 24시간 내로 진압 병력

이 투입되며 이 성스러운 임무는 본인의 지휘 하에 수행될 예정입니다. Terran

시민 여러분 그리고 장병 여러분, 우리는 구시대의 원한을 버리고 총화 단결하

여 새로운 질서를 수립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반동

분자의 파렴치한 행위에 동요하지 마십시요. 저들은 우리가 분열하고 불안에 떨

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Norad II의 이름을 걸고 여러분에게 맹세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고 돌아 오겠습니다. Terran 연맹의 대표라는 숭고한 이

름으로 우리의 싸가지 없는 내부의 적을 궤멸시키고 오겠습니다."

하여간 Son of Korhal인지 Son of bitch인지 뭔지 하는 놈덜 덕분에 그날 훈련

은 고걸로 땡이었다. 하루 종일 규탄 궐기 대회가 열리고 우리는 'Jim Ranor를

족쳐라'라는 구호를 목이 쉬도록 외쳐야만 했다. Son of Korhal의 파렴치한 행

각을 그린 특집 다큐멘타리를 무려 2시간씩이나 봐야 했고 심지어 Son of

Korhal 규탄 글짓기까지 그날 해야 했다. 나는 글쓰는데는 별 소질이 없었으나

요번 만은 사정이 약간 틀렸다. 그저 'Jim Ranor', 'Sarah Kerrigan', 'Arctus

Mengks'라는 세 사람의 이름을 적고 내가 아는 모든 욕을 뒤에 덧붙이면 잘

썼다고 교관한테 칭찬 먹었으니까....

그래도 아무리 죽일 놈 살릴 놈 남덜은 떠들어도 개인적으로 그덜은 고마운 존

재였다. 그들 덕분에 오늘 훈련은 물 건너 가고 나는 의가사 제대를 면했으니까

게다가 Jim Ranor라는 인물에 대해 내내 욕을 퍼붓는 것도 내키는 일은 아니었

다. 그 사람은 내가 듣도 보지도 못한 나와는 개인적으로 상관없는 인물이기에.

 

아 다큐멘터리 상영 중에 꾸벅 꾸벅 존 보람이 있어서 피곤이 약간은 풀렸다.

딴 색히덜도 모두 그 다큐가 2시간 밖에 안되는 걸 아쉬워 하는 눈치였다. 그날

은 주점도 영업을 폐쇄했기 때문에 당번 설 일도 없었다. 마치 오늘 하루가 휴

일 같아서 넘 기분이 좋았다. 애라이~ 매일같이 반란이나 일어 났으면 좋겠다.

모두들 무료하게 방구들만 긁고 있었다. TV에서 조차 하루 종일 진압군 출정을

생중계 때리느라고 모든 정규 프로그램이 취소되었기에 그저 하는 일이라곤 비

디오를 쪼는 거였다. 가상 현실물엔 진력이 난 나는 그냥 드러누어 꿈결같던 어

젯밤을 반추하며 빈둥 빈둥 시간을 보냈다. 아직도 요염했던 나의 천사의 모습

이 눈가에 어른 어른 거렸다.

"Jim Ranor가 하루아침에 반역자로 낙인 찍히다니...."

"황병장님은 그 사람을 아십니까?"

"그 사람은 유능하고 성실한 Terran 군의 표상이었다. 그의 명성은 Draconics

행성에서도 자자했지... 그런데 하루 아침에 반란군의 수괴라니...."

"그 자는 Mar Sara를 최후까지 수비하다가 저 세상으로 간 줄 알고 있었는데...

용케도 탈출에 성공했나 보군... 흐흐흐 그 생지옥을 탈출하다니.... 나 만큼이나

운빨이 쎈 사람이다. Edmond Duke 같은 쓰레기가 Jim Ranor와 같은 인물을

치러 가다니 후후후 Terran 사회도 갈데 까지 다 갔군."

우리는 모두 안색이 하얗게 질러 버렸다. 저런 체제 전복적인 말을 함부로 했다

 

 

간 잘못하면 즉심에 넘겨져 캡슐행일텐데...."

돌부처는 우리가 당황해 하는 표정은 안중에도 없는 듯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

며 밖으로 나갔다. 멸치는 내심 걱정이 되는지 눈짓으로 나보고 따라 가보라고

지시했다. 나도 주섬 주섬 챙겨 입고 그의 뒤를 따라 나섰다.

 

아파트 주위를 뒤지다 이윽고 돌부처를 발견했다. 놀이터 그네를 타고 까닥 까

닥 거리며 담배를 피고 있었다. 순간 나는 속으로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저렇게

무식하게 생긴 인간이 애덜처럼 그네에 매달려 있다니 의외로 돌부처는 애교도

있고 순진한가 부당.

돌부처는 내가 옆에 있는지 없는지 아는체 만체 그냥 담배만 조지고 있었다. 우

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이윽고 말문을 먼저 연 건 나였다.

"황병장님, 한가지 궁금한게 있습니다."

"저번 Zerg와의 전투 때, 우리에게 덤볐던 그 개떼의 공식 명칭이 저글링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습니다."

"황병장님은 Zerg의 정체에 대해 우리에게 숨기는게 너무 많습니다. 제 생각에

Zerg의 정체를 알면 보다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이런

말 드리기 죄송하지만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서 솔직히 좀 섭섭했습니다."

"너희덜은 무시당할 만 하다."

"..... (잉??)"

"Zerg는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는 가공할 전투 집합체다. 너희 같은 하루강아지

덜은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게 더 안전할 수도 있다. 상대를 너무 잘 알게 되

면 오히려 선입견이나 쓸데 없는 공포심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 무식하면 용감

하다. 군바리는 용감해야 살아 남는다. 군인은 그저 유능한 지휘관의 명령에만

복종하면 된다. Zerg의 제원은 그저 나 혼자만 아는 것으로 족하다. 너희덜이

많이 알아 봐야 주제 넘게 나서기만 할테니까...."

"(잇씨이) 황병장님, 그럼 상부에서도 Zerg에 대해 쉬쉬하는게 황병장님과 같은

이유에서 입니까?"

"반은 그렇고 반은 안 그렇다."

"Terran 연맹 상부의 꿍꿍이 속은 한 이불 속에서 같이 자는 지네 마누라도 모

른다. 나 또한 그러하다. 하긴 Jim Ranor와 같은 인물이 하루 아침에 반역자가

되는 걸 봐도 이건 분명하지. 흐흐흐 두더쥐 넌 말야 너무 호기심이 강한 것 같

애... 내가 충고 한 마디 하지."

"그저 아랫 것들은 모르는게 약이다."

 

나는 주섬 주섬 담배를 한 개피를 끄냈다. 라이터 불을 켜니 어두컴컴한 주위가

환하게 밝아 졌다. 그녀는 옆에 드러 누워 풍선껌을 씹고 있었다. 한 번의 질풍

노도가 지나간 후 우리는 여유롭게 오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아련한 바이올린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베토벤 크로이첼 소나타 2악장, 음악엔 일자 무식

인 나에게 그녀는 그 곡의 이름을 일러주었다.(3) 숨을 죽이며 울려 퍼지는 아

련한 바이올린 소리 드디어 곡은 절정부에 이르고 바이올린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경쾌한 피치카토를 튕기고 있었다. 요럴 땐 '지은씨, 사랑해'라는 말을 달

콤하게 해 주어야 하는데 나란 인간은 무드와는 담을 쌓았는지 무심코 말을 꺼

내 놓고 보니 완죤히 봉창 두들기는 소리였다.

"지은씨, 지은씨는 혹시 Jim Ranor라는 사람을 아세요?"

나의 엉뚱한 질문에 지은씨는 한참 내 얼굴을 빤히 쳐다 보았다.

"후후후, 왠 Jim Ranor? 마치 묻는 투가 그 사람이 내 옛애인라도 되는 것 같네요?"

"Sons of Korhal의 새로운 수괴를 말하는 것 같은데 전 그 사람을 몰라요. 하지

만 Sarah Kerrigan은 잘 알죠."

Sarah Kerrigan?? 지은씨가 그 여자를??

"후후후 그 여자는 Sons of Korhal의 2인자인데다가 유일한 홍일점이죠. 사실

전 그 단체가 뭐하는지 관심없지만 이름은 불공평하다고 생각들어요. Sarah

Kerrigan이 사실상 Arcturus Mengks의 오른팔이면 조직의 이름은 Sons of

Korhal이 아니라 Children of Korhal이어야 되지 않을까요??"

"그 여자가 그렇게 대단한 여잔가요?"

"Terran 연맹 상부는 Arcturus Mengks보다 Sarah Kerrigan을 더 증오해요. 드

센 여자가 나서 대는게 영 꼴불견인가 봐요. Edmond Duke같은 인간은 그녀가

성전환 수술한 게이라고 헛소문까지 퍼뜨리고 다녔으니까요. 후후후 하지만

Terran 여군들은 Sarah Kerrigan의 열렬한 팬이죠. 그녀는 우리 여자덜의 한을

대신 풀어주는 진정한 우리의 영웅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일개 반란군 수괴를 그런 식으로....."

"하하하... 희근씨 왜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해서 저를 웃기죠? 왜 제가 희근씨 사

상이 불손하다고 우리 아빠한테 고자질이라도 할까 봐서요? 하하하"

"희근씨니까 이런 말하지만 사실 Terran 군 상부는 속다르고 겉다른 집단이죠.

모두들 속으로는 이번 반란군 토벌에서 Edmond Duke가 전사라도 하길 원하니까요??"

잉??

"왜냐하면 그래야 연공 서열대로 승진의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기 때문이죠. 사

실상 Terran 군 연맹장은 종신직이거든요. 이권 개입도 어떤 직위보다 짭잘하고...."

"희근씨 Terran 사회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예요. 선악의 구별은 별 의미가

없어요. 그건 오로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기 위한 선전 수단에 지나지 않아요.

오직 강자만이 선으로 대접받죠. 거기에 비하면 희근씨는 너무 순진해요. 그러

면서도 야망은 그 누구보다 크고. Terran의 윗대가리덜이 바라 마지 않는 인간

덜이 바로 희근씨 같은 타입의 인간들이죠. 무엇보다도 명분에 쉽게 휩쓸리고

전쟁터에서 소모품으로 쓰기 용이하고. 마음을 독하게 먹고 영민하게 처신해야

해요. 그래서 강해지면 모든게 구원받죠. 나같이 보잘 것 없는 드롭쉽 조종사에

게 Sarah Kerrigan은 흉내낼 엄두도 못낼 강한 여성이예요. 그녀가 설상 반란

군의 수괴라 할지라도...."

그녀는 확실히 나보다 현실적이고 영악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와 뒹굴며

보여줬던 그녀의 천진 난만함이 오히려 가식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나는 왠

지 모르게 속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모르는게 약이라는 돌부처의 말이 어쩌면

속 편하게 사는 지름길인지도 몰랐다. 표정이 꿍해진 나를 바라보던 지은씨는

싱긋 웃더니 나의 품에 안겼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를 품에 안았지만 머릿 속

으로는 오만가지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UNN 속보입니다. Antiga Prime 반란군 토벌을 위해 출정한 Terran 연맹군이

Zerg의 습격을 받아 커다란 타격을 입었습니다. 아직 사상자 및 피해 정도는 파

악이 되지 않고 있으며 일부 가동되는 통신 채널을 통해 전달 받은 정보에 의

하면 일부 생존한 토벌군 잔여 병력은 현재 Antiga Prime 지상에서 Zerg와의

치열한 국지전을 수행 중이라고 추정됩니다. 이번 토벌 작전의 총지휘관인

Edmond Duke 장군이 승선한 Norad II호는 Antiga Prime 궤도 진입 중 Zerg

공중 병력의 급습을 받아 적도 부근에 불시착하였으며 구조 발신 요청을 접수

하였으나 현재는 통신이 두절된 상태이기 때문에 생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습

니다. 현재 Terran 연맹은 Edmond Duke 장군을 비롯한 토벌군 생환을 위하여

지원 부대를 특파하였으나 Zerg의 저항이 완강한 관계로 성공 여부가 지극히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현재 Terran 연합 사령부는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입실론 부대 사단장인 나까무라 히데유끼 장군이 Terran 연맹장 대행

직위에 선출되었습니다. 그럼 마이크를 긴급 기자 회견 현장으로 넘기겠습니다.

정희선 특파원, 정희선 특파원!"

"네 정희선 특파원입니다. 현재 Tarsonic 지구 Terran 연합 본부에서는 나카무

라 Terran 연맹 대행 주최로 기자 회견이 열릴 예정입니다. 현재 발표장에는

각 행성에서 급파된 특파원들이 분주하게 모여 나까무라 대행이 나타나길 기다

리고 있습니다. 발표 예정시간은 당초 계획보다 현재 대략 15분 정도 지체된

상태입니다. 아 나까무라 대행이 드디어 모습을 나타내고 연단에 올라 섰습니다."

"본인은 이번 Terran 연맹장 대행을 맡게된 나까무라 히데유끼입니다. 전

Terran 시민을 대표하여 이번 사태에 대해 심심한 조의를 표명하는 바입니다.

이번 반란군 토벌 선봉장에 나섰던 Edmond Duke 장군은 Terran 연맹이 내밀

수 있는 최상의 카드였습니다. 그는 훌륭한 사령관이었고 우수한 Terran 시민

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그의 생존 여부도 확인할 길이

없으며 아마도 장렬히 전사하였다는 예측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실정입니

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우리는 내부의 파렴치한 적을 단속하기 위해 최정예 부

대와 유능한 사령관을 잃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따라서 Sons of Korhal

을 위시한 반란군들은 Zerg에 버금가는 제일 타도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Terran 일보의 김요한 기자입니다. 이번 사태 조치로 Terran 연맹은 연맹장

선거를 서두르고 있는데 아직 현 연맹장인 Edmond Duke 장군의 생사도 확인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서두르는 것은 아닙니까?"

"Terran 연맹장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직책입니다. 이 자리가 공백이 생김으

로서 이제 막 총화단결한 Terran 연맹이 와해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릅니

다. 따라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게다가 이번 사태에서

Zerg는 새로운 형태의 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현재까지 Zerg는 지상전에서만

전투가 가능한 걸로 예측되었으나 우리의 판단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게다

가 Zerg의 공중 유닛은 예상 밖으로 엄청난 위력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음이

이번에 밝혀졌습니다. 사태는 더더욱 악화 일로인 상태입니다. 따라서 Duke 장

군에게는 개인적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나 Terran 연맹장을 비워두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Universe Herrald의 Cabin 기자입니다. 이번 사태로 Zerg가 우주전의 능력도

있음이 밝혀졌다는데 Zerg의 공중 유닛 제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현재 Terran 연맹은 Zerg의 신병기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입수하였으나 군기

밀상 공식 석상에서 밝힐 수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

한 것은 비록 Zerg의 공중 병기가 위력이 막강하다고해도 우리 Terran의 공군

력이면 충분히 대항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Terran 시민덜은 우리 연맹

군의 능력을 굳게 믿으시고 동요되지 않길 거듭 부탁드립니다."

"Tarsonic Weekly의 Henry 기자입니다..."

"아 시간 관계상 더 이상의 인터뷰는 생략하겠습니다. 아 저도 바쁜 사람입니

다. 사정 좀 봐주십시오... 아 나머지 내용은 대변인을 통해 추후 통보하겠습니

다. 아 좀 비켜요. 길 좀 지나갑시다."

"이상 현장에서 정희선 특파원이었습니다."

"흐흐흐 그렇게 위세 당당하던 Edmond Duke가 저런 식으로 퇴출 당하다니..."

"황병장님은 Edmond Duke 장군을 잘 아시나 부죠."

"Zerg보다 더 사악한 인간이지.... 흐흐흐 인과 응보라는 말이 딱 들어 맞는군....

저 인간은 Draconics 행성의 주민들과 수비대원들의 구조 요청을 묵살한 냉혈

한이지... 결국 자신도 똑같은 꼴을 당하는군... "

 

상황은 점점 급박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뉴스에서는 연일 Sons of Korhal에 대

한 비방과 새로운 Zerg 공중 병기에 대한 공포심 조장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Terran 연합 사령부는 NPT(Non-nuclear proliferation treay; 핵확산 금

지 조약)를 파기하는 안건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는 보고까지 나돌았다. NPT는

체결된지 50년이 넘은 오래된 연맹 조약이었다. 이것마저 파기될 정도라면 현재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는 위기 국면이라고 꼴통은 혀를 내둘렀다. 우리덜은 속으

로 불안했지만 감히 내색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그거 보다는 내색을 할

여력도 없었다는 편이 더 맞는 말이리라. 사회가 어수선해도 후까시 교관은 여

전히 우리를 갈궜고 지은씨는 여전히 나에겐 쌕시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 주 석 ----------------------------------

(1) Arcturus Mengks의 취임식 동영상을 보면 UNN이라는 자막이 보입니다만

CNN과 비슷한 뉴스 전문 방송 매체인 거 같고 Universe News Network(우주

뉴스 망)의 약자입니다.

(2) Edmond Duke 장군은 Alpha 부대의 사단장으로 나오는데 음 시나리오 보

면 이 사람이 항상 총대 메는 걸로 봐서 무슨 Terran 연맹의 장이라도 되지 않

나 추론해 봅니다. 또한 시나리오에 보면 Edmond Duke가 굳이 Arcturus

Mengks와 손을 잡게 되는 부분에 대한 부분이 설득력이 떨어지는데 따라서 필

자는 임의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정하였습니다.

(3) 여자 친구가 클래식을 좋아하면 베토벤 크로이첼 소나타의 2악장을 함께 들

어 보세요. 분위기 잡는데는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테란병사의 삶 (18)

 

"야 이지은인지 뭔지 하는 그 계집애는 나랑 인연이 아닌가 부다."

"애? 김일병님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휴~ 하긴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땅개를 거기에 금테 두른 애가 뭔 볼일이 있겄냐?"

멸치의 얼굴에는 알 길 없는 아쉬움과 애증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와중에도

뭐라 장단 맞춰야 갈굼의 화살을 피할 수 있을지 잔대가리 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애고~ 쓰벌 드러워서.... 그래 드러우면 출세해야지... 흐흐흐 Zerg야 그래 니네

가 구원의 천사다. 정말 만나서 반갑다. 부지런히 이 우라질 Terran 사회를 때

려 부서라. 그래야 내 속도 풀리고 니네 덕에 출세도 하지."

"야 꼴통, 멸치가 왜 저러냐?"

"어제 보초 서다가 이중위를 만났거든... 그래서 멸치한테 잽싸게 접선했지."

"근데 저 인간 꼴상이 왜 저렇게 우거지 상이야?"

"애고고, 야 완죤히 기생 오라비 같이 생긴 자석들이 그 기집애를 꽁꽁 둘러 쌓

아서 인의 장막을 쳤는데... 거기 멸치가 침투해 들어가다가는 벌집 될 분위기더

라구... 원 세상에 게다가 그 기집애 정말 맘에 안드는게... 남정네 앞이라고 꼬

리 살살 흔드면서 눈웃음 지어가며 애구... 야 그런 기집 하고는 잘 되어도 제명

에 못살 거야 아마..."

"이런 씹탱구리 색히덜을 봤나? 고참이 하소연을 하는데 이 색히덜이 지네끼리

고참 말을 씹고 역적 모의를 해?? 대가리 박어, 어쭈 빨랑 박어!!"

하긴 요즘 가뜩이나 머리 속이 복잡해서 그런지 멸치 고참의 명령이 오히려 고

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맞지 않는게 어딘가. 게다가 무거웠던 머리가 정수리를

꽉 눌러주니 맥이 풀리면서 시원하기조차 하였다.

나도 두쪽 찬 사내라고 마음 속으로는 질투심이 모락 모락 피어 올랐다. 나랑

몸도 섞은 여자가 다른 남자가 치근거리는데 사근 사근 웃으면서 받아줘? 그러

나 적어도 한가지는 확실했다. 여태껏 내가 봐 온 그녀는 그 누구에게나 사근

사근했다는 점. 갑자기 나의 마음은 천근 만근 무거워졌다.

 

오늘따라 후까시 교관은 얼굴에 웃음기가 없다. 이 인간은 늘상 실실 쪼개며 갈

구는게 특기인데 왠지 오늘은 얼굴이 약간 굳어 보인다.

"앞 줄에서 세번째 놈, 잽싸게 튀어 나온다."

아 호명 받은 색히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 못해 엉거주춤 기어 나온

다. 그 색히는 뭔 험한 꼴을 당할지 몰랐지만 하여간 오늘 운세가 더러운 놈이다.

"내 너한테 질문을 하나 던진다. 잽싸게 답할 것"

"예~에 써~얼"

"Terran 군인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색히는 황당했는지 약간 머뭇 머뭇 거렸으나 곧바로 썰을 풀기 시작했다.

"예! Terran 군인은 Terran 사회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한 목숨 바쳐...."

교관은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빨았다. 그리고 담배 연기를 훅 하고 썰풀던 자석

의 얼굴에 내뿜었다. 순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그 불쌍한 색히는 담배 연기

때문에 캑캑거렸다.

"야이 닭대가리 색히야~ 너 지금 Terran 시민 교육 헌장 암기하냐?? 요점만 말해!"

"예! Terran 군인은 Terran 사회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억 어흑"

"이 색히가 맞아야 정신이 드는구만.... 야 이 색히 옆에 있던 놈 나와.

재차 묻겠다. Terran 군인의 목적이 뭔가?"

"예! Terran 군인은 Terran 사회를 지키는.... 억 어흑.. 으"

꼬챙이에 꽂힌 곶감처럼 한 놈 한 놈 나가더니 같은 질문에 대답을 못해 교관

의 맛있는 간식 거리가 되었다. 애덜을 얼마나 쎄게 팼는지 맞는 놈덜마다 염치

불구 바닥을 뒹굴었다.

"난 요점도 없이 긴 말 하는 색히가 젤 꼴불견이다. 그런 색히덜은 정신 상태가

흐리멍텅한 개색히덜이다. 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너희들을 불쌍하게 여겨 내가

물은 질문에 대한 정답을 내 스스로 말해 주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겠다."

저 색히가 왜 저렇게 오늘따라 시비지?

"Terran 군인의 목적은 간단하다. 적을 무찔러 없애는 것이다. 군인은 적이 존

재하기 때문에 필요한 존재다. 따라서 적이 나타나면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섬멸

해야 한다. 알겠나?"

"예~ 써~얼"

"야 뒷줄 첫 놈 나와."

또 한 마리의 소가 도살장으로 질질 끌려 나간다.

"상관의 명령이다. 나를 한 대 쳐라!"

"예? 어떻게 그런 하극상을.... 억 아악~ 윽 아..."

"적을 쓰러 뜨리기 위해서는 일사 불란해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상관의 명령이

접수가 안되더라도 무조건 복종해야만 한다. 야 뒷줄 두번째 놈 잽싸게 튀어 나

온다. 흐흐흐 명령은 아까와 똑같다. 나를 쳐서 쓰러뜨려라."

이 색히는 그래도 좀 배포가 있는 놈인가 보다. 이 색히가 정말 후까시 교관한

테 주먹을 날렸다. 얼굴에 정통으로 한 대 맞은 교관은 으흑 소리를 내며 몇발

자국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순간 주위의 조교덜이 튀어 나왔

다.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한 대 때리고 내심 의기 양양하던 그 색히는

조교덜의 군화발에 대가리가 수박통처럼 깨져 버렸다.

"네 놈은 오늘 사정을 참작하여 그 정도에서 멈춘 거에 대해 나한테 감사해야

한다. 제군들도 알다시피 하바리의 상관 폭행은 즉심 회부되어 캡슐로 직행한

다. 그러나 진정한 Terran 군인은 상관의 명령이 떨어지면 어떠한 불이익을 감

수하고서라도 그 즉시 하달 받은 명령을 수행해야만 하는 의무가 주어진다."

훈련병 사이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훈련 과정은 늘상 FM이긴 했지만

오늘은 평소의 분위기와 다르다.

교관은 이윽고 뭔가를 꺼내 우리에게 보여줬다. 조그마한 앰플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노란색의 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었다.

"이것은 Terran 육상 병력의 전투력을 배가시키기 위해서 특별히 제조된 약물

이다. 유사시 이를 잘 사용하면 제군들은 2배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우리 Terran 군은 수많은 위기 상황에서도 이 약물에 힘입어 패배 직전의 전쟁

을 승리로 바꾸는 극적인 순간을 많이 경험해 왔다.

약물 투여 과정은 간단하다. 제군들의 전투복에는 Stimulus Package 이하 약칭

하여 스팀팩이라 불리는 주사기 형태의 약물 투여 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제군

들은 전투시 명령이 하달되면 즉시 벨트에 부착된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스팀

팩을 통해 제군의 몸에 이 약물이 투여될 것이다."

나는 순간 긴장했다. 오늘 따라 교관의 설명이 길다. 여지껏 말이 많으면 항상

뒤탈이 났다. 이건 돌부처가 내내 역설한 불길한 징조이기도 하다. 게다가 나는

어려서부터 주사 맞는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무섭고 싫었다. 오죽했으면 감기

라도 걸렸다 하면 하루 종일 집안 눈치보기 바빴으랴. 그런데 단지 전투력 향상

을 위해서 주사를 맞아야 하다니..... 더군다나 내가 여지껏 알고 있는 약물이란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전부였다. 전투력 향상을 위해 약물을 투여한다는 것

은 금시초문이었다.

"스팀팩은 최대 3개의 앰플을 내장할 수 있다. 따라서 전투 시 제군들이 사용할

수 있는 스팀팩은 단 3번 뿐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 약물은 부작용을 극소화

시켰기 때문에 제군의 건강에 큰 해를 입히지는 않을 것이다. 단 처음 경험하는

자덜 중 일부는 이 약물에 적응하지 못해 흉한 꼴을 보이는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색히덜은 오늘 의가사 제댓날이다. 투철한 군인 정신의 소유자라면 이 약

물이 유발하는 허깨비 쯤은 충분히 씹을 역량이 있다. 그럼 훈련을 실시한다."

훈련은 5인 일조로 시작되었다. 모두 굳은 표정이었다. 첫 5명이 완전 무장을

한 채로 기어 나왔다. 이윽고 교관의 지시가 떨어졌다.

"스팀팩 실시"

첫 빠따로 나온 5명이 떨리는 손으로 벨트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샤~아~이이'

나는 순간 '엇'하는 소리를 내뱉았다. 저 소리는 처음 들어 보는 소리가 아니었

다. 익숙한 소리다. 그것도 끔찍할 정도로 아직도 내귀에 생생한....

5명의 얼굴은 약속이라도 한 듯 표정이 모두 똑같다. 입가에서는 침을 질질 흘

리고 얼굴은 납빛인데다가 눈은 핏발이 곤두선채 풀어져 있었다. 나는 전혀 예

상치 못한 장소에서 불과 몇 개월전에 당했던 악몽과도 같은 사태를 또 다시

경험해야만 했다. 그 얼굴 표정은 확연했다. 칼치도 저런 몰골로 벙커 안에서

칼부림을 벌였었다.

"김일병님, 저, 저, 저건....."

"말도 안돼... 어떻게 정규 군 집단에서 마약 투여를...."

스팀팩을 투여한 훈련병들은 괴로와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부분이 땅바닥에

주저 앉아 구토를 해댔다. 조교들은 자빠진 불쌍한 모르모트들을 곤봉으로 패댔

다. 게중에는 억지로 일어 났으나 방향 감각을 잃은 채 엉뚱한 곳으로 비틀 비

틀 걸어 다녔다.

이윽고 내 차례가 돌아 왔다. 순간 겁이 났다.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승리를 위

해서는 마약 복용도 합리화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결국 총알 받이에

불과하다고 해도 아니라고 말할 도리가 있을까? 그러나 나의 심정과는 무관하

게 교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 후에도 나의 손가락은 머뭇거렸다. 이후 내 뒤

에서 교관들의 곤봉이 날라 왔다. 어흑~ 머리가 멍하고 목 뒷덜미가 시큰거렸

다. 살기를 느꼈다. 버튼을 누르지 않다가는 그 자리에서 처형이라도 감수하겠

다는 살벌함이 나를 무겁게 짓눌러 왔다. 겁에 질린 나는 마지못해 벨트의 버튼

을 눌렀다. 척추 부근이 갑자기 따끔하더니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내 몸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몇 초 지나자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이윽고 내 앞의 교

관 얼굴이 일그러져 보이기 시작하였다. 뜨거운 기운이 머리 위로 솟구치는 듯

하더니 갑자기 뇌빈혈이라도 일으킨거 모냥 어지러웠다.

숨쉬기도 버거울 정도로 힘들었다.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속이 메

스꺼웠다. 구토라도 하고 싶다. 몸이 휘청거린다.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휘젓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그 덕분일까? 팔과 다리가 가볍다. 제어하기는 힘들었으나

너무나도 가뿐하게 움직였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내 몸 곳곳을 헤집고 다닌다

는 생각이 들자 미칠 정도로 모든 것이 미워졌다. 내 눈 앞에 보이는 놈덜이 꼴

보기 싫다. 쏴 죽이고만 싶다. 아~ 부숴 버리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부서

질 것만 같다. 어~억....

코 끝으로 흙냄새가 풍겼다. 아마도 내가 바닥에 엎어졌나 보다. 뭔가가 내 등

을 두들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조교들이 휘두르는 곤봉이리라. 그러나 이

상하게 아프지가 않다. 피하기도 귀챦았다. 내게는 고개를 들 기운도 남아 있지

않다. 어~헉.... 윽...

내 몸으로 수만볼트의 전기가 관통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내 몸이

뻣뻣해졌으며 정신이 멍해졌다. 내 눈 앞으로 군화발이 무수하게 보였다. 그러

나 내게는 마치 딴 세상에서 일어난 일인 듯 했다.

 

오늘 훈련은 2시간 주기로 총 3번의 스팀 팩이 투여 되었다. 첫 투여 시에는 내

몸을 추스리지도 못할 지경이었으나 투여 횟수가 늘어 갈수록 점차적으로 약물

에 내성이 생기는지 몸놀림이 가뿐해졌다. 그러나 나는 그 악마의 약물에 의해

허물어져 가는 내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불만과 억압, 공포심

은 분노로 돌변했으며 순간 못 견디게 모든 것을 부숴 버리고 싶은 파괴 본능

이 휘몰아쳐 왔다. 몸 놀림은 평소와는 다르게 빨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

나 나의 몸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 누군가가 나의 자아를 몰아내고 대

신 나의 신체 반응을 선두 지휘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WIBE 이상으

로 악랄한 오퍼레이터였다. 약에서 깨어나면 방금 전의 터무니없던 나의 심정적

반응에 대한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 누구도 그러한 기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

나 보다. 훈련이 끝났는데도 나와 꼴통은 우울증에라도 걸린 사람들처럼 여전히

말이 없었다. 오로지 멸치 일병 혼자 자괴감에 빠져 내내 혼잣말만 웅얼 거렸다.

"정규군이 범죄자처럼 마약을 투여하다니...."

칼치가 마약을 구한 통로는 이로서 확연해졌다. 그가 난동을 피웠게 했던 약물

은 Terran군의 특수 병기였던 셈이다.

 

스팀팩 훈련이 시작된지 일주일이 흘렀다. 교관은 스팀팩이 인체에 무해하다고

내내 강변하였으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나는 남들보다 비

교적 빨리 그 약물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건 아마 내가 남들보다 겁이 많다는

증거였을거다. 부적응자들은 예외없이 땅바닥을 굴렀고 조교들은 말초 신경이

무감각해져 곤봉으로도 처치 곤란한 불쌍한 모르모트를 전기 충격기로 지지며

돌아 다녔다. 전기 충격기는 아무리 건장한 군인이라도 견디기에는 너무 가혹한

고문이기도 했다.

알약 이외에는 어떠한 사식을 먹어도 토해내기 일수였다. 신경이 병적으로 날카

로와진 멸치 고참은 틈만나면 나와 꼴통을 괴롭혔다. 그러나 차라리 멸치 고참

이 얼차려를 시킬 때가 더 행복했다. 막상 불쌍한 이는 멸치 고참이었다. 그 누

구도 멸치 고참한테 얼차려를 시켜줄 사람이 없었다. 얼차려의 고통은 혼자 우

두커니 있을 때 몰려 오는 황량한 적막감을 몰아 내 주는 고마운 존재이기까지

했다. Tarsonic에 계시는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직 만나 보지도 못한 코

찔찔이 내 남동생도 보고 싶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당장 캡슐에 끌려가

는 한이 있더라도 캡슐 속에서의 고통이 지금보다 더 자비로울 듯 싶었다.

 

"희근씨, 안색이 초췌해 보이네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게다가 웬 술을 이

렇게 많이 마셨어요??"

"지은씨, 지은씨는 스팀팩이 뭔지 아세요?"

그녀는 한동안 술잔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묵묵히 말이 없었다. 이윽고 그녀는

혼잣말과 다를 바가 없는 어투로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역시... 그랬군요. 스팀팩...."

"저는 스팀팩 훈련 중이랍니다. 후후후 정규군이 범죄자처럼 마약을 투입하고

땅바닥에서 뒹구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죠... 하하하 스팀팩... 그거 참 좋은거

라 하데요. 맞으면 뿅 가는게 이 세상이 다 내꺼 같죠."

"희근씨... 희근씨의 고통이 무언지는 저도 잘 알겠어요. 하지만 스팀팩은

Terran 군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죠."

"원래 스팀팩은 초기 Terran 사회 형성시 범죄자들을 군인으로 교화시킬 목적

으로 이용되었죠. 그러나 실제 스팀팩을 사용하면 지상 전투원의 전투력이 배가

되기 때문에 지금도 유효한..."

"이봐 지은씨, 오랜 전통? 흐흐흐 지은씨가 스팀팩을 맞아나 봤어?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야? 난 지난 일주일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어. 요즘

내 평균 수면 시간은 두 시간도 채 안돼!! 전투력... 그게 뭐가 대수지... 난 군인

으로 출세하려고 X같은 이곳에 자원한 거지 모르모트가 되려고 온 게 아니야."

"희근씨, 희근씨는 억울하고 분하겠죠. 하지만 냉정해 져야만 해요. 제가 누누이

강조하지 않았나요?

 

?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한다고... 스팀팩도

지금은 희근씨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괴로운 시련이지만 마음 굳게 먹고 이겨

내야 해요. 그건 강해지기 위한 일종의 통과 의례에 불과..."

"지은씨, 내가 그 통과 의롄지 뭔지 하는 X같은 걸 겪고 강해진다면 나 또한

나보다 약한 색히덜에게 그 마약을 강요하겠지??"

"과연 강해진다는게 그 정도의 값어치가 있는 거야?? 한 인간의 감정은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그저 강해지면 뭐든게 다 장땡인 게 이 X같은 Terran 사회인거야??"

"희근씨, 희근씨는 지금 현실을 도피하고 그저 어리광이나 부리는 어른답지 못

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들지 않나요??"

"흐흐흐, 하긴 고귀한 황태 집안 출신 잘나가는 따님께서 보시기에 내가 지금

보여주는 행동은 철없는 동태덜의 넋나간 미친 짓이겠지."

"희근씨, 제 말이 지나치더라도 이해해 주셔야만 해요. 저도 이런 말로 희근씨

마음 괴롭히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한 때의 감정으로 희근씨의 큰 꿈이 금이

가는 건 바라지 않아요. 전 무엇보다도 희근씨를 사랑하기에...."

"지은씨, 지은씨는 정말로 나를 사랑하나요?"

"????"

"만일 지은씨의 감정이 진실된 것이라면 나의 부탁 하나만 들어 주세요."

"뭘 말하려고 하는 거죠??"

"출세, 강해지는 거? 다 필요 없는 미친 짓이야. 난 이곳에서 도망가겠어. 비록

그게 탈영이고 즉심 캡슐행이라도 좋아. 하지만 난 도망칠 힘이 없어요. 이 따

위 코딱지 만한 행성에서는 두 발로 뛰어 도망가야 얼마 가지도 못해 잡힐게

뻔하고... 그렇다고 내가 Zerg한테 투항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지은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우리 함께 어디 멀리 Terran 군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 곳으로 도망쳐요. 난 이 곳이 싫어.... 이 곳에서 발버둥 쳐봐야 난 총알 받

이로 소모될 따름이야... 죽음이 무서운 건 아니지만 의미없는 개죽음은 내 자존

심이 허락할 수 없는...."

"희근씨, 저와 같이 도망쳐도 결과는 마찬가지예요. 단지 차이라면 조금이라도

멀리 도망치다가 잡힌다는 정도겠죠. 게다가 제가 탈영한 사실이라도 알게 되면

우리 아빠는 그 즉시 옷을 벗겠죠??"

"무리한 부탁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하지만...."

"그리고 설사 도망칠 수 있더라도 그 부탁은 들어 줄 수 없어요. 희근씨가 이

곤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면으로 뚫고 지나가는 것 뿐이예요."

"나보고 지금 나를 핍박하는 인간덜이랑 똑같은 인간이 되라고?? 나는 약기운

이 떨어지고 나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살 충동을 느껴.... 아침에 변기를 붙잡

고 구토를 하면 피섞인 가래가 나올 때 밀려 오는 공포심을 느껴본 사람은 차

마 그러지 못해. 어떻게 그런 참담함을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하는 무자비한 인

간상이 내가 꿈 꿔오던 인간상이지? 만일 그랬다면 나의 꿈은 악몽이겠군... 난

싫어. 그건 무의미한 짓이야

 

. 아니 그건 인간으로서 못할 죄악이야. 지은씨 정말

두 손 모아 부탁할께. 나와 함께 멀리 멀리 도망가는 거야.... 그 누구의 손길도

미치지 않는..."

"스팀팩 훈련은 조만간 끝날 거예요. 그 이후에는 곧 악몽도 잊혀질 거구... 게

다가 희근씨, 아카데미 과정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쟎아요. 우리가 함께 지낼

즐거운 시간도 이제 잠시 후면 끝이예요. 왜 그렇게 하챦은 일 때문에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헛되이 낭비해야만 하죠?"

이런, 그녀는 우리 사이의 불문율처럼 되어 있는 시간을 논하고 있다. 어차피

아카데미 과정이 끝나면 그녀와 나는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으리라. 그건

분위기 좋은 둘 사이에 그 누구도 감히 꺼낼 용기가 없는 터부였다. 그녀는 날

위한다고 꺼낸 말이긴 했으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흐흐흐 당신은 잔인한 여자야. 이 분위기에서 이별 걱정이라니... 하하하... 역시

당신도 별 수 없는 황태 속물이군... 하하하 별로 남지도 않은 시간 꿀꿀한 이야

기로 채우는게 아쉽다고??"

"희근씨, 이런 말 꺼내는 제가 나쁜 년으로 보이겠죠. 하지만 회의감에 빠져 우

왕좌왕하면 그건 결국 희근씨에게 마이너스일 뿐이예요. 왜 모르세요? 누구보다

도 상황을 잘 알면서 왜 애써서 회피하려고 하시는 거죠??"

"정말 재밌군... 마치 나는 심심풀이 땅콩이고... 지은씨를 둘러 쌓은 그 기생 오

라비들은 지은씨의 출세를 보장하는 담보물이라도 되는 건가?? 흐흐흐 황태 기

집애들은 다 그런건가 부죠?? 평소에는 재밌다고 가지고 놀다가 속상한 말 꺼

내면 이별 걱정이나 늘어 놓고... 하하하"

"희근씨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진심이예요. 하지만 저의 야망은 희근씨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크다고 할 수도 있겠죠. 제가 만일 희근씨를 정말 희근씨 말대로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여겼다면 이런 가슴 아픈 말 말고도 늘어 놓을 변명거리

는 많았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쟎아요? 정말 저는 희근씨

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예요."

그녀는 무서울만치 현실적이었다. 나의 동화와도 같던 몽상은 휘청거리고 있었

다. 그녀는 나의 속마음을 잔인하게 까뒤집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더더욱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어쩌면 애꿎은 화

풀이 상대일지도 몰랐다.

"흐흐흐... 눈물이 다 나올려구 하네... 너무 감격했습니다. 지은씨. 엊그제까지만

해도 저랑 함께 뒹굴던 분께서 오늘은 닳고 닳은 인생 선배같은 말씀만 늘어

놓고... 하하하 거기다가 기가 막힌 타이밍이군요. 이렇듯 제가 의기소침하던 틈

을 노려 하루아침에 천사의 이미지에서 넌더리 나는 속물의 이미지로 바뀐 연

출을 하다니..."

"지은씨, 수많은 사람덜 한테서 피눈물을 흘리게 한 뒤의 출세가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Terran 사회는 광기로 얼룩진 곳이라는 생각 안 드세요? Zerg는 이

미친 Terran 사회를 응징하기 위해 보낸 하늘의 사도가 아닐까요?? 지은씨 제발 마지막 부탁이예요. 우리 도망쳐요. 멀리... 멀리..."

"희근씨, 희근씨는 저에 대해 무슨 환상을 지닌 듯 하군요... 저는 희근씨 어머

니를 여성으로서 존경하지만 저 자신은 그 분처럼 강하지 못해요. 저를 속물이

라 욕하여도 할 말이 없네요. 모든 드롭쉽 조종사가 희근씨 어머니처럼 자신이

처한 현실을 과감히 박차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건 아니예요. 게다가

희근씨와의 경험은 그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희

근씨가 저의 첫남자는 아니예요. 희근씨는 저의 육체를 소유하였다고 저의 마음

마저 좌지 우지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 희근씨... 저도 희근씨처럼 터무니없이

약한 계집애일 뿐이예요. 그런 저에게 희근씨의 요구는 받아 들일 수 없는 무리

한 요구예요. 죄송해요."

나의 절규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나의 몸을 휘감았다. 그 순간 떠오르는 얼굴

은 우습게도 울 엄마 얼굴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군바리가 되겠다고 난리 폈을

때에 울 엄마가 나를 그토록 말렸던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녀의 모습은

오늘도 못견디게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녀와 나 사이에 거대한 벽이 가로 막혀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자 그녀의 아름다움은 더더욱 못견딜 괴로움으로 돌

변하여 나를 인정 사정 없이 할퀴었다.

"희근씨, 제가 너무 매몰찼죠? 하지만... 하지만... 희근씨한테는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희근씨를 그 누구보다 사랑해요. 그리고 제가 이렇듯 잔인한 말

만 골라 하는 것도 그 누구보다 희근씨를 위해서예요. 희근씨, 만일 희근씨가

저와 같은 처지였다면 전 누구보다도 먼저 희근씨한테 청혼했을 거예요. 희근씨

는 제가 만나본 그 어떤 남자보다 다정다감하고 저를 편하게 해주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각자가 가야할 길이 서로 달라요."

그녀의 목소리는 울먹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모습이 가증스럽기보

단 오히려 불쌍해 보이기 까지 했다. 어차피 그녀와의 만남 자체가 나에게는 한

편의 이루어질 수 없는 꿈과도 같았던 것이기에.... 나는 아무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혼자이고 싶었다. 문쪽으로 뚜벅 뚜벅 걸어가는 나의 뒷편에서

그녀는 내게 하소연했다.

"희근씨, 위로는 못할 망정 험한 말로 상처 주어서 죄송해요. 희근씨, 오늘 밤은

저의 집에서 하룻밤 쉬다 가세요. 남은 시간이나마 희근씨한테 위안이 되고 싶어요."

어찌 보면 고마운 제의였으나 내키지가 않았다. 미래가 없는 쾌락이란 마약보다

도 더 허무한 존재였으니. 적어도 어젯까지만 해도 그 미래라는게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한 편의 꿈이긴 했어도 오늘처럼 허접 쓰레기는 아니었다. 나는 그저

아무말 없이 뒤도 안 돌아 보고 문을 향해 걸었다. 내심 속으로 그녀에게 미안

하고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으나 뒤를 돌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뒤돌아 보기

가 겁이 났다. 만일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게 되면 이성을 잃고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 밖을 나선 나는 정신 없이 뛰었다. 오늘도 수많

은 인파가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다. 오로지 나만이 상

처입은 승냥이라도 되는 듯이 거리를 내쳐 달렸다. 뛰면서도 내 볼 사이로는 하

염없이 뭔가 뜨거운 것이 흘러 내렸다.

 

 

 

어느 테란병사의 삶 (19)

 

"우아씨~ 야 두더지 오늘 왜 이리 덥냐??"

"야 색히야, 죽는 소리 좀 하지마. 너 궁시렁거리는 소리 땜시 내가 더 덥다. 하

여간 오늘부터 내무반에서 두 발 쭉 피고 잘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냐. 얼

굴 펴. 색히 쭈그려 살지 말고"

"닝기미, 하늘 졸라 맑네. 비라도 좀 오지... 어이 쓰벌..."

태양은 어느덧 정점에 떠올라 미네랄 광산 꼭대기에 걸려 있다. 내리 쏟아지는

햇빛이 미네랄 결정에 산산이 부서져 눈이 시릴 정도로 빛나고 있다. 언덕 자락

밑에서는 SCV 들이 진지 구축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불쌍한 색히덜, 이 더운

날 에어콘도 나오지 않는 저 찜통 속에 갇혀 며칠째 죽어라 용접만 해대야 하

다니. 우리의 임무는 진지 구축이 완료될 때까지 저 불쌍한 색히덜을 돌보는 것

이다. 이 임무를 위해 시그마 부대원 중 한따까리 하는 놈덜만 대략 서른명 정

도 추려서 부랴부랴 이 곳에 급파시켰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 곳은 Stynx

행성의 요충 지대이며 여기에 새로운 확장 기지를 구축할 거라고 하는데 하여

간 여기서 내가 아는 놈이라곤 꼴통 밖에 없었다. 그래도 새 집으로 이사오니

그동안 꿀꿀했던 기분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아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다 보니 가슴 시렸던 기억들이 조금은 잊혀졌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오늘도 새 기지터에는 바이브레이터덜이 맴맴 돌고 있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뭔

지 몰라 의아해 했으나 여기 저기 귓동냥으로 그게 뭐에 쓰는 물건인지 알게

되었다. 공식 명칭은 미사일 터렛. Terran 연맹은 이번에 새로 확인된 Zerg의

공중 병기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으로 모든 Terran 기지에는 이 구조물을 반드

시 설치해야만 한다는 지시 사항이 떨어졌다. 뭐 그렇다고 신병기는 절대 아니

고 기존에도 있던 싸구리 재래 병기인데 시그마 부대 사단장님께서 이 구조물

설치를 위해 할당된 예산안을 인 마이 포킷(in my pocket)하는 바람에 여지껏

내가 못 본 거란다. 참고로 울 사단장님은 항온 동물의 몸 속에서 기생하며 공

중 도약력으로 유명한 어떤 날개 없는 곤충류의 소화 기관을 즐기는 식도락이

취미라고 한다.

요 놈덜은 미사일 포탑과 레이더가 일체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대가리를 뱅글 뱅글 돌리는 것이었다. 요 놈덜은 전부가 다 무인형

시스템이었으며 WIBE를 통해 통제된다고 한다. 말인즉 오퍼레이터덜의 장난감

이라는 야그였다. 뾰족한 미사일을 매단 포탑이 하루종일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선채로 뱅글 뱅글 돌고(?) 게다가 요것들이 오퍼레이터라는 요상한 것들과 연상

작용을 일으키다 보니 별명이 바이브레이터가 되어 버렸다고들 한다. Zerg는 여

전히 코빼기도 안 비쳤음에도 불구하고 울 땅개덜은 요것들의 엄청난 대공 전

투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Zerg의 생체 병기 감지를 위해 Terran의 위대한

과학 기술진이 개발한 센서가 더위를 먹었는지 아니면 구조에 버그가 있는지

가끔씩 오동작을 일으켰기 때문에 참새 떼라도 요것들 근처를 날라 다니면 미

사일 봉변을 당하곤 했다. 그래서 가끔씩 미사일 터렛 근처를 배회하다 보면 근

처에 죽은 새떼덜이 여기 저기 떨어져 있었고 요건 우리 땅개의 일용할 간식

거리가 되었다. 한 때 우리 땅개덜 사이에서는 바이브레이터 근처에서는 폴짝

폴짝 뛰지말라는 제법 심각한 농담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센서가 오동작을 일으

켜 폴짝 뛰다가 미사일 봉변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설득력 있는 가설을 누군가

가 제시했기 때문이란다. 물론 바이브레이터 근처에서 폴짝 폴짝 뛰어 보면 그

가설이 뻥인지 가짠지 쉽게 증명할 수 있었으나 지 목숨을 담보로 그런 비엉신

짓 할 인간은 한 색히도 없었다.

 

어느덧 뉘엿 뉘엿 해는 지고 붉은 저녁 노을이 하늘을 눈부시게 수놓고 있다.

그래도 대지의 복사열은 여전히 뜨겁다. 게다가 벙커 안은 숨을 쉬기도 버거울

정도로 공기가 무겁다. 모두들 평상시 대로 짤짤이 삼매경에 빠져 있었으나 나

는 그저 저녁 노을만 바라보고 있다. 하루가 어느덧 저물어 가자 나는 또다시

감상에 젖어 말수가 적어 진다. 나는 내 전투복 앞가슴에 매단 자그마한 종을

손가락으로 건드려 보았다. 딸랑 딸랑~. 가슴 한 구석이 아려 오게 할 정도로

맑고 처량한 소리다. 담배 연기 속으로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못 견딜 정

도로 아름다웠던... 내 젊음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한 사람의 얼굴이... 아마

그 사람도 지금쯤 내가 바라보는 같은 하늘 위를 비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앗

근데 저게 뭐지?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서 뭔가가 갑자기 내 시야 속에 들어

온다. 그리고 이 쪽으로 날라 온다. 시그마 부대 소속 레이쓰 편대군. 레이쓰

(wraith)!! 허공을 떠 도는 망령(1). 처절한 핏빛 저녁 노을과 레이쓰라는 단어

가 전해주는 음울한 의미는 내 마음을 더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재료가 되어 주는군.

뒤이어서 공중을 부유하는 거대한 무언가가 내 시야에 들어 왔다. 거대하고 묵

직하다는 속성과 공중을 떠다닌다는 속성은 서로 상반되는 성질이다. 그래서 였

을까?? 그 괴기한 구조물이 발산하는 압도감에 질려 버린 나는 넋이 나간 채

한동안 바라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쓴 웃음을 지고 말았다. 그건

낯이 익은 건물이었다. 커맨드 센터를 위시한 아군의 군사 건물이었던 것이다.

Terran 군사 건물이 공중을 유영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영화 속에서 많이 봐왔지만 실제로 건물이 떠있는 걸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었

다. 건물들은 아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 자체가 지니는 무게의 육중함을 뽐내

며 거만하게 이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유영하는 건물을 뒤이어 일련의 드롭

쉽 무리가 왕의 행차를 뒤따르는 내시덜처럼 쫄래 쫄래 쫓아 오고 있다. 레이

쓰는 이윽고 기지 주변을 선회 비행하기 시작했다. 건물이라는 존재의 운명은

본시 정처없이 공중을 방황하는게 아니리라. 저 건물들은 이제 기나긴 여정을

끝내고 새로운 터전 위에 정착할 것이다. 건물들이 예정 착륙 위치를 찾아 이리

저리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윽고 바락 하나가 첫번째 상륙을 시도하였다. 반중

력 장치를 가동하기 위해 쭉 펴져 있던 세 개의 받침 다리를 오무리면서 서서

히 수직 하강을 하였다. 바락은 엄청나게 육중하고 무거운 건물이었으나 반중력

장치의 특징 때문인지 내려 앉은 그 모습은 여전히 사뿐사뿐하다. 이윽고 풀썩

주저 앉자 주위에 흙먼지가 흩날렸다. 뒤를 이어 유영하던 바락들이 줄을 지어

쪼르르 하강하였다.

공중을 배회하던 드롭쉽이 수직 하강하기 시작한다. 드롭쉽 갑판 밑에 달린 해

치가 열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 속에서 뭔가 커다란 쇳덩어리가 덜덜 거리며 내

려왔다. 아! 시지 탱크였다. 거대한 포탑을 탑재한 Terran 군의 핵심 병기. 매년

10월 1일 'Terran 연맹군의 날'이면 위풍 당당하게 시가 퍼레이드를 장식하던

Terran 군의 상징. Terran 어린이들이 제일 가지고 싶어하는 장난감 중 하나가

바로 이 시지 탱크 모형이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요걸 갖고 와서 함께 노는 게

아이덜의 낙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시지 탱크에 대한 뼈아픈 추억 거리가 있

다. 군바리를 무지 무지 싫어하셨던 울 엄마는 내가 아무리 졸라도 시지 탱크

장난감을 사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늘상 동네 애들과 놀 때 손가락만 빨면

서 옆에서 구경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행여나 딴 애들이 가지고 노는 것에

손이라도 댈라 치면 늘상 쌈박질이 벌어 졌다. 어렸을 때부터 쌈질에는 일가견

이 있던 나였기에 항상 코피 터지는 건 불쌍한 동네 아해들이었다.

"저 색히는 지지리도 가난해서 시지 탱크 장난감도 살 형편이 안되나 봐!!"

"야 원래 가난한 것들이 성질이 드럽데... 저런 색히를 상대하면 우리만 피봐."

결국 난 동네 애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버렸다. 결국 기죽어 사는 내가 불쌍하게

보이셨는지 울 엄마는 내게 시지 탱크 장난감을 사주셨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

어 버렸다. 어떤 애덜도 나를 따돌리기 일쑤였다. 난 너무 속상한 나머지 어느

날 울면서 힘겹게 얻은 시지 탱크를 망치로 박살내 버렸다. 덕분에 나는 그 후

부터 동네 여자애덜이랑 소꼽 장난이나 인형 놀이를 하며 지내야 했다. 나는 어

린 맘에 엄마의 처사가 야속했으나 오히려 울 엄마는 내가 동네 여자애덜이랑

노는 게 더 맘에 드셨나 보다. 아 그때 나랑 엄마 아빠 놀이 하던 옆집 순희는

지금쯤 뭐하고 살까??

시지 탱크를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 옛날 장난감 모형과 생김새가 똑같았다.

단지 다른 점이라고는 장난감하고는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크다는

거. 캐터펄트가 돌면서 발생하는 금속음이 엔진 소리와 뒤범벅이 되어 지축을

뒤흔든다. 거대한 두개의 포문을 탑재한 포탑 위로 포병의 머리가 빼꼼히 보였

다. 스멀 스멀 우리가 있는 벙커 쪽으로 다가 온다. 얼마간 전진하다 갑자기 멈

추더니 제자리에서 360도 선회를 하였다. 덩치와 비교해 볼 때 놀라울 정도로

잽싼 동작이었다. 시지 탱크 양 옆구리로 부터 길쭉한 2개의 다리가 튀어 나왔

다. 튀어 나온 다리는 구부러지더니 땅에 찰싹 들러 붙는다. 잠시 시간이 지나

자 포탑의 뒷부분이 쑤욱 돌출하였다. 이윽고 네모난 구경을 지닌 거대한 야포

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거대한 야포의 공식 명칭은 Arcrite Shock cannon, 어

떤 난공 불락의 요새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위력을 지닌 Terran 군사력의

결정체라고 옛날 모형 장난감 샀을 때 부록 CD-ROM 타이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굉장히 장황한 매뉴얼이었는데 그래도 애들 때는 그러한 장황한 설명이

더 그럴싸하고 구미에 당기는 법이리라. 그 매뉴얼에 의하면 Arcrite Shock

cannon은 원래 진지 수비를 위한 야포로만 사용되었으나 당시 돌격용 장갑 차

량에 탑재하게 됨으로써 오늘날의 시지 탱크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Arcrite Shock cannon이 원래 지닌 파괴력과 명중률을 살리기 위해서는 돌격용

장갑 차량의 동체는 터무니 없이 작고 가벼웠다. 따라서 이러한 기술적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차량의 옆구리와 뒷부분에 3개의 다리를 장착하게 되었다. 따라

서 Arcrite Shock cannon을 발사할 때 이 3개의 다리는 지상에 고착되어 충실

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만일 이 3개의 버팀목 없이 Arcrite Shock cannon을

발사하는 날에는 반동에 밀려 시지 탱크는 가을 바람 나뒹구는 낙엽모냥 데굴

데굴 뒤로 굴러 가리라.

시지 탱크의 포신은 우리 쪽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별 상관없이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고 다른 대원들은 여전히 짤짤이 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시지 탱크의 Arcrite Shock Cannon의 포신에서 섬광이 번쩍 났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굉음이 내 고막을 찔렀다. 우리는 너무 놀라 '엇'하는 소리를 질

렀다. '쾅'하는 폭발음과 동시에 벙커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시지 탱크가 이쪽

벙커를 향해 야포를 쏘아 댄 것이다. 몇 초후 두번째 포탄이 우리가 있는 벙커

에 명중되었다. 땅이 심하게 요동치고 천정에서 먼지가 우수수 떨어진다. 우리

는 순간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기지, 기지 응답하라. 여기는 제 1벙커다. 긴급 상황 발생! 긴급 상황 발생! 아

군으로 식별되는 시지 탱크가 이곳 벙커를 공격하고 있다."

"여기는 기지, 여기는 기지 특별한 명령이 하달되기 전까지 그곳에서 대기 바란

다. 그곳에서 대기 바란다."

"이런 미친.... 저 썅년들이 우리보고 여기서 죽으라고 고사 지네는데?"

"야 빨랑 튀자.... 쓰벌 여기 있다가는 피떡 된다."

'콰앙~' 세번째 포탄이 벙커에 명중되었다. 모두들 당황한 표정이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우리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그저 살길을 찾아 벙커 밖

으로 도망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한 놈이 잽싸게 벙커 밖으로 뛰쳐 나갔다.

"으~악~"

우리는 경악을 했다. 시지 탱크가 발사한 네번째 포탄이 벙커에 명중되면서 유

탄이 여기 저기 튀었고 첫번째로 뛰어 나간 그 색히가 이 유탄을 그대로 뒤집

어 쓴 것이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그 불쌍한 색히는 유탄에 몸이 갈기 갈기 기 워져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사방은 피투성이였을 따름이다. 우리

는 몰려드는 갈등에 더더욱 안절 부절이었다. 앉아서 죽기 싫었으나 그게 나가

서 개죽음 당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명을 길게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야 쓰벌 이판 사판이다."

우리는 시지 탱크를 향해 가라를 갈겨 댔다.

'부르르르~'

처참한 소리였다. 있는 힘껏 방아쇠를 당겼다. 아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시지 탱

크는 가라의 사정 거리가 미치지 않는 곳에 있는 듯 싶었다. 우리의 역공을 비

웃기라도 하듯 탱크의 샥 캐논이 또 다시 번쩍 섬광을 내뿜었다. 아 포탄이 바

람을 가르며 이쪽으로 날라 온다. 순식간에 눈에서 불이 번쩍 나더니 잠시 동안

사방이 보이질 않았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와르르 무너진채 땅

바닥에 곤두 박혔다. 드디어 마지막 포격에 벙커가 폭발한 것이다. 벙커가 폭발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잔해는 밖으로 퍼지는 바람에 우리 중에 벙커 폭

발 더미에 깔린 사람은 없었다. 반사적으로 가라를 잡고 탱크를 겨누었다. 이제

포탄이 하나 더 날라 오면 우리 중에 살아남을 색히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

렇게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가슴이 처연해졌다. 아~ 몇초가

흘렀을까? 우리는 시지 탱크 포신만 멍하니 처다보고 있었다.

'기리릭~'

놀랍게도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시지 탱크는 땅에 박아 놓았던 다리를 풀고 다

시 동체 속으로 집어 넣었다. 이 후 시지 탱크는 바짝 쫀 우리덜을 비웃기라도

한 듯 털털털 다른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 죽다 살아 남은 우리덜은

모두 얼이 빠진 채로 꼼짝도 않고 서 있기만 했다. 그 순간이었다.

"야이 색히덜아~ 벙커 뽀사졌으면 빨랑 빨랑 비켜야지 뭐 하는 거야??"

잉~ WIBE를 통해 들리는 중대장의 일갈이었다.

순간 '위~잉'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다.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보니 바로 우

리 머리 위에 커맨드 센터가 떠있는 것이었다. 이 거대한 도움형의 건물이 천천

히 우리가 있는 쪽으로 하강하기 시작하였다.

"야이 색히덜아~ 니네 자꾸 훼방 놓을래?? 빨랑 안 피하면 건물에 납짝하게 쥐

포되어도 난 모른다."

우리는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쳤다. 줄행랑 치는 우리 뒤통수에서 '쿠~앙'하

는 소리가 들렸다. 느릿 느릿 하강하던 커맨드 센터가 드디어 땅바닥에 안착한

것이다. 흙먼지가 흩날리며 우리를 덮쳤다.

"야 꼴통~ 도데체 우찌 된 일이야?"

"야 괜챦냐?? 야 정말 너 운 좋았다. 어이 쓰벌, SCV 색히덜이 측량을 잘못해

서 커맨드 센터 들어설 자리에다 벙커를 지었데나 뭐래나... 그래서 할 수 없이

탱크로 뽀사 버린 거래더라..."

"얌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고 사고 나면 어쩔려구 벙커에 사람이 들어

있는데 거기다 대고 포격을 해??"

"야~ 나도 방금 안 사실인데... 벙커가 의외로 물건이더라구... 그거 뽀사지기 전

에는 안에 있는 사람은 머리털 하나 안 다친다구 하더라...."

"그럼 아까 죽은 색히는??"

"쓰벌... 하여간 항상 까부는 색히가 먼저 골로 간데도... 재수 없는 색히지... 벙

커 안에 그냥 짱박고 있으면 아무 탈 없을 텐데... 괜히 허튼 수작 부리다가....

그나저나 벙커 잘 못 지은 그 SCV 색히도 참 불쌍하것다. 아마 몇 년치 연봉

을 까야 할 껄?? 하여간 나도 좀 전에는 사랑하는 아우 하나 잃는 줄 알고 얼

마나 쫄았는지...."

꼴통의 말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러나 그런 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

심하게 기지 정비는 진행되었다. SCV는 방금 부서진 벙커에서 조금 떨어진 위

치에 새로운 벙커를 짓기 시작하였다. 이로서 벙커는 총 3개로 커맨드 센터를

삼각형으로 호위하는 형태를 지니게 되리라. 아까 나를 쳤던 그 시지 탱크는 다

른 시지 탱크와 더불어 역 삼각형 형태로 커맨드 센터 주위에 다리를 박아 넣

은 채로 포진하였다. 기지 정비가 완료된 것은 오후 9:00. 우리는 그때까지 부지

런히 기지 주위를 정찰해야만 했다. 시지 탱크에 학을 뗀 나는 그 근처로 가기

겁이 났으나 탱크 포병은 포탑에서 담배를 꼬나 물며 아주 태연했다. 아까 개죽

음 당한 그 색히는 별로 신경도 안 쓰는 분위기인게 하나 같이 그 색히가 비엉

신 짓해서 죽었다고 어깨만 으쓱댈 뿐이었다. 하여간 시지 탱크와 나의 첫만남

은 피를 봄으로써 이루어졌다. 어렸을 적부터 나와는 지독한 악연이기도 하였다.

 

------------------- 주 석 ---------------------------------

(1) wraith : -n 죽어가는 사람의 생령 또는 막 죽은 사람의 영혼

일반적으로 유령이나 망령을 지칭하기도 함....

 

 

어느 테란병사의 삶 (20)

 

인간의 날고 싶어하는 욕망은 인간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된 것이었다. 또한 인

간 문명의 발달이란 것도 결국 인간의 날고 싶어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과정이리라. 사실 인간 최초의 문화 활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종교라는 것도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었던 높디 높은 하늘에 다다르고 싶

은 인간 욕망에 대한 새로운 표출이라 말해도 큰 무리 없을 법하다.

모방의 천재이기도 했던 인간은 간악한 잔대가리를 굴려 날아 다니는 새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깃털을 몸에 덕지 덕지 붙인다고 날아다니기엔 인간은

턱없이 많이 먹고 싸는 미천한 짐승에 불과했다. 요런 점에서 인간은 땅 속에

처박혀 흙만 파먹고 사는 지렁이와 다를 바 없는 하등 동물일 것이다. 인간의

뻣뻣한 자존심으로 이걸 수긍하기란 죽기보다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날

수 있는 계기를 발견한 것은 불과 수백년 전의 자그마한 사건이 단초가 되었다.

인간이 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인간은 중력이라는 속박의 굴레로부터 자유롭

지 못하다는 말이 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발바닥이 땅에 붙어 있는 걸 너

무 당연하게 여겨 이 중력이라는 존재를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할일 없는

백수가 점심 식사 후 식곤증을 이길려고 정원을 빈둥 빈둥 거닐다 갑자기 뚝

떨어지는 사과를 바라 보면서 중력이라는 당시로서는 황당했던 인류의 적을 발

견하게 된 것이다. 사과에게 영광이 있으라. 이후 중력에서 발버둥 치려는 인간

의 처절했던 노력이 펼쳐졌다. 그나마 이게 헛수고는 아니어서 대략 300년 전에

인간은 드디어 펄펄 나는 저 꾀꼬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중력이라는 창을 공기의 부력이라는 방패로 막아 내어 드디어 창공을

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찌 보면 절반의 성공이었다. 부력을 얻기

위해서는 추진력이 필요했는데 요건 수직 운동 뿐만 아니라 수평 운동 하는데

도 필요했기 때문에 늘상 떠다니는 폼이 엉거 주춤했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후세 백수가 - 일설에 의하면 이 백수는 대학 다닐 때 성적표

에 권총이 수십 자루인 구제 불능아였다고도 한다. - 그전 백수의 사과 이론을

여지 없이 박살내 버리는 새로운 이론을 발표하였다. 요걸 시발점으로 수많은

백수들이 그를 추종하여 연구를 수행하였고 이로서 인류의 오랜 숙적이었던 중

력은 어느날 갑자기 인류의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로 변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른바 반중력 장치라는 것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는데 요것 땜시 인간은

공기의 부력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지고 홀가분하게 날아 다닐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엔진은 떠오르는 힘까지 도맡을 필요가 없이 그저

반중력 장치로 사뿐히 상승한 비행체를 일루 절루 수평 이동시키는 추진력으로

사용하면 그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반중력 장치는 날개라는 개념을 비행체로부

터 싸그리 없애 버렸다. 하여간 네모났든 둥글던 뾰죽하든 요 반중력 장치만 달

면 공중을 붕붕 떠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요 반중력 장치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인간 역사의 대혁명이었다. 반중력 장치 덕분에 우주선은 연료가 없어도 우주

비행이 가능해졌다. 동작 원리는 어찌보면 간단했다. 궤도를 따라 산재한 행성

들의 중력을 잘 이용하여 고걸 추진력 삼아 요리 조리 밀렸다 당겼다하며 이동

하는 것이다. 물론 재래 기술로도 우주 여행은 가능했으나 무엇보다도 이 새로

운 기술의 장점은 우주 비행 경비를 대폭 삭감할 수 있게 됨으로서 대규모의

화물과 승객을 운송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저 인간덜을 이빠이 실을 수

있는 대규모 스페이스 콜로니를 짓고 요기에 반중력 장치를 달면 수퍼 컴퓨터

의 정밀한 제어에 따라 행성의 중력을 추진력으로 요기 조기 떠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인류의 생활권은 전 은하계에 걸쳐 비약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아마 반중력 장치가 없었다면 오늘날 Terran 사회는 존재할 수 없었으리라.

 

우여곡절 많았던 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이 났다. 오후 11:00. 내무반에서 보는

색히덜은 전부 꼴통 빼고는 초면이었다. 늘상 그렇듯이 신고식 비스무리한 얼차

려가 한두번 오갔다. 그나마 나는 일병 진급을 했으나 여전히 내무반에서는 하

바리 꼬붕이었기에 기를 피고 돌아다닐 입장은 되지 못했다. 한바탕 소동이 벌

어진 다음 모두 잠자리에 들어 갔다. 내 몸은 아까 뒤집어쓴 먼지와 땀이 뒤범

벅이 되어서 시궁창을 떠돌던 쥐색히같은 꼬락서니였다. 온 몸에서 퀴퀴한 내가

나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야~ 꼴통, 찜찜해서 잠이 안 온다. 우리 샤워장에 가서 샤워라도 한 판 때리고오자."

"이 색히가 아까 죽을 고비를 넘기더니 간뎅이가 부었나? 얌마 밤에는 샤워장

에서 귀신 나온다고 아무도 안 가는 거 물러?"

"야이 색히야 아무리 귀신이 무섭다고 이 꼬라지를 하고 자냐?? 하~ 색히 발꼬

랑내하고는 야 귀신 한테 죽기 전에 니 발꼬랑내에 질식사 하겠다."

"야 자빠져 디비 자고 낼 아침에 해. 임마 군대에서는 튀어 나온 못이 망치 맞

는 법이야. 아까 벙커에서 튀어나와 깝죽대다 돼진 색히 보지 못했냐?"

순간 아까 내가 죽을 뻔 했던 일을 남 얘기 하듯 깐죽대는 꼴통이 괜시리 야속

해졌다. 나는 부아가 치밀어 계속 말대꾸를 해댔다.

"얌마~ 귀신은 터가 험해서 음기가 강해지면 나온다고 하더라. 설마 일루 이사

왔는데 옛날 귀신이 이곳까지 와서 해꼬지 하겠냐?? 게다가 그 귀신은 살귀가

아닌 색귀라며?? 뭐 쓰벌 수틀리면 살보시나 해주지 뭐. 음... 야 귀신이랑 해보

는 것도 재밌을 것 같지 않냐??"

"십색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야이 색히야 그렇게 뒤지고

싶으면 너 혼자 가! 난 못가.... 이 색히가 오늘을 제삿날로 잡았나?? 왜 안하던

지랄을 떨고 난리야 난리가."

내 똥고집에 질렸는지 꼴통은 연신 화만 내다가 이불을 뒤집어 썼다. 나는 유유

히 샤워장에 갈 채비를 차렸다. 바라만 보던 꼴통은 이내 불안했던지 내게 큼지

막한 몽둥이 하나를 찾아서 쥐어 주었다. 나는 그런 꼴통이 속으로 너무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얌마~ 조심해... 그리고 귀신 나오면 이걸루 열나게 휘둘러.... 으~"

"하~ 색히 온갖 궁상에 허접은.... 짜샤 샤워 끝나고 니 오빠는 상쾌하게 잘테니

까 걱정 싸매고 먼저 푹 디비 자라."

 

예상대로 샤워장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나는 불을 키고 몽둥이를 샤워대 옆에

두었다. 너무 사방이 고요해서 약간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으나 이내 샤워 물소

리가 부산하게 울려 퍼지자 그러한 공포심이 사라졌다. 나는 내 목에 걸린 자그

마한 종을 손으로 쥐어 보았다. 나는 이 종을 받은 후부터 이걸 한시도 내 몸에

서 떼 놓고 다닌 적이 없었다. 이거야 말로 그녀가 내게 준 행운의 징표이기

에... 종 위에 붙은 자그마한 뚜껑을 열었다. 그녀가 그 속에서 싱긋 웃고 있다.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애처로움이 물밀듯이 밀려 왔다. 나는 쏟아지는 물줄기

에 몸을 맡기며 하염없이 상념에 잠겼다.

"지은씨, 오늘이 우리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군요. 이제 우리는 서로 볼 기회가

없겠죠?"

"짧은 만남이었지만 즐거웠어요. 그동안 제가 너무 바보 같은 짓만 해서... 그래

도 아픔 뒤에 저는 보다 성숙해 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 같아요."

"희근씨, 제가 희근씨한테 못할 짓만 한 것 같네요. 희근씨는 저 때문에 하마터

면 캡슐에 끌려 갈 뻔하기 까지 했으니.... 놀라실 필요 없어요. 제게 말 안해도

다 아는 수가 있으니까요."

"아니... 이제 제발 그런 말은 그만 해요.... 다 지나간 일일 뿐이쟎아요? 지은씨

말대로 좋은 이야기로만 수놓아도 이 밤은 너무 짧아요. 자 일루 와요. 오늘 밤

새도록 지은씨로부터 떨어지고 싶지 않네요."

그때 그녀는 보석함을 무릎 위에 놓더니 뭔가를 꺼내 나한테 건네 주었다. 끄트

머리에 자그마한 펜던트가 달린 은빛 종이었다.

"우리 엄마의 유품이예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걸 저한테 주면서 이 마스

코트가 내게 행운을 줄 거라 말씀하셨어요. 원래 펜던트에는 저의 엄마 사진이

들어 있었는데.... 후후후 그냥 제 사진을 다시 박아 넣었어요. 희근씨, 비록 저

와는 다시 만날 기약이 없겠지만 제 행운을 희근씨한테도 나누어 주고 싶네요.

종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죠. 새로운 시작은 희망을 이야기하고요. 희근씨, 희

근씨의 인생 목표가 뭐인지는 지금 나로서는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희근씨의 꿈

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지길 바래요."

"지은씨"

"후후후 소중히 간직해 주세요. 저의 마음이니까. 물론 나중에 저보다 좋은 여

자 만나면 그 땐 사진 바꿔 붙이세요. 괜히 부부 싸움 원인 제공 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그때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이별 선물을 받아 쥐었다. 주섬 주섬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쳐진 내 바지를 찾았다. 바지 주머니에 그녀가

준 그 은종을 집어 넣었을때 등 뒤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나를

뒤에서 꼬옥 껴안았던 것이다. 나는 속에서 뭉클한 그 무언가가 솟아 올랐다.

음 내가 너무 심각해졌나. 지금도 등뒤가 따스한게 누군가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은 듯한 기분이 드는군. 윽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끼쳤

다. 내 엉덩이에 뭔가 꼿꼿한 막대기가 찌르는 기분이 들었기에....

"누구냐?"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뒤에서 나를 안고 있는 정체 불명의 그 무언가를

등으로 떠밀었다. 뒤를 돌아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런데 갑자기 허공에

서 음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호~ 호호호호~"

혹시, 꼴통이 말하던 귀신. 너무 놀라 뒷걸음치던 나는 꼴통이 줬던 방망이를

잡고 사방을 둘러 보았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계속 기분 나쁜 여자 웃음

소리가 들렸다. 톤은 높았으나 약간 쉰듯한 거친 소리였다.

'쉬익~'

갑자기 무언가가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살기가 어린 바람 소리에 나는 반

사적으로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볼이 따끔했다. 칼이 베고 지나간 듯 볼에서

한 줄기 피가 배어 나왔다.

"귀여운 아가야~ 일루 오렴. 이 오빠가 널 귀여워 해 줄께... 호호호~ 멋있어 게

다가 귀엽기까지 하고...."

으~ 온 몸에서 닭살이 돋았다. 저런 귀신한테 그 짓거리를 당하느니 차라리 목

숨을 버리는게 나을 거란 생각마저 든다. 갑자기 정체불명의 그 귀신은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상대방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순간 예측 할 수 없

는 방향에서 쉭쉭 뭔가가 날라 왔다. 보이지 않는 귀신은 뭔가 예리한 흉기를

들고 나를 치는 것 같다. 나는 엉겁결에 방망이를 세차게 휘둘렀다. 그러나 상

황은 너무나 불리했다.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내가 당한다. 나는 출구를 곁

눈질로 봤다. 방망이를 휘두르는 척 하면서 잽싸게 출구를 향해 달렸다.

'어흑'

명치가 욱신거린다. 놈의 발차기에 한 방 먹은 것 같다. 여우같은 놈.... 내가 도

망갈 것을 예상하고 문 앞을 지키고 있다니... 앗 갑자기 뭔가가 내 어깨를 잡는

다. 나는 몸을 세차게 흔들며 땅바닥을 굴렀다. 다행히도 내 몸은 알몸이었고

물이 묻어 있어 미끈 미끈했다. 덕분에 나는 아슬아슬하게 악마 같은 그 놈의

손에서 벗어 났다. 어깨가 후끈 후끈 거렸다. 어깨에는 손톱이 긁고 지나간 자

국이 선명했다. 아~ 적은 나의 동태를 샅샅이 살피고 있었으나 나는 적을 볼 수

가 없다. 이래서는 눈 성한 사람과 장님이 격투를 벌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눈 성한 사람과 장님.... 눈 성한 사람과 장님... 장님... 장님이라.... 뭔가 내 머

리 속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일단은 적의 공격 방향을 최소화시키는게 우선이

었다. 느낌이 이상하면 방망이를 곧추 세워 계속 휘둘러 댔다. 이러자 그 놈은

함부로 내게 덤비지 못했다. 그래 이 쓰벌 색히 덤벼봐. 내가 누군데 그렇게 호

락호락 당할 줄 알아! 이 색히. 나는 천천히 벽을 따라 이동했다. 지금 내 머리

속에는 오로지 하나의 목표물 밖에 없다. 천천히 벽을 따라.... 이제 목표물까지

는 대략 1.5미터. 부~웅 떠오르면 도달할 거리군. 엇 갑자기 바람 소리가 들린

다. 악이 받힌 이 색히가 또 한방을 날린 것 같았다. 나는 목표물을 향해 부~웅

몸을 날렸다. 어흑 발바닥에 묻은 물 때문에 착지가 불안했다. 나는 발을 헛딛

어 몸을 비틀거렸으나 여기서 쓰러지면 끝장이다. 간신히 균형을 잡자 귀신은

재차 공격을 감행한다. 시간이 없었다. 재빨리 스위치를 내렸다. 순간 불이 꺼졌

다. 샤워장이 칠흙같이 어두워졌다. 또다시 불이 켜지는 봉변을 예방하기 위해

나는 방망이로 세차게 스위치를 휘둘러 깠다. 순간 스파크가 튀더니 스위치가

완전 박살이 난듯 하다. 이제 나와 나의 적은 공평하게 된 것이다. (1)

"흐흐흐, 재밌군. 그렇지 원래 반항하는 색히덜이 더 맛있는 법이거든... 순순히

나한테 대주는 애덜은 나도 이제 신물이 나."

귀신은 큰소리는 뻥뻥 쳤지만 나의 시도가 헛수고는 아니었다. 아마도 저 색히

의 정체가 뭔지는 몰랐지만 저 색히도 보통 인간과 같이 빛이 없으면 사물을

볼 수 없는 녀석인 것 같았다. 팽팽한 대치가 계속 되었다. 목소리가 들리는 방

향은 문쪽이었다. 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출구를 봉쇄하고 내가 덤비기를 기다

리는 것 같았다. 숨이 가빠오고 할퀴고 베인 자국이 쿡쿡 쑤셔 왔다. 설사 저

색히한테 순순히 따 먹히더라도 내 목숨을 건진다는 보장이 없다. 그건 아까 벙

커를 뛰쳐 나오다 죽은 색히보다 더 개죽음일 수도 있다. 나는 긴장을 바짝 조

이며 또 다시 벽에 등을 찰싹 달라 붙였다.

문 입구로 다가가서 방망이로 몇 번 휘두른 다음 몸을 구르면 출구를 빠져 나

갈 수 있을 성 싶었다. 몇 발자국 천천히 걸어 나갔다. 앗~ 이런 쓰벌 순간 목

에 걸린 은종에서 종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녀가 내게 준 행운의 징표였지만 지

금의 나에게는 저승길을 재촉하는 죽음의 나팔 소리다. 나는 은종을 말없이 목

에서 벗겨 냈다. 순간 갈등이 생겼다. 죽는 순간까지 이 종을 내 몸에 간직하겠

다고 스스로 맹세했건만.... 아~ 그렇지.... 그녀가 준 선물은 내게는 정말 이 세

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행운의 징표였다. 기회는 한 번 뿐이다. 이 은종이 내게

선사하는 유일한 기회.....

나는 벗겨낸 은종을 가지고 있던 방망이 끝에 꽁꽁 매달았다. 매다는 동안 소리

가 나지 않도록 온갖 주의를 기울였다. 방망이는 귀신 잡는 낚시대요 은종은 미

끼였다. 나는 방망이를 최대한 내 옆으로 뻗고 살그머니 전진하였다. 종소리가

잘랑 잘랑 들린다. 어쩌면 나의 적도 어리보기는 아닌 듯 싶었기에 이번 시도는

헛수고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회는 이번 한 번 뿐이었다. 아 제발, 미끼

에 걸려라. 드디어 문 근처까지 다가갔다. 나는 은종을 살짝 흔들었다. 적은 미

동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참을성있게 흔들어 본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방망

이가 뭔가에 탁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고기가 미끼를 문 것이다. 생각

하고 뭐고 자실 것도 없다. 나는 있는 힘껏 힘을 모아 대충 겨냥한 곳으로 발을 날렸다.

"으~윽"

발에 뭔가가 닿는 순간 내가 치명타를 입혔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나는 방망

이를 힘차게 추켜 세워 올리고 소리가 난 쪽으로 쎄게 휘둘렀다. '퍼~억'하는 둔

탁한 소리가 났다.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러다 내가 죽이는게 아닌가하는

불안감도 들었지만 나는 망설임을 접어 두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윽고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모를 반격에 잠시 머뭇거렸으나 조심스럽게

그 옆을 접근하였다. 귀신은 기절한 듯하다. 그녀의 은종이 내게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이다. 나는 펜던트 뚜껑을 열고 보이지도 않는 그녀 사진 위에다 입을 맞

추었다. 그냥 갈까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문득 이 색히의 정체가 뭔지 궁금했다.

그건 승자만의 권리이기도 했다. 나는 대강 손짐작으로 내 옷을 이용하여 이 색

히 손과 다리를 대충 꽁꽁 묶고 벌거 벗은 채로 이 색히를 밝은 곳까지 끌고

나왔다. 이 색히는 무슨 투명인간?? 밝은 곳으로 끌고 나와도 여전히 형체는 보

이지 않는다.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아~ 그런데 이윽고 이 놈의 형체가

반투명해지더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생김새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

다. 군복 상의 차림에 아랫도리는 물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약간 수염 없

는 마른 얼굴에 머리 색깔이 노랗고 코가 매부리 같다. 나이는 대략 20살 정도

로 보인다. 나는 순간 허탈해져서 털석 주저 앉은 채로 담배 한 개피를 끄냈다..

원래 내 상의 주머니에 있던 담배는 이 색히를 내 옷으로 묶느라 꾸겨지고 반

쯤 젖어 있었다. 쓰벌~ 담배 한 모금을 빤 다음 나는 열받아서 이 색히 대가리

를 주먹으로 한대 후려 갈겼다. 내가 때린 걸 아는 듯 모르는 듯 이 색히는 숨

소리 하나 없이 뻗은 체였다. 시간은 대략 새벽 2:00. 이 색히 때문에 내 목숨이

날아가는 건 둘째 치고 내 잠도 설치게 만든게 짜증이 나서 이 색히가 깨어 나

도 한대 더 쥐어 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 저나 이 색히는 도데체 뭐하는

빌어먹을 색히지??

 

-------------------------------- 주석 --------------------------

(1) 고스트가 착용하는 고글에는 적외선 탐지기가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야간에

도 정찰이 가능하다. 그러나 밤중에 샤워실에서 남자 따 먹으려고 들어온 놈이

완전 군장을 하고 온다는 가정은 오히려 어색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스

토리에서는 고스트가 완전 군장이 아닌 평상 군복 차림으로 나타났다고 가정하였다.

---------------------------------------------------------------

 

 

 

어느 테란병사의 삶 (21)

 

"우웅... 으..."

"야이 색히야 쪼만한 색히가 어디서 못된 짓만 배워 가지구... 일어나 이 색히

야. 너 내 손에 죽었어."

기절한 채 한동안 죽은 듯이 자빠져 있던 귀신(?) 색히가 끙끙 앓는 소리를 하

면서 부시시 눈을 떴다. 눈동자가 구름 한 점 없는 Stynx 행성 하늘 모냥 새파

랗고도 해맑았다. 의외로 귀신이 너무 순진하게 생겨 나는 더더욱 뒤꼴이 땡겼다.

"야이 색히야 너 불어. 너 어디서 온 놈이야? 너 혹시 Zerg냐? 이 색히가 어디

서 요망한 술수는 배워 가지고 와서 애매한 사람한테 해꼬지를 하지... 너 빨리

불어..."

"아저씨,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한 번만 살려 주세요... 죄송해요..."

잉?? 아저씨?? 하긴 나이는 나보다 대략 5-6년 정도 어려 보인다. 아직도 앳된

얼굴에 아이 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이다.

"야이 색히야... 너 자꾸 떼쓰면 상부에 넘겨 버린다...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니

까, 빨리 불어. 너 소속이 어디야..."

"안돼요... 그거 말하면 저 죽어요... 아저씨 잘못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이 색히가 완죤히 가정 교육이 글러 먹었구만... 야 니 애미 애비가 그렇게 하

라구 가르치대 이 후레 자식 같은 색히..."

"우리 엄마 아빠가 시킨게 아니고... 고참이 시켰어... 아니 아니... 하여간 전 부

모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요. 아주 어려서부터 혼자였거든요..."

그 말이 떨어진 순간 그 색히 얼굴에 뭔가 슬픈 빛이 스쳐 지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한 것도 같고 나의 기분도 착잡해져 갔다. 군대에

서 항상 보고 싶은 얼굴은 애인 아니면 부모님 얼굴이다. 따라서 상대방 부모님

욕은 왠만큼 성질 드러운 색히 아니면 안 하는게 군대에서의 묵계이기도 했다.

"야이 색히야... 니가 확실히 불어야 널 놔주든지 말든지 하지... 풀어 줬는데 하

다 못해 니가 Zerg면 어쩔래... 이 색히가... 집에 얼른 돌아가고 싶으면 빨랑 불

어. 계속 버티면 어디 인적 없는 곳에 널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릴 수 있어."

그 색히는 한참을 망설였다. 그래도 나의 갈굼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나 보다.

"저 아저씨... 그럼 이거 아저씨만 알고 있어야 해요. 딴 사람한테 말하면 전 그

날이 죽는 날이예요... 비밀 지키셔야 해요..."

"야이 색히야... 난 니 얼굴 보기도 지긋지긋하다. 입다물고 살테니까 걱정말고

빨랑 불어... 너 도데체 뭐하는 색히야?"

".... 저 사실은 저... Terran군 첩보 부대 소속이예요. 계급은 없고 이름은 웹 스

미쓰.... 저 이제 됐나요... 아저씨... 저 빨리 돌아가야 해요... 안 그러면 고참들

한테 야단 맞아요."

Terran군 첩보 부대?? 이런 애송이가... 첩보 부대가 있다는 말은 어렴풋이 들

었지만 사실 그걸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나는 순간 온 몸

에서 소름이 돋았다. 오늘은 정말 재수 옴 붙은 날이다.

 

꼴통 말 안들은게 정말

후회스럽다. Terran 군 내부에서도 쉬쉬하는 첩보 부대 소속 아해를 이렇듯 X

패놨으니 후환이 두려웠다. 더군다나 이 색히 말이 뻥인 것 같지도 않았다. 아

까 이 색히가 보여준 그 기묘한 능력은 가히 첩보 부대다웠다. 갈등이 때렸다.

이 색히 풀어 주면 난 저승행이다. 그렇다고 이 색히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복창 터진 나는 우물쭈물 거리다가 이 색히를 몇마

디 더 떠 보았다.

"야이 색히야 뻥까지마... 무슨 첩보 부대가 샤워장에서 X지들 후장을 노리냐...

이 색히가 씨도 안 메키는 소리로 날 협박하네... 솔직히 불어... 이 색히야..."

"정말 전 첩보 부대원이예요... 보시다시피 아직은 애송이지만... 가끔씩 고참이

담력 훈련으로 아까 같은 일을 시켜요... 전 죽기보다 하기 싫지만 안 그러면 전

고참한테 맞아 죽어요.... 아군 기지도 침투하지 못하면서 적군 기지를 어떻게

침투하느냐고...."

기가 막힌 소리다. 아~ 진짜 첩보 부대원인가 보다. 게다가 군기도 보통이 아닌것 같다.

"야이 밸도 쓸개도 없는 색히야. 넌 고참이 시킨다고 그래 어린 놈이 형님 뻘

후장을 노려?? 너 변태지? 허우대는 멀쩡하게 생긴 놈이 취미가 왜 그래?"

"아저씨가 더 이상하네요? 아저씨 혹시 아다 아니예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남자가 남자를 보면 쏠리는게 당연한 생리 작용 아닌가요?? ....하지만 아까는

제가 잘못 했어요. 사실 모르는 남자랑 강제로 하는 건 저도 정말 증오하거든요.."

"요런 맹랑한 자식을 봤나. 그럼 니네 부대원들은 같은 남자끼리 뒹굴며 지네냐??"

"네...."

익!! 특수 첩보 부대가 군기도 쎄고 거기다가 변태틱까지....

"우리 고참이 그랬어요. 남자는 남자와 있어야 더더욱 남자다와진다구... 남자끼

리 사랑을 나누어야 남자의 강인한 정기를 나눠 가질 수 있대요.(1) 게다가 우

리 고스트는 서로 서로가 정신적인 유대감을 지녀야만 능력이 배가되기 때문에

서로 숨기는게 있으면 안 된다고 그랬어요."

"고스트??"

"네 우리를 통상적으로 그렇게 불러요."

고스트...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변태 성욕자덜만 따로 모여 사는 귀신 집단....

"고참덜은 절 무척 좋아해요... 덕분에 하루 하루가 너무 피곤하고 주위 내 동기

덜이 날 시기도 많이 하죠. 게다가 고참 중 대부분은 그저 제가 대주기만을 바

래요. 그래서 저는 별로 재미가 없죠. 하긴... 그나마 일부 맘 좋은 고참들은 제

가 귀엽다고 오랄도 해 주니까... 그렇게 불공평한 건 아니고."

으윽~ 상상만 해도 오바이트가 쏠리는 구만....

우리와는 상식이 틀린 고립 집단인 듯 하다. 게다가 유대감도 강하고. 괜히 어

설프게 이 색히를 놔 주었다가는 나는 골로 갈 것이다. 이 색히가 말하는 고참

덜한테 돌림빵을 당할지도 모른다. 착잡해 졌다.

"아저씨, 이제 다 말했으니까 제발 저 좀 풀어 주세요... 아 팔다리가 저려서 미치겠어요."

"야이 색히야 너 부대로 복귀하면 고참덜한테 꼰지를 거지? 어 오늘 당했다고

나중에 앙심 품고 해꼬지 할 거지?"

"..... 그런 짓 했다간 제가 먼저 맞아 죽어요..."

"?????"

"우리 부대의 실체는 절대 비밀이예요. 만약 제가 아저씨랑 말 주고 받은 거 상

부에서 아는 날엔 그날로 전 캡슐 행이고 게다가 고스트가 일개 비무장 사병한

테 이렇게 얻어 터진 거 고참이 알게 되면 캡슐 가기 전에 전 완죤히 몽둥이

찜질이예요.... 그러니까 아저씨 어디가서 절대로 저 만났다는 말 하면 안되요...

아.. 팔 저려... 이거 좀 풀어 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색히가 부로 그러는 말은 아

닌듯 했고. 게다가 이렇게 젖비린내 나는 색히를 모질게 패고 꽁꽁 묶어 놨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좀 안스러웠다. 나는 그 색히 몸을 풀어 주고 주섬 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었다. 옷이 꾸깃 꾸깃 했다. 나는 담배 한 개피 새로 꼬나물고

그 색히 한테도 담배 한 대를 건넸다. 불을 붙여 주자 어설프게 한 모금 빨더니

연신 캑캑 거렸다. 그 꼬라지가 너무 우스웠다.

"야이 색히야... 담배도 제대로 못 빠는 색히가 그런 칼춤을 췄어?? 하여간 살다

보니 별 웃기는 색히를 다 보네..."

"아깐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고스트는 항상 임무에 들어가면 정신 강화 약물

을 복용하거든요. 아까 고참한테 하두 가기 싫다고 하니까 억지로 저한테 먹여

서.... 하여간 죄송해요... 저도 싫었어요... 아까는 정말 약발이었어요...(2)"

순간 나의 가슴이 찡해왔다. 하긴 전쟁터에서 모르모트 모냥 뽕이나 맞고 날뛰

는 우리 마린이나 고참이 시켜서 약발에 억지로 남자 후장이나 노리는 고스트

나 소모품이긴 마찬가지였다. 이 색히 하는 짓거리나 말하는 투는 영 내 맘에

안들었으나 결국 이 색히와 나의 처지는 백지장 한 장 차였다. 아까 죽을 고비

를 넘긴 것도 잊은채 이 색히가 너무 안쓰러워 보여 얼굴을 멀뚱 멀뚱 쳐다 보

았다. 해맑은 눈동자를 지녔다. 약간 앳되 보였으나 여느 평범한 청년의 얼굴이다.

"야 근데 너네 고스트는 전부 그렇게 투명 인간처럼 하고 다니냐?? 원 살다 살

다 별 해괴한 꼴을 다 봐서...."

"클로킹 기술은 고스트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일 뿐이예요... 전 아직 하바리라서

그 정도 기술도 감지 덕지지만... 고스트는 그 외에도 능력이 많아요... 전 아직

도 모자르죠... 부지런히 배워야...."

"음...."

"하다 못해 오늘 작전도 실패했쟎아요... 원래 고스트는 스나이핑(3)이 주된 목

적이었어요... 몰래 기지를 침투해 들어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요인을 암살하는

게 가장 기본적인 고스트의 역할이죠... 전 아직도 기본기가 덜 되었어요..."

나이도 어린 놈이 그런 섬뜩한 살인 기술을 배우면서 태연하게 기본기가 덜 되

었다고 지껄이다니.... 게다가 이 녀석은 부모도 없고.

"아저씨, 절 풀어 주셔서 정말 고마와요... 그리고 아저씨랑 즐거웠어요... 아저씨

는 좋은 사람 같아요... 아까 제가 한 행동이 너무 후회되네요... 근데 이제 가봐

야 해요... 늦게 들어가면 고참한테 혼나거든요...."

"이름이 웨.. 뭐라고 했던가??"

"후후후 제 이름은 웹 스미쓰, 애칭으로 모두가 웨비라고 불러요..."

"음 웨비... 첫만남이 좀 험했지만 어쨌든 만나서 반가왔다.(?) 잘 돌아가라."

"네 그리고요... 절대 딴 사람한테 저 만났다고 말하면 안돼요...."

"걱정마 색히야... 그거 불면 너 죽기전에 내가 먼저 죽어..."

웨비는 싱긋 웃더니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멀뚱 멀뚱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내 시야에서 이내 사라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4

시... 아... 5시가 취침인데... 온몸이 아직도 욱신욱신 거린다. 나는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빨고 너털 너털 내무반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 쓰벌 누군 좋겠다... 털털 거리지만 장님 구르마타고 가고... 누군 X빠지게

걸어서 가고...."

꼴통은 쉼없이 아가리를 나불 나불 대며 걷는다. 땅 위로 아 오르는 뜨거운

열기 때문에 발바닥이 후끈 거릴 정도이다. 우리 옆에는 시지 탱크가 기세 좋게

덜덜 거리며 달린다. 우리 마린 개떼들은 고목 나무에 매미 달라 붙듯 탱크 옆

에 착 달라 붙어 진군해야만 한다. 덕분에 캐터펄트가 진동할 때마다 풀풀나는

흙먼지를 고스란히 다 뒤집어 써야 했다. 더운 공기에 흙먼지라... 게다가 그 덜

덜 거리는 소음 때문에 귀가 다 멍멍하다. 목표 지점까지는 기약도 할 수 없는

머나먼 행군이다. 어언 기지를 떠나온지도 닷새째가 되어 간다.

"야 꼴통... 이러다간 Zerg고 뭐고 간에 땡볕에 통구이가 되어서 죽겠다..."

"하따 색히... 샤워장에서 귀신도 때려 잡은 색히가 엄살은...."

"얌마... 조용히 해.. 누가 듣겠다... 그건 나하고 너만의 비밀이쟎아..."

"하 색히, 누가 들으면 너랑 나랑 사귀는 줄 알겠다."

꼴통은 그날 걱정이 되었는지 잠을 설쳤었나 부다. 결국 혼자서 주섬 주섬 차려

입고 날 찾아 다녔었다고 한다. 규정 취침 시간에 잠 안자고 자율 행동하는 건

군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덜한테 말도 못하고 혼자 속으로

끙끙 앓았나 보다. 꼴통은 나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란 눈치였다. 그나마 날 위

해주는 놈은 꼴통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코끝이 찡했다. 그래서 나는 웨빈지 뭔

지하는 그 색히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꼴통한테만 자초지종을 말했다.

우리의 임무는 805 구역에서 파이 부대와 합류하여 Zerg의 기지를 공격하는 것

이었다. 그 이외의 구체적인 사항은 알 길이 없다. 한가지 의문인 것은 그간 항

상 수비에만 전념하던 우리 Terran 군이 근년에 들어서 적극적인 공세로 돌아

섰다는 것이다. 확장 기지를 건설한 것도 그렇고... 이렇듯 다른 부대까지 끌어

들인 대대적인 합동 작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우리같은 말단은 윗대가리

들의 꿍꿍이속을 알 도리가 없기 때문에 그저 시키는 대로 묵묵히 수행하는게

심신의 건강 유지에 좋았다.

"야 두더지, 멸치하고 돌부처는 잘 살고 있겠지??"

멸치 일병과 돌부처 병장... 하긴 이제는 멸치 상병과 돌부처 하사라고 불러야

겠지? 돌부처 황병장의 얼굴이 문연듯 떠올랐다.

"그 색히덜 우리 많이 굴려 먹었지만... 그래도 갈굼은 고참덜의 원초적인 본능

이니까 열외로 치고... 하여간 좋은 인간들이었는데...."

"색히... 자다 봉창은... 임마 볼 때는 그렇게 야리더니 이제와서 그리워?"

"멸치는 싸가지는 없지만 그래도 귀여웠쟎아... 하긴 그 색히 수발 받아 주다가

내가 죽는 줄 알았지만... 그리고 돌부처야 워낙 성격이 그렇게 꿍하니 할 말 없

지만... 그래도 그 사람 내색을 안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우리 꽤나 위했다. 돌부

처는 하여간 그 욱하는 성질만 없으면 근본은 착한 사람인데..."

"야 그건 그런데... 왜 시지 탱크가 장님 구르마냐?? 그 소리 너한테 처음 듣는다."

"몰라... 다들 그래... 저게 얼마나 실전에서 폼나고 위력있는지는 모르지만 오줌

똥도 못가리는 장님이란다... 하여간 저 색히덜 하는 짓이 술취한 장님이 칼춤

추는 것처럼 황당하댄다...."

"빰빠라바바 빰빠라바바 빰빠라바바 빰빠라바"

"저 색히 또 시작했군... 와우 돌아 가시겠다."

"내비둬라... 그래도 저 색히가 더 계급이 높댄다... 이럴 땐 그저 씹고 가는게

최고 아니겠냐."

시지 탱크 포탑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포병 놈덜이 우리 마린 개떼덜이 지

네들을 호위하고 간다고 생각하자마자 문득 호연지기가 발했나 부다. 지딴에는

진군가라고 고래 고래 부르는데 정신 머리가 사나왔다. 음정, 박자는 둘째치고

엄청난 데시벨이었다. 덜덜 요란한 장님 구르마 굴러 가는 와중에도 노랫 가락

이 쩌렁쩌렁 내 귀를 찔러 온다. 더위와 피로에 찌든 엿같은 상황에 소음 공해

까지 겹치다 보니 울 마린 중 훽 돌아 버려 일시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고 엉뚱

한 곳으로 향하는 색히까지 속출하였다.

"빰빠라바바 빰빠라바바 빰빠라바바 빰빠라바"

 

축 처진 내 몸을 장님 구르마 갑판에 기댄 체로 담배 한 모금을 빤다. 천금 같

은 휴식 시간이었다. 갑판은 햇빛에 달구어져 엄청나게 뜨거웠지만 그렇다고 마

땅히 기댈 곳도 없었다. 땅바닥에 누우면 오히려 낫겠지만 아마 그런 짓 했다가

는 고참덜의 워커 발에 내 몸이 걸레가 되리라. 진군 중에는 절대로 경계를 늦

추어서는 안되었다. 따라서 고참덜 눈치 봐가며 장님 구르마에 기대는 것이 유

일한 낙이었다. 물론 간뎅이가 부은 놈덜은 장님 구르마 밑바닥에 기어 들어가

한숨 눈을 붙이는 색히덜도 있다. 그나마 유일한 그늘이었기 때문에 거기는 쪼

께 시원했다. 그곳을 우리들은 명당 자리라고 불렀는데 실제로 어떤 색히는 출

발 명령이 떨어졌는데도 태연하게 시지 탱크 밑바닥에서 자다가 캐터펄트에 깔

려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어이 담배 한 개피만 있으면 줘라."

아까 포탑에서 노래(?) 부르던 탱크병 색히였다. 그래도 명색이 상관이라고 나

는 잽싸게 담배 한 개피 뽑아 바치고 불도 손수 붙여 줬다. 이 색히 빠릿 빠릿

한 내 동작에 만족했는지 담배 연기 한 모금 뿜더니 내게 계속 말을 걸어 왔다.

"힘들지?"

"(잉?) 예? 아.. 아닙니다. 끄떡 없습니다."

"하따 색히 목소리 한번 우렁차네... 나는 구만리 상사다. 시그마 부대 제 3 기

갑 부대 소속이고... 음... 그냥 하는 야근데... 하여간 니네 불만 많을 거다.... 탱

크 옆에서 온갖 흙먼지 다 뒤집어 쓰고... 그러나 불만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야이 색히들아... 차라리 걷는게 편하지 니가 만일 나처럼 저 깡통 속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봐라. 엉치 아프지 오금 저리지... 저 짓도 못해 먹을 짓이야."

의외로 사근 사근 붙임성 있는 인간이다. 여태껏 군바리 짓 하면서 봐오던 유형

의 인간이 아니었다. 소탈하면서도 옆집 아저씨 같은 면도 보였다.

"하지만 말야.... 니네와 우리는 Terran의 무적 땅개라 이 말씀이야. 탱크 없는

마린은 홀아비요 마린 없는 탱크는 과부란 말이지... 니가 실전 경험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난 정말 실전은 잔뼈가 굵다 못해 통뼈가 된 놈이다. 그래서

내가 잘 알지... 당나라 부대일 수록 마린과 탱크의 금슬이 좋지가 못해서 항상

콩가루에 떼죽음 당하는 걸 많이 봤거든..."

"원래 마린 개떼와 시지 탱크 부대는 오래된 부부 같아서 쌈박질도 징그럽게

많이 하고 서로가 앙숙이지. 그래도 탱크가 믿는 구석은 마린이요... 마린이 믿

는 구석은 탱크밖에 없어... 음... 말만 길어 졌군..."

"저는 시그마 부대 2중대 양.... (음!) 양희근 일병입니다.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

사합니다. 깊게 새겨 듣겠습니.."

"하 색히... 무던히도 굴렀나 보군... 아부 근성도 제법인데... 쨔샤, 내가 니 선임

하사도 아닌데 이런 말 하는 건 저번에 벙커 부수다가 개죽음 당한 색히가 맘

에 걸려서 그래. 뭐 내가 죽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

다. 나는 혹시나 너같은 마린 색히덜 만나면 오해 풀어줄려고 별 영양가 없는

구라를 풀곤 하는 버릇이 있다. 이해해라. 음 벌써 출발 시간이 다되었군... 하여

간 담배 고마왔다."

구만리 상사라고? 하여간 군대는 별별 인간덜이 다있군. 여태껏 봐온 상관의 유

형은 이분법으로 충분히 분류 가능했다. 악다구리 같은 개색히덜 아니면 거들먹

거리는 기생 오라비덜... 그 와중에도 저런 인간도 있구만. 하긴 그동안 내가 너

무 황폐하게 살았나 보다. 사회에서는 당연한 처사인데도 이곳에서는 영 어색하

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장님 구르마 시동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구르마 밑바닥에서 자던 색히

덜이 엔진 소리에 놀라 잠이 깼는지 하나 둘씩 기어 나온다. 꼬라지가 영락없이

소독약 뿌린 찬장 밑에서 기어나오는 바퀴벌레였다. 이윽고 구르마가 육중한 몸

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우리는 또다시 고된 행군을 시작하였다.

 

--------------------------- 주 석 -----------------------------

(1) 실제로 고대 그리스나 중세 기사 사회에서는 동성애가 전우애를 다지고 연

대감을 쌓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전투력이 우수한 병사의 정기를

나누어 준다는 일종의 미신 비슷한 사고 방식 때문에 성행하였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예는 고대 아테네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소년과 노인 사이의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당연시 했다. 동성애를 통해 소년은 노인의 지혜를 흡수하고 노인은

소년의 젊음을 보충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요러한 오해 때문에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동성애를 했다는 이유로 역사속에서 변태로 오해 받기도 한다.

(2) 고스트는 왜 스팀팩을 쓸 수 없는가?? 요거에 대해 필자는 고스트는 특별한

정신 강화 약물을 상용하기 때문에 스팀팩 사용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설정을 하였다. 여기에 대한 언급은 소설 이후 부분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3) 고스트는 테란 병사 중 사정거리가 가장 길며 클로킹 기능이 있고 총의 사

양이 산탄총으로 연사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고스트는 애시당초 스나이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어느 테란 병사의 삶 (22)

 

전쟁이란 살코기 빼고 뼈다구 빼고 비계 빼고도 건덕지가 남는 놈이 이긴다.

적에게 털을 베였으면 우리 편은 적의 살가죽에 칼 구멍이라도 내야 한다. 적이

우리편의 살가죽에 칼 구멍이라도 내면 우리는 적의 뼈를 으깨야 살아 남는다.

결국 털보다는 살, 살보다는 뼈가 중요한 게 전쟁이다. 그러나 뭐가 털이고 살

이고 뼈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서 전쟁에는 전략이라는 온갖 꼼수가 난무한다.

그러나 전략 수립의 가치 기준에 있어서 일종의 묵계가 존재해 왔다. 말인즉 우

리 마린 개떼와 같은 하바리가 털이라면 일전에 장렬히 산화한 에드몬드 듀크

같은 자는 용가리 통뼈이다. 물론 논리는 일견 그럴싸하다. 전쟁이란 일사 불란

한 명령체계가 생명이기 때문에 하바리들보다는 상관들이 더 중요하다. 만일 상

관덜이 일개 마린 땅개 나부랑이처럼 전쟁터에서 쓰러진다면 그 군대는 뒤죽박

죽 엉망이 되어 절딴나 버릴거라고 한다. 예부터 장수가 없는 병졸이란 오합지

졸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군대 짠밥이 어느정도 쌓인 나의 견해는 이와는 조금

다르다. 말인즉 전략 체계를 수립하는 작자덜이 모조리 윗대가리 놈덜이라는 것

이다. 만일 Terran 연맹이 나에게 전략 체계를 구축하라고 하면 나는 당쓰

Terran군의 최우선 보호 목표는 나 양일병으로 설정했을 것이다.

Terran 연맹 윗대가리덜의 실낱같은 생명을 보호하고 안녕을 도모하는 가장

최우선책은 후방으로 빠져나와 자기 집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UNN 뉴스를 들으

며 전쟁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 보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래서는 군인

으로서 쪽팔리고 재미도 없다. 실제 그덜은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앞장 설 필

요가 있으며 또 그걸 원하기도 한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으리라. 적의

수급은 윗대가리덜의 공명심을 촉발시키는 아주 효과적인 촉매제니까.. 그렇다

고 일개 땅개처럼 두발로 뛰며 가라를 흔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그런 짓은 일개 하바리덜이 적의 총탄에 쓰러질 확률과 동일한 수치의 확률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전략 수립 묵계에 어긋난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 것조

차 쪽팔린 짓이다. 그덜은 일선에서 용감히 싸우는 싸움개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전달하기 좋아하는 족속이다. 무엇보다도 싸울 때 뽀다구가 중요하다. 요래서

Terran 과학 기술진덜의 온갖 위대한 꼼수가 동원되었다.

장성급의 고귀하신 통뼈덜에게 베틀 구르마는 자신의 지체에 잘 어울리는 탈

것이다. 무엇보다도 베틀 구르마는 덩치가 무지 무지 컸고 속도 또한 무지 무지

느렸다. 점쟎으신 웃어른께서 촐삭 촐삭 움직이는 걸 타고 다닌다는 건 경망스

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베틀 구르마는 정말 위엄있고도 느긋한 품격을

지녔다. 그러나 베틀 구르마는 일부 소수의 점유물이었다. 일개 야전 장교덜한

테도 베틀 구르마를 나누어 주었다간 Terran 경제는 일년안에 모라토리움 상태

가 되리라.

한 때 야전 장교덜의 지휘용 탈 것으로 기생 오라비 꽃가마를 보급한 적이 있

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기생 오라비 꽃가마는 속도하나는 믿을 만 했기 때문에

유사시 줄행랑에는 기가 막힌 효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기생 오라비 꽃가마

는 곧 폐기 처분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Terran 땅개덜의 군인 정신은 단순

무식 지랄 무대뽀였기 때문에 향기로운 군인 정신에 벌쳐의 스피드는 영 어울

리지가 않았다. 속도가 빠르다는 이미지는 도망자의 이미지를 낳고 이건 곧바로

비겁자 내지 패전자의 이미지를 내 풍겼기 때문에 윗대가리 황태덜의 목숨 보

호라는 원초적인 목적에는 크게 부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퇴출 대상이 되어 버

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간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 남 보기에 뽀다구가

나야 정말 사는 보람을 느끼는 것이리라.

그래서 한동안은 시지 탱크가 야전 장교에게 어울리는 탈 것으로 각광 받았다.

무엇보다도 묵직한 움직임이 위엄을 갖추었고 시지 탱크야 말로 Terran 군 전

투 유닛 중 방어력 하나만은 정말 믿을만하다. 그것 뿐인가. 울 Terran 어린이

들에게 시지 탱크는 힘과 정의를 상징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만화 영화를 봐

도 우리의 주인공은 늘 시지 탱크만 타고 다닌다. 주인공의 시지 탱크가 불을

뿜으면 적의 도시가 2개고 3개고 다 날라가 버린다. 하늘에는 베틀 구르마, 땅

에는 시지 탱크 이 얼마나 멋있는 문구인가.. 게다가 탱크는 베틀 구르마에 비

하면 생산 단가도 껌 값에 불과했다.

그러나 기세 등등하던 탱크의 위세도 곧 한 풀 꺾이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탱크

는 대공 능력이 빵이었다. 더군다나 탱크는 Terran 군의 주력 전투 병기였던

관계로 적에게는 항상 제일 목표였다. 땅 위에서는 무적으로 군림하였지만 날아

다니는 뱅기가 보기에 탱크는 마른 땅을 비집고 꿈틀대는 지렁이와 마찬가지

존재였다. 레이쓰라도 뜨는 날에는 탱크는 미천한 마린 땅개덜로부터 보호받아

야 하는 비참한 운명적 존재가 되버리고 만다. 요것 또한 윗대가리덜의 공명심

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치명타였다. 그래서 무던히도 대가리를 굴렸다. 결국

굴리고 굴린 대가리 끝에 한 가지 타결점에 도달하는데 성공하였다.

 

애당초 골리앗은 지금의 생김새와는 판이하게 달랐다고 한다. 시지 탱크의 대공

능력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보안하기 위해서 Arcrite shock 캐논 대신 미사

일 터렛이 장착된 하이브리드 타입의 장갑 차량을 개발하였다. 따라서 초창기

모델은 미사일 터렛에 캐터필러가 달린 생김새였다고 한다. 이 후 기존의

arcrite 캐논은 연사력이 너무 떨어지는 관계로 대신 더블 캐논을 장착한 새로

운 버전을 개발하였다. 더블 캐논은 일반 마린 땅개덜의 가라와 제원이 유사했

으나 대신 보다 구경을 크게 함으로써 살상력을 높였다고 한다. 말인즉 초기 골

리앗은 캐터필러가 달린 움직이는 미사일 터렛이 가라 2정을 들고 다니는 꼬락

서니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버전도 이내 실패작으로 판명났다. 우선 기동성이

가장 큰 문제였다. 기존의 시지 탱크의 경우 Arcite shock 캐논의 공격 범위가

무척이나 컸기 때문에 캐터필러 구조가 지니는 기동성의 결함을 어느 정도 만

회할 수 있었으나 달랑 미사일 터렛이 가라 2정 메고 굼벵이처럼 꿈지럭 댄다

면 근접전 유닛에게 씹히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로서 추가 연구 예산비만

눈덩이처럼 불어 났고 Terran 과학 기술진의 머리에는 새치가 늘어만 갔다. 결

국 궁여지책 끝에 캐터필러를 없애고 대신 벌쳐처럼 반중력 장치를 채용하였다.

덕분에 미사일 터렛의 대공 능력과 마린 개떼의 근접전, 벌쳐의 기동성을 하나

로 융합한 기똥찬 전투 유닛이 탄생했다고 얼마나 떠들어 댔는지 지금도 귀가

아플 지경이다.

 

이로서 골리앗은 전천후 전투 유닛으로 각광 받는 듯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

은 듯했다라는 어구가 주는 X같은 아쉬움이리라. 부지런히 야전 장교덜에게 보

급되었으나 불과 몇 개월 만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전투력은 둘째 치더

라도 우선 뽀다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입 아프게 또 떠들

지만 인간은 밥만 먹고 살수도 없다. 개폼 뽀다구가 나야 살 맛을 느끼는 것이 기에.

야전 장교덜은 골리앗이 살만 디룩 디룩 찐 기생 오라비 꽃가마라고 쫑크 놓기

일쑤였다. 그나마 벌쳐는 얍쌍하니 잘 빠져서 보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이건 덩

치만 졸라 큰게 둥둥 떠다니니 무슨 총 둘러맨 SCV 같다고 쳐다 보지도 않았

다. 단순 무식 지랄로 대표되는 울 Terran 땅개 군인 정신의 요체는 바로 튼튼

한 두 다리로 상징된다. 군가에도 나온다. 오로지 튼튼한 두다리만으로도 이를

악물고 우주 끝까지 행군하여 마지막 한 놈까지 가라로 박살내겠다고..

상황이 이러할 진데 일개 두더지 귀신덜이 타고 다니는 거 비스무리한 걸 탄

다면 그 얼마나 쪽팔린 일일까.. 즉 전투력이라는 실리 이전에 튼튼한 두 다리

라는 뿌리깊은 명분이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골리앗에 튼튼한 두 다리를 붙여 주었다. 어찌나

굵고 우람하던지 정말 보기만 해도 밝혀 죽을 것 같은 큼지막한 다리였다. 결국

골리앗은 튼튼한 두 다리 덕분에 생산 단가가 천정 부지로 치솟았고 결국 또

한번의 구조 조정을 겪어야만 했다. 원래 미사일 터렛을 장착함으로써 부수적으

로 얻어지던 디텍팅 기능이 제원에서 사라졌다. 미사일이 헬파이어 미사일로

대치되었는데 이 기종은 사정 거리가 기존 미사일의 반 밖에 되지 않았다. 대신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동시에 2개를 발사할 수 있는 점이 유일한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기계 다리로 대치됨에 따라 이동 속도는 기존보다 반 이하로 줄어

들었다. 그래도 시지 탱크보다는 그럭저럭 빠른 기동성을 보이는데는 성공하였

다고 한다. 전투력은 과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선 장교덜은 새로운

골리앗에 쌍수를 들고 환호를 했다. 어차피 지휘용 전투 유닛일 뿐 주력 전투

유닛이 아니었기에 전투력은 어찌 되었건 별 상관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

보다도 뽀다구가 기존 Terran의 전투 유닛 중 독보적이었다. 우람한 두 다리와

등에 짊어진 위협적인 미사일 론쳐. 거기에 양 손에는 기깔난 더블 캐논. 이로

서 골리앗은 황태덜의 진정한 탈 것으로 공식화되는 분위기에 이르렀다.

 

"제군들에게 알린다. 긴급 상황 발생. 행군을 중지하고 경계 태세에 돌입한다.

지체 시간은 대략 30분으로 예상 된다. 추가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대기하기 바란다."

"울랄라~ 꼴통, 정말 눈물 겹도록 고마운 위대한 Terran 과학 기술진덜이다. 가

뜩이나 발바닥이 까져서 걷기 힘들었는데 군 사기 진작을 위해 이렇게 까지 신

경써 주다니..."

"하이고... 하여간 윗대가리놈덜 장난감 덕분에 살판 난다. 니미 쓰벌 이미 갈

때까지 간거 날씨야 제발 오늘 같이만 계속 퍽퍽 쪄라. 그래야 우리 같은 하바

리덜이 편하지...."

지 아무리 WIBE에서 긴급 상황이라고 갈구어도 눈 하나 깜짝하는 놈없다. 천

금 같은 휴식을 단 일초라도 아끼면서 즐기기 위해 모조리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다. 30분 동안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 두어야 한다. 아마 행군 앞 줄에서는 애

꿎은 SCV 놈덜만 와리 가리 난리 부르스일 것이다. 보나마나 골리앗 기계 다

리 부근의 균형 센서가 더운 날씨에 맛이 간 것이리라. 우리 땅개덜의 총천연

다리에 비하면 골리앗의 인공 기계 다리는 훨 우람하고 뽀다구 났으나 그다지

튼튼하지는 못한가 부다. 뻑하면 더위에 맛이 가고 흙먼지에 맛이 가서 오동작

을 일으켰다. 덕분에 행군 속도는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우리는 살판 났다.

 

아직 동녘이 틀려면 3시간 가량 지나야만 한다. 야간 보초 서는 일은 더운 여름

날 음식에 꼬이는 파리 색히덜 내쫓는 일만큼이나 귀챦은 일이었으나 그동안

쌓인 짠밥이 어느 정도 내공 단련에 도움이 되어서 죽을 지경은 아니었다. 야간

보초 섰을 때에 나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아주 작은 소리나 움직임도 귀

신같이 포착하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건 마치 평소에는 꺼져 있다가 뭔가

예민한 반응에도 전원이 들어 오는 컴퓨터와 같은 작용이었다. 걷고 있으면서도

사방을 두리번 거리면서도 나의 뇌는 자고 있다. 꾸벅 꾸벅 졸다가도 뭔가 낌새

가 이상하면 비상하게 눈이 떠졌다. 그동안의 전투 경험이 나를 예민한 야행성

육식 동물로 탈바꿈시킨 것이었다.

나와 같은 조인 색히는 오일병이라는 자식으로 아직 서로 서로가 서먹서먹하긴

했으나 뭐 그런데로 농담 몇 마디 주고 받으며 담배 정도는 서로 꿔 줄 정도의

안면은 되었다. 그 자식 얼굴에도 '피곤'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써갈겨 졌다.

그래도 어제 행군은 유람이라 할 수 있었다. 골리앗이 뻑하면 맛이 가서 그거

고치느라고 길에서 어마어마하게 시간을 잡아 먹었다. 군대는 늘상 제로 섬게임

이다. 골리앗 때문에 팔자가 늘어진 인간덜이 있는가 하면 그것 때문에 X뺑이

까야 하는 불쌍한 인간덜도 존재하는 법이니.... SCV들은 골리앗의 다리 부분을

수리하느라 철야 작업을 해야만 했다. 지금도 저 멀리서 용접하는 불빛이 아스

라이 보인다.

"이봐 양일병 이거 한 번 씹어 볼래?? 보기엔 좀 그래도 그런데로 먹을만 해..."

"이게 뭐냐?? 마른 오징어 같기도 하고... 혹시 오징어냐??"

"야이 색히야 여기가 무슨 부댄줄 알아?? 오징어 같은 소리는.... 며칠 전 잡아

놓은 라이너돈(Rhynadon)인데... 그냥 북북 햇볕에 바짝 말린 거다...(1)"

"애이 난 사양할래... 사식 먹고 뒷감당을 어찌할려구 그래??"

"하 색히... 싫으면 관둬... 난 없어서 못 먹는데 기껏 줄려고 내 놓으니까 딴 소리는..."

"야 근데... 너 행군 중에 소식 오면 어쩔려구 사식을 먹냐??"

"하따 색히... 임마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옛지구 속담도 모르

냐?? 난 자고로 알약만 먹고는 버티지 못하는 체질이라서... 여기 차출되기 전에

몇가지 손을 봐놓았다. 이 전투복이 보기엔 이래도 안에는 특제 요강이 달려 있거든..."

"특제 요강??"

"그럼마... 내가 사제 전파소에 돈 두둑히 주고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다. 요건

기존의 뒷뚜껑 시스템과는 차원이 틀려... 그냥 싸고 싶으면 걸으면서도 질질 싸

면 돼... 그러면 물세척도 해주지... 온풍이 나와 말려 주지... 야 이건 진짜 비싼거라구..."

"음...."

"니미 쓰벌... 왜 제내덜이 골리앗에 저렇게 집착하는 줄 알아?? 내 듣기로는 골

리앗은 내부에 변기도 달려 있고 샤워 장비도 있다고 하더라... 자고로 인간은

삶이 쾌적해야 전투 의욕이 는 법이야..."

"야 근데 볼 일 보면 골리앗 운전은 누가하냐??"

"하따 색히... 별 씨잘데기 없는 생각은... 임마 골리앗이 괜히 골리앗이냐?? 저

건 무인 항법 장치도 달려 있어서... 기계가 지가 알아서 움직인다고 하더라...(2)

그러니 뭐 행군 중에 타고 있는 색히는 자던 딸딸이를 치던 골리앗은 궤도를

벗어나는 일 없이 똑바로 잘 굴러 간다 이 말씀이지... 그런데... 골리앗 뻗었다

고 저 색히덜이 뭐 골볐다고 걸어 오겠냐?? 그거 다 고칠 때까지 기다려야지...

쩌비..."

오일병 그녀석은 라이너돈 육포(?)를 질겅 질겅 씹으며 사방을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이윽고 그 색히는 내게 나지막히 속삭였다.

"근데 이 요강이 좀 불편한 점이 있어.... 안에 내용물이 꽉차면 비워 주고 세척

도 해 주어야 되거든... 그게 좀 성가시긴 하지... 얼마전에는 행군 중에 내용물

이 넘쳐서 죽는 줄 알았다... 야... 너 아까 이 근처에 있던 자그마한 시내 봤

지?? 거기가서 씻어야 하는데 같이 가 줘라..."

"임마... 거긴 진지 밖 아냐?? 괜히 잘못 가다가 지뢰라도 밟으면 어쩔려구 그래??"

"아 색히... 이거 완죤히 또라이에 새가슴아냐?? 너 전생이 닭이냐?? 이 색히

야... 여긴 좀 이따 자고 일어나면 떠날 곳인데 뭐 골볐다고 이 근처에 지뢰를

박아 넣냐?? 임마 지뢰도 돈 주고 사서 묻는 거지 공짜로 묻냐?? 아 색히..."

"난 싫어. 정 그러면 너 혼자 갖다 와..."

"이 색히가 도통 전우애가 없구만... 야 이 색히야... 불빛도 없는데서 이거 잘

닦을려면 그게 보통 노가단 줄 알아?? 그동안 딴데 신경을 못 쓴다구... 아 누가

그 동안에 짱봐야 될 거 아냐... 야이 색히야... 이 사제 요강도 불법인데 근무

시간에 이탈해서 이거 닦는 광경 들켜봐라... 난 당장 캡슐행이지..."

"이봐 오일병... 그렇게 위험한 일에 왜 날 끌어 들일려고해... 됐어... 너 혼자해.."

"하따 앞 뒤 꽉막히기는... 임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별일 없어.... 니가 짱만 잘

보면 진짜루 별 문제 없데두... 게다가 내가 맨입으로 너한테 이런 부탁 하겠

냐?? 야 우리 계 맺자... 그러니까 음... 우린 한 배를 탄다 이 말이지... 만약 날

따라와서 망만 봐준다면 이 요강 너한테도 빌려 줄께... 어때 괜챦지??"

사식에 바짝 굶주린 나에게 요강을 빌려 주겠다는 말은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

다. 결국 나는 요강에 미쳐서 그 색히 뒤를 졸졸 쫓아 갔다.

 

오일병의 말이 헷말은 아닌듯 하다. 시냇가 주변에는 불빛은 커녕 인기척도 없

다. 빨가벗고 춤을 추면서 고래 고래 고함을 쳐도 누구하나 보는 사람 없을 성

싶은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이런 곳에 혼자 오면되지 난 또 왜 데리고 왔나하

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나 오일병 이 녀석도 나름대로 치밀한 잔대가리를 지닌

놈인듯 싶었다. 만일을 대비하는 것이리라. 하긴 요강 차고 다니는 놈은 이 색

히 밖에 본 적이 없는듯도 하니... 주도면밀한 놈이긴 하다.

이 색히가 전투복을 주섬 주섬 벗더니 뭔가 밥통처럼 생긴 것을 전투복 속에서

끄집어 냈다. 뚜껑을 열자 열라 구린내가 진동을 했다. 아무리 지가 싼 것이지

만 지극히 향기롭지 못한 냄새는 본인도 맡기 힘이 들 것이다. 대뜸 내용물을

시냇물 속에 첨벙 쏟아 붓고 지푸라기로 열라 요강을 씻기 시작하였다. 냄새가

지독해서 나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그냥 서 있기만 했을 따름이다.

"야이 색히야... 너는 똥도 안 싸냐?? 아니면 니 똥은 밥에 비벼 먹어도 될 정도

로 꼬소하고 향기롭냐?? 그렇게 멀뚱 멀뚱 피해 있지만 말고 일루 와서 짱 좀봐.."

하 색히... 싸기도 많이 쌌는지 요강 씻는데도 시간이 무지무지 오래 걸렸다. 나

는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들리는 소리는 차박 차박 물튀는 소리밖에 없

다. 그 때였을까? 갑자기 뭔가가 내 머리 위로 휙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

다. 나는 순간적으로 하늘을 쳐다 보았으나 하늘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야 오일병... 뭐 이상한 낌새 못 느꼈냐??"

"아니... 왜?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

"하늘에서 뭐가 휙 지나간 것 같은데..."

"아마 참새 색히라도 하나 휙 지나갔나 부지... 혹시 모르니까 더 잘 살펴봐...."

순간 저 20미터 전방에 뭔가 거무스름한게 보였다. 공중에 둥둥 떠있는게 새라

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뭔가 흐물흐물해 보이는게 영 기분이 나쁘다.

"야 오일병... 잠시 여기에 있어.. 내가 가서 저게 뭔지 확인하고 올 께.."

"저런 움직임은 생전 처음보는데... 저게 뭐지? 야 조심해라. 웬지 낌새가 좀 이상하다."

그 기분 나쁜 물체 근처로 다가 갔다. 나는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저런 생김새에 저런 움직임을 지닌 녀석은 이 우주에는 단 한가지 밖에 존재하

지 않는다. 저건 Zerg다. 여지껏 봐온 Zerg는 다양한 형태였지만 난 느낌으로

알 수 있다. 가라를 움켜쥐었다. 등골이 오싹한게 소름이 끼쳤다. 저 녀석의 습

성은 알 도리 없었기에 더더욱 긴장감이 날 옥죄어 왔다.

순간 녀석은 잽싸게 도망가기 시작한다. 무지 무지 빠른 스피드였다. 나는 무슨

함정이 있을지 몰라 쫓아가기가 겁이 났다. 이럴 때 고립되어 있는 건 지극히

위험하다. 나는 다시 오일병이 있는 곳으로 돌아 왔다.

"야 다 씻었냐?? 빨리 복귀하자. 분위기가 좀 이상해..."

오일병도 바짝 쫀 표정이었다. 주섬 주섬 오강을 품에 끼고 일어 섰다. 우리는

사방을 살피며 천천히 움직였다. 순간 우리 주위로 뭔가가 배회하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아까 그 기분나쁜 놈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 놈이 우리쪽으로 쏜살같이 달려든다. 우리는 잽싸게

땅에 드러 누었다. 그 순간 녀석이 뭔가 이상한 걸 발사하였다. 총알 처럼 우리

에게 날라 온다. '으~악' 오일병은 놈이 발사한 그 예의 물체를 고스란히 뒤집어

썼다. 갑자기 푸석푸석 연기가 나더니 오일병의 몸을 감쌌다. 너무 놀라 가라를

그놈에게 겨누었다. 순간 그놈은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도망쳐

버린 것이다.

"오일병... 괜챦아??"

"음... 저 색히.. 애덜 물감 놀이하나?? 아무 이상 없는데...."

오일병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몸을 툭툭 털며 일어난다. 나는 웬지 속으로 불안했다.

"이봐... 상부에 보고하고 무슨 검사라도 받아야 되지 않아??"

"하따 색히... 임마 그랬다가는 근무 중 이탈 했다는 것도 보고해야 하는데... 미

쳤냐?? 게다가 봐... 아무런 이상도 없쟎아... 저 색히 뭔진 몰라도 그냥 우리보

고 놀라서 그런 걸꺼야... 야 괜히 쫄았다.... 봐 이제 보이지도 않쟎아.... 하여간 오늘 짱봐줘서 고맙다.... 답례야... 요강 앞으로 이틀만 빌려 줄께...."

나는 오일병이 건네 주는 요강을 받으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을 떨구기 어려웠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오일병은 아무 일도 없다. 정말 아무일도 없는 건가??

 

--------------------- 주 석 --------------------------------

(1) 라이너돈 (Rhynadon) : 중립 생물 중 하나로 주로 bad land에 서식한다고

한다. 생김새가 이구아나 또는 천산갑과 비슷하게 생긴 일종의 도마뱀이다.

(2) 골리앗을 움직이다 보면 '삐리리릿~'하는 기계음이 나는 걸 들을 수 있다.

이래서 혹자는 골리앗도 리버처럼 무인 전투 유닛이라고 주장하는 이덜이 있는

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따라서 필자는 이를 절충하여 무인 조종도 가능하다고

설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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